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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평론을 읽어보려고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만다.
그러나 김미현은 '읽히는 평론', 그 자체로 이미 문학인 평론을 표방한다. 그래서 감히 그녀는 '나의 경쟁 상대가 다른 평론이 아닌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다소 당돌해 보이는 이런 표방도 맘에 들고, 우선 그녀가 다루는 작품이나 작가들이 마음에 든다. 평론하면 고리타분한 옛날 소설이나 왠지 무겁고 어려운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에서부터 일반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녀가 다루는 작품은 대부분 신세대 작가들이 작품이고, 모두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평론 자체도 무척 재미있고 절묘한 표현은 섬뜩할 정도이다. 나의 경쟁 상대는 소설이라는 그녀의 표방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인상깊은구절] 어차피 삶은 변경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내가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삶이 <거기>있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그 사이의 차이도 없어 보인다. 결정적인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으며, 무의미가 의미가 된다. 그런 결핍과 부재에 대한 의식조차 불필요하다.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해 오래 그리고 깊이 고민하지 않으니까. 그런 삶을 그릴 수밖에 없는 소설 또한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소설은 재미있는 것 중의 일부일 뿐이거나 오히려 덜 재미있는 것일 확률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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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우성(優性)이고 행복은 열성(劣性)이다. 그래서 불행은 유전되지만 행복은 유전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아도 불행해지는데, 노력해야만 행복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불행은 피를 나눈 가족들을 통해 대를 이어 유전된다. 마치 혈액형처럼, 돌연변이 같은 행복은 돌발적인 사고로만 발생한다. 그리고 톨스토이가 이야기했듯이 행복한 가정은 서로 모양이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불행하다. 행복은 열성인 O형 하나이지만 불행은 우성인 A형, B형, AB형 등 여러가지로 다양한 것처럼, 행복은 행복과 만나야 행복이 되고, 불행은 행복을 만나도 불행이 된다. 그것이 우성인 불행의 운명이다.
불행이 우성인 것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불행하면 그 주변사람들도 불행하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면서도 불행하다는 이유로 인해 서로 닮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피를 나누어 가지듯이 불행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바로 가족이니까. - '무덤에서 요람으로' 조경란 소설'움직임' 해설 中에서
*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불행은 지뢰처럼 인생 곳곳에 함정을 치고 있다. 불행이 혈액형처럼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라는 것은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불행은 나 하나의 불행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번져가고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니까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우울하고 불행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힘들다. 다들 밝고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소설 속에는 우울하고 불행한 인생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소설들이 대체로 무겁고 칙칙하다. 그래서 때로는 읽기 싫고 귀찮을 때도 많다. 아마도 괴롭고 힘들고 불행하고 우울한 사람들이 그 불행을 치유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밝고 건강하고 행복한 이들은 소설 따위는 신경도 안쓰고 인생을 신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 상처없이 아픔없이 고민없이 어찌 소설가가 되겠는가 싶어서 말이다. ^^ 그래서 밝고 유치하고 발랄한 이야기가 읽고 싶을 때 난 가벼운 일본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하는 것 같다.
평론집을 가끔 본다. 소설 뒤에 붙은 해설은 참 싫어하면서도. 평론집을 읽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소설가가 되고, 어떤 사람이 비평가가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물론 그 둘을 함께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때로는 소설이 비평처럼 지루하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비평의 한 줄이 소설보다 더 재미날 때도 있는데. 소설이 자신 안에서 끌어내 만든 하나의 세상이라면 평론은 그 세상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라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어던 평론들은 작가도 모르고 독자도 몰랐던 헛점과 실체 숨겨진 핵심을 푹 찔러 낼 때가 있다. 그럴 때 평론읽는 재미가 있다. 이번에 읽은 김미현의 평론집도 괜찮았다.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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