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유쾌하고 훌륭한, 그리고 재미있고 참신한 책이다. 골수 인문학쟁이여서 늘 과학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 만 같았고, 그래서 더욱 여러 과학 교양서를 읽어왔던 나이지만, 잠깐 읽고 이해하는 것 같다가는 잠시 뒤면 또 까맣게 잊어버리곤 해서 역시 나는 과학이나 수학쪽에는 안되나보다 하고 생각하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나만큼이나 과학에는 문외한인 여러 인문학쪽의 전문가들이 첨단과학의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이해한 대로 과학을 재해석했다. 일단,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과학 분야들에 대해서 너무 깊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해주며 좋은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 분야대로 그 과학을 재해석하여 여러 분야의 인문학과 또 그 만큼의 여러 분야의 과학을 새롭게 조화시킨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철학과 입자물리학, 역사학과 나노과학 등을 쉽고 재미있게 조화시킨 저자들이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사실, 과학이나 인문학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지도 우월하지도 않고 하나만으로는 이 세상이 온전히 발전하기가 쉽지 않다. 유수의 해외 대학들에서는 인문학도이면 과학을 과학도이면 인문학을 필수적으로 그것도 꽤나 많은 과목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성공한, 유명한 사람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소양이 모두 풍부하고 그것들을 잘 조화시킨다. 예전부터 이런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참신하고 좋은 내용이 책으로 나온 것 같아서, 인문학도와 과학도들이 당연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
| (마지막 줄에 이런 분들께 추천/비추 있습니다- 시간 모자르신 분들은 스크롤바를 휙! 내려주세요) 5프로 부족하다. 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다. 사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인문학과 과학이 오랜 시간 담쌓아 온 괴리를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제목부터가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 이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미리 예측을 하고 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열 개 항목의 대담은 전체적으로 비슷하였다. 인문학자가 첨단과학기술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거나, 자신이 다루는 인문학 분야의 이론에 견주어 본다. 여기에 인문학자 자신이 느낀 바가 양념으로 곁들여진다. 이런 형식이라면 대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체험에 대한 독백에 가까운 셈이다. 물론 여기엔 장단이 있다. 읽는 이의 이해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과학자보다는 인문학자 쪽이 좀더 텍스트와 친숙한 편이니, 독자의 수준을 고려하여 재미있고 쉽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 경우, 두 사람이 나눈 대화나 지적 교류는 전적으로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물론 책의 제목이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좀더 알찬 내용을 위해서는 좌담 형식으로 진행하는 편이 나았으리라 본다. 대화는 일인 서술보다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를 생각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완전히 다른 두 지적 영역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교류하고 또 충돌하는 과정을 충분히 보여 주었어야 했다. 아무리 서술하는 쪽이 편견 없이 전달하려 노력한다 해도, 어느 한 편만의 관점만 가지고서는 교류 과정의 전체적 윤곽을 잡아낼 수 없다. 틀이, 담긴 내용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점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았다. 주제에 비해 알차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첨단 과학기술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은 굳이 인문학의 전문가가 아니라 과학부 기자라도 능히 할 수 있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알고 싶어하는 건 인문학의 입장에서 재해석된 과학이지, 과학기술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아니다. 순조로운 읽기를 위해 독자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기술 용어나 지식이 필요하다면 따로 주해를 달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또한 인문학 분야의 이론에 견주는 방식도 한계가 있었다. 비교적 깊이 들어간 챕터는 그나마 동양철학자와 반도체공학자의 대담 정도였다. 대부분이 ''무엇과 무엇은 비슷하더라'' 라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어, 그저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지식의 견주기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두 학자의 전문성에 비해 대담 내용이 부실하거나, 단순한 소감문으로 끝난 챕터도 두엇 있었다. 물론 이 대담을 위해 두 전문가가 서로의 분야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나름 많은 준비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교류상을 보여준다''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서문을 읽어 보면, 대담이 단지 수박 겉핥기의 양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엿보인다. 그리고 ''대화가 피상적 소통에 그칠'' 가능성 역시 언급하고 있다. 다만 바란다면, 서문의 글쓴이 역시 바랐듯 서툰 대화가 서툴다고 멈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보다 세련됨과 깊이를 지닐 수 있도록 양자간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은 의미가 있다. P.s 이런 분들께 추천! 인문학X과학간의 썸씽이 궁금하긴 한데 너무 어려울까 걱정되는 분 과학적인 지식과 인문학적인 지식을 병행해 가며 맛보고 싶으신 분 오만가지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넘치시는 분 이런 분들께 비추! 다치바나 다카시류의 무언가를 기대하신 분 웬만큼 심도있게 들어가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시는 분 수필풍의 에세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분 |
|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만났다. ‘현실 없는’ 인문학과 ‘사람 없는’ 과학의 맹점을 서로 신랄하게 비판했을까? 아니면 창을 든 인문학자가 ''황우석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과학자의 아픈 구석을 사정없이 찔러댔을까? 아니다. 물론 인문학자의 질문은 직접적이었고, 그런 만큼 날카로웠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답변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명쾌했다. 과학적 성취와 연구가 인문학적 사고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과학자에게서 먼저 나왔다. 스테인리스 같이 차가운 이미지의 과학을 따뜻한 시선을 지닌 인문학을 통해 들여다보자는 취지의 기획의도(?)가, 과학자가 준비한 의외의 반격으로 멋쩍어진 「‘반도체 사유‘, 미래 화두 던지다」는 영화적 반전이 주는 의외성만큼이나 신선했다. 동양철학자인 성태용 교수가 반도체공학 분야의 리더 유인경 박사와 만나 이루어진 대담에서 철학자는 과학기술에 철학적 사유를 접목하려한 과학자의 시도에 고무됐다. 그리고 그것을 ’과학기술의 창으로 본 동양철학‘의 가능성을 여는 일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질적인 학문 분야에서 각기 일가를 이룬 학자 상호간의 만남과, 그 만남에서 비롯된 상호이해가 각자의 학문을 풍부하게 하고, 상호간에 접점을 찾아가는 성취로 귀결될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술을 다루는 과학과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그것들은 마치 불과 기름의 관계처럼 반목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 위에 서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 이 책을 펼치면서 내심 걱정했던 것은, 지금이야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판명 났지만, 애써 마련한 대담이 오히려 서로의 주장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지 않았을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0편의 대담 어느 곳에서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각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차이는 학문의 고유한 차이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대담자들이 적극 나서서 그 차이를 인정하되 그 격차를 줄여 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더욱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조금 더 일찍 만나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이질적이라서 만나지 못한다면 학문이 본래 지향하는, ‘인류사회에의 공헌’은 요원하지 않을까. 쉽게 생각해도 사람과 사회가 어디 어느 특정 학문 분야 하나의 놀라운 성취 위에 존립하기나 할까, 의문이다. 여러 학문 분야가 인류사회라고 하는 큰 틀의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잘 된 것은 따라 배우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우리 학문사회는 그런 풍토 위에 서질 못했다. 이제라도 이런 대담의 기회가 늘어남으로써 학제 상호간 불필요한 오해와 교류를 막는 일방적인 단정이 불식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 기본적인 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과 작년 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황우석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분들과 인문학의 퇴조를 걱정하는 한편 인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모색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선뜻 권한다. 아울러 과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사고에 관한 소양을 얻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이 책이 크게 유용하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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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인문학은 자연을 포함한 인간세계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213쪽) 두 영역이 각기 학문의 영역으로 삼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과 ‘자연을 포함한 인간’은 같은 뜻일까, 다른 뜻일까. “인문학은 다양한 삶의 탐구를 통해 ‘도덕적인 가치’와 ‘교훈’을 끌어내는 활동이며, 자연과학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것이다.”(239쪽)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교훈은 자연과학이 추구하는 사물의 본성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일까,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이 ‘인문학’과 ‘과학’의 관계였다. 인문학과 과학은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분야인가, 혹은 서로 얼마나 가까운 분야인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때 인문반으로 진학한 이후 과학 공부를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인문학과 과학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분야로 생각해 왔는데. 과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도 아무 손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인문 영역을 공부하는 사람이 과학에 관심을 갖기라도 하면 무슨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대중들을 위해 쉽게 썼다고 하는 책부터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쉽게 썼다고 하는 책조차 결코 읽기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왜 과학은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과학에 무지하기만 한 자신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고, 이렇게 모르는데 왜 과학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의문도 느끼고, 인문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과학에 대해 이렇게 무지해도 되는 것인가 괜히 내 탓 하기 싫어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원망해보기도 하고.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 대해 대견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과학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갖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조금 아는 내용에 비해 몰랐던 많은 것들이 내 정신을 일시적으로라도 풍부하게 해 주는 것 같은 착각에 가슴 떨렸으니. 뇌과학, 나노기술, 반도체, 입자물리, 우주, 로봇, 진화, 유전자, 수학의 아름다운 규칙. 이 책에 나오는 과학의 핵심어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우주 관련 부분에 대해 관심 있게 읽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달에 인간을 보낼 수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앞으로 약 20년이라는 항공우주연구원 단장의 말은 씁쓸함으로 남는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읽게 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고 싶다. 우리의 과학도들이 찾아야 하는 미래의 전망-개인의 전망이든 국가의 전망이든 인류의 전망이든-이 이 책에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이 책은 과학 혹은 인문학의 어느 한 방향에 해당하는 전문 지식을 가르쳐주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공부해야 할 방향을 가르쳐 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소개하면서 중요한 내용만을 일러주는 책, 요즘처럼 공부 잘하는 자연계 고등학생들이 의대쪽으로만 진학하려고 하는 시대에 진정 중요한 영역이 어느 곳인지 깨우쳐 주려는 책이라고. 아울러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함을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
| 고대 아테네 학당의 입구에는 ''수학을 모르는 자는 여기에 들이지 마라''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과 같은 철학자들에게도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우주, 수학과 같은 과학이 철학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았음을 의미한다. 고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남긴 프랑스 철학가 데카르트도 생리학과 기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어떤가. 중학교부터 인문계고교, 과학고, 외고를 선택해야 하고, 고등학교 진학시에는 문이과를 결정해야 하며, 대학 때는 전공 수업으로 다른 학문을 접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낯설고 이질적인 타학문과의 연계성이 어쩌면 익숙하고 근원이 같은데서 출발함을 일깨워 준,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 이 책은 인문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과학''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필자들의 대담으로 재미있게 풀어준 고마운 책이다. 우선 제목과 목차를 훑어보곤 책의 내용을 추리해 보았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한 과학 잡지에서 ''인류의 기원''에 관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을 가만히 떠올렸다. 인류기원설에 관한 내용이라면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등의 인문학자들 또한 관심을 가질 내용이 아닐까 하며, 이 책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리라 생각했다. 그리곤 책을 펼쳐 들었다. 첫 시작은 뇌에 관한 내용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를 읽으며 평소 뇌에 관한 궁금증이 많았다. 인간의 뇌사용 용량이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뇌학문은 인문학 중에서도 심리학과 철학과의 만남이 돋보였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많은 것의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이, 뇌과학이 자아 찾기의 정수라는 점에서 철학이 함께 사용된다는 것이다. 뒷부분에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몇 가지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두번째 이야기는 책을 통틀어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으로 꼽을 수 있겠다. 나노과학과 미시역사의 유사성을 파헤친 대담기였다. 미시세계의 분자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한 단위인 ''나노''와 연구대상을 작게 축소해서 현미경으로 보듯 관찰함으로써 역사세계를 재구성하는 ‘미시사’의 만남. 둘은 ‘작은 것으로부터의 혁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같은 목표를 취하고 있었다. 우주속의 또 거대한 작은 우주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점에서 나노과학이 흥미롭게 다가왔으며, “인간은 살며 사랑하다 그리고 죽는다”라는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의 말과 같이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한 미시역사가 역사학에서 중요한 위치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도체공학은 어떠한가.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반도체공학이란 학문이 대체 어떤 것인지 나 같은 문외한은 알 길이 없었다. 대충 집적회로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물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도체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것이 인문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지 그 자체였다. 아마, 관심도 없었음이 분명할 게다. 동양철학자 성태용 교수는 특이하게도 이기론을 반도체에 적용시켰다. “규소는 어디에 있으나 규소이지만, 그 모습은 붕소와 섞이면 양전도체 모습이 되고, 인과 섞이면 음전도체 모습이 된다”라는 표현해서 나는 폭소를 터트렸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는 율곡의 이통기국론을 패러디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장자의 호접지몽을 가상현실의 중독성에 매몰되어 현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에 빗댄 부분도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입자물리학과 인도철학의 만남도 재밌었다. 물리학자는 입자를 쪼개고 쪼개는 과정에서 물질의 근원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고 생각하고, 철학자는 개념을 더 세밀하게 쪼갤 때 우주의 궁극적 실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 것. 물론 ‘입자’와 ‘개념’이라는 대상이 다르나 그 궁극적 목표는 같다고 생각했다. 감성을 철학을 동반하면 좋을 듯한 현대 우주론. 우주에서 자기 객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우주공학.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에 관해서, 또 사이보그 문제를 다룬 로봇공학 등.. 현재 쟁점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룬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얼마 후면 우리나라도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잖는가. 나에게 친숙한 필자인 소설가 ‘공지영’님과 철학가 ‘이진경’, 문화재청장 ‘유홍준’ 세 분의 글도 차분하게 읽어내려 갔다. 사람을 알기 위한 동물 연구, 논문 조작으로 시끄러웠던 황우석씨와의 유전자 복제에 관한 대담기, 수학에 숨겨진 미학을 논하는 대담기였다. 그들의 글은 다른 자연과학 책과 이 책을 차별 짓게 해주는 중요한 열쇠를 마련하였다. 평소 과학서적을 읽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용어에 머리가 지끈지끈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들 모두 인문학자라 그런지 세련된 필치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고대 아테네 학당의 글귀 ''수학을 모르는 자는 여기에 들이지 마라''처럼 현대에도 다양한 학문과의 만남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논문 조작 발표가 있기 전에도 ‘유전자’라는 개념은 ‘범죄 유전자’가 있다느니 ‘불륜 유전자’가 있다느니 등으로 매우 시끄러웠고, 그로 인해 유전자가 하나의 권력으로 등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유전자 문제는 점차 정치적 문제로 번져갔으며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또한 유전자 복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생명과학 실험에 대한 윤리교육 문제도 이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도 이에 대한 의견에 대찬성이다. 이 책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으로 나같은 인문학도가 과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듯, 과학도 또한 인문학 공부에 게을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고대 아테네 학당의 글귀처럼 ‘인문학을 모르는 자, 과학을 논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
| 스페이스 오딧세이, ET, 스타워즈. 우주를 주제로 한 초과학적인 영화지만 스토리는 인간의 오래된 상상력에 의지한 철학적 내용에 가깝다. 만약 그들이 단순한 과학을 뽐내는 영화였다면 기억 속에 오래 남진 않았을 것이다. 20여년전의 상상력이 지금 우리들에게 새로울 것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마치 지금껏 알고 지내왔던 것처럼 그러한 일들이 언젠가는 일어날것을 예상하면서. 과학은 별개의 학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철학이나 인문학에 가깝다. 인간의 상상력이 결국은 과학과 천문학을 만들었으니까. 굳이 세세한 학문으로 나누는 오류를 범한 인간이 이젠 다시금 학문의 통합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을 할려면 수학만을 잘해서는 안되고 물리학만을 최고로 여겨서는 안된다. 응용범위가 이미 컴퓨터의 지배하에 놓인지 오래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이 과학자들을 만났다. 인문학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인문학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인문학으로 본 과학은 다분히 상상적이다. 사실과 증명으로 결과만을 중시하는 과학적 논리가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두리뭉실하게 세상을 구분 지어 놓는 인문학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대세를 무엇으로 풀어준다는 말인가? 과학은 현실이라는 목표와 대세라는 흐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지극히 대중성을 겸비한 인류의 희망으로 떠오른지 오래다. 하지만 관념이라는 상응성을 가진 인문학은 단지 구수하기만 하다. 더 이상의 발전보다 자성의 기회만을 가지라고 외친다. 인류가 없는 지구에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제부턴가 세분화된 영역들 속에서 자신들이 최고임을 자부하는 그들은 서로 다른 이념과 사상을 가졌지만 똑 같은 목표를 향한 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행복! 원래 하나가 나누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다시 하나로 합해지는 것은 각고의 노력과 살신성인의 자세가 필요 할 것이다.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이 마음속에서만 울려 퍼지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길 바란다. 인문학은 인문학이고 과학은 과학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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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았다. 인문학자가 자연과학자의 연구실에 찾아가, 인문학적 시각에서 자연과학의 쟁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주제들이 아주 흥미롭다. 로봇, 진화생물학, 우주론 등등.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글에서 인문학자도 그렇고 자연과학자도 그렇고 아직 충분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인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인문학자의 독백에 그치는 느낌이 강했다. 다만, 조광제 교수님의 로봇에 대한 글은 아주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궁합이 맞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철학자라고 해도 우주론에 대해 관심이 없는데, 찾아가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는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왜 만나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작년 재작년 많은 책들을 통해 논의가 이루어 진 느낌이다. 다만, 우리는 그 열풍이 지나치게 빠르게 지나갔을 뿐. 이제는 실제로 대화를 하는 일만 남았는데, 글쎄, 그 결과의 추이는 모르겠다. 또 다른 황우석 박사가 나타난다면, 또 반짝할 지도. 더구나, 최근에는 논술 열풍도 급격히 사라지는 마당이니, 황우석 박사도 몇 명 나타나도 과거와 같은 '통섭'에 대한 열풍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하나.
과학이 더 고도화 될 수록,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통섭'의 시대에, 대중들과 그 기쁜 만남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들어, 자연과학을 쉽게 설명해 주는 한국 자연과학자들의 책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
| 역시 내게는 ...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몰라도 역시 내게는 여전히 어렵게 다가왔다. 인문학도 과학도 모두 관심이 많기에,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이 너무 궁금하고 그 결합이 어떨지 기대에 차서, 또 쉽게 읽을수 있다는 말만 믿고 덜컥 신청한 책이었는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나 인문학의 전문적인 용어들 앞에서는 역시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이런 부분을 좀더 쉽게 풀어서 설명할수는 없는지 아쉽다. 다만 왠지 수박 겉핥기식이라는 인상을 지울수는 없었다. 물론 인문학자 10명과 과학자 10명의 대담을 이책으로 다 담기엔 역부족일수도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대담형식이라기 보다는 인문학자가 만나서 보고 느낀 점을 서술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 하다. 그래서 결국 인문학자가 가진 생각을 읽는다는 느낌이 강할뿐 인문학과 과학의 접점을 찾기엔 왠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이 가진 미덕은 점점 학문이 전문화되고 세밀화되는 현대에 접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인문학과 과학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볼수 있다.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갈 수조차 없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은 결국 인간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기때문에 과학이 좀더 쉽게 다가와야 하는게 현재의 시점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좀더 친근하게 다가오기 위해서 인문학이 나서야할때인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문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점이 많이 있다. 자연과학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인문학은 자연을 포함한 인간세계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자연과학과 인문학은 결국 인간을 포함한 세계에 대해 더 깊고 폭넓게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여기에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들이 위치한다. 서구나 우리나라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자연과학과 철학은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다고 할수 있다.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이기도 했다. 인문학은 다양한 삶의 탐구를 통해 도전적인 가치와 교훈을 끌어내는 활동이며, 자연과학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세상을 보는 상보적인 방식이다. 이 부분이 이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일 것이다. 10개의 대담중에 특히 뇌과학과 나노과학, 로봇공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재천교수의 진화이론도 흥미있게 보았다. 특히 나노기술은 '창조의 엔진이 아닌 '파괴의 엔진'이 될 가능성을 담고 있는 판도라 상자이다.기술 그 자체는 선악의 피안에 있다는 구절에서 나노기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과 소통'에서 로봇공학 부분은 특히 흥미롭게 읽었는데 과연 로봇은 점점 인간화되고 인간은 점점 기계화되는 미래의 운명은 어떤 관계에 놓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끝으로 각 대담 마지막에 '한겨레기자(오철우)' 의 쉽게 읽는 과학의 발자취는 이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 과연 과학(science)이란 무얼까? 왜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본다는 것은 꼭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책의 제목인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은 정확히 말한다면 ''인문과학의 창으로 본 자연과학''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과학(science)의 원래의 의미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0명의 인문학자들이 과학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실험실과 연구실에서 연구내용을 가지고 대담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분야 역시 요즘 이슈로 오르내리고 있는 중요한 과학적 연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은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기획물을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 나와있는 과학적 내용은 그리 깊이있게 다룬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물론..깊이있게 다룬다면 이미 대중적이지가 않겠지만...) 다만, 중요한 것은 소설가와 인문학 교수를 포함한 열 명의 대담가들이 또 다른 열 명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학문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어떻게 보는가에 있다. 먼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자연과학 분야는 이미 국가경쟁력에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연구물들의 성과는 바로 국가의 자산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과연 인문학자들은 이 성과물에 관해 어떤 관심들을 보일까. 만약 성과물 자체를 놀라움의 대상으로 본다면 그들은 이미 인문학자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자연과학이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닌, 이루어 나가려는 과정을 함께 성찰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들만의 언어로써 말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을 분석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에 근거하여 풀이한 것을 과학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과학은 분명 근대의 산물일 것이다. 과학은 데이터이자 실험이다. 그것은 수치,혹은 양(量)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것을 양이 아닌 인간의 마음에 깃들어있는 생각 혹은 철학으로 풀이해본다면, 이는 곧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인문학이 될 것이다. 그만큼 두 학문은 다를 바가 없다. 역시나, 과학은 인문학과 더불어 그 원류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의 역사의 시작은 뉴턴이나 케플러, 갈릴레이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또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프롤레마이오스, 탈레스의 시기에 이르러도 그 원류는 아니다. 바로 인류의 시작인 구석기, 신석기 시대부터 있어왔다. 우리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해와 달과 별을 믿었다면 그것이 바로 과학의 시작인 것이다. 다만 고대 로마로 와서도 이는 어느 특정한 과학이라는 학문을 지칭한 것이 아닌, 자연철학속에 그냥 무던히 녹아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인문학과 자연과학(혹은 과학)이 구분되어지는 것은 분명 경험적인 산물과 그것을 이루려는 실험에 있으며, 또한 처음 시작할때 미리 결과를 예상하는 가설에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인문학에서의 가설은 어떤 의미로 쓰여지는지 알 수 없지만, 과학에서는 그의 쓰임은 매우 중요하다. 가설을 세운다는 것은 이미 절반정도(혹은 그 이상)의 과정을 이루어냈다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 특히 물리학이나 천체우주학에서의 가설은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기존의 과학적 사고 방식을 뛰어 넘는 것들도 있다. 예를들어, 양자역학 혹은 입자 물리학과 같은 소위 미시세계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미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는 거시세계의 철학이 잘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입장이 아닌, 그 입자 자체의 입장에서도 생각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을 가공되어진 자연이 아닌 그 자체를 통해 보는 것...그것이 인문학이라고도 생각되어진다. 이 10명의 인문학자들은 기술적 용어나 공학적 과정은 잘 모를것이다. 물론...다른 분야의 과학자들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몇가지 겉에 둘러싸고 있는 물리량적인 것들을 제거한다면, 인문학자들 역시 그들이 연구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 많은 부분 공유하고 있을거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이 책도 나온 것일테니 말이다. 물리량들을 걷어낸다는 것은 앞서 말한 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자들과 시선을 어떤 방향으로 맞추어서 보느냐가 문제지...보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는 매 한가지이다. 이 책에서는 각자 상대적이지만, 상보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몸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뇌''라는 물리적 네트워크와 우리 자신을 통제하고 우리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자아''라는 내면적 미로, 그리고 이 세상을 이루고 진행키며 혹은 바탕이 되는 인간들의 이야기인 ''역사''와 물질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근간이 되는 미시세계의 ''나노'' 그리고 동양철학의 ''이기론''과 ''주역''에 견주어서는 물질의 변화의 대표적인 ''반도체''를 들어 이야기 하고 있으며,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입자''와 존재의 사유를 담고있는 동양사상, 천문과 신화, 로봇과 몸철학, 수학과 미학(혹은 미술) 등을 다룬다. 그밖에도... 우주개발, 동물학, 유전자 복제등도 다루고 있다. 가볍지 않은 학문들을 10명의 인문학자들이 풀어놓는 입담이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
| 10명의 인문학자가 10명의 과학자를 만나 그의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인문학적 바탕위에 자신이 만난 과학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글로써 보여준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었다고 하나 신문에서 만나지 못했고 또 시간이 지난 후이므로 어떤 보강이 이루어졌을 거란 기대로 책이 손에 들어오자마자 한달음에 읽어내려갔다. 실제 과학에 몸담고 살았던 시간이 많았고 반면에 인문학적 기본소양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독자의 한사람으로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이 책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인문학자라고 내세웠지만 과학적 지식이 그리 깊지않은 '일반인'이라고 보고, 일반인들이 얼마만큼 과학을 이해하여 받아들이고, 각 학문에 대한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면 다른 분야에 대해선 일반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실제적으로 내가 잘아는 분야도 있고 전혀 문외한인 분야의 이야기도 있었다. 인문학자라고 통칭했지만 역시 각 전문 분야가 다른 인문학자들이었고 그분들 중에도 내가 이해하기 쉽게 쓰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말로 쓰여져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와닿지않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적게는 몇십년을 한 우물을 파며 연구한 과학의 내용을 한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하기도 어려웠겠거니와대체적으로 과학자들이 인문학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도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담은 핵심적인 포인트를 잘 지적하여 유쾌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거리며 몰입할 수 있도록 잘 이루어진 것도 있으며, 또 다른 대담은 답답하고 수박 겉핡기 식으로만 어영부영 진행되고 만 것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글 자체를 인문학자가 썼기때문에 실제 연구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반경이 적어서일 수도 있겠다. 십분 이해한다하더라도 대담자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어떻게 결정하였는지는 전혀 모르니 할 말은 없으나 이러한 부분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면에서 대담자와 과학자가 짝을 잘 이룬 부분은 새로운 눈으로 보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이 글쓰는 데 있어서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재미없게 쓰여진 부분들은 대담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일 거라고 지레짐작해본다. 대담자가 잘 엮어졌다면 멋진 글이 나왔을텐데 그렇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일천한 우리의 현시점에서 편집자 오철우님의 머릿글에서처럼 서툰 대화가 점차 세련되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또한 여러명이 한꺼번에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바를 설명하는 기획이 이루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현재 과학은 세분되어 나눠졌다가 다시 통합되어 학제간 연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기에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문학도 공동으로 이루어진다면 정말 유쾌한 이야기가 나오지않을까 생각해본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도표들은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옥의 티로 보여진다. 표를 읽어보기에도 너무 작고, 조잡하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신문에 들어갔던 모식도를 그대로 넣은 것인가 하고 넘겨짚어보는데 약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고말았다. 반면에 각 장의 마지막에 오철우 기자의 쉽게 읽는 과학의 발자취는 매우 적절한 편집으로 다가왔다. 대담으로 인해 궁금증이 생긴 전문 내용들을 읽기쉽게 잘 설명해주어서 유익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읽은 내용중의 하나는 나노과학과 미시역사와의 대담을 진행시킨 김기봉님의 내용이었다. 나노라는 낱말을 요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로 사용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광고에 등장하는데 그걸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역사에서의 미시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와 과학자이지만 서로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적인 것으로 통했다고나 할까,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해야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명쾌하고 딱부러지게 표현해주었다. 또한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성태용 교수님을 만난 유인경 박사와의 만남에서는 호탕하게 웃지않을 수 없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아마 나보고 이런 대담을 하라고한다면 나도 그럴 것 같은 이야기때문이다. 대담과정에 미리 "동양 철학의 이론을 반도체 이론 등과 이렇게 맞춰보면 어떨까요" 라면서 파워포인트로 미리 작업한 자료를 보여주는 장면은 너무나 낯익은 풍경인 것이다. 그러나 그게 낯설어 충격이라고 표현하는 동양철학자와의 과학자의 만남. 이 책의 전체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고도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이밖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가득한 이 책은 몇가지 아쉬운 점을 빼고는 단숨에 읽어나갈만큼 재밌었고 오히려 몇몇 분야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마지막에 실려있는 홍성욱 교수님의 글은 앞으로도 이런 만남을 단발성으로 끝내지말고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해야한다는 취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이런 류의 책들을 더 접할 수 있을거란 기대를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