| 도올 김용옥은 동양 고전을 쉽게 설명하는 대중 강사로 EBS와 KBS를 통해 크게 활약한 바 있다. EBS의 노자 도덕경 강의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 "도올 김용옥이 말하는 노자와 21세기 上, 下, 3권"이다. 또한 KBS에서 논어를 연강하고 책으로 정리한 것이 [도올 논어1, 2권]이다. 도올의 고전 강의가 방송을 타면서 그의 특이한 용모, 직설적이고 거칠기 짝이 없고 거침없는 말투,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어렵게만 느껴진 동양 고전을 학생들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여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강좌를 듣고 다양한 반응이 있었는데 학문의 차원에서의 공방은 차치하고 그의 탁월한 대중적 전달 능력에 모두 혀를 내 둘렀다. 고전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대중들에게 어필한 그의 공헌은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유가(儒家)와 불가(佛家), 그리고 도가(道家) 등 여기저기서 학자들의 불멘 소리가 튀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 강준만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그의 조명하는 책을 내 놓았다. 도올에 대한 입체적 비평은 비교적 늦게 나왔는데 이기동, 배요한의 [도올논어 바로보기]이다. 이 책의 초판 제목은 [도올 김용옥의 일본 베끼기]이다. 일본 쯔쿠바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 이기동은 현재 성굔관대학교 교수이며 배요한은 신학을 전공한 목사이며 유학으로 같은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이 책의 원제에도 암시되어 있듯이 배요한 교수는 도올의 사상체계를 평면적으로 조명하기 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유교를 역사적 흐름과 그 특성을 함께 짚어가면서 입체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이 다른 비평성와 다르다. 저자에 의하면 도올의 유교관에는 공자가 그처럼 강조한 인(仁)에 대한 해석이 부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공자의 핵심사상이 인(仁)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도올의 논어 해석에는 인해 대한 해석이 왜 그토록 빈약한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도올의 유교관은 순자적 전통을 이어받아 실용적이고 형이 하학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적 유교의 시각임을 밝히고 있다. 이기동 교수에 의하면 본래 유교가 처음 중국에서 형성되었을때 형이상학적이고 거시적 관점을 중시한 공자적 시각과 형이하학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했던 순자적 시각이 동시에 있었다. 중국인에서는 양자의 시각이 정치이념과 문화적 맥락에 수용되었을 때 잦은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이를 통합한 사상이 중용(中龍)이다. 일본인들은 체질적으로 성악설적인 사고를 하며 기능적익 실용적인 면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불교가 일본에 들어가서는 그들 정신세계의 근거가 되기보다 장의를 담당하는 사회적 기능으로 변모했다. 유교역시 마찬가지여서 한국에서 발전시킨 형이상학적이고 우주론적인 부분은 떼어 버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예절을 교육하는 기능으로 수용하였다. 도올역시 일본에서 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의 스승의 관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유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은 유가의 전통중에서 형이상학적인 면을 수용하여 발전시켰다. 실사구시와 실용적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고 하늘을 숭상하는 형이사학은 단연코 한국이 앞서있다. 때문에 도올이 일본적 시각에서 한국의 유교와 문활르 비판할 때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올논어 바로보기]는 단순히 한 책을 평면적인 차원에서 비평하는 것을 넘어서는 부분이 이 점인 것을 배요한은 지적한다. 우리는 누구의 사상을 비평하기 위해서 다양한 관점을 취할 수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저자가 주장하는 바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한 부분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를 말꼬리 잡기라고한다. 비평자가 꼬리만 잡기 때문에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 전체는 보지 못한다. 말꼬리 잡기는 끝이 없는 논쟁만 불러 일으키기에 비평으로서 별 가치가 없다. 더 나은 수준의 비평은 저자의 중심생각을 그의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홍승균, 변상섭, 이경숙의 글들은 이 차원에서 비평서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방식의 비평은 우리의 생각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평면적 차원에서의 비평은 그 시각 자체가 또한 한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높은 수준의 비평은 한 사람의 중심생각을 잘 파악하면서 보다 큰 맥락 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를 일컬러 필자는 "입체적 비평"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강준만 교수와 이기동 교수의 글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인다. 도올은 [노자와 21세기 상권] 서장에서 자신이 고전을 강해하는 까닭은 21세기의 3대 과제인 1)인간과 자연환경과의 화해, 2)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그리고 3)지식과 삶의 화해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것이라고(pp.21-84) 야심찬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도올의 책과 강의를 다 들은 일반 대중들이 과연 이 엄청난 과제들이 해결된 느낌을 가질지 고개를 갸우뚱 하게된다.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도올이 주장하는 바가 한 마디로 무엇인지 요약이 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탁월한 언변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주장하신 "아가페적 사랑의 실천", 부처께서 주장하신 "자비의 실천", 공자께서 주장하신 "인(仁)의 실천" 등과 같이 한 마디로 요약되지 않는다. 위대한 사상은 그 복잡성에 있지 않고 실천할 수 일반 대중이 실천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심플한데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 딱 한 마디만 질문하고 싶다. "선생께서 주장하시는 바를 단 한 마디로 실천가능하도록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라고! 사실 그런 의미에서 도올 논어 바로보기는 우리 자신을 발 보는 것으로 귀결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도올을 아직 성장해 가는 사상가로 보고 싶다. 고전을 그만큼 재미있고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박식하기에 어느 하나도 정통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달게 받아 들이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 간다면 그가 뿌린 논쟁의 씨앗들을 깨긋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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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비판서는 대표적으로 노자를 웃낀 남자(이경숙), 도올논어 바로보기(이기동, 배요한), 도올비판(김상태)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 비판서적들중 가장 우수한 책은 [도올논어 바로보기]의 [배요한]씨가 가장 핵심을 찌르고 있다. 먼저 도올선생이 손가락으로 하늘의 서쪽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면 배요한 목사는 도올선생이 가리킨 방향이 하늘의 서쪽 방향을 가리킨다고 명확히 알고 있으며 그는 그 서쪽방향의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스승인 이기동 교수에 보다 학문에 대한 <인식의 틀>이 크다. 이경숙 그녀의 도올비판서는 배요한씨에 의해서 비판된다. 즉 여기에서 언급된 4명의 인물들 중에서 도올선생의 학문의 패러다임도 전혀 읽지 못했고 자신의 학문의 무지함만 드러냈다. 도올비판의 김상태씨는 도올이 손가락을 들어 서쪽 하늘을 가리켰는데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가리키는 사람에 대해 역겨워했다. 그리고 김상태씨는 위에서 언급한 이경숙, 이기동, 배요한씨의 도올비판서와 도올의 저작들을 대부분 읽고 분석했고 모든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꿰고 있다. 그리고 김상태씨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글이 가지고 있는 맹점<침소봉대, 일반화의 오류>들을 이미 인식하고 있을것이다. 난 도올선생의 저작과 그 비판서를 읽고 난 후 도올선생을 평가하는데는 두가지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도올선생이 학문을 하는 <인식의 틀>이요 다른 하나는 그의 <인간성>이다. 나는 그중 도올선생이 학문을 하는 <인식의 틀>을 높게 평가한다. 그점에 있어서는 도올논어 바로보기의 저자인 배요한씨도 마찬가지 였다. 여기서 학문을 하는 <인식의 틀>은 우리가 학문을 하는데 있어 어느 한쪽 각도만을 보와 왔다면 도올선생은 기존 방법론과 함께 다른 각도에서도 학문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학문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수 있는 방법이다. 배요한씨도 바로 도올선생의 <인식의 틀>을 높이 샀고 나 또한 바로 그점에 있어 도올선생의 학문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도올선생의 <인간성>은 정말 처참할 정도로 김상태씨에 의해 벌거벗겨지는데 꼭 추잡한 나의 내면 세계를 보는 것과 같아 부끄러움을 느꼈고 김상태씨의 도올선생에 대한 비판을 독자들 자신의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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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이기동 선생의 시경강설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 김용옥 선생의 논어를 다시 읽고 있다. 곳곳에서 시경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이기동 선생의 시경과는 차원이 다른것을 느꼈다. 이기동 선생의 시경은 강설이 아니라 걍 해석만 해놓은 수준이라는.
이를테면 시경의 시작을 알리는 관저라는 시를 해석함에 있어서 도올선생은 시의 단순한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 그 시대상황과 연관시켜서 왜 그러한 시가 나왔는지까지 설명해준다. 이기동 선생은 달랑 해석해놓고 남녀간의 사랑노래라는 코멘트만... 유치하다.
이기동 선생은 시경강설 서문에 김학주 선생을 비릇한 기존 시경번역중 좋은것은 출전을 밝히지 않고 그대로 쓴다고 했다. 이 무슨 희한한 소린지... 난 이글을 읽고 도대체 학자로서의 양심은 물론 자질까지 의심했었다... 이런분이 도올의 학설이 일본학설을 그대로 배꼈다고 침소봉대하기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난 도올선생의 학설이 일본것을 따랐는지 알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도올의 노자해석과 논어해석에 수긍이 가는 면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나는 도올의 고전해석에서 무한한 삶의 지혜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기동 선생의 시경강설이나 논어는 머라하는지... 아무 감흥이 없다.. 아마 이기동선생은 고전해석을 통해 나에게 줄 삶의 지혜가 없는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만약 이기동 선생의 도올 비판에 동의하시는 분은 반드시 도올의 논어와 이기동 선생의 논어를 비교해 보라.
내가 보기에 두 분의 논어 이해의 정도는 교수와 학부생 수준보다도 더 차이가 나는것 같다. 학부생이 교수님의 논문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
| 도올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 현란하고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면서도 뭔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그러한 해석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제 그 의문점이 이 책으로 인해 풀리는 것 같다. 도올의 이론에 대하여 몇 권의 비판서가 있었지만 동양철학 전문가의 비판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요지는 도올의 논어해석은 일본학자의 이론을 빼낀 일본식 해석이라는 것!! 도올에 심취한 사람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명저이다. 이기동 교수님의 좋은 글에 감사한다. 배요한 박사의 글도 읽어봄직하다. 특히 자신을 9급이라고 낮추면서도 꼼꼼히 도올의 학문적 우월감과 독단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도덕경에 대한 해석에 대한 찬찬한 태도도 인상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