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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사(원제: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 W.워런버거 지음. 이순호 옮김 (2006.6.10, 교양인)
일단, 인터넷으로 책을 고를 때 책의 정면사진 말고 측면사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구입한 책들은 어찌나 두껍던지...
이번에 읽은 책은 [인류의 미래사]라는 책이다. 주로 과거와 현재에 골몰했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다. "제3의 물결", "권력의 이동", "부의 미래" 등 앨빈 토플러 씨리즈를 전혀 읽지 않았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자본주의 이후의 인류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일 것 같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기로 한다.
2200년대의 저명한 학자가 손녀딸한테 이야기해주는 형식의 이 책은 그래서 읽고 이해하기에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미래를 읽는 데에 적용할 배경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라도 잘 읽어지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읽어지는 대로 주욱 읽어나가면서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이해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읽는 데에도 그보다 더 과거의 일들을 바탕으로 하듯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미래를 서술해 보는(예측이나 예언이 아니라)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또한 학자로서 도전해 보아야 할 일이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감한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열린 텍스트가 된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평을 쓰는 데에 요약을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그래도 미래사의 얼개를 먼저 이해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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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의 위기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자본축적의 정도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는 것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가까운 자본주의의 미래이다.
정치경제학의 여러 이론들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 어느 누구도 자본을 완전히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됨에 따른 소유의 분산,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토대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생각하게 된 자본주의 발달의 물적 한계는,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오해 중의 하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나 서비스가 소비하고자 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자본증식을 위하여 생산되며, 따라서 과잉생산이 일반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과잉생산의 문제는 석유자원의 고갈가능성에서 보듯 지구라는 환경을 혹사시키고, 고갈시키고, 황폐화시키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 문제는 국가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세계체제), 그리고 나아가 우주자본주의(?)로 팽창하지 않는 이상은 지구라는 범위에서 그 발전이 한정되며, 이런 식으로 파괴된 환경이 자본주의의 더 이상의 팽창에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점진적이고 이성적인 메커니즘으로 해소된다면 참 좋겠는데, 자본주의의 모순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는 폭력적이고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2. 제3차세계대전과 세계연방의 출현
그렇다. 3차대전으로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모순이 일순간 해소된다. 70억명 이상의 인류가 사망한다니 너무나 끔찍하다(핵전쟁, 지휘부없는 전투 등으로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이 초토화된다고 되어 있음). 이 책에서 찍은(?) 해는 2044년이다(얼마남지 않았다. 이 때 내 나이 고작(?) 70인데...).
3차대전 이후 출현한 세계연방은 세계당(World Party)에 의해 지배된다. 자본주의의 폐단과 모순 때문에 끔찍한 일을 겪은 인류는 이러한 일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되고, 세계연방은 유일한 국가가 된다.
자본주의를 통하여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전 인류가 평등하며 자기소외를 겪지 않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개인은 생계를 위하여 일에 몰두하지 않고, 평생 교육을 받으며 여러가지 일을 수행하게 된다. 자본주의를 통하여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과 축적된 자본(기계설비 등) 덕분에 인류가 직접생산에 가담하는 일은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영컨설팅과 교육에 종사한다고 묘사한 부분은 재미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개인의 자가용 소유를 금한다는 부분이다. 승용차는 렌터카 형태로만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도로건설을 위하여 무리하게 환경을 파괴할 일도 없어진다고 한다. 자본축적은 중지되고(또는 더뎌지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되며, 생태계가 복원된다.
세계연방의 국가경영은 대부분이 세계당 당원인 세계연방의 정부조직에 의하여 수행되는데, 이러한 방식이 또 하나의 모순을 낳게 된다. 구시대였던 자본주의의 병폐를 없애기 위하여 계급을 철폐하게 되는데, 평등주의에 입각한 운영방식 때문에 개별성이 인정되지 못하는 점, 그리고 관료주의와 시스템화의 폐해가 발생하는 점이다.
3. 작은당(Small Party)의 집권과 정부없는 지배(governance without government)의 실현
작은당이 선거를 통하여 집권하여 세계연방이 해체되고, 세계는 한 마디로 '자기들끼리 지내고 싶은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살게 된다는 설정. 예컨대, 코란에 입각한 나라를 세우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나라를 세운다거나,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끼리 로키산맥 안으로 기어들어가 250명 남짓한 사람들끼리 간섭받지 않는 공동체를 이룬다는 설정이다.
재미있는 것은, 동경 근처의 일본사람들은 계보학자들이 어느 작은 어촌에서 꽁치 비늘을 다듬고 있던 천황의 후손을 찾아내어 입헌군주국을 세운다는 설정(조롱이 아닐까 싶다^^).
세계연방 시절에 이룬 평등이 이런 짜깁기식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세계사가 사라졌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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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식으로 미래사를 써나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방향이든 인류의 미래는 하나라는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나는 아주 짧은 찰나를 살 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결론은 코미디가 되겠지만, 내 자손들을 위하여 죽기 전에 3차대전의 포화에서 비교적 벗어나있는 남반구의 나라(호주나 뉴질랜드)로 이민가야겠다는 생각과, 고도화되는 후기자본주의에 살게 될 나의 여생을 생각하여 투자를 통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우스운(?) 결론이다.
아무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멈추어진 세상이 아니고, 오늘의 결심과 삶이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얻은 작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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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인류의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 역시 무모한 행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미래의 모습이 이렇게 될 거라는 단정 대신에 현실이 이렇게 흘러가면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류가 살게 될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현실을 살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나 올해의 목표가 아닌 백 년, 이 백년 후의 목표를 설정해 놓는 것처럼 말이죠.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2150년에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인류의 2/3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과 두 번째는 그 이후에 세계 전체가 하나의 체제로 통합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대전이야 현재 상황에서도 언제든 발발할 가능성이 느껴질 만큼 위협적인 상황입니다만, 인류의 2/3가 그로 인해 사라진다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어느 곳이 안전할 수 있을까요? 세계가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어 움직인다는 건 일견 현재의 세계화가 확대된 형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고 합니다. 기존 자본주의는 완전히 몰락하고 전세계적으로 확대된 사회주의 체제로의 편입!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2200년이 되어서도 현재의 시스템이 큰 변혁을 이루게 될까? 하는 회의를 갖게 합니다. 자본주의가 위기라고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명맥을 이어갈 것만 같고.. 사회주의를 갈구하기에는 시민들의 의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가? 어떤 체제가 진정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꿈이 없는 삶에서 생의 의미를 찾기 힘든 것처럼 인류의 미래 역시 그저 아무런 목표없이 지나가 버린다면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시간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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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봤던 책인데... 심심풀이로, 서울에서 움직일때 들고다니면서 다시 봐버렸다.
뭐랄까... SF적인 가상역사로부터 인간사회가 안고있는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의 전개방식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그려보는 건데. 설득력의 적정성 여부는 차치하고, 일단 이런 식으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저자의 능력이 아니라, 이런식의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는 부분을 인정하면, 참 인간이란 종이 가지는 한계가 어느정도인지 다시금 깊게 성찰을 해보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적 전망의 균현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컸다고 평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문제는 정치이겠고... 그 배경의 철학이겠고.
인문학과 자연과학/공학의 협업으로 10년에 한번정도씩 이런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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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 이는 누구나 가지는 원초적인 의문일 것이다. 개인의 미래도 궁금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도 궁금하고, 인류의 미래, 더 나아가 수억년이 흐른 지구의 미래 역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은 2200년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1990년부터 2200년까지 인류의 가까운 미래의 역사에 대한 얘기이다. (이 책이 쓰여진 때가 1989년이므로 1990년도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는 미래였다.)
이 책은 미래학자인 W.워런 와거의 미래사 연구의 결정체이지만, 다른 학자들의 학문서와 다르게 전혀 지루하지 않고, SF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함께 제공한다.
물론, 과거 역사와 현재의 세계 질서를 면밀하게 관찰하여, 향후 200년간 역사의 진행 방향에 대한 저자의 연구 결과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꼭 이런 식으로 역사가 진행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이 책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결론만 얘기한다면 2200년의 미래는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 된다. 전쟁도 없고, 질병도 대부분 극복되고, 수명은 연장되고, 우주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정복된다.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여 지구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지라도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함으로써 인류의 멸망은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기술력이 확보된다.
그렇지만, 내가 생존해 있을 더 가까운 미래는 매우 암담하다. 인구 재앙, 환경 재앙, 자본에 의한 독재 등이 결국에 90억 인구중 70억이 사망하는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불과 38년후인 2044년의 일이다. (특히, 대부분의 전쟁이 북반구에서 벌어짐으로써, 희생자도 북반구에 집중된다.)
이후에 세계당에 의한 단일국가 체제가 유지되다가 이역시 붕괴되고, 초강력 국가가 없는 작은 공동체들의 분권화된 모임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유토피아적인 지구의 모습이 된다.
물론, 수명 연장에서 더 나아가 뇌 이식을 통한 영생 추구, 사라지는 민족의식, 가족애의 희박 등은 과연 이것이 유토피아의 모습인가하는 의심을 가지게도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가끔씩 나오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나, 한국식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소개되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이 나오면 왠지 반가운것은 어쩔수 없는 민족의식의 발로인것 같다.)
또한, 각 chapter의 끝부분에 간주곡이란 이름으로 소개되는 젠슨가와 브랜트가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 시대의 자화상도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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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W. 워런 와거(Walter Warren Wager)''의 저서 ''인류의 미래사''. 부제는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이고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원제를 직역하면 ''미래의 짧은 역사''가 된다. ''미래의 역사''라니. ''역사(history)''는 원래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나. 미래(future)와 역사(history)가 같이 쓰여있는 제목이 좀 어색하다. 미래학 저서라고 할 수있는 책이지만, 따분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미래에 관한 장황한 설명을 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22세기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20세기 말부터 현재(22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 사이사이마다 편지, 일기, 서신 등의 그럴싸한 글들을 수록하여 각 시기에 살던 소시민의 삶도 조명하고 있다. 마치 범지구적인 ''심시티(Simcity)''를 하면서 중간중간 ''심즈(Sims)''의 삶을 들여다본다고 할까? 작가의 예상 혹은 예언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단순히 사회학적인 시각 뿐만아니라, 인문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미래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한다. 나처럼 잡학다식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땡길 만한 구성이다. 그래서 400쪽이 넘는 만만하지 않은 양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책이 쓰여진 때가 1989년 이후에 두번의 개정이 있었다는데, 2007년인 지금과 비교해보면 맞다 싶은 점도 있고 아닌 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예상보다 세계는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 변화는 시간이 더 지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미래세계는 분명히 매혹적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꿈꾸었을 법한 일들이 이 책에도 많이 등장한다. 과학의 발전에 힘 입어,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진다. 자유, 그 날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제 3차 세계대전을 치룬 뒤, 등장하는 ''세계 국가''와 세계 국가의 붕괴 후 등장하는 ''자유의 시대''. ''통합과 분열'', 세계는 이 두 단어 사이를 왕복하고 있는게 아닌가한다. 현재는 아직 분열의 시대지만 UN, EU, NATO 등 국경을 초월한 단체들이 등장하여 통합을 꿈꾸고 있다. 과거에 칭기스칸이나 알렉산더 같은 대제국을 꿈꾼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오래 못가 와해되고 말았다. 인간의 변덕이란 알 수가 없다. 21세기와 22세기에 등장하는 유토피아(Utopia)에 가까운 모습들. 과연 지금의 인류가 그렇게나 빨리 그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세계의 변화''와 ''인류의 진화''를 이끄는 인류의 가장 ''핵심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작가가 예상하는 것처럼 빨라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도 엄청나게 빠른 변화 속에 살고있지만, 책 속에서처럼 정말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는 멸망이 먼처 찾아올 듯도하다. 멸망보다는 발전과 진화를 선택한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실패와 위험을 완전히 배재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대해 아주 작은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453쪽 "엄마......죽음......복제......안 돼."라는 미지의 외계에서 온 (해독된) 신호를 들려준다. 텅빈 공간에서 왔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미래에서 온 경고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구, 즉 ''gaia''를 복제는 인간 복제와 그로 인한 혼란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환경오염이나 화석연료의 고갈, 국제 분쟁 등으로 인류에게 운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진화하느냐 혹은 멸망하느냐. 과연 인류는 그 운명의 기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 상황으로만 봐서는 후자에 가까워보인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에 대한 옮고 그름의 판단은, 100년 후에 혹은 200년 후에나 이루어 질 것이다. 과연 그 때 이 책이 ''위대한 예견''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헛된 몽상''으로 남을 것인가? 전자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친다. [인상깊은구절] 이들 중 2038년에서 2040년 사이 2년 동안 수백만 번이나 잡힌 신호가 가장 인상적이었단다. 58,550광년이나 떨어진 아마도 텅 빈 공간으로 보이는 곳에서 온 신호였다. 과학자들이 이 신호의 디지털 코드를 인간 언어로 변환해보니 맹독성 세균의 침입을 받은 어떤 존재들이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내용이었다. 울부짖음은 거의 기계적으로 반복되었는데, "엄마......죽음......복제......안 돼."를 뜻하는 신호들로 끝을 맺고 있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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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흔히 미래학자나 예측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양 극단에는 SF 소설과 정부 보고서 류의 정식 문건을 들 수 있다. 지금 재직 중인 정부출연연구소의 미래예측부서에서 발간하는 보고서가 바로 후자라면, SF 소설 - 예를 들어 '나는 전설이다'나 '우주 전쟁' 같은 책들이 전자에 해당한다. 이 둘의 중간에서 약간 SF 소설 쪽으로 치우치면서 대중성을 바라보는 미래학자들이 주로 쓰는 방식이 '미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에코토피아 뉴스'가 딱 이런 부류에 해당하는 책인데, 이번 '인류의 미래사' 역시 '에코토피아 뉴스'보다 150년 늦게 쓰였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서술 방식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에코토피아 뉴스'는 주인공이 꿈에서 '미래'라고 겪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인 반면, '인류의 미래사'는 2200년을 살고 있는 역사학자가 손녀에게 20세기 후반부터의 인류 역사를 요약하여 전달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가상역사 21세기'와 아주 유사하다. '에코토피아 뉴스'와 이 책을 볼 때, 두 역사가 전개되는 큰 틀은 놀랍게도 아주 유사하다. 자본주의의 파국이 독점 자본주의 시대에 이은 세계 대전을 통해 도래하게 되고, 그 뒤 세계 정부가 구성되었다가, 거의 모든 형태의 정부가 없어지면서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서 전 세계의 대부분이 운영되는 (사실상) 무정부주의의 상태를 최종 종착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비록 두 책이 설정하는 시점이 100~200년 정도 차이나기는 하지만, 어차피 각각 쓰여진 시점이 그만큼 차이나고 있으니 당연한 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이라면, 통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전개가 뚜렷하게 원인과 결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거시 역사에 있어서는 어째서 독점 자본주의 시대가 올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견고하던 자본주의가 어떻게 망해가는지, 세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세계 정부가 어떻게 세워지고 전세계적 사회주의가 견고하게 서는지 등등을 하나의 실타래처럼 부드럽게 풀어가는 것이 꽤 괜찮다. 세계당의 사회주의에서 무정부 상태로 넘어가는 부분 역시 (일부를 제외하면) 충분히 지금 상태에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는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가상역사 21세기'보다는 더 책다운 책이다.
통사 구조의 서술에서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미시 역사의 외면이라는 한계를 저자는 각 챕터 사이에 '책 속의 저자'가 자신의 가족들이 썼던 옛 일기나 편지를 손녀에게 전해주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기도 하다. 거시적이며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사상과 체제의 변화 흐름에 개인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꽤 흥미롭게 보여주는 방법이다.
전세계적 사회주의 시대를 거쳐 무정부 상태로 가는 것을 종착역으로 선정하는 것은 '에코토피아 뉴스'에서도 그랬듯이 저자의 이념 지향점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을 쓴 사람의 특권이니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가는데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는가하는 점이 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책의 가장 크며,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나타나는데, 저자는 사회주의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큰 전제로 '유전자 조작에 의한 초인류의 등장'을 사용하고 있다. 신체, 정신 모두 완벽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욕심을 갖지 않게 되어서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초인류'는 비단 사회구조의 성립 뿐만 아니라 23세기 인류의 우주 진출 같은 과학기술의 개발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다. 과학기술, 특히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고 미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실수이기도 해서 '가상역사 21세기'에서도 같은 단점이 보인다. 이 책 내에서 보여주는 생물학의 발달 과정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순되는 점이 심심찮게 목격되며, 이런 식이라면 이 책의 방식으로 초인류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초인류고 뭐고 만들기 전에 모든 생물학이 파탄났을 것이다. 중요한 전제였던 생물학의 발전에 대한 논리가 깨지고나니 '전세계적 사회주의의 실현' 이후에 저자가 상상한 역사 전개는 모두 이성적인 근거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책 내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생물학자의 감수를 받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저자가 21세기 후반에 이뤄진다고 했던 전세계적 사회주의 시대에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라는 것.. 물론 아마 그 전에 벌어지는 3차 세계대전에서 70억명이 죽는다고 하니, 이 때 같이 죽을 가능성이 크다. 두번째는 과학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게 지금 있는 팀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기술예측'이라는 것을 좀더 확장해서 이런 소설로 만들어보는 것을 장기 프로젝트로 가져가보면 어떨까 싶었다.
허울뿐인 사회주의 국가를 비롯하여 속임수에 능한 지배계급과 노동의 위계가 현 세계 체제 내에 존재하는 한, 진정한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쉽사리 이룰 수 없음은 물론 어쩌면 영원히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양인, Walter Warren Wager 지음, 이순호 옮김, 461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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