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이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소문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장이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존재해왔다.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 늘 존재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역사를 바꾸었다. 소문은 그 실체가 보이지 않으며 항상 움직인다. 또한 소문은 움직이고 있을 때 많은 힘을 가진다. 소문은 언제나 익명성에 기반한 중개된 말이다. 도무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소문을 저자는 파마의 여신이라 부른다. 파마는 라틴어로 명예, 여론, 평판, 잡담, 소문의 뜻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소문은 특히 그 힘을 발휘한다. 이는 전쟁을 선전전으로 부르기도 하는 현대인들만이 아는 사실이 아니다. 책에 삽입된17세기의 한 그림은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탄 군신 마르스가 전쟁의 동반자인 파마 여신과 함께 전쟁에 출정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전쟁에서도 파마의 여신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라크 군인들이 만여 명 가까이 항복했다는 소식은 국내 모든 매체에 실렸지만 사실이 아님이 확인됐고, 미군 부대 내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도 이라크 인에 의한 소행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은 미군에 의한 일임이 밝혀졌다. 미국은 특히 이번 전쟁에서 파마의 여신을 통제해보고자 언론 취재 시스템인 '임베드 프로그램(embed program)'을 운영하며 프리랜서 기자들에게는 취재를 제한하고 있다. 그렇지만, 파마의 여신이 그렇게 쉽게 통제될지는 의문이다. 저자가 말하듯, "유언비어 형성지대에서는 속사 무기, 탱크, 공중 촬영, 야전용 전화, 대중 언론 그리고 프로파간다 기구들의 시대인 근대 또한 풍문의 시대로 입증되었다." 매일 삶과 죽음을 오가는 군인들이 모여있는 전장에서 기록 문서는 검열과 조작으로 인해 신용이 이미 실추되었고, (2차 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각기 자신의 참호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장은 가장 신속하게 형성되는 유언비어 형성지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68년, 자유와 평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프랑스 땅에서 69년, 오를레앙의 유대인이 소녀들을 팔아먹는 인신매매범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집회가 소집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파리에서 애드거 모랭과 그의 작업팀이 이 소문에 대한 연구를 위해 오를레앙에 왔고, 그들은 파마의 발생 과정을 "발생, 유포, 위협적이고 돌발적으로 터져 나온 난폭한 폭력 행사"의 세 단계로 보았다. 모랭의 사회학적 관심은 이 사건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켰고 연구는 잘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론으로 사건을 규정짓기 꺼려했다. 그는 여러 형태를 지닌 유동적인 도식을 찾으려 했으나, 이 분석에서 뭔가 본질적인 것이 그물망으로 빠져나간 것 같다는 느낌을 일기장에 적었다. 바로 그 무언가를 소문의 시학이라 일컫고 있다. 소문의 시학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전설과 일화들을 현재의 어떤 사회적 사건과 관련시킨다. 책의 앞부분에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플루타르코스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의 이야기들, 옛날 이야기들은 소문을 페메 여신으로 생각했다. 페메 여신의 이야기들은 쌓이고 쌓여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고 이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소문은 신과 인간의 두 세계에 동시에 속해 제우스가 소문을 작동시키면 인간들은 그것을 말로 서로 주고받았다. 신화 안에서의 소문은 그렇게 돌고 돌아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파마의 여신을 통제해보려 미국에서는 루머 클리닉을 설립하였다. 클리닉에서는 병력(病歷), 진단, 치료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많은 자원봉사자, 유급 인력들이 "오늘 소문을 없애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활동하였다. 루머 클리닉은 공식적인 소문 전화선을 통해 운영되었는데, 이 소문 전화선은 주로 백인들의 핫라인으로 간주되어 이 전화 자체가 정보라는 상징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통제의 대상은 주로 백인이 아닌 흑인들이었으나, 중심과 중심사이에 개설된 핫라인은 주변을 통제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소문이라는 메타포는 실체 자체가 없기 때문에 통제와 분석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이미 망과 망으로 연결된 인터넷 시대를 지나 모든 네트워크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게 될 유비쿼터스의 시대가 온다면 파마는 "움직일수록 강해지며 장소를 이동할수록 힘을 얻는다"고 한 베르길리우스의 예지는 빛을 발할 것이다. 저자는 플루타르코스, 헤시오도스, 블로크, 고골리, 막스 베버, 하이데거 등 실로 깊고 풍부한 독서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그 풍부한 예화와 도판들의 나래 안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특히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 그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은 채 다양한 학문 체계 안에서의 성과들을 꿰어 하나의 완성된 텍스트로 엮어내는 심미안이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