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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다. 이전에는 배로 가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가지 못했다. 가까운 길을 배로 몇 시간씩 가다니 하는 생각이었다.
남북이 서로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생긴 육로를 따라 금강산 행을 하게 되었다. 이 길에서 나는 이렇게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금강산 가는 길에 북한인을 만나다.’라고. 이전에 어떤 일이 생겨서 관광객의 발이 묶였다는 소리를 들었고 무엇을 하면 벌금이 얼마이고 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온 나였다. 언젠가 싱가포르에 갈 때 공항에서 먼저 내리면서 하는 말이 있었다. 담배 피우는 곳이 어디지 하는 이 말에 모두들 웃었다.
가기 전에 육로로 내 차로 온 가족이 가는 것은 어떨까 하고 예약을 하고 싶었으나 워낙 하루당 대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불가능했다. 하지만 금강산을 다녀온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다. 금강산에 가서는 그곳의 버스로 움직여야 하는데 남들이 말하듯이 ‘괜히 폼 한 번 잡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시간은 걸리리라 생각하고 잠실종합운동장을 가니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거기서 일행을 만나 화진포로 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는 밀리지 않았다. 남측출입국관리소를 지나 북측으로 들어갔다. 남북이 합의한 내용이 남측, 북측으로 부른다고 하니 이제부터 그렇게 써야겠다.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출입국관리소가 보였다. 아직 제대로 짓지 못한 임시건물 같았다. 약간의 긴장은 되었지만 남측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남측 군인들이 손을 흔들고 웃는 것에 비해서 북측 군인들은 아무 감정 없는 눈초리로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이 달라 보였다.
이곳을 출발하여 금강산 관광의 출발점인 온정각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26대로 구성된 관광단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느리게 달리는 버스 때문에 시간은 말이 걸린다. 하긴 그저께보다는 좋아졌다고 한다. 나가는 차들을 보면 금강산 버스가 아닌 일반버스도 많았다. 남측의 일반버스들은 모두 번호표를 가렸다.
우리 일행은 온정각 쪽에서 바다 쪽으로 가서 새로 지은 금강 패밀리 비치 호텔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역시 철조망으로 가려 있었다. 내가 이 도로 이름을 monkey road라고 붙였더니 독일인 조지는 앞에다 money를 더 붙여야 한다고 했다. ‘money monkey road’ 재미있는 표현이다.
길 양쪽에는 북측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고 농사를 짓는 모습이 보였다. 이동 중에는 사진 촬영이 되지 않았다. 양배추, 보리 등이 많이 보였고 길옆에는 남측에도 있고 내 집에도 많이 심은 금계국꽃이 많이 보였다. 땅을 달라도 꽃은 같았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절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익어가는 보리와 많은 아사자가 예상된다는 뉴스가 머리에 스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어릴 때 어머니께서 밭에서 익은 보리를 베어 와서 보리방아를 찧을 때 그 방아를 30번도 못 찧고 힘들다고 도망칠 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걸 수백 번을 찧어서 보리밥을 했다. 여자가 강한 것인가? 어머니가 강한 것인가? 두부를 만들 때도 맷돌을 몇 번 돌리면 도망갔는데 어머니께서는 그걸 계속하셨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군대 갔더니 다리를 똑바로 서라고 한다. 나는 그게 안 된다. 왜? 어머니께서 나를 낳자마자 업고 밭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다리가 휜 것이다. 그런 사정을 이야기할 수 없는데 자꾸 똑바로 서라, 다리를 붙여라 하니 갑자기 장애인이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보리를 보자 이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온정각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고성항에 있는 북측이 경영하는 횟집에서 회를 먹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른 후 북측이 경영하는 선술집 같은 곳에서 한 잔 더하고 첫 날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구룡연으로 향했다. 땀을 내기 위해서 맨 마지막에 출발하여 좀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오르면서 북측 해설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떤 해설원은 내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아프다고 가라고 하기도 했다.
구룡연을 갔다가 나무꾼과 선녀라는 전설이 옮겨왔다는 상팔담이 보이는 곳까지 등산을 하고 내려 왔다. 내려오는 길에 북측 사람들과 같이 내려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별로 속에 있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이 덕분에 나의 일행들은 많이 기다리게 되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점심은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었는데 양이 좀 적어서 파전을 시켜서 먹었다. 오후에는 금강산온천에서 쉬었다. 굉장히 깨끗하고 좋았으나 물은 별로인 것 같았다. 온정각이 온으로 시작한다면 온천은 맞을 것인데 말이다. 4시 반에 북측이 하는 교예공연을 구경했으나 그리 특이한 점은 없었고 마지막에 하는 4바퀴 뒤로 돌기가 하이라이트였다. 유럽을 갈 때 로마를 먼저 가지 말라고 하듯이 중국에 가서 이런 공연을 본 것이 흥미를 반감시킨 것 같았다. 저녁에는 가무공연을 보는 일행들은 온정각에 남고 먼저 호텔로 돌아와서 술을 한 잔 하고 잤다.
마지막 날은 만물상코스를 관광하는 날이다. 그래도 외금강에서는 만물상코스가 최고인 것 같은데 안내하는 사람들이 너무 안전만 강조해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사실 빨리 오른다면 40분, 빨리 내려온다면 30분 정도가 아닐까 한다. 설악산의 울산바위 보다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냇가는 강원도 설악산과 같았고 다만 더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굽이굽이 올라가는 도로는 너무 좋았다. 주차장에 내려서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너무 힘들다고 강조를 했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천선대에 올라서 만물상을 구경했는데 그렇게까지 아! 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북측 사람들과 대화하며 놀다가 망양대로 향했다.
망양대로 가는 길은 나 혼자였다. 모두 못 가게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독일인 조지에게 가자고 하니 장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했다. 독일은 역시 선진국인가 보다. 병원에 다니는 의사가 6주 휴가를 준다고 하니. 이제 먹기 위해서 일하고,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 아닐까. 그런데 아직도 일하기 위해서 먹고, 일하기 위해서 놀면서 선진국이라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망양대로 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혼자서 즐겁게 산을 올랐다. 망양대에서는 원산 쪽의 바닷가가 보였다. 그래서 망양대라고 이름이 붙었으리라. 망양대에는 세 사람의 북측 사람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15분이나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사상을 이야기하길래 자유의지를 이야기하고 사상 없는 사상을 하라고 했다. 음악 없는 음악, 말 없는 말, 생각 없는 생각, 사상 없는 사상. 이 얼마나 좋은 것들인가.
늦게 내려오다 보니 뛰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북측 해설원과 이야기를 하고 내려왔다. 이번에 만난 북측 해설원 중에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쫓아가 잡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서 내가 꼭 잡으라고 했을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가끔은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하려고도 하고, 남측의 사정을 알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진실로 사람들은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늦게 내려 온 덕분에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게 되어 좀 눈총을 받았다. 12시 반에 식사를 하고 남측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가던 길의 여정을 거꾸로 반복하여 남측으로 내려왔다.
이번 금강산 여행을 하면서 두 권의 책(유홍준의 답사기, 강릉에서 산 금강산 관련 시집)을 가지고 갔다가 이 책을 사게 되었다. 10달러(당시 1달러당 1,040원이었음)가 없어서 11,000원을 들여서 구입했다. 컬러사진이 많아서 책은 묵직하다. 금강산 안내도 잘 되어 있고 시도 있어서 좋다.
43쪽에 있는 김삿갓의 시가 마음에 든다. 松松栢栢岩岩廻 山山水水處處寄(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 바위 돌아드니 산 산 물 물 가는 곳마다 딴 세상이로구나)라는 시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글에서 이런 풍취를 느낄 수가 있단 말인가. 과연 천재다. 저녁 한끼를 먹으려는 김삿갓을 골려주려는 중에게 타자로 낸 운에 맞추어 ‘석양의 나그네 시장타’ ‘너희 절 인심 고약타’라는 시를 지은 김삿갓. 정말 대단한 재치이고 우아함이다.
이 책은 온정각, 수정봉 코스, 만물상 코스, 구룡연 코스, 세존봉 코스, 내금강 코스로 나누어 컬러로 된 사진과 시, 그리고 에세이로 엮어져 있다. 차라리 내가 사진을 찍지 않고 이 책에 있는 사진을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여행하면서 들고 다니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금강산 관광에서 아쉬운 점은 현대아산의 독점에 따른 폐해였다. 패키지여행으로 알고 갔는데 배낭여행처럼 점심과 저녁은 개인 부담이란다. 그 정도는 이해하겠다. 그런데 밥값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싸다고 하는 골프장보다 더 비싸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을 따로 본인이 사먹으라고 하는 것인가. 이것이 독점의 폐해 아닌가. 혹시 다른 곳에서 적자나는 것을 식대나 비싸게 받아서 본전을 찾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패키지여행에 포함되어 있다면 이 정도 가격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북측 사람들보다 남측 사람들이 더 불친절하다. 옥류관에서는 냉면조차 말아주려고 하는데 남측이 경영하는 뷔페식당에서는 신용카드를 소액이라고 잘 받으려 하지안고 얼마 안 되는 신용카드에 휴대폰번호까지 적으려고 한다. 회사의 편리를 위해 고객을 불편해도 그만이란 말인가. 이것 역시 독점의 폐해일 것이다.
얼마 전에 다른 관광회사와 북측이 거래하는 것을 인간적인 측면 즉, 그동안 노력해온 현대아산에게 피해를 주는 다른 관광회사의 문제점을 비판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금강산에서 직접 독점의 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낮은 서비스, 높은 가격 이것이 독점의 폐해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금강산여행에 제목을 붙이라고 하면 ‘금강산 가는 길에 북한 사람을 만나다’라고 하고 싶다. 사람들도 좋고 경치도 좋았다. 거기에 이런 좋은 책을 들고 다니며 시조라도 한 수 외워서 읊으니 그 낭만이 너무 좋았다. 금강산의 위대함은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일 게다. 다만 우리가 금강산에 가면서 북한 사람들이 금강산을 잃었다는 점은 유감이다. 그리고 현대아산의 독점 경영의 폐해가 옥에 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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