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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의 Tim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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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특이하지만 책의 구성도 매우 독창적이다. 농구의 역사, 조던의 전기, 미디어의 확산, 나이키의 성공요인등인 복잡하게 얽힌 이 책은 재미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끝난다. 미래의 담론은 무엇이 될 것인가. 현재 미국 World Trade Center참사 이 후에 주목을 받는 헌팅턴류의 ‘문명 대 문명'은 아니라고 하다. 마르크스류의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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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특이하지만 책의 구성도 매우 독창적이다. 농구의 역사, 조던의 전기, 미디어의 확산, 나이키의 성공요인등인 복잡하게 얽힌 이 책은 재미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끝난다. 미래의 담론은 무엇이 될 것인가. 현재 미국 World Trade Center참사 이 후에 주목을 받는 헌팅턴류의 ‘문명 대 문명'은 아니라고 하다. 마르크스류의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도 아니다.‘자본 대 문화’라는 것이다.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빈 라덴의 연설 모습이 TV를 통해 나타났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아니 미국이라면 그렇게 싫다는 빈 라덴이 미국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 문명대 문명의 충돌의 대표적이 사건처럼 되어버릴 테러의 장본인이 Timex 시계를 차고 있었던 것이다. 빈 라덴이 차고 있던 Timex 시계는 철인 3종 경기용으로 나온 것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농구를 조던과 나이키 그리고 위성통신을 통해 알게 되고 받아드린 것처럼 빈 라덴도 어떤 경로에서인지 모르지만 Timex라는 자본을 받아드린 것이다. 과연 Timex는 어떤 탈을 쓰고 빈 라덴에게 접근했을까? Timex 시계만 가지고 자본 대 문화라는 화두를 던지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담론에 대해서 '문명 대 문명'이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이를 비판하는 많은 학자들이 있고, 이런 의미에서 '자본 대 문화'(새롭고 테크놀로지적인 자본주의와 자본에 의해 요구되는 변화에 적응하기를 강요받는 문화 간의 투쟁)라는 주장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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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결론.. 누구를 위한 지구 자본주의의 대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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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의미하듯이 문화의 차원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지배함을 뜻한다. 현 시점에서 문화 제국주의라 함은 바로 미국 중심의 대중문화를 일컬어서 지적한다. 미국의 대중문화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나 팝음악, 그리고 TV를 통해 중계되는 각종 스포츠들, 심지어는 티셔츠에 쓰여 있는 영어 글귀까지도 문화제국주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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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의미하듯이 문화의 차원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지배함을 뜻한다. 현 시점에서 문화 제국주의라 함은 바로 미국 중심의 대중문화를 일컬어서 지적한다. 미국의 대중문화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나 팝음악, 그리고 TV를 통해 중계되는 각종 스포츠들, 심지어는 티셔츠에 쓰여 있는 영어 글귀까지도 문화제국주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문화 제국주의의 문제는 자국민들의 미국 문화에 대한 취향이 그들의 그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에 대한 취향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현상이 자국의 정체성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사람들은 지적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물량적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문화가 전세계 단위의 동질화된 자본주의 소비 문화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이제 한정된 것들이다. 그들은 소비 활동에 있어서 이런 취향에 의한 선택을 할 것이고 또한 자신이 구매한 재화를 보면서 만족할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 혹은 저 남미의 코스타리카에서의 나이키에 대한 선호도는 일반적으로 우위에 있을 것이며 그 밖에 다른 어떠한 나라라도 전세계를 연결하는 미디어망에 의해 연결만 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그 초국적 인지도를 지닌 기업에 대한 취향의 정도는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의 변동에 설명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프리드먼의 주장과 비슷하다. “미래의 전장은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혹은 문명 대 문명이 아니라 자본 대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과 자본주의는 승리했다. 1991년 이후, 투쟁의 성격은 확연히 변했다. 이제는 새롭고 테크놀로지적인 자본주의와 자본에 의해 요구되는 변화에 적응하기를 강요 받는 문화 간의 투쟁이 되었다(Walter LaFeber, 2001:205-206).” 저자는 이러한 자본과 문화의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자본이 승리할 것이라 예측하면서도 이러한 경쟁의 과정이 질서 있고 평화롭게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어떻게 전지구적 시장 경제와 시장 사회의 일부가 되어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 함의와 결론 이전까지의 부분에서 저자는 ‘조던-나이키-미디어’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맺고 있는 결론과 본문의 내용에서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본문에서는 줄곧 나이키가 미디어를 통해서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지에 대해 세계화와 연관지어 설명했을 뿐, 결론에 등장하는 자본에 저항하는 문명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에서는 부족한 듯 싶다. 저자의 결론을 살펴봄에 있어서 그것은 미국 중심적이라고 지적을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이런 세계화라는 변동에서 자본의 축에 속하는 미국의 입장에서의 대안을 제시하려 하지만, 그 반대축에 놓인 문화의 측면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대처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본문에서의 비판적 내용과는 상반되게 결론은 너무 현실 안도적인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있지는 않는가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문제만 제시해 놓은 채 그에 대한 내놓은 대안의 내용이 미흡한 듯 보인다.

[인상깊은구절]
“미래의 전장은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혹은 문명 대 문명이 아니라 자본 대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과 자본주의는 승리했다. 1991년 이후, 투쟁의 성격은 확연히 변했다. 이제는 새롭고 테크놀로지적인 자본주의와 자본에 의해 요구되는 변화에 적응하기를 강요 받는 문화 간의 투쟁이 되었다(Walter LaFeber, 2001:205-206).”
c******l 2001.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내용정리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내용정리" 내용보기
흑인 청소년들의 희망, 마이클 조던은 과연 제대로 된 역할모델인가? 새로운 시장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이키나 머독, 터너의 미디어 제국과 같은 혁명적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초국적 기업들의 힘과 역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성TV 등 시장지배적 언론의 힘으로 전지구적 문화의 획일화라는 현상이 수반되는 것은 일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게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내용정리" 내용보기
흑인 청소년들의 희망, 마이클 조던은 과연 제대로 된 역할모델인가?
새로운 시장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이키나 머독, 터너의 미디어 제국과 같은 혁명적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초국적 기업들의 힘과 역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성TV 등 시장지배적 언론의 힘으로 전지구적 문화의 획일화라는 현상이 수반되는 것은 일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게 되리라.
YES마니아 : 로얄 k******5 2008.05.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