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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사람은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세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나의 존재와 나의 이끌림이 어떤 체험인지 밝히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부를 언어를 마련하는 것처럼.
방현희 작가의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에 수록된 '붉은 이마 여자'는 느닷없이 '첫째 날, 그녀는 막 태어났다'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35)' 듣는다.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녀는 뛰쳐 달려나간다. 물론 달려야 하지만 왜 달려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힘찬 달음박질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경쾌하다. 독자 역시 숨 가쁘게 그녀의 달리기에 동참한다.
'붉은 이마 여자'의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할아버지와 '내 남자', 진홍색 카펫을 짜는 여자와 마주친다. 처음으로 만난 할아버지에겐 흐트러짐 없이 춤추는 법을 배운다. 그 춤이 오로지 할아버지의 춤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녀는 아직 자신만의 춤을 춰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릿속엔 '저들은 누구지?'라는 물음이 생겨난다. 무엇을 위한 춤인지, 왜 추어야 하는지 알 수 없자 그녀는 달아난다. 물음을 해소하지 못한 채 달리던 그녀의 눈앞에 진홍색 카펫을 짜는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는 짜던 카펫 위에 그녀를 올리고 펄럭인다. 속절없이 휘둘리는 동안 처음 춤을 일러준 할아버지의 조언이 귀에 머문다. '네 몸을 타라구'(39) 그제야 그녀는 춤이라고 할 만한 물결을 발견한다. 여자가 진홍빛 카펫 위로 자신을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낯선 여자로부터 도망친다. 소설은 도망쳤던 그녀가 자신만의 춤, 자신만의 물결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처음 퀴어적인 체험을 하고, 이를 부정하지만 결국 재정체화를 하는 퀴어의 성장 서사다. '붉은 이마 여자'의 그녀는 퀴어를 향한 부정적인 편견을 맞닥뜨리고 내면화하기까지 한다. '내 남자'는 그녀의 강렬한 체험더러 병을 앓은 것이라고, 잊으면 낫는다고 말한다. 어느새 '내 다리가 또 다른 문을 열거야'(41)라고 자신했던 그녀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달리기 여정과 직접 체험했던 진정한 춤을 잊는 편을 택한다.
그녀는 강렬한 이끌림을 주었던 여자와 다시 만나기 위해 달리고 주저앉길 반복했다. 과연 방해받고 지체된 시간만 남았을까? 집요하게 물은 끝에 그녀는 '달려야만 한다'에서 '멈추지 않아도 좋아(55)'라는 선언을 스스로 끌어낸다. 그녀는 태어난 지 일곱 째날이 지나고 마침내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진홍색 카펫을 짜던 여자를 만난다. 자신을 카펫 위에 태우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열어주었던 그 여자는 '무척 익숙한 습기(57)'로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그녀는 '내 남자'와 할아버지와 여러 춤을 추었지만, 그 여자와 함께일 때 가장 자연스럽게 춤춘다. 비로소 그녀는 '너는 여자? 아니, 남자? 아, 너는 사람. 여자이고 남자이며 할아버지이기도 한 너는 사람'(58)이라고 탄식한다. 여자가 바로 그녀가 겪은 모든 춤의 경험이 증명해준 이끌림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녀가 도망가야 했던 낯선 이도 아니며 '내 남자'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녀와 춤을 출 수 있는 존재라고 깨달은 것이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으로. 그녀는 '순간 몇 세기쯤 살아낸 것 같(58)'다고 땀을 훔친다. 그녀의 혼란스러운 칠 일을 묘사한 '붉은 이마 여자'는 몇 세기 동안 이어진 퀴어들의 체험을 진홍색 카펫 위로 소환한다. [Reference] : 오르, 「리뷰 - 달리기 끝에 얻은 것 ㅡ 방현희 <붉은 이마 여자>」 http://www.rainbowbookmark.com/xe/?mid=review&page=2&document_srl=67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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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이야기들이 풀어진다. 소재도 파격적이고...내 취향은 아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적어도 두권은 읽어봐야지 하고 읽었으나 ... -바빌론 특급우편. :우편취급소 남자. 사기, 도둑, 거짓말로 자식을 먹인 어머니. 죽은 어머니를 업고 13년 산책. 둘이 살다 어머니를 특급우편으로 부쳐, 오이디푸스, 근친상간. -붉은 이마여자 : 동성애? 사람, 여자, 남자. 할아버지. 정신없는 이야기. -빨간 혼다 앰뷸런스 : 아버지의 죽음, 나이많은 시집안간 딸. 가정에 무심하고 즐겁게 떠도는 아버지. 고생하는 어머니. 격렬한 성적표현들. 자유를 꿈꾸는 의식의 표현인가. 항상 어디로 가는 모두가 외롭지만 견디는 한도가 다르다. - 말해줘 미란 : 개에게 말가르치기인줄. 알고보니 가정 폭력. 개, 탬버린, 기억상실, 노래방, 상담 전문가. 사랑, 폭력. 무책임하다. 여자 때려 도망갔는데, 지는 그냥 정신줄 놓고 끝? - 화이트 아웃 : 유빙, 오빠, 여동생, 눈먼숙모, 도망, 무슨 얘긴지 중구난방. 근친상간 - 연애의 재발견 : 말도 안되는 상처들. 연애? 매희, 주성, 열아홉 잘생긴 남자. 나이 많은 성공한 여자 동시에. - 새홀리기 :습지, 조류, 해창, 여자. 헤어지기? - 녹색원숭이 : 노골적 동성애. 에이즈, 상근, 현중 - 13층 수요일 오후3시 : 정신없는 묘사, 줄거리, 환상소설 - 128MB메모리카드 : 몰래촬영, 커플들. 사진찍는 여자. 여섯달 전 헤어진 남자.
동성애는 예전부터 늘 있어왔단다. @해설 - 심리주의, 금기에 갇힌 사랑이야기. 심리학적, 신화적 지식. 정신병동 근무이력. 작가는 동성애가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사회적 조건에 대해 더 이상 탐구하지 않는다. 사회적 주제에 크게 관심 가진 작가 아니다. 동성애의 심리적 조건 보이는 작품 바빌론 특급- 어머니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 고착, ' 교환가능한 사랑의 대상 속에 동성의 연인 포함시키는 이유, 질투하는 초자아 어머니를 피하는 방식이 바로 동성애를 결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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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순간은 항상 모든 일을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그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에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순간을 놓치는 일은 불가항력이라, 그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그 순간을 손에 쥐기로 했다. .... p86 ...항상 먼 곳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길. 아버지는 어딜 그렇게 가고 싶었을까. 집착도 없고 욕심도 없이 어딜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었을까. 어딜 가서도 나는 거저 산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 대신 산 것 같다, 할 거면서. p170 ...그 어떤 경험도 학습도 간섭하지 못하는 멍청하고 꽉 막힌 세계, 사랑이라는. .... p178 ...그는 먼 거리를 이동하다가 잠시 내려 앉아 허겁지겁 먹이를 찾는 나그네처럼 내 습지로 파고들었다. 다 쓸어먹고 나면 아무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게 새들이다. 나는 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곽 붙들고 싶었지만 가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어쩔 수가 없었다. ... p238 ...상처 하나 없이 죽은 친구의 얼굴을 보며 죽음이란 그것이 완전히 덮칠 때까지 누구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가 한두 방울 흐르기 시작할 때 친구는 이미 죽었을 텐데, 몸은 아직도 따스할 테고, 뻣뻣하게 굳지도 않았을 테지. 친구는 그 사이에 한 세상을 뛰어넘었을 텐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거지. 이렇게 가까운 자기 자신조차. 그 뒤로부터 그에게 죽음이란 어디선가 똑 떨어진 핏방울 하나면 충분한 것이 되었다. p255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는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과 같다. p287 그리고 문득 떠오른 말을 중얼거렸다. 연애를 할 때는 온갖 상처가 다 생기는 구나. 진물도 나고 냄새도 나는 구나. ...... ...사랑은 온갖 상처를 남긴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계속되기 마련이라는 것, 사실 이런 교훈은 굳이 동성애가 아니라도 연애를 하고 실연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자신의 사랑이 동성애라고 하는 자의식이 없다. 그것은 그냥 사랑이고 연애다. 아마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란 동성애가 이성애와 구별되지 않고 오로지 일반과 함께 지칭되는 상태,.... p293 하긴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는 행복이 과연 깨질 수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가 찾기에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화장하던 손을 놓고 한동안 멍하니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
| 새로운 문화 코드로 읽힌다는 동성애가 그야말로 ''창궐''하게 된지 오래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해 이렇게 관대하게 되었는지, 우리 주변에 동성애가 언제부터 이렇게 많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왕의 남자''라는 동성애 코드로 무장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이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며 동시에 동성애를 마치 새로운 문화 현상에 대한 넉넉하고 진보적인 이해의 척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일까? 소설이 근친상간마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미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서부터 근친상간에 대한 소설적 용인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지난 번 이상 문학상까지 받은 한강의 ''몽고반점''에서는 거의 야설에 가까운 형부와 처제와의 근친상간이 무슨 소설 미학처럼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최근에 읽은 방현희의 ''바빌론 특급우편''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이 등장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런 경지(?) 또는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이런 추세로 나가다가는 조만간 수간이나 유아 성애자들도 슬며시 고개를 들고 나타날지 모르겠다. 그런 것을 보면 ''즐거운 사라''로 고통받은 마광수나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장정일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딱한 사람들이다. 소설이 다루는 범주를 제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너무나 무분별하게 등장하고 있는 성적 방만 또는 과잉에 대해서는 누군가 한번쯤 한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두서없이 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