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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도입부 스토리부터 장 클로드 무를르바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게 하는 <바다아이>에는 그 스토리 못지 않은 카리스마의 빛을 발하는 주인공이 있다. 갑자기 가출을. 그것도 일곱아이가 모두 한꺼번에 했다니. 말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형제들을 진두지휘하는 작은 아이 "얀"의 생각속으로 함께 동화 되어 이야기 속의 설레이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행선지를 바다로 정한 것은 다소 낭만적이기도 하고 뭔가 자유를 갈망하는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아이들은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면서도 혼연일체가 되어 묵묵히 자신의 고통에 대해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열악한 현실의 고비들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 아이들이 만난 어른들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따스한 심장과 감성의 소유자들은 이 아이들의 목적지인 그 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평상시와는 다른 대단한 배려심을 발휘한다. 아이들이 만난 세상은 어떠했을까. 스스로의 인내심과 한계를 극복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작은 지도자 얀은 한마디 말소리도 내지 않고 수일동안 모든 여행을 진두지휘했다. 어떤 제스츄어와 눈빛이었길래 그 인형같이 작은 아이의 말이라면 꿈쩍못하고 신비하게도 형제들을 모두 복종하게 만든 것일까. 형제간의 끈끈한 우애가 가슴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바다아이>를 다 읽고 나면 얀의 존재에 대해 희미하게 나마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샤를 페로 <엄지소년>의 이야기를 모토로 흥미롭게 이런 이야기를 끌어낸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에 더욱 강하게 매료되게 만든 독특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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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형제들의 형제애와
배고픔에도 너무 걸어서 다리가 아픔에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오늘날 아이들에게 볼 수 없는 끈끈한 형제애가 느껴지는 책이다.
평범하지 않은 막내인 11살 얀을 따라 비오는 날 밤 부모님이 형제들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찾아 떠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되어 나간다.
이야기의 전개가 7곱 형제들이 순간순간 겪은 이야기를 해 나가거나,
이 일곱 형제들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난해해지기 쉬운 글이지만
이 바다 아이는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책속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가난과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이지만
순수하고 맑으며 예의 바른 모습에서 빵집 아주머니가 베푸는 사랑과
흑인 여대생이 아이들이 한 행동을 모두 알고 있으나 모른척 하고 더 나아가 이 아이들이 아무일 없길 바라는 모습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느껴지게 하는 책이다.
추운 길가에 쓰러지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작은 기차 소리 하나에도 희망을 얻고
빈 별장에 들어가서도 주인 딸 아이의 방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거실에서 잠을 자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맑은지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얀이 자신이 사랑하는 고양이 새끼 7마리를 죽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형제들을 데리고 바다를 보러 먼 길을 떠났다.
별장에 갖혀 죽을 수도 있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찾고 걱정하는 부모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은 줄만 알았던 부모로부터 자식과 부모간의 사랑을 맛본다.
얀의 부모 또한 너무나 가난하고 부모로부터 부드러운 손길을 사랑을 받고 자라나지 못하였기에
그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의사소통을 나눠야하는지를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이세상에서 처음 부모가 되어보는 것이기에
마음과는 달리 자식과 엇박자로 이루어지는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도 우리 아들도 또한 처음으로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의 인연으로 만났기에
부모가 먼저 자식을 보듬고 사랑으로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어야
자식 또한 자라서 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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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에서 출판된 이 바다아이는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합적으로 모여 한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특이한 구성 또한 새롭다. 어찌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을까만 은 아이들에게 대한 부족한 애정표현이나 자신들보다 뛰어난 막내를 좋아하지 않는 그릇된 부모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왔다. 세 쌍둥이인 여섯 명의 형들과 달린 기형적일정도의 작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얀은 정신세계에서만은 형들과 그 부모님을 앞선다. 막내 얀조차 자신의 부모님을 좋아할 수 없고 그 부모도 막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꼭 마틸다와 그 부모를 연상시켰다. 삶에 찌들어서 그런 건지 자식들에 대한 태도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엄마와 아버지는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지저분하고 흉측한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얀이 우연히 듣게 된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 일곱을 죽이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여섯 형들에게 집에서 탈출하도록 종용하여 바다를 향해 길을 떠난다. 몹시도 초라한 차림들에 먹을 것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삐쩍 마른 몸을 가진 여섯 아이들과 막내 얀은 서로를 향한 배려와 사랑으로 가득하다. 서쪽 바다를 향해 길을 향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늘을 보며 바다를 찾아가는 얀은 한번도 대해보지 않았던 바다에 막역한 희망을 가지고 힘든 고비들을 버텨내지 않았을 까 싶다. 어려운 처지에도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모든 고통에서 견디어 낼 수 있게 하는 힘인 것이다. 기차표도 도둑질 하고 샌드위치도 슬쩍 하지만 그들의 그런 행위가 전혀 거스르지 않았던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기본적 행위였기에 이해할 수 있다.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행색이나 기이한 형태의 아이들과 함께 기차여행을 하게 된 흑인 여대생도 눈감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향한 시선들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곱 명의 아이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어갔던 별장의 주인이 아이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아이들이 빠져 나올 수 없게 집 주위를 바리케이드를 칠 수 있었을 까? 그렇게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인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별장을 가끔 돌보는 실업자는 자신이 돌보는 집 주인이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상황 이야기를 하고 용돈을 받고 집 주인과 동일한 이기적인 사람이다. 자신을 향해 세상 살면서 한번도 좋은 일은 해 보지 못했고 그럴 가치도 자격도 없는 말이라는 표현은 딱 적합하다. 용기 내어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단 한번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 기회마저 놓쳐버린 한심한 인물이다. 얀의 기지로 구사일생 전화를 걸 기회를 얻게 되며 부모님과 통화가 되어 경찰로부터 구조를 받는다. 착하디착한 아이들이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고 어둡고 추운 집 안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지 가슴이 아린다. 잔인한 집 주인의 금발 자녀들의 건강하고 예쁜 사진들이 이 아이들의 딱한 모습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얀은 부모와 만날 기회를 박차고 바다로 향하여 그 순진한 미소로 갑판장 아저씨와 함께 대서양으로 떠난다. 입을 움직이지 않고도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할 수 있는 특이한 재주를 가진 얀이 부모의 박해와 시달림에서서 견디어낼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진정 사랑해주는 형들이 있었고 바다를 향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자신을 진정 이해해주는 선생님과 함께 하는 마틸다가 행복을 마침내 찾았듯이 얀도 바다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았을 거다. 얀과 동화 속으로 함께 하고 싶은 갑판장 아저씨와 젤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고 믿는다. |
|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는 듯한 일곱 형제가 어느 비오는 밤에 갑자기 집을 떠납니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정당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느낍니다. 일곱명의 형제들은 바다를 향해 떠나면서 누구도 왜!라는 물음을 하지않고 막내인 얀의 지시를 따르듯이 서로 순종하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힘들게 떠납니다. 그들은 모두 바다를 향해 가는 목적이 있기에 한밤중에 얀에게 들었던 부모가 자신들을 죽이려한다는 말에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갑니다.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우린 우리가 가는 길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얀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다를 향해, 바다에서 또 다른 동반자를 만나듯 우리는 어떤 동반자가 되어지고 어느 곳을 향해 나의 바다를 바라볼까요.... |
| 무섭게 내리는 빗소리와 한밤중의 어둠을 의지한 채 가난과 학대에 억눌린 일곱형제는 가출을 감행한다. 세 쌍의 여섯형들을 이끄는 사람은 막내 동생 얀이다. 1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살배기 아이로 보이는 기형적인 모습을 가졌다. 엄마는 얀을 갓난아이 때부터 첫재 쌍둥이인 파비앙과 레미의 침대에서 재웠다. 밤중에 배고파 울면 설탕물을 새끼 손가락에 담갔다가 얀에게 빨렸다. 그런 사랑으로 맏형들은 눈으로 말하는 얀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은 얀을 싫어한다. 아니,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가난에 찌든 부모가 자유롭게 행하는 언어폭력과 폭행 속에서도 얀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빤히 질책하듯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얀은 책 속에 빠져 산다. 부모님은 그런 얀을 게으름뱅이에다 부모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얀의 책들과 공책을 모두 가방에 쓸어 넣더니 우물 속에 풍덩 던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벽장 속에서 새로 태어난 일곱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한다. 얀은 어미 고양이의 고통스런 해산을 지켜 보았고 어미의 정성스런 보살핌을 느꼈다. 아버지의 얘기를 엿듣고 분노에 치를 떨며 가출을 주동하게 되고 얀에 대한 믿음으로 형들은 말없이 동의하며 따라나선다. 형제들은 바다로 향한다. 자유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막연한 목적지였다. 일곱 형제들의 가출 행로에서 우연히 이들을 목격한 사람들은 각 자의 관점에서 그 인상과 느낌을 털어 놓는다. 지나가는 행인인 냥 이들은 형제들의 남루한 행색과 두려움과 순진함을 담은 눈길을 그냥 쳐다만 본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느끼지만 다만 가벼운 적선 정도의 도움 외에는 생각지도 못한다. 오히려 비정한 사업가인 질 페브르씨는 아이들을 자기 별장 침입한 범죄자로 여기고 집안에 아이들을 감금하고 전기도 끊는다. 얀이 가까스로 찾아낸 전화기로 집에 연락하여 거의 혼수상태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가출로 인해 비로소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얀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자유를 향해, 바다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난다. 왜소한 몸 속에 꽉꽉 눌려놓은 삶의 의지는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돛대를 힘차게 올리며 출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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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읽으면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 열심히 쏟아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책 못지 않게 생각거리가 많으면서도 그것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보고 나서 나만의 짐작, 느낌인데도 불구하고도 ‘내 생각이 옳다, 확신할 수있다, 틀림없다, 유일한 진실이다’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코 그것은 사실과 다른데도 말이다. 또한 그러한 생각들 밑바탕에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활이 깔려 있다. 나의 생각은 내 과거의 어떤 경험과 관련 있는지 저절로 되짚어보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과의 닮은 점, 같은 점을 발견하면 그것에 큰 의미를 두거나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정비사는 [엄지소년]에서 맏이가 자신과 같은 불꽃머리이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음에 주목하고, 외국인 여대생은 피에르의 연약하고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를 보고 거울 속의 자신을 떠올린다. 또한 식료품 상인은 심한 발냄새가 같다고 서로 통하는 게 있다고 받아들인다. 같은 상황에 처해있거나 같은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어쩜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 책이 안겨주는 미묘한 맛이다. 일이 순조롭게 잘 되어갈 때 조차도 찌푸린 얼굴로 무게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왕자님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못 느끼는 데 서쪽 하늘의 밝은 빛을 보고 방향을 정하는 아이가 있다. 젖어 있는 바닥에 앉아서도 오후엔 마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 있는게 지겹다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쳐 흘려 듣는데 익숙한 사람이 있으면, 찾아오는 이 없고 귀 기울여 들어줄 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 있다. 냄새가 심한 쓰레기통 옆에서는 차라리 자는게 낫다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상황이 어떤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왜 그렇게 되어가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꼭 필요한 이들에게 좁은 자리 하나 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규칙에 왜 어긋나는지 따지는 사람이 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토끼를 떠올려 문 열어 주러 가는 사람이 있으면, 밖에서 철고리를 박아 못나오게 하는 사람이 있다. 특별한 아이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장으로 섬기고 무조건 따르는 사람이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가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느니 차라리 굶어 죽기를 택하는 사람이 있다. 살아있는 것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있으면, 한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그를 소홀히 하는 자에 대한 분노를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을 한 번 해볼 가치도 자격도 없다고 비관하며 눈물 흘리는 밤을 보내는 사람이 있으면, 정직과 성실을 내세우며 정의로운 사회를 자신이 만들어 간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생각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등장하는 사람이 갑판장이다. 그는 얀을 현실 세계로 불러내지 않고 자신이 동화 세계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얀이 그토록 원하던 것을 나란히 바라보며…. 이 책을 처음 읽은 날 밤은 장마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그리고 두 번째 읽는 오늘 밤은 바람이 제법 분다. 남아 있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의 삶은 또 하나의 경험으로 인하여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을 더듬어 본다. 내 생각, 내가 하는 말, 그리고 내 행동….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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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정말 재밌다고 소개를 받았다. 처음 표지를 보고는 판타지겠거니 생각했다.
처음부터 사회복지사의 이야기로 얀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리고 다음엔 얀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무슨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닌 각각의 사람의 시선으로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얀의 아버지, 얀의 맏형, 트럭운전기사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까지...
오호~ 정말 새롭고 독특한 전개에 난 잠시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금세 적응을 하고 마치 퍼즐을 맞추듯 인물들의 이야기에 사건을 그려나갔다.
샤를페로의 <엄지 소년>을 읽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퍽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일곱 형제 가운데 둘씩 여섯명이 쌍둥이고 막내만 쌍둥이가 아니 얀은 몸이 작지만 공부하길 좋아하는 11살 소년이다.
고양이 새끼를 죽일 거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무작정 형들을 깨워 집에서 도망친다. 맏형에게만 아빠가 우릴 죽일 거라는 말만 하고... 막내동생 얀을 믿고 함께 도망친 형제들의 모험 이야기는 같은사건을 겪으면서도 서로의 생각들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훔쳐볼 수 있다. 집을 나온 지 5,6일 동안 형제들이 겪은 일들은 제법 있을 법 하기도 하다. 마지막 바닷가 저택에서의 알수없는 감금도 독특한 전개였다. 최후의 순간 찾은 전화기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바로 부모님이었고 그 한통화의 전화로 아이들도 부모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막내 얀의 선택은 집이 아니었다. 얀은 혼자 배를 타고 바다로 간 것이다. 얀이 한 마지막 말 '형 내 말 잘 들어. 부모님은 우릴 해치려 하지 않았어. 그저 새끼고양이들을 죽이려고 했던거야. 난 그게 싫었어. 이해할 수 있겠어? 다른 형들에게 이야기해줘, 알았지?'
11살 엄지소년 얀의 생각에 이해할 수 없는 면도 있겠지만, 있는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엔 얀과 같은 아이도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그런 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독자들도 이 사건의 목격자로 또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얀의 엄마 이야기 가운데 일곱형제를 키운 어려움을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부모 입장이어서인지.. 차마 내 입으로는 내뱉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이 고마웠다.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 얀을 바라보는 시선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자식한테 그런 눈빛을 받는 기분이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 이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 기가막히게 흥미로운 동화를 한편 만난 기쁨이 대서양 바다를 앞에 둔 것마냥 벅차게 나를 흥분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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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늘 사람들 시선에 관심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작은 아이얀을 중심으로 세 쌍둥이 여섯 형과 고달픈 여행이야기다. 춥고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깊은 밤에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를 듣고 얀은 형들과 집을 나서게된다. 책중간쯤 알게되지만 얀은 알고있었다. 부모님이 죽이겠다고 한것은 7형제가아니라 새끼고양이 일곱마리였다는걸..... 그 사실을 여행이 거의 종료될무렵 레미형에게 말을한다.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다르게 책에서 뗄수 없도록 독특하게 구성되어있다. 작은 얀이 꿈꿔온 희망의 바다를 보기위해 힘든 여정을 떠나는데, 생활환경 남자아이들만 있다는점에서 많이 싸우고,원망하고, 포기하고 돌아올법도한데 제 선입격과는 달리 참고,아끼고,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졌읍니다. 사라진 얀이 궁금했읍니다. 작은 아이 얀은 배 위에서 항해를 하고있었읍니다. 대서양! 어떤 기분일까? 서로 표현이 서툴뿐 그들의 사랑이 우리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손난로처럼 그따뜻함이 고스란이 전해지는것같네요. |
| 책을 읽어가는 내내 가슴이 아파서 손을 꼭 쥐었다. 작은 아이 얀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아파왔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냥 아팠으니까. 영화 한 편을 본 것같다. 주인공을 둘러싸고 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주고 받는 아주 잘 된 다큐멘터리를 뵜다고 한다면 어떨까. 세 쌍둥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사랑을 느끼기도 했고, 무관심을 느끼기도 했으며, 저런저런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면... 첫째 쌍둥이들이 느꼈을 책임감, 둘째 쌍둥이들이 형제를 지키고 싶었던 자신감, 셋째 쌍둥이들이 느꼈을 불안감. 하지만 그 무엇보다 얀이 느꼈을 절망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바다를 보았다. 하염없이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얀은 그 바다로 떠났다. 아름다운 미소를 간직한체로... 그렇게 영화는 끝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