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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생물이라든가 생물다양성과 같은 말들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 되었다. 지구상의 다른 곳을 자기들이 발견했다며 곳곳을 착복하고 마구 휘젓고 다니던 서구문명은 ''찬란''했다던 그 과거를 이제 뉘우치고 있는가? 좀 더 거시적인 생태학적 관점을 보여주는 책은 없을까 찾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읽었고, 저자의 비판적인 관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오늘날 ''자연''은 찬란하던 과거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18쪽)
현대인 치고 자연과 함께 하길 바라고 그런 휴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의 삶을 지속해가는 것과 자연의 너그러운 품은 전혀 한가로운 상태에 있지 못하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의 지나온 삶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왔던가를 심각하게 반성해볼 때이다. 지속 가능한 진보에 대한 위기감은 팽배해 있고 자연은 묵시록과 같은 예언의 징조에 휩싸여 있다.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으로부터 현재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13만 년을 돌아보며 인류의 역사에서 문명이란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생태계의 파괴, 주로 대량멸종의 사태들을 다룬다. 원래의 제목이 Ecocide(생태계 살해)이듯이 주로 동물의 멸종을 다뤘다. 그 흐름을 따라 읽다 보면 누구라도, 정착 농경생활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략 480세대를 거치며 이룩해온 선조들의 문명이 그야말로 온 지구를 누비며 자연의 생태계를 짓밟아온 역사 속에서 성취된 것이었구나 하는 아연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근대 자본주의 단계에 이르고부터 현재 문명이 당면하고 있는 지구 생태계의 문제는 이처럼 역사적인 맥락 위에서 조망됨으로써 한층 심도와 절박성이 더해 보인다. 이는 고생물학이라든가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및 기타 여러 분야에 걸친 환경 생태학자들의 최근 연구성과들이 흥미를 유발할 정도로 한껏 반영됨으로써 더욱 빛을 발한다.
이처럼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거시적인 안목으로 논지를 펼쳐간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어내기에 결코 만만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간략히 요약해서 인용해주는 연구결과들에 놀라워하면서도 항상 논리적 추론의 높은 구도를 염두에 두어야 전체적인 얼개가 잡히는 서술이다.
인류문명사의 대량멸종 사태들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각한 때는 언제일까? 인류가 영장류로부터 ''신석기혁명''을 거쳐 고대문명들을 이룩해왔던 시기를 서술하는 전반부는 특히 흥미롭고 돋보였다. 그렇게나 많았던 엄청난 대형동물들을 멸종시키고서야 신석기시대를 맞이했고, 찬양 일변도였던 인류의 고대문명들이란 것도 인간의 노동과 자연자원을 ''착취''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서술에서 저자는 이미 고대문명부터 ''지구의 식민화''(71쪽)가 시작되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의 근현대문명을 키워온 자본주의 시기를 다루는 부분부터 저자의 시각은 더욱 예리하다. 우리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팽장에 내재된 정치경제학적 의미에 생태학적 분석이 더해지면서 비판적 논리는 숨가쁘게 현대로 와닿는다. 저자는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 때부터 이미 ''생태제국주의''(124쪽)가 시작되었다는 관점이다. 멸종사례로 든 모피무역, 들소사냥, 상업포경의 예들은 이익 추구의 무자비함을 여실히 보여준 최근의 대량살해 사례였다. 17세기 전반에 영국의 찰스1세왕이 상류사회 사람이라면 비버가죽 모자를 써야 한다는 포고령으로, 이후 1세기도 지나지 않아 북아메리카 동부의 비버가 200만 마리 이상 살륙되어 멸종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는 대목에서는 그렇게도 영국인들이 우쭐해 했던 젠틀맨이란 것의 뒷면이 폭로되는 느낌이었다. 또 인디언을 몰아내며, 혹은 이들 역시도 미대륙에서 엄청난 들소들을 살륙했다는 사실도 우리가 알고 있는 USA표 프런티어쉽의 이해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상업적 살륙이 1830년대에 시작해서 최대치에 이른 1870년대에는 연간 300만 마리씩(평균키 182cm, 길이 3m, 몸무게 1톤 이상의 자연상태의 들소)이나 되었다고 하였다(137쪽).
세계화시대의 전망, ''생태적 민주주의''
산업혁명기의 ''공유지에 울타리치기''(Enclosure)가 지닌 의미를 저자는 인류가 지구를 식민지화하여 생태계 살해를 저지르는 현대적 메커니즘으로 확대하여 이해한다. 20세기에 들어 세계대전과 이념갈등을 겪으며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전쟁은 산업화되었고, 현대전은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한전생으로 벌어진다. 이제 초국적 기업들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세계를 누비며 지구의 생명유지 시스템을 파괴하는 데 적극적이다. 저자는 ''국가적 희생구역''(157쪽)이라는 단원에서 간략히나마 실패한 사회주의 근대화의 뒷면도 잠깐 지적하였다. 구소련의 몰락은 ''생태계 살해로 인한 사망''(161쪽)이리라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글로벌리즘에 이른 ''후기 자본주의''(만델)의 세계화는 국민국가라는 틀 속에 부의 불균등(남/북)이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50,60년대를 거치며 ''생태계 살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이래, 미국을 필두로 한 북반구는 지금 ''최후의 만찬''(182쪽)을 벌이고 있으며,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빈곤으로 20세기 후반 숲 개발속도를 3배나 높이는 방식으로 역시 생태계를 갈취하고 있다. 현재의 지정학적 문화(geoculture)는 생태계의 현실과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 있는 것이다.
저자의 학문적 입장은 비판적 사회학이다. "품위있는 인간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경제의 부록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199쪽)는 입장에서 ''생태적 민주주의''와 ''공평한 세계적 공유지''를 위해 노력하자는 언급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결론이다 싶을지라도, 이 말이 결코 가벼운 전망이라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 책은 분명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과거사를 거울삼아 ''평등한 지구공동체''를 향해 발걸음을 내딪자는 젊은 연구자의 호소력있고 야심찬 노작임에는 틀림이 없다. 생태학적 관점을 심화시키는 데 유익하다.
책 뒤에는 <용어설명>도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표>는 본문 중에 포함되도록 배치했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참고용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전반적으로 편집은 깔끔하게 느껴졌다. 원문부기나 주표시, 활자크기라든가 단락 첫줄 들여쓰기 등의 쪽편집 레이아웃도 참신하고 좋아 보였다. 대신, 꼼꼼하게 독서할 때라면 주석배치를 후주로 처리한 것이 다소 번거롭기도 했다. ◎ [인상깊은구절] ○. 인구 증가가 생물다양성을 위협하고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를 꼽는다면, 크기가 정해진 지구에서 인간과 가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인류가 땅의 광합성 일차순생산력(NPP)을 착복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인류는 이미 땅에서 생성되는 광합성 일차순생산력의 40% 이상을 소비하거나, 전용하거나, 예비용으로 저장해두고 있었다. (...) 생물다양성과 천연자원의 고갈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은 인구 증가뿐 아니라 과소비와 기술발전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5~6%밖에 안 되지만, 전 세계 자원의 30~40%를 소비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소비하고 있는 자원의 대부분은 소수 미국인의 손에 의해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된다. 또한 북반구에서 소비하는 천연자원의 상당량은 남반구에서 흘러들어오는 자원으로 충당되고 있다. (...) 급속한 인구 증가와 세계 인구의 20%가 자원의 80%를 소비하는 지속불가능한 소비패턴 때문에 생물다양성에 가해지는 압력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지난 1세기 동안의 생물멸종 속도가 인류 등장 이전 시대에 비해 적어도 1000배나 빨랐음을 시사한다.(165-67쪽) ○. ''오버슈트(overshoot)''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의 부양 능력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만약 현재 61억 명인 세계 인구가 북아메리카의 생태적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면, 식량 생산에 대략 100억 제곱마일 이상의 땅이 필요할 것이다(기술 수준이 현재와 같다고 가정). 그러나 지구상의 땅은 겨우 50억 제곱마일이 조금 넘는 수준이고, 그 가운데 34억 제곱마일만이 생태적으로 생산적인 농경지, 목초지, 숲이다. 간단히 말해 자연의 재생 능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으므로 점점 증가하는 생태적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지구만한 크기의 행성이 적어도 두 개는 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물 멸종과 생물다양성 감소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182-3쪽) ○. 현대 인류의 사회적 진화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환상적인 도약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인류가 놀라운 생물다양성이라는 맥락에서 진화했음을 이제야 겨우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지구 생태계의 연약함과 불안한 자연이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인류는 생물다양성의 일부이며, 비교 환경사와 사회학의 문명연구 결과는 우리가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자신 역시 파괴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207-8쪽)표>용어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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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일컬어 흔히들 ‘진보의 역사’라 한다. 각종 문명의 이기가 이처럼 화려했던(?) 적은 아마도 없었다. 나날이 빈부의 격차가 늘어나고 있다곤 하나 그래도 과거처럼 아예 태생적으로 노예 신분이어서 모든 가능성이 봉쇄되는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에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다. 이 책은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인 시선에 반기를 들었다. 지구라는 별에서 생명체가 형성되던 시기부터 현재까지를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킨 작가의 견해에 의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짧기 그지없다. 문제는 그 짧은 시기에도 불구하고 한 종이 다른 종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가 여느 때보다도 극심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자신의 생활을 잠시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필요 없는 전깃불을 계속 켜놓고 사용 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머지않아 지하자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으면서도 이후 시기를 준비하는 가시적인 움직임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부정적인 행태는 비단 요 근래의 일이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정착생활이 시작한 이래 대부분의 대형동물들은 멸종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고 한다. 게다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등 위대한 고대문명으로 칭송받는 지역들에서 우리는 자연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아테네는 위엄 있게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제멋대로 성장한 도시였다. 시가지에는 널찍한 의전 도로인 신성한 길과 아고라 광장으로 이어진 좁은 골목길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아고라에서는 상업과 정치 활동이 이루어졌다. 도시의 성벽 안에는 많은 외국인을 포함해서 10만 명쯤 살고 있었다. 시내에는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테네는 인구밀집, 소음,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폐기물 축적, 전염병 등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도시 밖으로 흐르는 개울가 나무 그늘에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눈 것도 무리가 아니다. 도시화가 아테네 인근의 자연환경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아테네가 그리스의 여러 지역은 물론 이집트나 흑해 연안처럼 먼 곳에서도 자원을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p87 어느 누가 고대 문명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 적 있었던가? 항상 인간이 중심에 놓인 사고를 해왔던 우리에겐 번영의 역사였던 그리스가 이토록 부정적인 관점에서 그려질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평화의 시기도 이러할 진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황폐화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전쟁은 그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화학 살상 무기를 동원하진 않았다 하여도, 인류는 제 우월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침범한 영토 위에 세워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파괴해버렸다. 오늘날까지 유지되었더라면 세계적인 문화재로 사랑받았을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마저도 철저히 소외당하고 부인되었으니, 인간의 적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자연을 파괴하고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우리는 꽤 길들여진 상태이다. 소위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생활 방식은 지독히도 소비지향적이어서, 그와 같은 삶이 지속된다면 전지구적 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을 거란 불안감마저 든다. 저자는 ‘생태계 살해의 시기’라 부를 수 있을 수준의 파괴성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서 멸종한 종들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코 피상적이지 않은 이 외침에 보다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여 문명이 곧 파괴요, 대량멸종의 씨앗을 낳는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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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자행된 지구 생태계 파괴 역사를 다루었다. 종은 생겨났다 사라지는 게 진리다. 문제는, 인간에 의해 종의 멸종이 가속화 된다는 사실이다. 종의 멸종을 넘어 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단지, 침팬치와 2% 다른 유전자 만으로 인간은 문화를 이루었지만, 그 문화에 의해 인간은 자신을 파괴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더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 오면서 그 파괴 자체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경제 민주화를 제시한다.
5만년 전 충적세 말기부터 시작되는 인간에 의해 생태계 파괴의 역사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경제민주화라는 대안까지 일목 요연하게 서술한다.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인간에 의한 대형동물(맘모스를 포함)의 멸종사를 꼼꼼하게 되짚는 부분, 전쟁에 의한 대량 생태계 파괴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성찰하는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제 자본주의라는 기차의 속도를 어느 누구도 늦출 수 없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대안은 있는가? 아니, 대안은 성립됐는 데, 인류에게 그 대안으로 더불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있는가? 최근에,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그래서, 빨리 달리는 기차를 더 빨리 달리가 하겠다는 한국 정부를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급격하게 번성했다가 더 급격하게 사라져 버린 많은 문명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성장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라졌다. 지금 우리 인류도, 한국 정부도 그들이 지나간 멸종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책이 주석이 반이다. 주석을 과감하게 빼고 문고판으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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