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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집 가운데 가장 긴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제목은 평범한 산문 형식이다. 시집은 언제나 감성적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믿는데 이 시의 엮자인 안도현은 나의 생각을 여지없이 내친다.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애매해서 도무지 안개 같은 암컷과 수컷 간의 사랑 일색인 연시풍의 시에 식상한 독자들은 틀림없이 여기 실린 시들을 예뻐해 주리라 믿습니다.(책머리의 글 중에서) 안도현의 말대로 이 시집 속에는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시는 없다. 그런데도 수록된 시들을 읽어 나가면 마음속으로 촉촉이 젖어드는 감성이 있다. 시속에 나타난 현실은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힘이 이 시집 속에 들어있다. 김기찬이 찍은 사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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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시집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시집도 있을 것이다. 연애편지에 인용한 시의 숫자가 수십 편이 넘을 수도 있을 것이고…….
가난한 현실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 이 시집 속에는 현실은 힘들고 어려워도 그 환경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인들의 넉넉한 삶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작지만 강력한 시의 힘을 신뢰할 수 있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는 작은 소망을 독자들에게 넌지시 전달한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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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1. 화.
좋은 시를 선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의 취향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슴에 팍팍 와닿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껄끄러워서 읽기 힘들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이런 시는 싫다고 하고... 대중들은 일단 어려운 말이 없어야 하고, 지나치게 상징적인 표현도 자제해야하고, 교훈적인 면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면을 부각시킨 서정시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어려운 시를 부담스러워했었는데, 시라는 것이 참 묘한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번 읽었을 때의 느낌과 두 번 읽었을 때의 느낌, 세 번 읽었을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른 것이다. 그래서 시는 두고 두고 읽으면서 그 느낌을 적어보면 매번 다르고, 매번 새롭고, 매번 놀랍다. 안도현 선생님도 어려운 표현이 없고, 감성을 툭! 하고 건드려서 쿵!하고 심장을 짜릿하게 하는 시를 많이 쓰는 시인이시다. 그리고 이 시집에서 정말 따뜻하면서 편안하고, 웃기면서 나른하고, 반짝이면서도 은은한 시들을 선별하신 것 같다. 또 더러는 쿵!하고 심장을 짜릿하게 하는 시도 있다. 정말 베껴쓰고 싶은 시들의 향연이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 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 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 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 이 시는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가운데 한 구절에서 운을 빌려왔다.
이 시의 제목이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 가운데의 한 구절을 따왔다고 하는데, 한 편의 짧은 단편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남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낭만이고, 어쩌면 유치할 수 있는 이 찌질한 소망을 여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봐야할까. 안도현 시인은 유치찬란한 이 남자들의 로망을 "꿈을 거세당한 사람들에게 시인은 이런 시를 보여주고 싶었을"거라고 말하고 있다. 밥벌이도 못하면서 어린 처자에게 얹혀 "인생을 탕진하겠"다는 이 당당한 말은 여자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하고 듣기도 싫은 말이지만, 남자들은 "아름다운 퇴폐와 무능력의 유혹을 한번쯤 꿈꿔 봐야 하지 않"겠냐고 시인은 묻는다. 글쎄, 그냥 꿈만 꾼다면 슬쩍 봐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대책없는 삶이 예전에는 있었겠지만, 현재의 삶에서는 시에서나 가능한 일이냐는 시인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해주고 싶다. 처음엔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가" 던 나어린 처자가 "울음조차 잦아들고 / 눈에는 파랗게 불이 들어"오는 시기가 되어 "덜컥 몹쓸 병 들어" 누워있겠다니... 갈수록 가관이다. 이 무슨 통속소설의 마무리란 말인가. 하지만, 마지막 행에서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시인의 능청에 웃음이 나는 이유는 뭘까. 아마 시인도 시 속의 "나어린 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건 아니었을까라고 나름 추측해 본다.
파안 - 고재종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그려!
이 시는 한편의 그림이 그려지는 시다. 노인들 다섯이 동그란 양은상에 둘러 앉아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를 놓고 권커니 잔커니 하며 세상사를 논하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단돈 오천 원에 이런 상을 내주는 주모나, 이 상을 대접 받고 "큰 대접 받았네 그려!"하고 허허 웃는 노인들이나 참 소박하면서 사람냄새가 풍기는 광경이다. 이제 이런 모습은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아스라한 풍경이 되어서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수문 양반 왕자지 - 이대흠
예순 넘어 한글 배운 수문댁 몇 날 지나자 도로 표지판쯤은 제법 읽었는데
자응 자응 했던 것을 장흥 장흥 읽게 되고 과냥 과냥 했던 것을 광양 광양 하게 되고 광주 광주 서울 서울 다 읽게 됐는데
새로 읽게 된 말이랑 이제껏 썼던 말이랑 통 달라서 말 따로 생각 따로 머릿속이 짜글짜글 했는데
자식 놈 전화 받을 때도 옴마 옴마 그래부렀냐? 하다가도 부렀다와 버렸다 사이에서 가새와 가위 사이에서 혀와 쎄가 엉켜서 말이 굳곤 하였는데
어느 날 변소 벽에 써진 말 수문 양반 왕자지 그 말 하나는 옳게 들어왔는데
그 낙서를 본 수문댁 입이 눈꼬리로 오르며 그람 그람 우리 수문 양반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뒤늦게 한글을 배워 이것저것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수문댁 할머니의 모습이 참 정겹다. "새로 읽게 된 말이랑 이제껏 썼던 말이랑 / 통 달라서"에서는 사투리를 쓰는 수문댁이 표준어와 부딪히는 모습이라서 재미있고, "혀와 쎄가 엉켜서 말이 굳곤 하였"다는 말에서는 웃음이 빵 터진다. 근데, 정말 시인의 짓궂은 면은 그 다음 연에서 터진다. "수문 양반 왕자지"라고 "변소 벽에 써진 말"을 보니, 우리 어린 시절에도 학교의 공중화장실 벽에 써있던 수많은 낙서들이 생각난다. 누구랑 누가 사귄다는 둥, 누구는 몰래 무슨 짓을 했다는 둥... 지금으로 말하면 그 당시 찌라시들은 다 공중화장실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한다. 근데, 여기서 시인은 웃음 속에서 콧등을 시큰하게 하는 반전을 제시한다. 변소 벽의 낙서를 발견하고 "입이 눈꼬리로 오르"는 수문댁이 혼잣말로 "그람 그람 우리 수문 양반 /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 왕자거튼 사람이었제"라는 말을 하다니... "사람이었제"에서 이미 한참 전에 고인이 되셨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왕자거튼"이라는 말에서 그립고 보고싶은 마음이 여겨지며, 남편에 대한 무한 애정이 느껴진다. 지금은 곁에 없는 남편을 왕자같은 사람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수문댁이 있기에, 수문양반도 저세상에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웃다가 가슴이 찡해지는 이런 시를 이렇게 쉽게 쓰는 시인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돌 하나, 꽃 한송이 - 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한세상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아온 인간의 삶이 짧은 시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두 행에서 우리의 바람을 말하고 있다.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염려와 "꽃으로 피었으면 하는 꿈"을 꾸는 우리들의 욕망... 누구나 그 경계에서 서성거리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는 사이에 세월은 간다고 안도현 시인은 말하고 있다. 돌과 꽃은 다 필요한 것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현실과 이상 사이, 성스러움과 속됨 사이... 우리는 언제나 그 어디쯤에서 헤매면서 살고 있다는...
감꽃 -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안도현 시인은 딱 네 줄의 시에 한국의 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세다"라는 동사로 표현하며 우리에게 질문하는 시인. 많은 살육이 있었던 전쟁을 치렀고, 자본의 노예가 되어서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서 살았던 시대에 대한 성찰,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셀 것인지 묻는 시인에게 우리는 침묵으로 답한다. 오랜 침묵으로 삶을 되돌아보라고 안도현시인은 권하고 있다.
밀물 -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안도현 시인은 정끝별 시인의 언어유희를 알아야 이 시가 들어올 거라고 했다. "배"의 중의적 의미를 읽으라는 것이다. 단순히 항구에 들어와서 쉬고 있는 두 척의 배 뿐만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 짓는 밤에 벗은 몸으로 누운 두 사람의 모습도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시만 읽으면 평화로운 늦은 저녁의 풍경이 그려진다. 하지만, 하룻동안 살아내며 여기저기서 얻어온 상처를 만져주고 위로를 해주는 두 척의 배와 벗고 누워서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하는 두 명의 사람을 그려본다면...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어야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 시에서, 지난 번에 읽은 시집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가 생각났다. 상처를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임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이다.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은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는 마흔이면 완전 어른이고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마흔이 훌쩍 넘고 보니, 배워야 할 것은 아직도 한참 많이 있고, 세상에는 몰랐던 무서움이 점점 더 많아지고, 아직도 인생의 깨달음에는 멀고도 멀었음을 느끼고 있다. 시인은 불혹과 부록이라는 언어유희로 마흔 이후의 삶을 덤으로 말한다.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 벌써 목차가 끝났다니... 말도 안되는 말 같지만, 현재의 사회구조를 보면 조기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하는 나이가 마흔부터 시작된다니 영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어서 씁쓸하다. 하지만, 시인은 은근히 자신의 욕망을 끝에서 표출하고 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고 말들하지만, 본인은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 머뭇대는 바람처럼 / 마음이 혹할 일 좀 / 있어야겠다"라니... 불혹의 나이지만, 유혹에 흔들려보고 싶은 욕망, 아직은 젊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앞으로의 삶을 결코 부록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뻗댐으로 보겠다는 안도현 시인의 말에 나도 깊이 공감해본다.
바람 부는 날이면 - 황인숙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벌판을 뒤흔드는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가슴 위까지 치솟아오르네 스커트 자락의 상쾌!
아, 이처럼 시원하고 상쾌한 시라니... 통통 튀는 시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는 황인숙 시인의 시다. 너무나 가볍게 표현한 이 시에서 바람의 시원함과 스커트자락의 팔랑거림이 그려지는 듯하다. 시인은 바람 앞에서 무게 잡는 남자, 바람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투사의 모습으로 서 있는 남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상쾌함을 너희는 모르지?" 하며 깔깔 웃을 것 같은 시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안도현 시인은 남자는 일생을 과장하는 일로 일생을 소비하는 자라고 말하며 "바지는 바람이 불어도 그저 숙맥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겠구나."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여자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뻘에 말뚝 박는 법 - 함민복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긴 정치망 말이나 김 말도
짧은 새우 그물 말이나 큰 말 잡아 줄 써개말도 말뚝을 잡고 손으로 또는 발로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힘으로 내리박는 것이 아니라 흔들다 보면 뻘이 물러지고 물기에 젖어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 뻘이 말뚝을 빨아들여 점점 빨리 깊이 빨아주어 정말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흔들어주어야 한다
수평이 수직을 세워 그물넝쿨을 걸고 물고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상상을 하며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며 지그시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는 제대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수직이 수직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수평이 품어주고 빨아들여줘야 가능한 일임을, 시인의 정말 대단한 발견과 더불어 짓궂은 은유까지 있어서 시가 더 재미있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힘만 믿고 설치는 남성성에 대한 싱싱한 풍자"이며, "여성성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라고 표현했다. 가만히 시를 읽어보면, 뻘에서 말뚝을 박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보이는 듯도 하고, 삶에서도 우리가 무조건 힘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흔들며 지그시 눌러주"듯이 달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듯도 하다. 시인 스스로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라고 했지만, 외설보다는 삶의 진리가 들어있는 시로 읽어지기에 슬며시 민망한 웃음이 나다가도 오히려 숙연해지기도 하는 시다.
가시 - 남진우
물고기는 제 몸속의 자디잔 가시를 다소곳이 숨기고 오늘도 물 속을 우아하게 유영한다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물고기는 오늘도 물 속에서 평안하다 이윽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사납게 퍼덕이며 곤곤한 불과 바람의 길을 거쳐 식탁 위에 버려질 때 가시는 비로소 물고기의 온몸을 산산이 찢어 헤치고 눈부신 빛 아래 선연히 자신을 드러낸다
이 시의 "가시"를 "가식"이나 "진실"로 바꿔서 읽어보라고 안도현 시인은 권한다. 그리고 "물고기"를 사람으로 혹은 "나"로 바꾼다면... 가시가 찌르는 고통스러운 삶, 진실을 숨기고 사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다가 죽은 뒤에 처절하게 드러나는 상처 혹은 진실... 바꿔서 읽어보니 정말 전혀 어색하지 않은 또 한 편의 인생을 드러내는 놀라운 시가 된다. 물고기가 살아서 가시를 드러낼 수 없듯이, 우리도 우리 몸 속 혹은 마음 속에 드러낼 수 없는 상처 하나쯤 품고 살기도 한다. "물 속을 우아하게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가시>는 우리 삶의 가시를 읽게 해주는 명작이다.
절편 - 유홍준
떡집에 가서 떡 뽑는다 떡방아간 기계 헐떡거리며 혓바닥을 내민다 떡집 여자 가위를 들고 쉴새없이 혓바닥을 자른다 혓바닥 위에 수레바퀴 문양을 찍는다 뜨끈뜨끈한 혓바닥 담은 상자 넘겨받고 떡집 나서면 세상 모든 길이 검은 절편, 검은 혓바닥 망상 위에 기름 발라가며 떡 싣고 돌아가는 길 떡살무늬 바퀴를 끼운 자동차들 죽음을 향해 어깰 겨룬다 더러는 잘못 찍은 절편의 문양처럼 뭉개지고 찌그러지고
떡방앗간에서 절편 뽑는 것은 본적이 있다. 가래떡도 마찬가지지만 기계에서 길게 떡이 나오면 떡집 아줌마가 가위로 뚝뚝 자르고 그 잘라진 떡은 아래의 다라이에 담겨진다. 그리고 나도 그게 혓바닥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막힌 시로 탄생될 줄이야. 절편 위에 찍힌 둥그런 수레바퀴 문양을 자동차의 바퀴와 연관시키며 우리들 앞의 길들을 "검은 절편, 검은 혓바닥" 으로 주욱 펼쳐지게 한다. 우리들의 삶이 결국은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더러는 잘못 찍은 절편의 문양처럼 / 뭉개지고 찌그러지"는 것으로 표현하다니. 가히 절편(絶編)이라는 언어유희로 극찬을 한 안도현 시인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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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던 시를 다시 읽는다는 건, 지나간 추억을 보듬어 보는 것처럼 흐믓한 일이고, 그 때 느꼈던 감성을 넘어서 또 그사이 살아온 만큼의 감성으로 다시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시집의 제목은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지만, 다시 한 번 읽으며, "그 풍경들을 나는 이미 사랑하고 있네" 라고 쓰고 싶다. 아름답고 정겨운 시와 함께 보내고 있는 1월의 마지막 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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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사진은 한 편의 시와 같다고. 사각의 프레임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은 비단 풍경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해 보이는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만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프레임으로 남아 있을 뿐.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보며 웃고, 옛 추억을 떠올리고, 후회를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난 뒤 이렇게 사진에 대한 잡설부터 늘어놓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에서 사진이 주는 감동이 남달랐다. 한 편 한 편의 시와 함께 소개된 사진들은 시의 여운을 길게 늘여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한 편의 시였다. 때론 시를 읽고서 한참동안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서성이지 않고서는 담을 수 없는 사진의 내력이, 작가의 발품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시의 운율처럼 내 마음에 전해져왔다. 이렇게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에서는 시와 함께 사진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라는 제목처럼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풍경을 담은 시와 사진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다른 시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진의 감동이 컸기에 사진 이야기를 먼저 꺼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실 안도현 시인이 엄선하여 추천한 풍경 같은 시들 때문이기도 하다. 밥그릇의 밑바닥을 수도 없이 핥고 있는 개를 보고서 그 밥그릇을 핥아보며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정호승 시인의 '밥그릇'으로부터 맛깔스러운 사투리가 한 폭의 따뜻한 그림을 연상케 하는 서정춘 시인의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 뻘에 말뚝을 박을 때에는 힘으로 내리박지 말고 말뚝을 흔들어 세워주어야 한다고, 말랑말랑한 힘을 이용해야 한다고 성적인 유희를 보여주는 함민복의 '뻘에 말뚝을 박는 법' 등 유명 작가로부터 젊은 시인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안도현 시인이 추천하는 시들은 작가의 말마따나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사랑 일색의 연시풍 시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시와 사진의 감동이 책을 덮은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속살을 드러내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봄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에 조바심이 가득하다. 시간을 내어야겠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야겠다. 비록 시와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을지라도 무감각하고 무심한 일상에 찌들어 사무실 안에 유폐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풍경 속에 담아두고 싶다. by 꽃다지, 2008년 4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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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는 아이, 아이 입속에는 수줍게 웃는 아직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 못한 이. 이를 다 갈고 났을 때의 후련함이 스멀스멀 안타까움으로 밀려오네. 조금씩, 조금씩 고개를 쳐드는 하얀 이의 낯설음과 낯익음 사이의 놀라움.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의 제목과 표지 사진을 보며 스쳐간 상념이다. 당시에는 어서 지나가고픈 장면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끊어진 필름을 이어 붙여 다시 처음부터 훑고 싶어지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시선집은 전적으로 시인의 취향과 일치하고 편애한 시 일색이다. 반갑게도 여러 편의 시는 나에게도 넉넉한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말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하략)
- 정호승 시, ‘밥그릇’
밥풀 하나 남지 않았는데도 혀로 열심히 핥아대던 누렁이, 반질반질하다 못해 반짝반짝 윤이 나는 누렁이의 밥그릇, 덜그덕 덜그덕! 그때의 풍경을 그때는 사랑할 줄 몰랐네. 허겁지겁 달려들어 흙발로 티셔츠 앞섶을 더럽히던 그놈을 사랑할 줄 몰랐네. 그놈에게 배울 점이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네.
정호승 시인의 ‘밥그릇’에 대한 안도현의 느낌을 옮겨본다. ‘어찌 밥그릇의 밑바닥뿐이랴. 쌀통의 밑바닥, 술잔의 밑바닥, 은행 통장의 밑바닥, 주가의 밑바닥, 경제의 밑바닥, 인생의 밑바닥, 사랑의 밑바닥, 생명의 밑바닥, 죽음의 밑바닥, 존재의 밑바닥……. 무엇이든 그 밑바닥에 닿아보지 않고는 무엇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이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궐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내게는 서른이 결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얘기라 감히 짐작조차 못했다. 마흔이 되면 세상 다 살았구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는 서른을 넘겼고 마흔이 멀지 않음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나 여전히 핏줄이 파닥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 혹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나이 사이사이 숨겨 있는 유쾌함을 발견하게 되리라.
(상략)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나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하략)
- 정희성 시, ‘태백산행’
“학생!” 그다지 시력이 좋아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언제 봤다고 막말인가. 허나 난 더 신난다. 하긴 할머니 눈에는 내가 얼마나 어려 보이겠는가. 내가 십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듯 할머니는 내 나이로 다시 한 번 삶을 살아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보다 더 나이든 할머니가 꼬부랑꼬부랑 다가와 앞의 할머니에게 “조오흘 때다!” 할 것 같지만.
현재의 풍경도 이제 사랑하려 한다. 누군가에겐 부러워마지 않는 나의 오늘을 사랑하려 하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김준태 시, ‘감꽃’ 전문
뼈아픈 역사는 감성적인 유년 시절을 묻지 못하고, 아무리 많은 돈도 쓰디쓴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그나저나 나는 멋 훗날 무엇을 셀까 몰라. 그 무엇을 세고 있을 풍경까지도 사랑하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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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선택한 좋은 시(詩), 그가 기꺼이 필사(筆寫)해서 마음에 남겨두고 싶었던 48편의 시를 담고 있는 시선집(詩選集)이다. 특정 시인의 시집을 선택하지 않고 48인의 시모음인 이 시집을 선택하여 읽게 된 것은 우리의 시인들을 가까이 하지 못해 우리시의 이해가 천박하여 시집의 선택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자각과 우리말의 활용능력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듯하여, 좋아하는 시인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요령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욕심은 성취되었으며, 당분간은 막연함이 아닌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시인이나 시집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조언을 충분히 구한 상황이 되었다. 모아놓은 48인의 저마다 개성 넘치는 시들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말의 음성학적 아름다움을 느끼고, 각각의 작품들이 내재하고 있는 내적질서와 언어적 표현형식에 감탄을 연발하였으니 이보다 큰 수확이 어디 있겠는가. 한 문학평론가가 시는 “의미론적 훈련”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시인 안도현의 짤막한 촌철살인의 시평(詩評)은 미처 알지 못하고 넘어가던 이들 시의 이해를 결정적으로 높여준다. 아니 한 뼘만큼 시의 이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하는 표현이 정당하겠다.
그의 표현처럼 맛깔스러운 시, 유쾌한 스냅사진 같은 시, 주관이 배제된 채 객관적 묘사만으로 아름다움을 펼쳐낸 시, 내성의 절창(絶唱)이라고까지 부추기는 시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들 명편 중에서도 내 감수성과 얄팍한 지성을 자극한 몇 편의 시들은 필사와 암송을 위해 준비 될 터이고, 이 과정이 내심 흐뭇하기까지 하다. 김명인 시인의 시집인 『따뜻한 적막』에 수록된 <너와집 한 채>라는 시구 중 한 구절을 제목으로 하고 있는 시인 김사인의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는 콧잔등이 시큰하고 가슴이 메는 공감으로 몇 번이고 읽어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난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 할 수 없다.”는 안도현 시인의 촌평이 붙은 시인 정끝별의 <밀물>은 명치끝이 뭉클하여 암송하기까지 하였으니 진정 무엇에 대한 느낌을 공유한다는 발견은 기쁘기조차 한 것인 모양이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 두 척의 배가 /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 벗은 두 배가 / 나란히 누워 /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 응, 바다가 잠잠해서” - 정끝별 作 <밀물>
그리고 김선우의 <봄날 오후>, 문태준의 <가재미>, 오규원의 <들찔레와 향기>, 남진우의 <가시>는 한동안 시선을 멈춘 채 오랫동안 되새기며, 그 삶의 풍경들을, 삶의 본질을 관통하는 시의 내성을 음미하기도 하였다. 내겐 감성을 순화시키고 여유롭고 세밀한 세상 보기를 하게하는 시의 본성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가져다 준 특별한 시집으로 기억될 것 같다. 특히 작고한 사진작가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 30년>의 사진들이 시편 곳곳에 게재되어 시집의 품격을 한층 제고시켜주기도 한다. 소설, 시의 창작을 준비하는, 시집의 선택을 고민하는, 아름다운 진정 좋은 시를 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집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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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맑게 하기 위해 시를 쓴다는 어느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꼬리잡기 마음을 가져 본다. 시를 매일 일용 할 양식처럼 먹는 다면,나의 영혼도 깨끗해 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숭악한(?) 마음을 숨겨둔 채 시인의 영혼에 매일 무임승차한다. 내 마음에 차곡차곡 맑은 영혼이 쌓이길 바라면서~
정양의 시<물 끊이기>를 들여 다 본다.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치는 놈 되는 세상에..
중략
'솔'을 팔지 않는 담뱃가게 때문에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시선이 멈춘다. 그랬다,그날 나는 신권을 찾아 은행을 여기저기 기웃해야 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5만원권을 권하는 은행을 보면서.. 부글부글했었다. 5만원을 권하는 사회에서,1만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부글부글했다. 그러데 시인처럼 끝까지 당당하게 부글부글 할 자신이 없다,그래서 그것이 이내 나를 또 부글부글하게 했다~
이것이 시를 읽는 재미인 것이다. 혼자 읽고 있지만,대상이 있고,상대방이 있어,끝없이 무엇인가를 서로 소통하고 있는 느낌...^^ 그리고 '불혹 혹은 부록'이란 시를 마흔을 바라보는 선배에게 읽어 주었더랬다..
시인이 베께 놓은 시는,이렇게 또 다른 누군가가 베끼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이 시집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사진들이 그것인데,시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과거로의 추억으로 떠나게 만들어 주었다. 시인에게는 죄송하지만,실린 시들보다,사진을 보느라,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시집이었는데,사진집 같은 느낌이 들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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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었다. 시 보다는 산문이 이해가 쉽고 편하다고 느꼈었다. 시는 함축적이고 압축적인 글이 많아 난해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시인에 따라, 어떤 시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난해한 시도 많고,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그닥 친절하지 않은 시들도 더러 있다.
이 책을 엮은이도 시인으로 처음엔 직접 쓴 시로 이해하고 책을 빌려왔는데, 읽다보니 정작 안도현 시인이 쓴 시는 1편도 없다는 걸 알았다. 모두 다른 시인이 쓴 시를 말 그대로 한 권으로 엮어 놓은 '좋은 시' 모음집이다.
경쟁상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도현 시인의 마음에 들어온 시는 어떤 것들 일까? 노트에 베끼고 싶을 정도로 소장하고 싶은 시들은 뭐가 좋았을까? 어디가 좋았을까? 하는 호기심에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나와 시와의 인연은 아주 짧다. 학창시절 크게 유행처럼 번졌던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를 보며 자랐고, 신혼 초에는 '칼릴 지브란'이니 '메리 헤스칼'이니 하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더러 읽었다. 마음에 드는 시는 프린트해서 책상유리에 끼워 두기도 했었다. 그 후로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시 이외의 책들을 읽기에도 시간은 항상 부족했으니...
예전의 내 느낌을 떠올리면서 시를 읽는다. 시인은 어떤 문장에, 어떤 부분에 마음을 뺏겼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읽어나갔다. 한 줄, 한줄 충분히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내려간다. 친절하게도 선택된 하나의 시가 옮겨져 있고 그 옆에 엮은이의 평이 짧게 들어있다. 퀴즈를 풀 듯이 안도현시인의 마음을 유추해 갈 필요없이 정답이 바로바로 공개된 셈이다.
시를 처음에 한 번 읽고, 짧은 서평의 글을 읽으며 다시 읽는다. 두 번째로 읽을때는 처음의 느낌과는 다르게 마음에 더 와 닿는다. 따뜻한 해설과 엮은이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읽으니 이해가 좀 더 쉽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대해야 할지 감이 좀 왔다. 거기에 흑백사진이 주는 여운과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면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봄이 주는 설레임이 책에서도 느껴진다. 마음을 은근하게 흔드는 느낌이 참 좋았다.
참 많은 시인이 등장하는데 부끄럽게도 내가 아는 시인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되었다. 알고 있는 시인을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느낌 있는 책을 찾고 있다면, 세월에 노출된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마음에 여운이 길게 남을 '시'로 이 시집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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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시는 내겐 참 어렵다. 일반 산문에 비해 시를 읽고 있으면 집중이 잘 안되고 이해가 잘 안되며, 당연히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내겐 참 버겁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 또한 그러하다. 아마도 나는 머리가 아주 나쁘거나 감성이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이 시집은 예전에 지인으로부터 읽기를 권유받은 책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리스트에만 올려놓았고 선뜻 구입하기를 꺼려했는데 이번에 읽어 보게 되었다. 처음 책을 추천받아 정보를 훑어 보았을 때, 내게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다름 아닌 김기찬님의 사진들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 누가 보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아주 아주 충분한 풍경일 것이라 생각된다.
주문 받은 책을 손에 쥐고 한장, 한장 넘겨가며 아주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마음을 저절로 품게 되는 원동력이 바로 그 사진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안도현님이 추천한 시들이 모두 그 따뜻함과 잔잔한 마음을 연상시키기에 함께 올려져 있는 사진들이 더 커다란 마음 속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게다.
1960년대인지, 70년대인지...혹은 80년대의 달동네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진 속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와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은 시를 이해하는 데 감각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저절로 머금게 되는 내 입가의 미소는 다름 아닌 시와 사진이 내게 전달하는 잔잔하고 따스한 감동의 결과이다. 그나마 내가 이 시집을 보다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를 읽고, 안도현님이 짧게 해설한 글을 읽고, 다시 사진을 바라보면 나와 같은 이들도 쉽게(?) 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곳곳에 모두 아파트가 세워져서 다시 보기 힘든 그 풍경들, 아니 어딘가에 존재하더라도 그 어떤 환경적 영향으로 똑같을 수 없는 아이들의 눈동자와 웃음들, 더불어 절대로 같을 수 없는 느낌들... 내 마음을 촉촉히 적신 이 책은 마음이 답답하거나 모든 조바심이 나를 짓누를 때, 꼭 한번 다시 찾아 보고 싶다. 특별히 책장의 좋은 자리를 마련하여 소중히 간직하고, 오래 오래 곱씹어 읽고, 보고, 감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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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집을 들고 읽게 될 줄이야!'라는 말을 할 만큼 시집은 나와 거리가 있다.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감정을 말과 글로 다 표현하기 힘든데 죽을힘을 다해서 펼쳐내는 것이 참 고생들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가끔 한 구절이 꼭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람을 기다리다 잠시 들른 서점에서 김기찬 사진 관련 책을 찾아보았다. 70년대부터 서울과 근교의 골목 풍경 사진을 많이 담고 있다. 그의 사진을 통해서 어렴풋이 흩어져가는 기억을 본다. 지금과는 또 다른 어른이 돼버린 어린이의 회상을 보기도 한다. 아이가 그의 사진을 보면서 동남아시아 아이들이냐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지금 내 또래 또는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다. 표지의 사내아이와 해맑게 웃는 소녀의 표정이 즐거워 보인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보다, 요즘 거리에서 이렇게 해맑게 웃는 사람들을 본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재미있고, 인간미 넘치는 흑백사진에 딱 맞는 책 제목이다. 사진첩인 줄 알았는데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라고 떡 하니 시집 간판이 주황색으로 예쁘게 칠해져 있다. 넉넉한 사진을 넘기며 사서 두어 달 책장에 두었다. 출장 갈 때 들고나가서 돌아온 지 한참이 되어 겨우 다 본 셈이다. 시집도 읽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행기를 타려는데 배우 이경영을 보았다. 요즘 영화는 이경영이 출현한 영화와 출현하지 않는 영화로 나뉠 만큼 다양한 역할을 한다. 90년대 명계남이 그랬다면 훨씬 수준 높은 연기력과 비중을 갖고 있다. 불한당의 화려한 악당역은 정말 잘 어울렸는데... 즐거운 마음에 난생처음 "싸인"을 받아봤다. 기분 좋은 마음을 갖고 비행기에서 책을 보자니 "불혹, 부록"이란 시가 나온다. 마음에 혹할 일이 있어야 한다니.. 아마도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아닐까?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더니, 그렇지 않아도 불혹이 돼서 싱숭생숭한데 이런 테러를 한다는 지탄이 순식간에 날아온다. 어차피 비행기 뜨면 떠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한 장 더 보내본다. 평화는 No Touch라는 구절보다 뻥튀기 가마니에 누었는지, 기댔는지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절대적인 천진무구의 세계라는 말을 사진작가의 멋진 사진이 잘 설명해 준다. 지금도 뻥튀기 기계를 보면 기분이 좋다. 알곡이 몇 배로 만들어지는 신기함이 꼭 배부른 상상을 하게 한다. 하염없이 입에 털어 넣어도 허기진 공갈빵 같은 속임수가 아쉽지만 눈과 혀는 매번 속는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시인 안도현이 시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매일 천 개의 시를 읽는다고 한다. 그것을 추려서 책을 갈무리하고, 다시 그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한다. 내가 느끼는 감성과 시인이 바라보는 조언, 멋진 사진작가의 사진, 그리고 원작 시인의 시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시대 배경이 훨씬 오래전이라고 생각한다. 6.25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팔십 세에 가깝다. 한국전쟁 전후에서 한 가지 동작을 통해서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 가치관을 한 번에 담아냈다. 무심코 나이 먹으면 "나이나 세고 있겠지"라는 낙담이 나오다가 정말 무엇을 세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하찮은 삶의 나이를 세고 있을지, 무엇인가 가족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세고 있을지..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이제'라는 시다. 유행가 가사처럼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인지, 후회 없이 살겠다는 의지인지, 과거는 모르쇠로 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술을 담근다. 그 생각으로 술을 담근 것인지, 그런 의지로 술을 담근 것인지 모르겠다. 괜히 짠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또 저렇게 사람들과 자연과 더불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지난날을 지껄이진 않겠지만 지껄이는 소리야 서로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활자를 이해하는 책 보다 그래서 시를 읽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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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시로 바꾸어 주는 힘을 줍니다
이 책을 실제로 읽은 것은 2006년 발행되었을 때 였다.
그런데 서평을 쓰기는 올해, 2008년...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안도현 시인이 골라놓은 이 시를 갓 졸업하고 설프게 일을 하고,
사람들과 이별도 하고 그런 사이, 그 때 읽었을 때의 느낌과 사뭇 달라졌다는데 있다.
그때는 이 시를 이렇게 이해했던가?
그때는 이 시가 이렇게 깊었던가?
그때는 이 구절이 하는 말을 그저 말로만 들었었지. 싶었던 거다.
그 사이 나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달라지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아마도 이 시집을 또 3년 뒤에 읽어봐야 하겠다.
그러면 그때 읽을 이 시집은 요번에 내가 읽은 시와 또 다르겠지.
게으름을 옴팡 부리다가, 이른 아침 7시부터 고향집에서 전화가 왔다.
딱 일주일전 쉬는 날에 컴퓨터 때문에 전화를 하셨던 아빠,
오늘 다시 묻는 거다. 바로 다음 쉬는 날 집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하지만 난 게으름에 갈 맘 안갈 맘 반반이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온 전화가 나의 게으른 잠을 시원히 깨워주었다. 하지만 바로 출발하기엔 너무 일러서, 이불속으로 쏘옥- 다시 들어가다가 정신이 말똥 말똥하니, 이 기분이 오랫만이어서 주변에 잡히는 시집 한 권을 펼쳐보았다.
그랬더니, 기분이 그때와 다른 것이다.
한장, 한장 흑백사진과 함께 얽힌 시들과, 안도현 시인이 풀어놓은 말들은..
나를 다시 한번 깨웠다.
감꽃 -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당신, 그리고 나는 먼 훗날에 과연 무엇을 세면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볼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던지니, 잠이 안온다. 잠이 깼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게으름을 일주일전에 쉽게 해버린 나의 약속을 지키라고
부모님은 이른 아침 나를 깨운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가 내가 뱉어버린 그 날에 맞춰 꼭 나를 깨운 것이다.
그게 갑자기 그렇게 고마웠다.
그리고 옆에 마침 이 시집이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
요소 요소 흑백의 천진함과 가난과 희망과 즐거움, 귀여움이 넘쳐나는 사진들.
촉촉하고 깊고 울림이 큰 시들이 한데 어울어져 나를 쳐다본다.
아이고, 귀여워라.
나도 내게 인상을 깊었던 시들을 베끼며 살아야 겠다.
![]() <아이와 함께 장을 보러 나왔는데, 비가 내렸겠지...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