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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26살 때쯤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한다면 스스로를 이해할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대목한대목을 저에게 비추어가면서 읽었습니다 부분부분이 주옥같았고 상징적이었고 지극히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알수 없는 고통과 그 길을 풀어줄수 있는 실마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고민이 지금이 조금씩 실마리가 풀어져 가고 있고 지금도 얼마전에 여러번 읽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저에게 운명과 같은 힘을 현실로 체험할수 있는 방법을 경험시켜 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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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신화'와 성장의 '개성화' 내 안에 또 하나의 '나'를 찾아서*~
1. 어부왕The Fisher King 성배의 성(城)을 통치하는 왕이다. 청소년기에 물고기를 잡다가 생긴 상처로 인해 평생 고통받는 다. 왕의 상처는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왕은 신음하고 왕국에 있는 모든 땅은 폐허로 변했다. 어부왕의 상처를 낫게 할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바보이다.
2. 파르시팔 Parsifal 서로 상반되는 대극을 통합하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이 이름 속에는 그가 나중에 하게 될, 치유의 역할도 예고되어 있다. 한자어로 이 이름은 '도(道)'라는 표현과 의미가 유사하다.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Heart Sorrow)'이 어머니의 이름이며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도 없이 집에서 짠 천으로 옷을 지어 입고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흔히 농노의 삶, 거의 원시적으로 자라났다. 사춘기를 막 들어선 어느 날 그는 밖에서 놀다가 근사하게 차려 입고 말을 타고 있는 기사 다섯 명과 마주친다. 기사로서의 모든 군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눈부신 장면에 감격한 파르시팔은 그 즉시 어머니에게 다섯 명의 신을 만났다고 하며 그 다섯 기사들과 삶을 함께 하리라 결심한다.
파르시팔이 기사가 되던 시기에 대부 '구르몽'을 만나고 그는 진정함 남성다움에 관한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친다. 아름다운 처녀를 유혹하거나 유혹을 당해서도 안 된다. 성배의 성을 찾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특히 파르시팔이 성배의 성에 이르러 이 특정한 질문 "성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가르침을 받고 갑자기 어머니를 찾아 떠나지만 이미 어머니는 그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 길에서 '블랑시 플레르(하얀꽃의 의미)'를 만나고 이 여인은 삶의 최상의 동기가 된다. 블랑시는 파르시팔의 소중한 여인이자 그의 영감의 원천이다. 그가 수행하는 모든 영웅적 행위의 중심에 바로 그녀가 있다.
3.순결 Chastity 감정(feeling)은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이에 반하여 무드(mood)는 내면의 여성이 갑자기 닥쳐오거나 내면의 여성에게 사로 잡힌다는 것이다.(엄격히 말해서 무드란 남성의 경험을 묘사할 때만 쓰여야 한다:저자 주)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은 가치체계나 의미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므로 숭고한 것이다. 무드는 진정한 감정을 방해한다. 결과는 관계가 단절되고 창의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남자가 무드로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은 주변 사람과 모든 것들을 '이용'가치로 느낀다. 이는 대단한 유혹이다. 우울과 자만은 무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무드는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외부의 사람이나 물건들로 대신 채우려는 것이다. 남성이 무드의 지배를 받을 때는 진정으로 자기 내면의 집에서 주인이 되지 못한다. 무드는 열정과 대비될 수 있다.
4. 성배의 성 The Grail Castle 누구나 15~16세 무렵 우연히 성배의 성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곳에서 앞으로의 삶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비전을 얻는다. 그러나 남성이 어머니 콤플렉스에 싸여있는 한 그는 성배를 알아보지 못한다. 더 나쁘게는 어부왕의 상처를 낫게 할 바른 질문을 하지 못한다. 질문을 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순진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콤플렉스'가 독약이라면 '어머니 원형'은 순금이다. 신의 절반인 여성이며, 우주의 풍요로움이자 어머니인 자연이기도 하다. 언제든 우리를 풍요롭게 만든다. 성배는 항상 가까이 있고 매 순간 이용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성배의 성을 다시 만나는 것은 중년에 이르러서이다.
5. 건기 The Dry Years 청년들이 가지고 다니는, 대개는 아버지와 스승을 흉내 낸, 남성적인 도구는 혼자 힘으로 제대로 들 수조차 없다.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가 흉내낸 남성성이 들려지지 않는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준 것은 아버지만이 수리할 수 있다. 이럴 때 대부가 아주 중요한 조력자가 된다. 아버지로부터 받았지만 대신 수리해 줄 대부가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든든한 자산이다.
6. 추녀 The Hideous Damsel 의식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단계들을 우연히 찾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추녀의 임무는 잔치의 화려함에 가려진 다른 측면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한 남자의 성취도와 추녀가 지니는 힘 사이에는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성취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고통받고 더 초라해 진다. 바같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명성과 존대를 받느냐에 따라 남자의 열패감과 무의미함의 전도가 결정되는 듯하다. 추녀는 의심과 절망을 전하는 전령이다. 이 어둠의 전령사는 궁정에서 '개별화'라는 너무나 심오하게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7. 성배를 향한 기나긴 여정 The Long Quest 우리 본성에서 은둔자는 아주 내성적인 면이다. 오래도록 이 순간을 기다리며 내면의 구석진 자리에서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기다려왔다. 생의 전반기에는 대개 외향적인 것이 주도한다. 외향성이 제때 제값을 하고나면 그 다음 단계의 진화를 위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은둔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처음에는 순진한 바보가 우연히 성배의 성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두 번째는 스스로 그 길을 찾아내어야 한다. 이 오래된 신화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현명한 충고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열망이 누군가를 부르면, 뜻밖의 후원자가 등장한다. 그런 내 간절함에 응답으로 다가온 대상은 본연의 나를 드러나게 해 준다. 사방에 들어와 앉은 내 안의 무수한 언어들은 균형을 향해 걸어가려 움직인다. 로버트 A. 존슨의 저작들을 번역된 시기별로 읽어가는 중에 한 권으로 멈출 수 없는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얽힌 끈을 만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단숨에 읽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신화가 상징하는 언어들은 저자의 친절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이지 않다. 남은 시간을 더 탐구하며 가야할 길이다. 이 책을 만난 이 시점이 어쩌면 성배의 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가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옮긴이의 글에 의하면 '성배'는 여성성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현대인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궁극적으로 몸, 여성, 자연, 지구를 함께 묶는 여성적이고 자연적인 것의 통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여성성'이란 말보다는 '여성적'이라는 이미지가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은 그동안의 경직된 사회의 유연함을 위한 해결의 실마리를 의미하며 아주 가느란 희망을 소리내게 해 주는 것일 게다. 허나 그 여성적 이미지가 잘못 이해될 때 현재 대한민국의 미스박과 같은 개인의 균형이 심하게 뒤틀린 이가 나타나 집단을 현혹시키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글에서 말해주는 '마야'같은 존재로 변형되어 주변을 갈기갈기 찢어놓게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상징하는 것은 엄청나다. 마야는 여성성의 원형과 대비되는 사악함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 안에 깃든 '남성성(he)'을 '여성성(she)'으로 감싸안아 조화를 꾀하든, 그와 반대의 경우이든 내 안의 균형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비틀거리며 외형만 겨우 갖춘 민주주의를 회복해 낼 수 있는 그 시작이 될 수도 있는 비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에 잠식된 민주주의의 가치는 위로부터 시작되는 혁신으로 변화되기에는 그 힘이 너무 미약하다.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 혁신을 처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균형있는 개인의 삶은 탐욕과 그로 인한 야만성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런 건강하고 '개성화(Individuation)'된 개인이 많은 사회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열리게 할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 삶의 여정이 온전하게 진행될 수 있다면 죽음 또한 삶의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질 것같다.
[용어 해설]'개성화(Individuation)' :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원형적 잠재력을 온전히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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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 새 시대를 위한 신화가 등장하는데 신화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여주는 서곡과도 같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우리에게도 신화가 있다. 이번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버지의 이야기. 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화라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가공된 신화를 어떤 사람들은 신화적인 존재로 포장해서 그대로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인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다는건 뒤로한체 오직 이익만을 쫓아서. 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신화는 이게 아니겠지만 문득 글을 읽다보니 부화가 치밀오르며 생각이 났다.
어쨋든 신화란 새 시대에 등장할 심리학적 요소들을 어떻게 대처할지에 지혜를 준다는 것이다. 마치 역사속에서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었던 잘못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미리 조언처럼 기록되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권력에 목매다보면 신화를 보고 깨닫고 살아가라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말해도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던가? 아무튼 그렇게 신화는 다 지난 옛이야기일뿐이라고 묻어버리게 된다. 심지어 역사를 왜곡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이 두가지를 꼭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성배신화는 남성의 심리를 이야기하는데 꼭 남성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여성의 내면에도 남성성이 있으므로 여성도 직접 남성성을 경험할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 물고기를 잡다가 생긴 상처로 인해 평생 고통받는 어부왕의 이야기가 있다. 물고기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성배의 성 통치자 어부왕이 상처를 입는다.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 고통에 울부짓자 그 영향으로 왕국의 모든 땅이 폐허가 되간다. 심리학적 내면이 황폐해지면 물리적 외부 세계도 황폐화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사춘기로 접어들 무렵 숲을 돌아다니며 무예수업으로 배가 고파있는 참에 누군가 굽던 생선을 맨손으로 먹다가 손을 댄 것이다. 그 손가락이 너무 아파 입에 순간 입에 넣었는데 마침 손가락에 붙어있던 연어 조각이 목구멍을 넘어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현대심리학에서는 현대인의 고통이 바로 이 어부왕의 상처에서 시작되었다는것이다. 어부왕의 상처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어부왕이 서억인 열기를 감당할수 없어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 사냥을 갔다가 무슬립의 이교도 기사가 십자가의 비전을 체험하러 가는 기사를 만나 둘은 충돌을 일으켜 어부왕의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비전의 기사와 감각의 기사인 어부왕의 충돌을 본능과 자연이 영의 비전과 만나는 순간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 충돌로 최상의 진화가 일어나든가 아니면 심리적 파괴를 초래하는 치명적 갈등상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일로 감각적 자연은 죽고 그리스도의 비전은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 이 일로 현대인의 열정은 죽고 비전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즉 어부왕이 먹었던 생선인 연어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성장기에 들어선 소년이 자기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특질 중 어떤 것을 접하게 됨을 말한다. 연어 한조각으로 낙원의 체험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고 이 시련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완전한 구원과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풀어서 봐면 서양 남성은 대부분 어부왕이라는 것이다. 천진한 소년들이 실수로 무언가에 빠져들게 되고 그 무엇인가는 소년들이 감당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이다. 남성으로 성숙하기 전 단계의 청소년들은 그 무엇인가가 들고 있을수 없을정도로 너무 뜨거워 땅에 떨어뜨리는 씁쓸함을 체험하게 된다. 그 체험은 새로운 의식으로 나갈수도 없고 맛본 것을 잊을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렬하다.
사춘기 소년들이 겪는 이러 상처 없이는 의식적인 진화도 없다는 것이다. 이 상처는 행복한 추락이나 다행스런 실수이며 이것이 그 사람을 구원의 과정으로 인도한다. 또한 에덴동산에서의 추락과도 같다. 순수한 세계와는 이별하고 자의식의 발달 단계로 한발 나아가는 것이다. 곧 젊은이들이 세상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어른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단계라는 것.
신화를 읽다보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지만 뭐라고 딱히 이야기하기 뭐한, 딱 꼬집어 이거라고 말하기 애매모호한 그런 상황을 다 알고 있으니 걱정말고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그리고 지금 하는 고민을 달게 받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토닥이는 듯하다. 이건 비단 나만 그러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갖 신화들이 말해주고 있다. 네 곁에는 너를 허망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 네가 잘못되었다고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은 모두에게 꼭 필요한 그리고 내게 필요한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