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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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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후 7개월 만에 책을 펼쳤다. 독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이제야 들었기 때문이다. '풀빛'출판사의 '청소년 철학창고 13'으로 청소년의 지적 수준에 맞춰 기획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철학이나 신학이라는 주제 자체의 무게감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장맛이 궁금해 한 입 살짝 찍어보듯, 그렇게 호기심이 일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호기심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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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후 7개월 만에 책을 펼쳤다.

독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이제야 들었기 때문이다.

'풀빛'출판사의 '청소년 철학창고 13'으로 청소년의 지적 수준에 맞춰 기획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철학이나 신학이라는 주제 자체의 무게감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장맛이 궁금해 한 입 살짝 찍어보듯, 그렇게 호기심이 일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호기심은 계속 자극을 받았고, 마침내 독파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부 철학의 위대한 스승'은 신의 시대라 불리는 유럽 중세의 문을 열었고, 그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사후 1,6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서양 사상의 역사는 신학과 기독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세 시대는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암흑의 시대라 불리지만 신학과 종교의 측면에서 보면 개화기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신학은 어떤 면에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을 한다.

그럼 왜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학과 종교에 이토록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과 신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력이 신학과 철학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로마의 철학을 이어받아서 신학의 체계를 완성했다.

그러나 신학과 기독교에 매몰된 주관과 독단의 세계에 빠지지 않았다.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진리를 찾고자 했다.

중세의 신학과 철학은대부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의 저작은 주요 지침서가 되었다.

그의 저서들은 근대 종교 개혁의 사상적 원천이었다.

그를 최초의 근대인, 혹은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역사의 시간을 뛰어넘는 근현대 사상의 원천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서양기독교 사상을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사후 천 년 동안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영혼을 울리는 한 마디 말이 열 마디의 설교와 강의보다도 값지다는 것을 <고백록>은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223쪽 '3.<고백록>의 의의와 특징' 중에서 발췌함.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쓰게 된 목적은 자신을 죄악에서 구원하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신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은총을 찬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서인 동시에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의 고백서이다.

다음으로, 기독교 신자들에게 올바른 신앙생활의 길잡이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구체적인 내용을 신학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백록>에는 그의 삶과 사상과 신앙의 변화가 모두 집약되어 있으며, 독자는 그의 사상적 고뇌와 편력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으로 옮겨 가게 됐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고백록>은 영혼과 육체, 욕망과 절제, 현세적인 삶과 영원불멸의 삶, 인간의 한계와 대비되는 절대자의 문제 등에 대해 솔직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있다.》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언제나 <고백록>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삼켜버릴 만큼 열심히 탐독했다고 한다.)


226쪽 '구성상의 특징'에서 발췌함.

1권에서 1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용으로 본다면 1권에서 9권까지를 1부, 10권을 2부, 11권에서 13권을 3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스스로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삶을 자서전식으로 돌아보는 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1~4권은 성장과정을, 5~9권은 기독교로 회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2부는 히포의 주교가 된 집필 당시의 상황에 시선이 맞춰진다.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기억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짚어가면서 욕망과 양심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3부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통찰을 논리적이고 사색적ㅇ로 담아낸다. 특히 <창세기>와 관련하여 성서와 성령의 본질, 교회의 역할 등을 은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의 탁월한 성서 주석 솜씨를 드러낸다. 시간론, 창조론, <창세기>1장에 대한 해설로 이어지는 3부의 끝에서 그는 기독교적인 은유적인 삶과 영원한 진리에 대해 진지하게 답을 구하고 있다.

e***7 2009.07.2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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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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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와 톨스토이의 저작과 함께 3대 고백록으로 알려져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처음으로 만났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삼위일체론을 정립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고백록은 젊은 시절 방황하던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고, 그의 사유 체계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었으며, 마침내 그가 도달한 신학의 정수를 알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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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와 톨스토이의 저작과 함께 3대 고백록으로 알려져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처음으로 만났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삼위일체론을 정립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고백록은 젊은 시절 방황하던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고, 그의 사유 체계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었으며, 마침내 그가 도달한 신학의 정수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고백록은 총 13편으로 구성되고, 1편에서 9편까지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시절 끝없는 방황의 나날들이 그려진다. 그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완벽한 신학자였으려니 생각되는 그에게 이렇게 혼란스럽고 방탕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의외이기까지 했다. 어렸을 적 세례를 받을 기회를 놓친 이후로, 깊은 성적 유혹에 빠져 들었고, 결혼도 하지 않은채 여자와 동거하고 아들을 낳기도 한다. 거기다 어머니의 권유로 다시 새로운 여자와 약혼을 하고 또 다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의 사상적, 종교적 방랑은 또 어떠했던가. 기독교를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그는 20대가 되면서 마니교에 빠져 9년간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총명하고 유능한 수사학 교사였던 그는 여러 분야의 책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기에 결국 마니교의 헛점을 스스로 간파하였고 점성술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조류였던 신플라톤주의와 진실한 친구의 영향도 받았다. 세속적인 출세를 원했던 아버지의 바램과 달리, 가족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그의 욕망과도 다르게, 언젠가 기독교에 귀의하리라 소망했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대로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벗어 던진다. 그리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10편부터 13편까지 그가 얻은 신학적 성찰들이 쉬운 언어들로 소개되고 있다. 세례를 받고 성직자의 길을 걸은지 10년, 그의 신앙은 강한 시험의 기간을 거쳤기에 더욱 굳건해진다. 그가 진정한 신앙을 얻기까지 오랜 방황과 고뇌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일까. 10편에서 그는 인간이 갇기 쉬운 세가지 욕망, 즉 육체의 유혹, 호기심의 유혹, 교만의 유혹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11편에서는 시간의 의미에 천착한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지나간 것들의 현재, 지금 존재하는 것들의 현재, 다가올 것들의 현재'로 구분해야 한다. 시간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영원함의 의미를 깨닫고자 하는 신앙의 차원이리라. 12편에서는 천지창조를, 13편에서는 삼위일체를 설명하고자 했다. 사람에게 존재, 지식, 의지가 있듯이 '존재와 지식과 의지로서의 하느님'이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대 철학이 종결되고 중세 철학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인 400년에 완성된 그의 고백록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날 수 있고, 서양 기독교 신학의 사상적 기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전을 읽기 전에 항상 부담감을 가지기 마련인데, 텍스트가 매우 쉽게 쓰여져 자신감마저 갖게 하고 또한 역자의 안내글도 크게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원문을 재구성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s 2006.09.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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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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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종교의 귀의가 아니라면 시간과 공간상에서 제약을 받는 우리들은 내적인 변화의 중심에 서면 삶의 진지한 의문을 시작한다. 깨달음이 빠른 이들은 10대부터 시작하기도 하나 대부분 인간은 의문 자체를 부정하며 생을 살아가는데 급급한 급박한 시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머리가 조금 큰 다음 종교는 왜 생겼을까 하는 의문은 쉽사리 떠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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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종교의 귀의가 아니라면 시간과 공간상에서 제약을 받는 우리들은 내적인 변화의 중심에 서면 삶의 진지한 의문을 시작한다. 깨달음이 빠른 이들은 10대부터 시작하기도 하나 대부분 인간은 의문 자체를 부정하며 생을 살아가는데 급급한 급박한 시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머리가 조금 큰 다음 종교는 왜 생겼을까 하는 의문은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한 채 기독교에의 귀의를 선언 한 후 곁을 떠나간 친구를 그려 볼 시 그러한 의문은 살아가는데 더욱 벽을 세워 자신을 괴롭혔다. 결국 인간은 혼자만 남게 되는 건가? 존재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데 너무도 많은 유혹들은 눈뿐만이 아닌 마음과 지혜로운 생각들을 송두리 채 앗아가 버린다. 이건 자신만이 아닌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이상하리만치 신기한 욕망과 자기 만족이라는 결과의 산출물이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은 시기와 질투 탐욕을 자신을 위한 가장 최전방에 배수진을 치며 끊임없는 유혹에 자기기만과 만족을 느끼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굶주린 자신의 영혼을 위로 해줄 것은 자기가 가진 부와 명예 권력만이 전부라는 다소간의 위안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신은 어디에 계시는가? 믿음은 자신 만의 것인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혼에 대한 실체는 무엇인가? 삶에 대한 궁극적 물음에 줄기차게 달려온 성자 아우구스티누스. 4세기 기독교의 선지자이자 중세 유럽의 사상적 종교 철학을 통합한 그의 젊은 시간들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고상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고통과 번민을 지닌 평범한 시절이었다. 사교, 육체를 탐하는 정욕의 화신, 권력을 추구하는 수사학자. 현재 우리들이 바라고 원하는 궁극적인 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했다. 세상에 대한 의문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진실. 그 이상의 무엇… 그가 진정한 자유사상가이자 기독교의 성자로 받들어지는 것은 어느 누구도 행하지 않았던 사상적 실험에 자신을 과감히 던져 의문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풀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하느님만이 인간의 문제를 풀어줄 유일한 믿음이며 진실이라는 유일신 종교적 신앙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고백록은 그의 젊은 날의 방황과 33살 이후 하느님께 귀의한 후반기 인생을 자서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젊음은 말 그대로 자유가 활개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시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탕하고 쾌락만을 추구한 젊은 날의 방황을 하느님께 고백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사함을 받는다. 그리고 후세에 죄의 번복을 경고시켜 오직 믿음은 하느님께서 나오며 진실한 기독교에 귀의 하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전하고자 한다. 그는 처음부터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훌륭한 예지를 갖추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타락한 인간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욱 극적인 성자의 모습에 고백록은 믿음을 더한다. 이것이 당신이 살아가는데 최선이며 최상의 것이다. 라고 예지자가 직접 말씀을 해준다면 얼마만한 사람들이 그의 말대로 행동하며 삶의 방향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종교는 개인의 자유의지 인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종교를 갖는 세계의 종교들은 후손들에게 얼마만한 의지를 주는가? 인간의 욕망은 자기 만족과 그에 따른 기쁨과 행복을 느낄 때 가장 근본적으로 생겨 난다고 한다. 우린 균형 잡힌 삶을 원하는 경향이 많다. 세속적으로 치부되는 현실과 고상함으로 대변되는 영적인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곳에 마음을 두고 행동하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엄청난 과학적 발전도 사상적인 토대도 영적인 지혜 앞에서는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사색과 고전에 대한 독서가 절실히 요구되는 21세기, 우린 성자의 고백록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껴야 하는가?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인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인가? 역시 스스로만이 답을 알고 있다. 자유적인 선택의 의지를 주신 하느님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변함없는 사랑과 기다림을 주셨다. 하지만 그의 젊은 날은 그리 좋지 못한 선택들의 연속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 사후 16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들이 원하는 지혜의 발견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보다 더 근원적인 욕망들은 더욱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기독교의 근원적인 사상적 철학은 너무도 쉽게 우리를 하느님의 길로 인도 해주고 있다. 우린 모든 것들이 유한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영원에 대한 갈망은 더욱 종교를 부추긴다. 하지만 하느님은 진실에 대한 눈을 뜨고 말씀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는 자만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영혼에 대한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달의 사락 k****4 2006.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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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진지한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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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진지한 성장소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신앙을 ‘치료’에 비유한다. 그것은 개인이 ‘선택’ 하고 ‘의지’하는 대상이기에 앞서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고, 치료를 통해 치유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에 대한 연애편지이기 보다는 가슴 아픈 성장소설에 가깝다.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주인공은 보다 성장하고, 강하게 거듭난다.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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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진지한 성장소설 < 그 때 신앙이 좀 더 굳건했다면 저는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팔이 의사에게 믿지 못하듯이 마니교에 당해 본 저는 이번에도 잘못된 믿음을 가질까 봐 두려워 하느님의 완전한 치료를 거절했습니다. 믿음의 약을 준비하고 세상의 아픔의 치유의 손길을 내미신 당신을 저는 어리석게도 거부한 것입니다-p.81>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신앙을 ‘치료’에 비유한다. 그것은 개인이 ‘선택’ 하고 ‘의지’하는 대상이기에 앞서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고, 치료를 통해 치유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에 대한 연애편지이기 보다는 가슴 아픈 성장소설에 가깝다.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주인공은 보다 성장하고, 강하게 거듭난다. 젊은 날 끊임없이 방황하고 쾌락적인 삶만을 추구했던 젊은이가 ‘시간’ 과‘기억’ 과 ‘종교’ 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국 독자들은 그가 대견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고백록을 읽는 동안 이미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명한 학자이며 사제이기 전에, 대개 성장소설에 주인공이 되는 실수투성이 청춘에 가깝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알려져 있듯 젊은 날에 대한 ‘고백’ 과 ‘참회’, 그리고 종교인으로 거듭나면서 신에게 바치는''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9권까지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방황했던 젊은 날의 실수들과 기독교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2부에서는 ‘기억’ 이란 문제를 통해 절대자에게 접근하는 독특한 철학을 제시한다. 3부에서는 보다 심층적인 종교 철학을 제시하는데, ‘창세기’ 라든가 ‘시간’ 이란 문제에 관한 그의 해석을 보여준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었던 관계로 한번쯤은 읽어봐야지 했지만,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뚜렷한 종교가 없는 나는 이 진지한 성장소설을 종교에 대한 낯간지러운 연애편지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막상 책을 접해서 열어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간까지 책을 읽어가면서도 주님에 대한 그의 고백들이 괜한 소외감을 느끼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가자 이것은 특정 종교인의 자기 고백보다는, 흔히 보고 듣는 성장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공감할 수 있었다. 사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항상 실수하고,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 실수투성이 인간은 또한 얼마나 오만한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의 힘을 빌려 그것을 치료해낸다. 그렇게 치유된 그에게는 여전한 유혹과 갈등들이 존재하지만, 그는 결코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은 채 철학적인 문제들을 사고하는 데에만 전력을 기울인다. 그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종교’ 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만의 ‘신념’일수도 있고 혹은 ‘가족’ 이거나 ‘꿈’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강하게 믿고 지켜주는 어떤 절대적인 것의 힘으로 인해 쾌락적이고 즉물적인 세계 대신 내면적인 세계에 눈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다 비슷한 것일테니.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이란 독실한 기독교신자 보다는, 모든 것으로부터 방황하는 가엾은 청춘들이다. 물론 나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이 책을 있고 자신안에 굳건한 심지를 가질 수 있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향해 100% 솔직해져도 보고 뉘우치고 사랑하기를. 마음이 번잡하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지친 영혼들은 한번쯤 읽어보고 배울만한 점이 많은 ‘성장통의 치료’이야기니까.

[인상깊은구절]
< 그 때 신앙이 좀 더 굳건했다면 저는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팔이 의사에게 믿지 못하듯이 마니교에 당해 본 저는 이번에도 잘못된 믿음을 가질까 봐 두려워 하느님의 완전한 치료를 거절했습니다. 믿음의 약을 준비하고 세상의 아픔의 치유의 손길을 내미신 당신을 저는 어리석게도 거부한 것입니다-p.81>
a*******j 200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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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 관한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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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전 중 하나인 “고백록”의 요약본이다. 책의 기획에 따르면 청소년들을 위해 말을 쉽게 풀고, 내용을 축약해 놓은 듯하다. 시리즈의 제목은 “청소년 철학창고”인데, 기초적인 철학서 읽기를 위한 시리즈로 보인다.   청소년들에게 철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한다. 다만 그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라면 적절할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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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전 중 하나인 “고백록”의 요약본이다. 책의 기획에 따르면 청소년들을 위해 말을 쉽게 풀고, 내용을 축약해 놓은 듯하다. 시리즈의 제목은 “청소년 철학창고”인데, 기초적인 철학서 읽기를 위한 시리즈로 보인다.

 

청소년들에게 철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한다. 다만 그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라면 적절할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긴 한다. “고백록”이라는 책 자체가 꽤 깊은 수준의 기독교적 사유가 담겨 있는지라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있을까 싶은 우려에서다.

 

또 어디까지나 “철학 서적”으로 이 책을 편집하고 소개하려는 번역자와 기획자들의 생각은 오히려 이 책의 본질을 조금은 왜곡시키는 느낌도 주는 듯하다. 예컨대 이 책을 풀어쓴 정은주는 “고백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종교는 여럿이어도 진리는 하나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거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진리를 밖에서 찾지 말고 자기 안의 영원한 빛을 찾야아 한다”는 말을 내 안의 부처를 발견하라는 불교의 주장과 들어맞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적어도 철학에서는 종교의 색을 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고백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자신의 성장기를 회고하면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앞부분과 기독교 신학자로서 창조주와 피조물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를 설명하는 후반부가 그것.

 

전반부는 일반적인 간증의 느낌으로 읽어나가면 된다. 젊은 시절 특히 성적 유혹에 취약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연녀와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하며 자식까지 낳았다. 물론 이런 행동은 이민족들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었던 서로마 말기 당대의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있는 관행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 점이 늘 마음 한 쪽의 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는 방탕한 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회심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사학 교사로 성공을 하고자 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라 세상의 근원과 같은 철학적 진리를 탐구했고,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한 끝에 결국 기독교에서 지적 해답을 얻었다.

 

책의 후반부는 확실히 조금 어렵다. 주로 창세기 1장에 해당하는 창조에 관한 논의들인데, 눈에 띄는 부분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창조의 방식에 관한 특정한 견해를 절대적으로 옹호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창조주와 다른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인지능력이 가진 한계를 깊이 인정하고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지 않았나 싶다. 그에 비해 오히려 어쭙잖게 아는 이들이야 말로 특정한 견해를 유일한 견해인 양 맹신하지 않나 싶고.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 읽어 볼만한 책이다. 다만 분명 현대의 글과는 다른 느낌인지라(고전이 다 그렇지 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살짝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 글을 비종교(기독교)적 맥락에서 단순히 교양 수준으로 읽는 건 확실히 좀 아쉬울 것 같다.

이달의 사락 p*********n 2023.09.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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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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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봄을 통한 교훈들... 후대의 교훈을 위한 책일까... 아님... 현 자신에 대한 성찰...   그게 걱정이 된다. 책을 읽는 화자의 역량에 따라 그 책은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따른 부끄러운 반성으로 자리한다는 느낌이다.   종교로의 귀의라는 결론에 앞선 솔직함이 마음을 끈다. 솔직함의 새련미... 그리고, 그 안에서 사고흐름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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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봄을 통한 교훈들...

후대의 교훈을 위한 책일까...

아님... 현 자신에 대한 성찰...

 

그게 걱정이 된다.

책을 읽는 화자의 역량에 따라 그 책은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따른 부끄러운 반성으로 자리한다는 느낌이다.

 

종교로의 귀의라는 결론에 앞선 솔직함이 마음을 끈다.

솔직함의 새련미... 그리고, 그 안에서 사고흐름의 자연스러움을

누구나가 읽을 수 있음에 따른 자기 반성을 안겨준다.

 

 

자신의 잘못된 사고가 행동이 되고 이것이 일정시간이 되면 당연시 되며 망각되어지는 것...

망각은 잊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억이라는 말등...

 

멋지고, 진진한 되돌아봄의 꼼꼼함을 읽을 수 있다.

 

그 돌아보는 자세의 아름다움은 훔쳐 볼 수 있어서 좋은듯...

 

조금은 더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후반부에 만나는 종교의 귀의부분에 대해서는 뭐라 평을 못하겠지만,

 

그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만들어 지는 것이겠구나 싶은 부분은 느껴진다.

h******1 2012.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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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솔직한 고백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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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의 부제는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이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날의 방황과 그가 카톨릭에 귀의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백해놓은 글이다. 전체 1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에 따라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부는 제1권에서 9권까지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솔직하게 회상하고 카톨릭으로 귀의하기까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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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의 부제는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이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날의 방황과 그가 카톨릭에 귀의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백해놓은 글이다. 전체 1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에 따라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부는 제1권에서 9권까지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솔직하게 회상하고 카톨릭으로 귀의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2부는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가 카톨릭에 귀의한 뒤 기억과 욕망의 문제에 대해 사색하고 분석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있기도 하다. 시간과 영원의 문제, 기억의 문제, 창조의 문제 등 여러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들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사색하고 있으며 마니쿄도들이나 플라톤주의자들같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비판적인 응답을 보이고 있는 내용으로 1부와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제3부에서는 창세기에 대한 은유적 해석을 시도한 부분으로 창조와 시간에 대한 생각을 철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전개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기에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많은 학자들이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그리스 로마 철학의 체계를 이어받아 나름대로 세운 그의 신학 체계는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신학자 폴 틸리히라는 사람은 서양 기독교 사상을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사후 천년동안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철학창고 시리즈답게 이 책은 쉽고 평이한 문체로 이야기를 끌어나가 고전의 부담감을 많이 줄여주고 있다. 각 권마다 앞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돕고 글의 흐름을 안내하는 철학창고의 편집체계는 읽는 이에게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고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뒷부분에 나오는 설명 부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과 시대 상황을 다룬 글에서 엿보이는 역사적 관점의 편향성이 조금 걸릴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명백히 카톨릭을 다룬 것인데 계속적으로 기독교라고 쓰는 것은 워낙 굳어진 관행이라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도나투스 논쟁과 같은 시대적인 상황들에 있어서는 정확한 사료 제공없이 단정적으로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은 맘에 아쉬움이 남는다. 도나투스에 대한 이 책의 설명 부분의 관점과 정반대의 역사적 사실을 접했었기에 더 그렇다. 시대에 관한 글을 쓸 때에는 철저한 검증과 책임 의식이 뒤따라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i******e 2006.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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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의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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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주교이자 신학을 다양한 해석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대학자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앙인이 되는거는 변증법적 지식이 아닌 경험적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도올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것아닌가..   "도올 선생님   선생님의 치열한 지적 탐구정신으로 인해.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지적인 결론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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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주교이자

신학을 다양한 해석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대학자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앙인이 되는거는

변증법적 지식이 아닌

경험적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도올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것아닌가..

 

"도올 선생님

 

선생님의 치열한 지적 탐구정신으로 인해.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지적인 결론이 될 수 도 있지만.

 

그에 따른 고독감과 단절감은 결코 지식인, 철학인의 훈장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믿음의 안식으로 인해.. 지적인 판단의 눈이 머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영혼의 안식감이야말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가 아닌지요."

 

젊었을때의 아우구스투스는 꼭 도올과 같았으리라..

 

치열한 지적, 육체적 방황끝에 하나님의 품에 도달한 아우구스투스 같이..

 

도올이 크리스쳔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고백을 듣고 싶다.

 

이렇듯 내가 두 사람에게 애착이 가는 것은..

일면 나의 모습이 녹아있기 때문일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s*****9 2008.07.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