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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한국전쟁, 현재의 역사를 황새울과 조선례할머니를 통하여 간적접으로 체험할 수 있다.
책을 덮을 때, 역사는 드라마처럼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거. 현대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넘어가면 안된다는 거. 가슴 한 구석 아픈 역사가 있는 거.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념을 담은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땅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적어도 황새울의 역사는 어느 정도 반복된다고 가정했을 때, 황새울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야 하는 지 생각하게 한다.
*독후활동 1. '우리 땅'에 도사리고 있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정리하세요. (힌트 : 머리말 참고)
2. (1930년대~현재 우리나라 역사 연표 제시), "조선례 할머니와 황새울의 역사", "나의 역사"를 연표로 작성해 보시오.
3. 황새울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보세요. 우리 친구들의 편지를 받는다면 무척 기뻐하시겠죠?
4. (심화 또는 선택활동) 현재 황새울(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은 어떻게 되었는 지 조사하세요. 조사한 내용과 느낀점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제출하세요.
5. (심화 또는 선택활동) 행정대집행에 대해 조사하세요. 조사한 내용과 느낀점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제출하세요. |
| 한 민족의 역사는 곧 그 민족이 터전으로 삼고 있는 땅의 역사이다. 땅의 역사, 지도의 변천사는 그 민족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웅변한다. 그래서 땅이란 그 민족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땅을 잃고 유랑하고 있다면 그 민족은 ''얼굴 없는 민족''이다. 얼굴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땅을 되찾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얼굴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의 역사는 땅의 수난사, 우리들의 얼굴의 수난사이다. 혹독한 시련과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야 우리는 땅을 회복할 수 있엇고 우리의 얼굴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우리의 온전한 얼굴을 다 찾지 못했다. 땅을 되찾고 그 땅에 발붙여 산다는 것의 완전한 의미는 그 땅을 사랑하고 지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얼굴을 되찾았지만, 그 얼굴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방기하고 있다. 황새울! 그 이름은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 아름다운 땅에 대해서, 아름다운 우리 이웃의 얼굴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지고 있는가? 정대근의 <황새울>(리젬, 2006)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평택시 대추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동화이다. 동화적 소재로는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대추리 황새울의 역사를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현재의 긴박한 정치적 이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보단 민족의 역사, 한반도의 수난사를 감동적으로 상기시키며 ''지금 대추리''의 역사적 의미를 묻고 있다. 그 물음이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땅/얼굴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질타하는 것이다. <황새울>의 할머니는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 그리고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겪은 한반도 역사의 산증인이다. 우리 역사의 질곡마다 황새울은 외세에 의해 ''빼앗긴 들''이었다. 그러나 빼앗기고 빼앗겨도 할머니는 그 땅을 떠나지 않고 되찾았으며, 다시 그 땅에 새로운 생명을 심었다. 빼앗긴 들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생명을 심은 그 할머니의 삶의 힘을 나는 민족이나 국가 따위 거대한 이름을 들먹이기보단 다만 사랑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 황새울의 이야기를 동화로 써야겠다고 다짐한 그 의중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땅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땅을 지키고 살아온 힘은 자식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보듬어 안는 그 마음에 있다. 할머니에게 땅이란 그런 의미이다. 곧 사랑이라는 것. 내 자식들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 땅은 그 누구의 소유일 수 없다. 땅은 언제나 나의 것이기보다는 다가올 세대의 것이다. 그러므로 땅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의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식을 잃는 것이다.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을 독촉하며 땅을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소리치는 <황새울>의 마지막 감동적인 장면은 바로 ''땅''의 빼앗김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잃는 것,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잃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며, 그래서 결코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런 동화를 읽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아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우리 어른들 역시 황새울 할머니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우리들의 삶을 보듬는 할머니가, 땅이, 황새울의 황새가 있다. 이 사실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동화책을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황새를 부르는 할머니의 사랑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흉내내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