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窓の灯:: 靑山 七惠 나는 블로그를 쓰고 있지만 블로그의 특성은 쓰고 있지 않다. 블로그가 오롯한 개인 공간이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한 소小커뮤니티 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사실 사용하는 블로그는 무려 일곱개나 되는데, 그 중 다섯 개는 각 블로그들과 연결된 포털이나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수집하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쓰고, 한 개는 아주 가끔씩 답답한 속을 게워내고 싶을 때 혼자만 볼 수 있는 비밀일기 용도로 쓰고, 나머지 한 개만 이런저런 감상문을 쓰는 용도로 그나마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 자주 쓰는 것도 블로그의 주된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쌍방향의 설정은 거의 제거된 상태다. 댓글을 달지 못하게 아예 기능을 삭제해 놓았고 방명록도 닫아 놓았으며 심지어 쪽지 수신도 정지시켜 두었다. 스크랩도 부분적으로 허용했을 뿐이다. 도용을 걱정하는 쪽이라기보다 주소가 여기저기에 노출 되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에 더 가깝다. 카페나 클럽 등 커뮤니티를 안한지도 오래 되었다. 특별히 정보를 요하는 상황에서는 가입을 하거나 짤막한 글을 남기는 경우가 없잖아 있지만 교제나 자기 과시 목적으로 다니는 커뮤니티는 현재로선 전혀 없다. 작년까지만도 열심히 활동 해보고자 했던 곳이 두어곳 있었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조용히 반 탈퇴 하다시피 나와버렸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의 그 특성이라는 것에 염증이 난 점도 있었지만 인터넷을 하려면 어느 정도 적응해야 될 부분까지 견디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과민한 성격탓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댓글로 이루어지는 인간 관계에 도무지 안착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못보고 보이는 부분에만 연연하게 되는 것에 너무도 쉽게 상심하고 괴로워했다. 인터넷으로 1년이고 2년이고 닉네임만으로 서로를 알고 지낸다해서 그걸 정말 인간관계 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던거다. 상대는 별 감정없이 한 말인데도 짱돌에 맞은 개구리 마냥 상처을 받았다. 열심히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니 가진 것도 없고 아무 능력도 없는 스스로가 너무 비참했다. 구태여 갖지 않아도 될 것인데 못가져서 안달하고 속상해 했다. 나름 열심히 해서 만들어냈다고 자부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같은 것과 비교하고 풀이 죽어 우울해 했다. 너무 매력적인 사람이라 닮고 싶은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내가 그이에게 반한 만큼 그이는 나에게 반해주지 않았다. 매번 나만 찾아가게 되고 이대로 발길을 끊으면 거기서 관계도 끝나게 될 것 같았다. 그이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공연한 소외감을 느꼈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시들했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이 나를 통해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편견에 공연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인정받고 싶은 상대는 꼭 뒤돌아 서 있는 이였다. 그게 지독한 개인주의와 애정결핍의 범벅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부터 모든 문을 닫았다. 왜 스스로 보듬지 못하고 남이 먼저 사랑해 주기만을 바랄까? 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만 보며 아파할까? 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시기의 대상을 소유하려들까? 모든 게 내 컴플렉스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서 자해를 하고 그걸 누가 불쌍하다고 봐주기를 바랐던거다. 계속 그래갖고는 정상적인 소통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분간이 될지 평생이 될지 몰라도 일단은 나 자신을 위해 펜스를 쳤다. 그리고 약간의 길을 터 약한 줄기의 물이 흐르게끔 했다. 무조건적인 소통 거부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소통 방식을 택하고자 한거다. 그 물줄기가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이런 글들이다. 나는 두서없이 쓰는 이런 글들에 절대 진심과 소통의 희망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걸 건져낼 사람을 기다리거나 찾아본다. 나와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을, 사소하게 상처 받는 주제에 저 너머의 세계를 보려는 사람. 보여지는 것에 연연해서 쉽게 아파하지만 자신처럼 아픈 사람이 또 있을거라 희망을 못버리는 사람. 몰래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하루는 쓸쓸하게 돌아오고 하루는 마음을 끄는 누군가를 발견해 말을 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는 사람.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적응을 못해 해변가로 좌초 되었지만 부서진 조개껍질들끼리 마음을 나눌 수 있을거라는 소박한 바람 때문에 그래서 이곳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머무른다. 닫아 놓고도 완전히 닫지 못하고 안보려 해도 보는 것을 갈망한다. 누군가 분명히 있을까봐. 누군가 분명히 나를 발견해줄까봐. 무엇보다도 완전히 닫고 완전히 떠나 고독에 길들여져 버리려는 나 자신을 말리기 위해. 인터넷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인데도 작가가 인터넷을 의식해서 쓴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비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것으로 공감되는 중편이었다. 마리모가 창을 통해 남의 일상을 지켜보며 보이는 것에 괜한 자격지심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에 나 자신을 오버랩 했고, 근사해 보이는 지인이 자신에게 잘해주지만 특별하게 여겨주지 않는다는 것에 상처를 받는 모습에 과거에 내가 겪었던 감정들을 돌이켰다. [결국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아니라 무표정 뒤에 감춰진 모순과 욕망, 슬픔으로 일그러진 질퍽하고 냄새 나는 얼굴이었는지 모른다. (p119)] 마냥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인기 블로그에서는 위화감을 느끼는 대신 인적은 없지만 솔직하게 아픔을 드러낸 블로그가 끌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닐까. 저 너머의 세상, 창문 너머의 진실, 모니터 너머의 현실. 진짜로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인데. |
|
일본의 어린친구들이 쓴 작품들을 보면 무척 어두운 글이 많다. 작품은 곧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슬프기도하지만, 자신의 아픔과 욕망을 승화시켜 이런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 그렇게 성숙해지는 건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중간중간에 있는 삽화도 이야기의 주제와 잘 맞고. 삽화가 이름이 따로 들어가 있지 않은 걸보면 직접 나나에가 그린 건가. 얇고 짤막한 이야기로 내 머릿속은 흔들바위가 됐다. |
|
예전에 블로그는 자신을 표현, 과시하는 곳이며 타인을 훔쳐보기 위한,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이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럼 과연 온라인만 그럴까? 지금의 집은 동마다의 간격이 넓고, 사이에 광장을 두어 다른 집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고, 게다가 안방을 서재로 하고 작은방을 침실로 삼아 전면창에 커텐을 치지 않고도 침대에서 뒹굴 수 있도록 앞이 훤하지만 (그래도 습관적인 걸까, 불을 켜면 커텐을 닫는다. 누가 망원경으로 쳐다보지 않는한 절대 볼 수 없는데 말이다. 최소한의 기본적 보호막일까), 예전집은 자동적으로 센서가 감지해 엘리베이터 앞에 불이 켜지면 건너편 동 거실에서 사람이 쳐다보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신경을 쓸 거면, 왜 커텐을 치지 않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기는 꺼림직하지만, 그래도 보아줘..란 의미일까? 사람은 보지 말고 돈을 들여 치장한 인테리어를 보아줘 하는 의미일까? ...노골적이고 질펀한 싸구려 쇼를 어두운 구석에서 훔쳐보는 남자처럼 남의 사생활을 은밀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나는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 혐오에 빠지기 보다는 그 욕망을 채우는 쪽이 더 즐겁지 않은가. 사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않고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뉴스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나는 레이스 커튼 너머에 있는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모르는 사람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다 위로하며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냉정한 눈길로 방 안을 훔쳐본다. 그가 창가로 다가오 커튼을 젖힐 기미가 느껴지면 나는 재빠르게 베란다 구석에 웅크리고 숨을 죽인다....p.29~30. 마리모, 정말로 그렇게 사는게 쿨한 것 같으니? 마리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가까운 카페 civet에서 일하기로 하고 그 건물의 2층에 살고 있다. ...언니가 언넨 담배를 한모금 빨고 파란색 유리 재떨이에 비벼끈다. 그리고는 카페 뒷문으로 살짝 바져 나와 나선형 계단 아래서 잠시 숨을 돌린다. 무심결에 붙잡은 난간은 낡고 녹이 슬어 문지르면 빨간 쇳가루가 떠어진다. 닳고 닳은 내 일사이 바스락대며 떨어지는 것 같다....서쪽 끝에 있는 공원 숲 건너편으로 오렌지 빛 태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다. 거리는 아직도 숨이 막힐 듯한 열기가 가득하다....p.18~19 카페의 주인인 미카모는 아주 아름답지도 지적이지도 않지만 생기에 넘치고 매력적이며 많은 남자들을 애인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녀는 위태로운 듯하지만 그래도 한사람씩 그 순간에는, 아니 일주일에 하루씩은 상대에게 충실하다. ...그 남자의 방을 올려다보니 커튼이 도발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언니의 흔들리는 마음속 같다....p.39 카페건물의 건너편에는 빌라가 가까이에 있고, 마리모의 창문 건너편, 즉 빌라 2층의 가운데 방은 비어있다가 갑자기 한 남자가 들어오게 된다. 마리모는 너무 엉성해서 안이 들여다 보이는 그 남자의 방안을 들여다 본다. 자신이 보일까봐 안보이게 방의 불은 끄고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말이다. 어느날, 미카모는 흥분되어있다. 선생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과연 수많은 남자중에서 이 아름다운 언니가 설레여하는 그 특별한 사람이 누구일까, 마리모는 궁금해한다. 그리고 찾아온 그 남자의 구두가 마음에 들어 마리모는 그를 기다린다. 마리모가 들여다 보는 창들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 곳외의 공간을 의미한다. 적극적으로 벗어날 수 없기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들여다 본다. 하지만, 어느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버린 마리모는, 결국 모습을 드러낸 이웃집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그는 미카모의 창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
| 다 읽는데 1시간이면 다 읽는듯.. 요즘 일본소설이 좋아서 사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일본소설의 공통점 끝이 너무 허무함..결론같은것을 절대로 내지 않음 ..절대로 끝나서 안되는 부분에서 책이 끝남... 특히 이 책은 책값에 비해 너무 읽은 것이 없음.. 중간에 카페 여주인의 교수님이 나오는데 ..도대체 왜 나오는지.. 서로 애기만 하다가 끝남...대학중퇴자와 카페주인과 같이 살아가는 애기.. 옆집 창을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대학중퇴자..카페 운영하면서 물장사 하는 여주인..애기.. 읽으면서 가끔은 이렇게 사는것도 나쁘지 않겠구나..그정도? 전혀 걱정없고..먹고 살정도만 돈을 벌면서...여주인과 같이 사니까..외롭지는 않고.. 집걱정도 안되고...그리고 언젠가 그 대학중퇴자가 여주인의 자리를 이어갈듯..한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