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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인터넷 서핑 중 맥베스부인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되었다. 억압당하던 한 여성이 집착같은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인생이 극단에 빠져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취향인 영상덕분에 기대작이 되었다. 맥베스 부인이라는 이름에서 셰익스피어스의 맥베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맥베스 또한 권력과 명예라는 야망과 욕망에 의해서 그 자신의 인생을 비참한 바닥까지 끌고간 인물 중 하나이다. 그랬기에 영화 예고편을 보기전에도 어느정도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었다. 원작이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라는 이름의 책이 원작이었다. 내가 본 책은 일반의 책보다 작은 사이즈로 간간히 삽화가 그려져있는 단편이었다. 왠지 맥베스 부인이라는 이야기의 느낌이 왠지 묘사나 설명이 많고 느린전개의 1권분량의 장편소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 작은 책에는 맥베스부인과 쌈닭이라는 단편소설 두개가 담겨있었다. 1.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인 것은 틀림없다. 솔직히 러시아문학이 이렇게 재미났던 건 처음이었던 것같다.(나의 짧은 견해로) 물론 다른 많은 몰입력 강한 이야기들과 책들도 많이 있지만 뭐랄까 러시아 문학들은 좀 어려운 감이 많이 있었다. 등장인물을 구별하는 것도 어렵고, 내용도 뭔가 어렵고...ㅠ읽으려면 일단 각오부터 해야했다. 그런 나의 이상한 편견을 부수어주었다. 나중에 책 뒷편에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이 있어 읽어보니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러시아 적인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대단한 작가분이었다. 책을 읽을 때 작가보다는 그냥 느낌오는 책을 고르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를 보고 책을 고를수 있는 새로운 작가 한분을 알게되는 시간이었다. 2.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이름에서 부터 알수 있다싶이 약간 맥베스의 성향과 비슷한 인물의 느낌이다. 글 속에서 사건을 간결하면서 단순하고 속도감있게 진행하면서 무언가 더 몰입하게 만든다. 간결하지만 주인공의 성격과 변화가 팍팍 뿜어져 나온다고나 할까? 심리나 묘사에 대한 부분대신 명료하게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표현이 많았다. 글의 중심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맥베스의 살인이나 죽음과 같은 부분들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휙휙 보여주는 단편의 이야기는 읽고 있던 내 눈을 동그랗게 변했다. 조금 다른 장르의 글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봤던 영화 시계태엽오렌지의 한장면을 보는 것같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3.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음 단어들의 구로 표현하자면 '권태가 불러온 여자의 비극' 혹은 '억눌린 욕망의 불편한 결과'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읽으면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적절한 자극과 흥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충돌하고, 교제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때론 분노하고, 때론 기뻐하면서 만족감과 충족감을 느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필요하다. 자극이라고 하면 조금은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 나라는 내부와 환경이라는 외부사이에서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 편안하고, 다른 사람과 문제나 충돌이 발생할 일도 없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너무 오랜 시간 지속되면 곧 무기력해지고 만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욕도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조차 없어진채 홀로 남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가 이세상가운데서 무슨 존재인지 무슨의미인지를 생각하다가 살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거나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생각을 멈춘채로 숨만 쉬게 된다. 맥베스부인의 결혼생활도 그저 생각을 멈춘 채로 숨만 쉬게 되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주변사람들과의 교제, 세상과의 만남, 관계가 강제로 단절된채 과거와 달리 그저 방안에만 하루를 보내야했다. 당시 러시아에게 여성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좁았었는지 예상할수도 있었다. 그녀가 맺고 있는 관계는 그저 형식적이고 불편하고, 그녀의 생각과 의지와 상관없이 지극히 외부의 누군가들의 의도에 맞춰진 관계였다. 이런 관계 속에서 살아야한다면 얼마나 숨 막히고 답답했을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하다. 여기에 덧붙여 그녀가 의지하거나 온전히 이해받거나, 이해할수 있는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이것은 정신병이 없었어도 충분히 정신병이 생길수 있는 환경이라고 여겨진다. 그녀는 그러던중 한 남자의 유혹을 받는다. 그 유혹은 관계와 자극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는 그녀에게 있어서 처음 맛보는 자극이었고, 도저히 놓칠 수 없는 단꿀이 될수 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애정을 받은 엄마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 남자에게 의지한다. 처음엔 거부하지만 그의 태도에 이내 마음이 돌아서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은 집착의 수준에 까지 이른다. 새롭게 만들어진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사랑하는 그와 함께 있을수 있다'는 욕망은 갈수록 심화되고 심화되어 다른 것들을 집어삼킨다. 그녀 자신까지도 중요하지 않는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맥베스부인은 사랑을 통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또 동시에 이것이 과연 사랑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극단에 이르렀다. 아무튼 그녀에게는 빛도 어둠도 없었으며, 악이나 선도, 권태나 기쁨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조급한 마음으로 이송행렬이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어느 곳에서건 세료자를 다시 만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아이에 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96 맥베스 부인의 남자를 향한 집착이 과연 사랑인지 아니면 무기력한 자신에게 주어진 자극을 유지하고픈 욕망에 불과한 것인지는 뭐라고 단정하기 어려운것같다. 욕망이 억눌려진채 발산하지 못한 여자의 문제인가 폭발하는 욕망을 감당하지 못한 채 미쳐버린 여자의 문제인가 아니면 여자를 충동질한 남자가 문제인가 아니면 여자를 권태롭게 한 남편과 시아버지의 문제인가 여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것을 강요한 세상이 문제인가 4.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맥베스부인과 쌈닭 중 재밌게 본것은 쌈닭이다. 여기에서 나라는 화자가 등장하는데 이 화자는 주인공인 돔나 플라토노브라와 대화를 하며 그녀가 말하는 일화들을 듣는 역할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는 하지만 이내 곧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돔나는 마치 원래 오지랍 넓은 아줌마가 오늘 있었던 일을 한탄하며 수다로 펼쳐놓는 듯하다. 돔나의 이야기는 무언가 도시의 가면쓴 모습과 씁쓸함을 보여준다. 돔나는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교활한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교활하냐면, 자네가 오늘 어떤 사람의 머리를 움켜잡는다 해도, 자네가 채 긴장을 풀기도 전에 그 사람은 벌써 자네 두 다리를 치고 자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정도란 말이야. 얼마나 많은 사기와 책략이 판을 치는지, 하느님도 깜짝 놀라실걸128 돔나는 집들을 방문하면서 레이스와 옷감을 팔고 다니는 일을 하는데 사실 그보다는 중매가 그녀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간의 관계를 연결시킨다. 미혼자들간에 결혼을 중매하기도 하지만 불륜이나 원나잇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말하기도 한다. 돔나의 일화에서 돔나는 돈이 없어 곤란에 빠진 어려운 여인을 아무런 대가없이 집에 머물게 하면서 돕는 친절을 보여주는 반면 동시에 그녀의 하룻밤 정조를 판매하는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인듯 행동하고 말하던 돔나의 그런 모습들은 무언가 이율배반적이면서 계산적으로 느껴진다. 또 재미난 점은 그렇게 말하는 그녀도, 그녀에게 교활하게 하는이들도, 중매하는 이들도 대게 하느님의 은총을 바라며 그리스도교니 성자니 하는 것들을 일상적으로 찾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돔나가 사는 곳의 생활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여겨진다. 도시의 물정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은 상처받거나 혹은 그런 상처를 주는 이들이 된다. 읽으면서 돔나가 사는 페데르스부르크의 물정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고 다시 되뇌여 보니 우리가 사는 모습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속이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고, 속는것에 대해서도 익숙하다. 진실과 선량함과 친절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돈을 계산한다. 배신에 대해서 분노하지만 상대를 배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항상 어려운 가운데 신과 도덕을 찾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익숙한 세상의 물정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나는 돔나처럼 선량한 나쁜년놈이 되고 있다. 나는 페데스부르크의 물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의 물정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너무 나의 그런 모습에 대해서 무지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