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만 교수가 새로운 책을 들고 나왔다. 『축구는 한국이다』. 주례사비평과 인정비평이 주류를 이루었던 학계에 실명 비판의 물줄기를 튼 저자의 관심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최근 공저의 형태이기는 하나 ''커피''에 대해 다루기도 했고, 최근에는 급기야 ''축구''에 이르기까지 이젠 그가 어느 사물에 손을 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처지에 이르렀다.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 사건과 사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니 해박한 지식은 둘째치고 도대체 그런 열정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이렇듯 전공과 사뭇 다른 축구의 세계를 들여다 본 이유는 무엇일까? ‘미치더라도 제대로 알고 미치자’는 것이다. 월드컵의 계절을 맞아 온 세계가 떠들썩한 이 때 더없이 필요한 말이다. 물론 단순히 즐기면 그만인 스포츠에 학문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온당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알고 즐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훌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축구계의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훌리건의 존재가 축구경기에 배태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축구 중계에 사용되는 용어가 대부분 전쟁과 관련한 용어들로 채워진 이유에 관해 생각해 본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관중의 열광을 불러온 이유 또한 그렇기는 마찬가지. 오늘 이들 각각에 대한 답의 절반은 고스란히 축구를 관전하는 팬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각각의 의문에 대한 고민 없이 경기 관전이 계속될 때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과거의 사건들이 재현될 가능성은 여지없이 높아진다. 과거 우리 축구사에서도 ''경평전''(서울과 평양 대표팀간 경기)을 비롯한 각종 축구대회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축구의 세계를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발견하고 같은 생각이 스쳤다. 제대로 알고 보는가? 이젠 스포츠에도 열정 위에 이성을 올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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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많은 편차를 보이겠지만 매번 새로운 지적 충격과 관점제시, 그리고 다방면의 분야에 대한 고찰과 그에 따른 배움은 강준만 교수의 글이 가진 전형적인 매력일 것이다.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저서도 그런 커다란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라 평가한다. 2002년 6월 이전에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강준만 교수의 주장이 나왔다면(물론 그런 주장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그것은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2002년 월드컵과 그 이후를 다룬 제7장 이전의 내용은 솔직히 머리말에서 밝힌대로 “축구처럼 재미있지는 않은” 그런 부분이었다. 물론 그동안 강준만 교수의 글을 조금이나마 접해본 결과 그가 중점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제7장 이후의 내용이라고 짐작은 했기에 큰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강준만 교수의 주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요약 즉, 왜 축구가 한국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가 직접 밝힌 부분과 독자로서의 해석을 통해 생각해 보면 우선 첫째로 카타르시스나 한풀이적인 성격의 일종의 대리만족성의 스트레스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축구가 충실하게 해 왔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고 해방후 경제발전 과정 선상에서 점차 도약하는 국력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하게 해주었으며 스트레스 표출과 해소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80년대 스포츠공화국이라는 정권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게 바로 축구였다. 물론 팔유팔파라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그리고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야구에 비해 프로축구의 비중은 미비했을지 몰라도,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 32년만의 월드컵 본선대회 진출(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2회대회 연속 월드컵 본선대회 진출(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등의 국제축구경기에서의 선전으로 축구라는 마법은 지속되었다. 셋째로, 크게 언급되진 않았으나 다른 사회 현상과 그 궤를 같이하는 한국형 인맥주의와 서열주의가 축구에서도 여실히 보여졌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을 직접 인용한다. “국가대표는 늘 고려대․연세대 인맥 중심의 연고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고, 이게 바로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좀먹는 암이었다. 박지성을 한때 지도했던 명지대 감독 김희태는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고는 월드컵 대표가 될 수 없는 것이 당시(2000년 5월) 현실이었다“고 회고했다”(P.245) 넷째로, 한국 특유의 쏠림현상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2002년 6월의 한국의 모습이 여실히 증명한다. 이에 대해 강준만교수는 “스포츠 애국주의에서 곧잘 나타나는 ‘쏠림’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영원히 바뀌지 않을 한국인의 속성으로 이해하는 게 옳을 것이다. 좁은 국토, 높은 인구밀도, 인구의 사회문화적 동질성, 과잉 도시화, 초강력 중앙집권 구조 등은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한국만의 유별난 조건이다. 그 조건에서 쏠림이 안 일어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게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섯째로, 애국과 민족주의와 관련된 부분이다. 붉은악마의 구호와 일사분란했던 응원과 구호, 그리고 "Be the Reds“라는 과거 시대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문구가 새겨준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고, 이에 대해 전체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강한 반향을 일으키고 그에 따른 많은 논쟁도 벌였던 것을 목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2002년 6월의 한국 축구를 대하는 국민들이 “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말을 가장 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표현대로 “스트레스 해소에 한맺힌 사람들”인 우리 국민들이 좋은 건수 생겼을 때에 그냥 한번 미친 듯이 놀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또 실제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놀이’하면 한국이고, 세계 으뜸이란다. 그런 선천적 유전자와 후천적 사회조건의 결과물을 지닌 한국인이니까 놀아보자는 것이다. 이 책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월드컵 광란을 즐기는 사람인가? 그렇진 않다. 한국인이 ‘놀이하는 인간’의 과잉 전형이라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다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취향대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놀이’다. 내 놀이가 소중하면 남의 놀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남의 놀이를 비난하는 것도 놀이다. 각자 기 죽지 말고 원 없이 놀자. 나는 내 놀이에 충실했을 뿐이다. 내 놀이의 결과는 ”축구는 한국“이라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끝으로 도서 선택을 위한 리뷰답게 밝히고 싶은게 있다. 단순 명쾌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축구는 한국이라는데 그게 좋은 현상인건가 아니면 나쁜 현상인가라고. 하지만 그런 평가를 강준만 교수가 내려주길 기대하고 책을 집어든(또 앞으로 드려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고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축구가 한국이라는 건 한국이 축구를 매개로 한 정치사회적 의미 부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나라나는 뜻이다”라는 점이고, 다른 그의 저서에서도 밝혔듯이 공과 과, 명과 암을 모두 보여주겠다는 의도에서 이 책도 씌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머리말에 미리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02년 6월 한 달 내내 무서운 ‘축구 광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었다. 그런 월드컵 축구 광기는 수많은 문화 평론가들을 양산해 냈다. 거의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였지만 극소수나마 부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그 중간 입장은 어떨까? 그 어느 쪽이건 지나친 과대포장에 대해선 혀를 끌끌 차되, 대체적으로 보아 양쪽의 시각이 다 타당하다고 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세상에 명암이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명을 말하는 의견도 타당하고 암을 말하는 의견도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 모순일 것 같지는 않다.” 또 하나의 양비론자의 전형이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판단이 들면 강준만 교수의 다른 저서는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가치판단 유보 [인상깊은구절]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월드컵 광란을 즐기는 사람인가? 그렇진 않다. 한국인이 ‘놀이하는 인간’의 과잉 전형이라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다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취향대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놀이’다. 내 놀이가 소중하면 남의 놀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남의 놀이를 비난하는 것도 놀이다. 각자 기 죽지 말고 원 없이 놀자. 나는 내 놀이에 충실했을 뿐이다. 내 놀이의 결과는 ”축구는 한국“이라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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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의 잘 정리 정돈하는 습관이 여실히 드러난 책이다. 연재 중인 월간이벤트의 '축제의 사회사' 2월호 기사를 쓰기 위해 읽은 책이다. 책 제목이 '한국은 축구다' 가 아니라 '축구는 한국이다' 라고 설정한 것이 재미있다. 축구에 어떤 속성들이 있길래 한국인의 품성과 축구를 동일시하여 제목부터 축구= 한국이라고 했을까. 축구는 현대적 의미로 보면 스포츠임에 틀림없지만 사실 고대부터 시작된 일종의 제의적 축제였고 지금도 그런 습성이 강하게 남아있다. 유일하게 훌리건이 존재하는 종목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사실 부수적인 문제다. 축구가 가져다 주는 집단적 축제분위기는 타 종목과 비교해보면 이해되기 힘들다. 축구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축구의 속성들이 한국 근대사와 어떻게 조우했는지 이 책은 천천히,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준다. ++ |
|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벽을 밝혔다. 알 수 없는 무게감이 내 온몸을 짓눌렀고,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버린 선수들의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축제가 끝났음을, 이번 축제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의미했다. 그날 아침, 마을 버스 안에는 눈물인지 땀인지를 뒤집어쓴 빨간 옷차림의 여성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피곤함보다도 더 짙게 깔린 서글픔과 아쉬움의 감정이 그녀를 지배하는 듯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 날의 슬픈 기억과 함께 축구로부터 멀어졌다. 홈 그라운드의 잇점을 누렸다곤 하지만 2002년의 경험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그 당시, 서울 한복판을 가득 메운 붉은 부대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레드 콤플렉스의 극복이니, W세대니, 온갖 말들을 늘어놓았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월드컵,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었다. 말 그대로 월드컵 이외의 다른 것은 존재치 않는 듯했다. 붉은 옷이 아니면 어딘가 모르게 미안해지는 분위기,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피할 수 없었던 월드컵 경기. 다같이 월드컵에 푹 빠졌던 만큼, 그 여파 역시 대단했었다. 명장 히딩크의 이름을 빌린 각종 서적들이 서점을 수놓았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은 운동 선수의 경계를 벗어나 나라를 빛낸 영웅, 더 나아가 ''신''의 경지까지 등극한 듯했다. 하지만 월드컵 이전에도 축구는 존재했었고, 축구만큼 경직된 한국 사회를 잘 설명해주는 운동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반 세기가 흘렀건만, 아직도 치욕적인 지난 식민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겸손이라고 말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다 못해 무시하곤 해왔고, 그것이야말로 한국적인 민족성이라며 운명처럼 받아들이곤 했었다. 한국의 축구 역시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축구에 있어서 만큼은 여전히 변방으로 인식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언제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국가 대표팀 간의 경기는 마치 전쟁과도 같이 인식되었고, 북한이나 일본과 같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팀이 상대라면 더더욱 축구는 치열해지기 마련이었다. 경기에서의 승리는 곧 경기 외적인 모든 영역에서의 승리와도 같았고, 이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경기를 관람하는 이들에게까지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법칙처럼 여겨졌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축구는 총소리 나지 않는 전쟁일 수밖에 없었고,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해야만 하는 무기(?)와도 같았다. K리그의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에 대한 높은 관심은 계속되었다. 일상에서의 핍박이 강렬해질수록 사람들은 축구에 목을 맸고, 국가 역시 축구를 자신들을 향한 불만감을 무마시킬 수 있는 기제로 활용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축제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맺힌''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여 주는 것이 좋으리라. 계속되는 도전에도 불구하고 매번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지난 월드컵들을 우린 기억한다. 객관적인 전력에선 열세지만, 그래도 ''꼭 이길 것이다''라는 이해키 힘든 기대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역시나''라는 한탄만을 내뱉으며 또 다시 패배주의로 빠져들었던... 하지만 축구 경기가 시작되고 마지막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기적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은 즐거웠다. 본의 아니게(?) 애국자도 되고, 태극기도 흔들고 하면서... ''축구''라는 소재를 통해 만난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바삐 걸어온 한국이라는 나라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었다.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담아 축구공을 찼을 사람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스코어)를 통해 모든 걸 정당화하려 들었던 세력들 그리고 붉은 티, 붉은 함성으로 전국을 수놓았던 무시무시한 힘까지... 스포츠는 스포츠에 그쳤으면 좋겠지만, 어디 세상일이 그리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로 받아들였던 사람들, 단순한 기쁨, 흥분의 차원을 뛰어넘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토고 전에서의 승리에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부모님의 가게(본인의 부모님은 편의점을 하신다.)에 들어와 "오늘 같은 날은 공짜로 쏘지 않으면 매국노다"를 외쳤던 사람들의 모습을... 어쩌면 ''축구가 한국''이 아니라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축구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월드컵은 잠깐이나마 나라를 사랑하길 원하는 하늘의 뜻인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