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이가 눈을 뜨다니요? 청이의 아버지 봉사 심학규가 아니구요? 맞아요, 이 책은 아버지 심학규의 입장에서 다시 쓰여진 심청전입니다. 우리가 본래 알고 있는 심청전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봉사 심학규는 꼭 눈을 떠야할까요? 눈을 떠야만 행복한 것일까요? 우리가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봉사 심학규,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이는 마음씨는 착하나 무력하여, 갓난아기 청이를 이웃집에 동냥젖으로 키우고, 어느덧 청이가 자라 남의집 일을 해오는 것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더군다나, 없는 살림에도 절에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면 눈을 뜨게 해준다며, 착한 청이에게 부담을 주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글에서 만난 심학규는 어릴적 열병으로 시력을 잃자, 슬픔에 잠긴 어머니에게 "그건 어머니 탓도, 제 탓도 아닙니다. 비록 앞은 보지 못하게 됐지만 목숨을 건진 것은 다행입니다" 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하는 굳건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은 보지 못하나, 친구들이 글을 읽는 옆에서 듣고 따라 외우며, 그들이 허벅지에 글을 써주면 감촉과 손의 움직임으로 기억해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마을의 독경사로 일하면서 제 밥벌이를 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다 독경을 하러 간 곽대감 집에서 만난 딸에게 청혼을 하고, 두사람은 혼인하여 청이를 낳게 되지요. 그러나 곽씨 부인이 청이를 낳은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혼자서 청이를 키우느라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일을 못하니 구걸을 하게 되고, 그런 아버지를 보다 못한 어린 청이는 차라리 제가 일을 하겠다며 아버지는 그저 집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 청이를 보며 이웃들은 효심이 깊다고 하지만, 심학규는 집안에만 있다보니, 마을의 지리도 잊어버리게 되고, 사람들에게서도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청이만 키워놓고 나면, 자기도 전처럼 독경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살수 있을거라 여겼는데, 점점 더 외롭고 슬퍼집니다.
그래서, 그런데, 왜, 청이가 눈을 뜨라는 것일까요?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인듯 하면서도 다른 결말로 이끌어지는 글을 읽으며,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옆에서 누군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입말로 되어 있어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을 듯 합니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있는 눈을 기르게 해준다는 점에서 고학년 아이들이 읽고 생각해보기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너무 동정적이거나 신파조로 가는 글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글에서 심지 굳고, 멋진 아버지 심학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런 질문을 품게 하지요. "진정으로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늘 한가지로만 보던 고전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된다는 것, 그것 역시 새로운 것에 눈을 뜨는 것이겠지요.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며 하는 귀한 책입니다. 아쉬움이 남는 다면, 이야기는 고전에 대한 재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삽화에서는 새로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래동화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간 그림이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으나, 그림은 우리가 익히 하는 심청전에 붙여놓아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어머니, 제가 앞을 못 보게 된 것은 어머니 탓도 아니고, 또 제 탓도 아닙니다. 굳이 탓을 하자면 큰손님을 탓해야겠지요. 하지만 이제 와서 큰손님을 탓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까? 비록 앞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목숨을 건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닙니까? 큰손님 때문에 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때는 너무 괴롭고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렇게 어머니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니 지난 고통은 모두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괜한 원망과 걱정은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이제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살아갈 궁리를 해야지요. |
|
제목이 심상치 않아서 골라왔던 이 책은 처음 아이들 읽었음 했지만 결국 내가 먼저 있게 되었고 나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안겨주었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든 어른에게까지 다방면으로 가슴에이게 하는 내용이라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저 처음에는 "음~ 심학규 입장에서 쓴 거구나." 싶었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내가 일생을 살면서 바보 같이 살았구나, 나이든 노인을 무시하며 살았구나, 참... 불효하며 살았구나. 남을 엎신여기며 살았구나 하는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특히 부모 말 안 듣고 자신의 위주로 내용을 뻗쳐가는 심청이를 볼때 뇌출혈로 장기입원하셨던 어른을 돌보던 나의 모습이 다시 생각났다. 남들은 며느리 고생한다고 한마디씩 던져 주시며 나에게 겪려를 했고 어른께는 아픈 사람이 협조적이지 못하다며 또 한마디씩 남기고 가셨다.
난 연약한 노인으로서 치매까지 있었기에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묶어놓듯 가만히만 있게 만들었던 것을 참으로 후회했다.
심학규도 스스로 할 수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이는 그저 연약한 노인 취급을 해서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삶 속에서 스스로 눈을 뜨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마음의 눈을 뜬 것이다.
심학규는 어진 사람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며 자식에게 한 없이 주는 사람이었다. 부모로서 자식을 다루는 방법을 내용 속에서 보이지 않게 전달했다. 또한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나와 조금 다른 사람으로 볼 수 있도록 알렸으며 어쩌면 조금 다르기에 일반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을 버리지 않은 모습에서 심학규의 따뜻한 마음도 전달 되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눈을 뜨지 못하고 자신의 평범한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감으로 부귀보다는 자식의 잘 되는 모습을 가슴에 품고 진정한 아름다운 노후를 선택했다.
나 같은 30대들은 어릴적 티비로 심청전을 명절마다 보았을 것이다. 청이와 아버지가 서로 떨어지기전에 눈물 흘리며 매달리고 가슴아파하며 떠나야만 했던 청이의 모습이 아직도 아련할 것이다. 그런 가슴아픈 영상을 남기고 책을 읽어서 인지 심청이와 헤어지는 부분과 다시 재회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볼을 적셨다.
|
|
고전을 읽을 땐 항상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많이 들기 마련입니다.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이니 각각 다르고 항상 뭔가가 빠져있습니다. 둘째 딸이 그러더군요.'엄마,심봉사가 눈을 뜨지 않아?어째서 청이가 눈을 뜨는거야?'라고요. 이 책을 읽어 봤더니 잊혀져 있던 심봉사의 옛날 이야기부터 잊혀졌던 이야기가 있더군요. 보통 이야기 책의 '심청'에는 뺑덕어멈 이야기이나 심봉사와 곽씨부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전에 사줬던 한겨레 시리즈의 심청전에는 뺑덕어멈의 이야기는 있더군요. 그 책에는 '청아,청아 눈을 떠라'에는 없는 뺑덕어멈의 이야기도 조금 더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던 심청이의 과거와 심봉사의 과거가 이 책에는 조금 더 가깝게 나와있습니다. 청이가 눈을 뜨다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정반대이나 이 책을 읽어보시면 청이가 눈을 뜬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겉의 눈과 마음의 눈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