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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이라고 하면 흔히 로마네스크 미술과 고딕 미술만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두 사조만을 탐구하면 중세 미술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단편적으로야 그렇겠지만, 사상적 뿌리나 도상의 근원에 대해서도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중세 미술과 도상>은 중세 미술을 다루기 위해 카타콤베 시절의 벽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의 기독교 회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고, 그 특징은 어느 곳에서 비롯되었으며, 후세로 이어지면서 발전한 도상과 도중에 사라진 도상을 탐구하면서 그 이유도 추적하고 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내용적으로나 규모적으로 훨씬 거창해진 기독교 미술도 다루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중세 미술 이야기에 진입한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방대한 분야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중심을 잃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양적, 질적으로 엄청난 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고, 할 말만 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많은 자료를 정리한 글을 써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어려운 용어도 거의 쓰지 않고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서술하여, 꽤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힌다는 것도 장점이다.
또한 중세 미술품을 제작하는 데 따랐던 고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 중에서 손꼽히는 것은 단연 제작비 부족으로 인한 제작 난항이었다.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었지만, 제작비는 실질적으로 가장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요소였다. 고딕 성당의 상징과 다름없는, 그 찬란하고 현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사양길로 접어든 이유를 보고 정말 미묘한 기분이 되었더랬다. 부조 느낌을 주는 단색 그림에 지나지 않는 그리자유가 스테인드글라스를 성당에서 밀어낸 이유는 단 하나, 훨씬 저렴한 제작비였다. 단순히 제작비 때문에 신비로운 분위기는 고사하고 숭고한 느낌마저 거의 주지 않는 그리자유가 대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진정, 제작비는 기술적 아름다움마저도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였던 것이다.
나는 중세 성당이 수십 년에 걸쳐 건축된 것이 그저 거대한 규모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수십 년간 꾸준히 성당을 건축했다는 것에 감탄하면서, 당대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세를 위해 성당을 지었겠다는 생각에 감명마저 받았더랬다. 그런데, 실상은 제작비가 바닥나면 건축이 중지되고 기부금이 모여 제작비를 확보하면 다시 건설하는 과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중세 사회에서 성당과 성당 벽화 및 기물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중세에는 성서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문맹률도 지극히 높았다. 때문에 성당은 대부분의 사람이 종교와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서는 사실상 유일했고, 이 점은 중세 미술에서도 반영된다. 특히 '백과사전과 같은 미술' 챕터에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교육받고 부유한 상위계층만을 대상으로 한 비잔티움 미술과 민중을 의식한 중세 미술은 여러 면에서 대조된다. 비단 주요 대상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비잔티움 미술의 기술적 완성도는 서유럽 지역의 그것에 확실히 앞선다. 그렇다고 사회적 역할도 우월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세 미술에 대해 다루니만큼 성상 논쟁과 그 이후의 기독교 미술 변화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신이 달라질리는 없건만, 인간 사회의 논쟁으로 인해 신에 대한 인식마저도 변화하는 것을 보면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명제에 손을 들고 싶어질 지경이다. 신실한 신자라면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말에는 반발하겠지만, 종교는 사람들이 다듬어나가는 것이라는 말에는 수긍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