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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비릿함으로 부식된 만추晩秋의 시편들
"쓸쓸한 비릿함으로 부식된 만추晩秋의 시편들" 내용보기
쓸쓸함으로 찬란한 만추. 주룩주룩, 비가 낙엽을 울려놓고선 그새 그의 안색을 살핀다. 단풍잎 하나 손바닥에 올려 본다. 혈색이 좋지 않다. 이내 참았던 눈물이 차오른다. "커다란 허공이 시간과 대치하고 있는 동안 내 안의 문들은 차례로 빗장을 닫아건다" (「지독한 사랑」) 눈치 없는 비를 탓하며 우산 속으로 시詩를 들인다.   문밖에 갇혀버린 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시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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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함으로 찬란한 만추. 주룩주룩, 비가 낙엽을 울려놓고선 그새 그의 안색을 살핀다. 단풍잎 하나 손바닥에 올려 본다. 혈색이 좋지 않다. 이내 참았던 눈물이 차오른다. "커다란 허공이 시간과 대치하고 있는 동안 내 안의 문들은 차례로 빗장을 닫아건다" (「지독한 사랑」) 눈치 없는 비를 탓하며 우산 속으로 시詩를 들인다. 

 

 문밖에 갇혀버린 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시계가 금방이라도 자취를 감출 것만 같다. 『녹슨 방』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바다를 면한 방]과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송종규 시인의 시편들은 단절과 고립, 일시 정지된 듯한 시간과 기억의 편린들을 직조해낸다. 진원지는 역시 '고독', 비릿함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기억(시간)들의 창고다. 누군가 "흙으로 가득 찬 시계를 털어 바다에" 거는 사이 "계단은 물속에 잠긴다" (「다시, 범람하는 방」)

 

 "사람들은 가끔씩 폐허나 연민이나 분노에 대한 기억으로 삶을 기록하려 한다" (「상수리나무에 관한 기록」)  그렇다. 갖은 노력과 시간을 송두리째 할애하고도 치료되지 않는 염증이 기꺼울 리 없다. "껌을 씹다가 전화를 걸다가 우회전을 하다가" (「개 같은 한낮」) 불쑥불쑥 나타나는 존재 때문에 시인은 그만 "전봇대를 박"고 만다. 것도 하필이면 "복사꽃이 흐드러진 한낮"에. 정말 미스터리다, 당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유독 인상 깊은 시간의 표정들. "지금도 <너>라는 냄새가, 달빛 아래 심겨진다" (「수북한 허공」)

 

 발이 시리다. 벌써부터 겨울을 흉내 내려는 늦가을이 얄궂다. "번들거리며 빛나는 혼돈과 물기들" (「정오의 사이렌 소리」)을 미처 다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일출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녹슨 문장들을 본다. 주인과 함께 농익은 정서를 양육하는데 충실한 녀석들은 지금 무척 우울하다. 휘휘 머리를 젓고 물구나무를 서고 펄쩍펄쩍 뛰어 본다. 이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주인, 야속하다. "털석 주저앉은 오후 세 시 나사 하나가 시계 방향 반대쪽으로 빙그르르 삐거덕 튕겨 나가고 태연히, 그리고 감쪽같이, 나는 매장된다" (「감쪽같이」) 할 수 없이 녀석들은 밤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아니면 새벽이라도.

 

 그러나 

밤이 들려준 대답이라곤,

 '詩가 다 그렇지 아니한가'

a*********9 2016.10.31. 신고 공감 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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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함과 고요함의 사이-녹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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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삼아 한 장 두 장 뒤적거리다가 화들짝 놀라 정좌하고 볼펜들고 줄 쳐 가면서 읽었다. 너무나 많은 시들이 떠도는 세상 아닌가. 새로운 시집 하나 나왔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시집을 내고 시인은 어디로 갔을까. 송종규라는 시인, 대구에 산다는 말은 들은것 같은데, 한번도 본 적은 없으나 시는 참 잘 쓴다는 소식을 들었고, 올해 젊은 시인상 후보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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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삼아 한 장 두 장 뒤적거리다가 화들짝 놀라 정좌하고 볼펜들고 줄 쳐 가면서 읽었다. 너무나 많은 시들이 떠도는 세상 아닌가. 새로운 시집 하나 나왔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시집을 내고 시인은 어디로 갔을까. 송종규라는 시인, 대구에 산다는 말은 들은것 같은데, 한번도 본 적은 없으나 시는 참 잘 쓴다는 소식을 들었고, 올해 젊은 시인상 후보로 올랐다기에 이 책을 샀다. 서점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지라 시집 사기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런저런 정보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무려 10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샀다. 그리고 문득 처음으로 손에 걸린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심드렁하게 그저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화들짝 놀라 정좌한 이유는 시어를 다루는 시인의 감각보다 세상에서 시어를 주워내는 감각에 깜짝 놀라서였다. 약간 삐뚜름한 자세로 세상을 흘겨 보는 것 같은 시각이다. 그러나 제목부터 뽑아 올리는 솜씨가 만만찮다. 오랜만에 글자를 또박또박 읽을 시집을 하나 건졌다는 생각이다.


세상이 시인에게 삐뚜름하게 다가간 것일까, 아니면 시인이 세상을 삐뚜름하게 들고 있는 것일까. ‘휘어진 호수’,라거나 ‘투덜거리는 계단’이라는 식으로 시인은 세상을 관조한다. 아니 관조라는 말은 틀렸다. 시인은 직접 세계 속에 뛰어 들어가 함께 질퍽거린다. 시에서 시인의 삶을 유추해 내려는 못된 버릇을 나는 가졌다.


‘떡집 여자가 전원을 켜면

바쁘게 벨트가 돌아가고

밥알이 납작해지고 근대사가 납작해지고 악기가 납작해지고

남은 오후가 납작해진다

(중략)

질기고 오랜 시간도 떡집 여가자 돌리는 기계 속에서는

붐붐붐붐 가볍게 날아오르고, 눈물 나는 옛 사랑도

머리핀처럼 가볍게 튕겨 오른다‘

  <떡집 여자> 중에서


오후마저 벨트에 넣어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는 떡집 여자는 눈물 나고 질퍽거리는 옛 사랑도 붐붐붐붐 가볍게 날아 오르게 한다. 기억 속에서 멋진 남자가 되어 여자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 옛 애인을 꺼내어 가볍게 날려 버린다. 아마도 평생을 갈 옛 애인을 시인은 날려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럴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움에 가슴이 서늘해지거나, 나보다 훨씬 더 깨소금을 볶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 옛 사랑을 생각하면 가볍게 털어 버리고 싶은 날 많지 않았는가.


‘찢어지는 말들이, 피 흘리는 말들이, 미친 말들이, 흔날리는 말들이, 세계를 가득 채운다 식후 30분마다 나는 찢어진 말들을, 분노하는 말들을, 미친 말들을, 흩날리는 말들을 꾸역꾸역 받아 삼킨다

(중략)

뜨거운 것들이 삶을 끌고 가던 청춘은 지나갔다


젖은 이불 속으로, 죽을 것 같은 순간들이 천번쯤 들락거리고‘

    <빵> 부분


시인은 결코 세상에 대해 호락호락하지 않다. 찢어지고 피 흘리고 미친 말들, 그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시인은 뜨거웠던 시절을 보내고 천 번도 더 죽을것 같은 젊음을 보냈을 것이다. 부풀어 오르는 이스트처럼 시인의 꿈 또한 얼마나 부풀어 올랐을까. 그러므로 시인은 아직도 다 삼키지 못한 말들에 분노를 폭발시킨다. 시인에게 시간은 아직 지나지 않았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다. ‘멀미하는 고등어’를 불러 내고 ‘하얀 봉투를 들고 들락거리는 죽음’과 대면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시간 속에서 늘 무료하다.


‘의자는 수런거리지 않고, 전화기는 아무도 불러내지 않고, 계단은 어디로든 오르내리지 않고 모른다, 모른다고 소리치던 책들의 입은 단호하게 잠겨 있다’

      -<옷걸이들> 부분


세상의 모든 옷걸이들은 무표정하거나 쭈그리고 있거나 누워 있다. 시인은 그런 옷걸이의 주검에서 못을 빼낸다. 말들의 못을 빼내고 시인은 단호하게 세상과의 절교를 선언한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세상을 향한 시인의 오침이다. 바꾸어보면 시인은 수런거리는 의자와 울려대는 전화기와 부산한 계단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시인들에게 걸어 들어온 것들, ‘어쨌든 그는 무례하게 내 삶 속으로 걸어들어 왔다. 나는 난파했다’ 그들 때문에 시인은 다시 쓰러진다.


시인은 격렬함과 고요함의 중간 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 시인의 살아온 시간의 양이 그러하리라. 고요함은 원래부터 인생에 주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주술적인 시인들에게 고요함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격렬함에 시달린 몸과 영혼은 고요함을 갈구한다. 나는 송종규라는 시인의 아직 삭지 않은 광기를 사랑한다. 시인에게 광기는 생명이다. 생명이 없으면 시인은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끊임없이 그 격렬한 광기를 잠재우고 싶어한다.


‘내 호흡의 결 안쪽에 새의 깃털이, 내 청춘의 어린 가지 위에 부릅뜬 광기와 허무가,


난무하는 나를 봉투속에 접어 넣었다.

   <날개>부분


얇은 시집, 그냥 가볍게 하나 손에 쥐는 시집에서 결코 만만찮은 글들이 낚여 올려지면 나는 횡재한 기분이다. 이 시집은 그런 횡재수에 끼인 책이다.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으며 밑줄을 그었는데 잠깐 뒤적여 봐도 밑줄 그은 곳이 그득하다. 시로 숨을 쉬고 싶다.



h******0 2014.01.1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