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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4년전 출간된바 있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후편격이라 할만한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책의 구성인데, 최장집 교수가 지난 3년간 발표한 글을 묶은 본서는 하나의 글마다 그 뒤편에 편집자인 박상훈 씨가 글에 대한 배경 설명 및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한 첨언, 그리고 편집자 개인의 의견 등등을 첨부하고 있으며, 이는 더욱 깊이있는 독자의 이해를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저자인 최장집 교수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 본서에는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있지는 않다. 비교적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7장의 한미 FTA관련 글이나 8장과 9장의 동아시아 공동체 관련 글 또한 문제제기만 있을 뿐 대안의 제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책은 저자 말마따나 '대안 그 자체보다는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인식의 터전을 보다 넓게 고르고 다져나가는 일'에 기여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저자의 목적에 비추어본다면 저자의 '전략'(?)이 어느정도 유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책을 통해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다. 바로 다수의 헌신과 노력에 의해 성취해낸 민주주의가 절차적인 차원에서 공고화되고 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에 실패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우리의 민주정부는 민중의 열망-실망의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하며, 왜 오늘의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민중들마저도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철회할 정도의 정치허무주의에 빠져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기반이 침식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저자는 그 이유로 동원, 즉 운동으로 인해 달성된 민주주의가 탈동원화된 일상으로 이어짐에 있어서 그 제도적인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을 든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주화 세력 혹은 진보세력이 일상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못한채 안이하게 기존 체제와 대면했으며, 이 속에서 집권한 민주정부는 기존 사회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보다는 별 생각없이 손쉽게 수용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즉, 오늘의 민주정부는 유권자들의 실질적인 갈등을 대변하여 정치적으로 해소할만한 정당'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게을리한채 단순히 지엽적인 정당'구조'에 대한 개혁만을 이야기하며 변죽만 울렸고, 사실상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해하고 민중이 정치부문에 참여할 영역을 극도로 좁혀버리는 신자유주의를 별다른 고민없이 극단적으로 수용했으며,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를 단순히 '정치는 나쁜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기존 기득권 의 '반부패담론' 혹은 '성장담론'등에 편승하여 매번 우회해 넘어갔다는 것이다. 민중의 '실생활의 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기존의 헤게모니와 타협하고 수용하려는 태도는 국민들을 항구적인 욕구불만(?)상태로 몰아갔고 이는 정치를 일반 민중의 삶에서 더욱 괴리시켜 애초 극단적으로 이데올로기화 되어있던 정치를 더욱 이데올로기화 하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는 저자의 주장, 더 나은 민중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쉽게쉽게 '통합담론'에 기대거나, 애초 기득권에 지나치게 유리했던 '기존의 틀'내에서의 생각없는 절충을 반복했던, 때문에 오늘날 '노동없는 민주주의'라는 기형적인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말았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문제에 대해 기존의 쉬운 담론(이를테면 '대연정론'류의 '통합담론'같은 것)에 기대어 오늘의 정치문제를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를 정치문제로서 직시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 아울러 '제도개혁'을 한답시고 이미지에만 쫓겨 변죽만 울릴 것이 아니라, '어떤'제도개혁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제도 개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매우 '당연한', 하지만 그 어디서도 정리되고 언급되지 않았던 문제의식을 저자는 날카롭고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저자의 빛나는(?) 분석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위한 언어를 얻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했다. 물론 한미FTA관련된 '시안'은 책을 위해 급히 써내려간만큼 내용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고,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글은 다소 논쟁적인 글이었던 만큼(백낙청 선생이 비판한 부분이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라 미루어 추측된다) 보다 더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문제를 오늘의 문제로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그 논의의 시작지점을 정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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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로 만나보았던 최장집 고려대교수의 저서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읽었다. 어찌보면 주류세력을 향해 늘 비판의 날을 세우는 최장집교수야말로 한국의 노엄촘스키가 아닌가 싶다. 해박한 이론을 바탕으로 현실을 분석하여 해석하고 그 위에서 현 집권세력과 사회현상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그의 필력은 왜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수구언론들이 그의 중앙정치입문을 그토록 결사저지하였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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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접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구입한 책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 읽을지도 모르는 책을 미리 사두는 것도 자리 낭비로 생각되었기 때문에(게다가 사고 싶은 책들이 수십개인데 전부 다 살 수 없으니...) 그냥 미련을 남기고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선물로 이책을 받게 되어서 곧장 읽게 되었다.
선물로 받은 책은 되도록 최우선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최장집 교수가 최대한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내용들이 이전에 학회와 세미나를 통해서 발표를 한 논문들을 정리하는 저작이었기 때문에 발표를 하는 학회의 성격에 따라서 내용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존의 최장집 교수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논의를 하기 보다는 자신이 그동안 전개했던 주장들을 정리하거나 혹은 변화된 상황(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이후)에서 '현재'라는 시점에서 다시금 풀어내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해갔다.
전작들에 비해서 읽는데는 쉽게 읽혀졌다.
아무래도 학문으로서의 완성도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함께 고민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최대한 쉽게 읽혀지도록 많이 신경썼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으로는 논문모음집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있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당대의 이슈와 중요한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서 최장집 교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보다 긍정적인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냈다고 생각하면 편하게 읽힐 것 같다.
최장집 교수는 꽤나 독특한 사람이다.
그의 정치적 사회적 인식은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전개시킨다. 그리고 그는 여타의 진보적이라고 평하는 입장을 가진 학자들에 비해서 보다 당대의 현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날카로운 각을 세우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교수들이 정권의 후기에 가서야 현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하는 경향에 비해서 정권 초기부터 자신의 일관적인 입장에 맞춰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말했던 사람은 주류 학자들 중에서는 최장집 교수가 거의 유일한 경우일 것 같다.
그외의 비주류 언론 및 저널리스트, 칼럼리스트 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쨌던 비주류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는 딱히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위치에 있으면서도 치열하게 현실과 앞으로의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끝없이 학문의 전쟁터에서 피하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김규항 같은 사람도 인정하지 않았겠나?
초기의 작품들이 보다 이론적인 부분이 강했다면,
후기로 올수록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과 절박함이 더해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학자들이 그때 그때의 이슈에 조잡하게 대응하는 것에 비해서 그의 시각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도 놓치지 않으며, 누군가를 인용하고 그렇다더라~ 하는 식의 별다르게 이론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도 못한 학자들에 비해서 그는 충분히 이론적으로도 완성되어 있고 좌우를 가리지 않고 충분히 공감 가능하고 설득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에게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런면으로 인해서 노무현 정권이 자신들의 지지가 후퇴하게 될수록 더욱 날이 선 비판을 하는 최장집 교수가 보기 싫기도 하겠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가 만들어낸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을 평가하는 기초자료로 사용되게 되리라는 생각은 한명이라도 더 지지세력을 필요로 하는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나름대로 심각한 골치덩어리로 생각되어졌을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본인이 말하듯이 몇가지로 압축된다.
1. 한국에서의 노동문제
2. 한국과 북한과의 분단문제
3. 한국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문제
그의 입장은 위와 같이 대략 세가지로 관심 부분을 압축할 수 있으며,
각각 독립된 관심사가 아니라 세가지는 묶여져 있으며 어느것이 최우선이고 다른 것은 차선의 문제가 아닌 세가지의 문제는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것도 소흘하게 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노무현 정권의 집권 직전의 입장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느끼지 못하지만(정해구 교수는 그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리라 예상하며 글을 써나갔다고 말했다), 분명 그의 글을 통해서 느껴지는 생각으로는 민주화 이후로 지속적으로 악화가 되는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태가 그의 학자적 입장에서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번 저작이 보다 정치학과 사회학으로서 학문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인 절박함이 더 묻어나는 것은 그는 진심으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조금은 어둡고 비관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읽어가는데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하겠지만 당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그의 시각의 깊이는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만드는 것 같다.
60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각은 여전히 젊고 진지하다.
나이가 들수록 상아탑에서 안주하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며 해결책을 찾아가려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존경을 갖게 만들게 한다.
더욱 아쉬운 것은,
최장집 교수 이후로 학자들은 그를 본받기 보다는 상아탑에서 여전히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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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 막연히만 알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치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특히 엘리트들이 ‘상식’을 지키지 않는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좋은 사람들이 엘리트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도덕적인 ‘상식’과 ‘당위’를 되새김질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생각은 정치 지형에 대한 무식함의 소치였다. 이미 완성된 대의 민주주의의 틀은 갖추어져 있으나 엘리트들이 나빠서 문제라는 생각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서 있는 곳을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비추어 주지도 못한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벌써 예전에 좋은 엘리트를 뽑으면 되는것 아닌가?
최장집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견해를 같이 하지는 않더라도 분별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보편적으로 그 의견을 존중 받는 몇명의 지식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풍부한 정치이론적 지식을 외국에서 수입해와서 달달 풀어놓는 일을 하는 대신, 그 이론들을 지렛대로 사용해서 한국의 정치 지형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에 일생을 바쳤고(그가 지렛대로 삼아 그 이론적 작업을 존중했던 학자는 그의 스승 필립페 슈미터와, 갈등 이론의 대가 샤츠슈나이더로 보인다), 그러한 작업은 학문적 기준으로 보나, 우리 사회에서의 적실성 측면에서 보나 모종의 탁월성을 성취하고 있다.
최장집이 이런 문제의식을 집중적으로 풀어 놓은 책은 본의 아니게 일종의 삼부작을 형성하고 있는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주의>, 그리고 이 책 <민주주의의 민주화>, 그리고 <어떤 민주주의인가>가 그것이다. 이 중 한 권만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두 번째 책인 바로 이 책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읽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이전 정부 시절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의식과 진단의 적실성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왜 민주주의가 외형적으로는 공고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이 절실한 삶의 문제들이 정치를 통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 내가 어릴 때 냈던 답인 “엘리트가 바보에다가 사기꾼에다가 하여튼 나쁜 놈이어서”라는 것도 역시 이 질문에 대한 모종의 대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무식한 대답인 셈이다.
민주주의는 착한 엘리트들을 뽑고 싶지만 실상은 나쁜 엘리트들을 계속 물갈이 해가며 무한 반복되는 게임이 아니다. 정치학은 민주주의의 핵심 기준으로서 몇 가지 개념들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그 중 최장집은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고리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본다. 즉, 선출된 통치자가 투표자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는 어느 정부 시대이건,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집중화된 엘리트 구조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지역 개발만 해서 이익을 일부 분배하는 정치공학적인 발상이 토건 국가화를 통해 실현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은 결국 표를 달라 그러면 그 지역의 투기세력에게 이권을 주겠다는 사적 이익 교환 게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정부의 정책과 내용 결정 방식이 민중의 요구와 연결고리를 실질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잃고, “성장=효율성=기술관료적 경영주의”라는 등식 속에서 독자적으로 효율성 기준에 의한 정책을 관철시키면서 계속 지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는 한국 정치에서 갈등이나 분열의 표출을 부정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태도, 정치는 썪은 것이니 정치를 없애자는 태도, 통합적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알아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태도 때문에, 사회의 중요한 갈등이 민주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억압되고 회피하면서 정당은 사사화되고 정당을 매개로 하는 의회주의의 실질적 내용이 한번도 제대로 실현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자리는 이권 교환의 정치와 기술관료주의와 전문가 주의가 차지하게 되었으며, 근저에서 이데올로기의 동질화된 수준에서 약간씩의 차이만 있는 정책들이 갑론을박하는 사태를 낳았다고 한다.
그는 따라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틀을 짜기 위해서는 바로 개혁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부패하고 썪은 정치인 몰아내고 깨끗하고 일 척척 잘하고 리더쉽 있는 관료 같은 인물 뽑아서 합리적으로 해결하자’와 같은 목적이 근저에 깔려 있다면 새로운 제도 개혁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 자체를 비효율과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태도에는 기술관료적 합리주의가 깔려 있으며 비례대표성을 줄이고 국회의원을 줄이자는 발언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현상은 개혁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민주주의 부실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표성과 책임성, 그리고 갈등의 공론화, 갈등에 대한 공공적이고 민주적인 해결의 중요성 등과 같은 가치에 대한 합의가 전 시민사회를 통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을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한 합의가 형성이 된다면, 그 이후에는 그 목적에 적합한 제도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정당과 사회, 후보와 유권자가 접촉하여 사회적 의견을 형성하며 갈등을 공론화하는 지점에 대한 비용을 급격히 통제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가 사적 이익과 유착할 가능성이 있는 지점에 대해서 엄격히 감시하는 방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정당체제가 민중과의 접촉면을 넓혀 바로서는 것,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결선 투표제 등을 들고 있다.
제7장에서는 단지 정치제도나 정치역학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 정치의 일원적 가치로 군림하고 있는 성장 중심론의 한계를 철저히 지적하며, ‘성장’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해결하는 ‘발전’을 정책의 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성장중심론은, 저환율과 많은 수출, 낮은 임금과 노동자 불안정화 및 내핍화를 바탕으로 한 대기업 성장에 맞추어져 있음으로 인해 그 외형적 성장에 비해 발전의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럽고 상황은 악화되어 간다고 본다. 그는 오늘날 한국에는 ‘내발적 발전 모델’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며, 이에 대해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하는데,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이 내발적 발전모델의 성립을 위해서는 국가가 고용보호, 실업보호, 임금/소득보호, 재교육훈련 지원 등의 사회보호제도를 통해 기업에 고유하게 활용되는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안심하고 자신의 기술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늘날 사교육 산업, 자격증 학원 산업, 취업 알선업, 안정적인 직장을 둘러싼 제로섬식 경쟁에 투여되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이것은 후생경제학자들이 방어적 투자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행복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군비경쟁식 비용이다. 먹고 살기 팍팍하니까 조금이라도 남 위에 올라서서 안전한 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군비경쟁식 비용의 거대함은 외형적 민주주의와 성장중심의 정책 토대 위에 모래성처럼 쌓인 우리 사회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점이다. 이 중 일부라도 사회보호제도에 제대로 사용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정책을 이루기 위해 적합한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전망을 많은 신뢰를 받고 있는 학자가 꾸준히, 면밀하게 제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언가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하여도 혼란과 혼동을 걷어내고 방향을 제대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잇다. 다만, 정치를 평가하는 규준에 대한 합의 형성, 제대로 된 정당정치, 비례대표제 등의 이야기말고 아직은 좀 먼 이야기같다 하더라도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 디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대담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모델들을 제안하고 오류를 비판하며 갈고 닦는 과정에서, 갈등의 사사화라는 교착 상태에 빠진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색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심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만을 보인 것은 한계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이 한국 정치가 처한 지형과 바람직한 전망의 방향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전 국민의 필독서임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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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지난 학기에 수업을 들은 최장집 선생님.. 우리나라의 미래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고민할 수 있는 특권을 내게 던져주신 분이다..
민주주의란 머릿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다수의 중산, 하류층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만약 다수인 중산, 하류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임에 자명하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중산, 하류층의 폭발적인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세력을 형성했던 386세대가 현재 정계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386세대는 자신들을 선출해준 다수의 중산, 하류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기존의 보수체제와의 타협에 힘을 기울이며, 결국 사회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386세대의 정치적 역량에서 가장 많이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변화는 사회비판을 통해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운동에서 정당을 통한 정책결정으로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386세대 국회의원들은 다수민중의 의사를 정당의 목표로 대변하지 못하고, 보수체제와의 연대를 통한 신자유주의의 도입에 집중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자본의 소유자들이 큰 힘을 행사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중산, 하류층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있으며, 빈부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소수 자본의 소유자들과 이들과 연계된 정부, 언론, 지식인층들의 연대의 이익만이 대변되고 있다.
386세대가 주도하는 정부와 정당은 사회의 중심적인 갈등의 축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물중심의 선거를 통한 정치권의 엘리트화라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정당은 점점 더 엘리트화되어 가고 기득세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쪽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정부와 정당이 사회세력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정책이 아니라 이미지 경쟁으로 선출된다면,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결정 시행하는 반민주적인 정부들이 계속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 책 속에 들어있다..
책의 서두에도 언급되었듯이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단지 시론차원의 대안적 의견들이 종종 눈에 띌 뿐이다.
그러나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의 도입과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다수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 되고 만다는 문제의식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통념을 벗어나면서도 매우 설득력 있다. 시장논리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담론이 넓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 학기 전에는 이런 글을 보기만 해도, 혹 이 글을 읽는 대개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무슨 말인지 답답했을텐데,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내가 이런 책을 읽고 간략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