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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황국사관 역사학자들은 히미코(卑彌呼) 여왕을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신공황후(神功皇后)와 동일인으로 보며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허황된 이론인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게 한 주인공이다. 임나일본부설은 20세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견강부회 이론 중에 하나였다. 일본인들은 한반도가 옛날에도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자신들이 다시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로 만들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을 부각시켰으며 이것이 효과가 없는 듯하자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하기 까지 한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히미코(卑彌呼) 여왕은 한반도를 침공하고 식민지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야국의 공주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히미코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가야의 첫 왕비인 허왕후가 인도의 한 지역인 아유타국 출신이라는 것으로 나온다. 사실 가야와 인도는 아주 먼 거리였는데, 과연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이 사실일까?하고 삼국유사를 본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만 한다. 그런데 쌍어문(雙魚文)이라든지 우리말과 인도의 드라비다어가 비슷하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유물이나 증거들이 가야와 아유타국과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아주 큰 것이 내가 읽어본 여러 가지 책자에서 공통되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가야의 공주가 일본 최초의 여왕인 히미코(卑彌呼)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아주 흥미로운 주제로 만약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과 일본고대사는 새로 쓰여져야만 할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바로 이 책들의 제목에서 의미하듯이 우리의 고대사를 삼국으로 그 범위를 축소했다. 왜 삼국인가? 부여, 가야는 왜 포함되지 않을까? 부여나 가야는 고대 국가의 형태 이전 모습인 연맹 왕국의 모습으로 그 의미를 축소했기에 현재의 한국사에서 조차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가야 고분의 발굴에서 나타난 가야의 모습은 강력한 왕권을 갖춘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고 있다. 즉 가야는 나머지 삼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을 만큼의 강력한 왕국이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 재조명이 시작되고 있지만 초기 백제나 신라의 모습도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이다. 풍납토성의 발굴을 통해 일본 식민사학이 조작해 낸한국 고대사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 동안 우리의 강단 사학자들은 일본인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 고대사의 틀 안에 그대로 안주해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런 한국의 강단 사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실증주의란 허울 아래 스스로 연구의 폭을 좁혀 놓아 버렸다. 이것은 바로 아카데미즘의 한계를 스스로 노정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논의 될 수 있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의 활약이다.
신화로만 여겨졌던 트로이를 역사의 한 장으로 이끈 사람인 슐리이만은 역사학자가 아닌 상인(장사꾼)이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신화로 치부할 때에 슐리이만 (Schliemann, Heinrich) 은 역사라고 믿으며 발굴을 시작한다. 그의 확신 앞에 신화소(神話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역사가 인류에게 남겨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이종기씨는 삼국유사를 기본 텍스트로 하여 그의 한국 고대사 연구를 시작한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도 역시 역사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현재 우리에게 고대 시대 우리 선조의 모습을 많이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로 보면 재야 사학자인 일연은 삼국사기에 나타나있지 않은 많은 역사적 사실을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이제 이 책으로 들어가 보자. 1970년대에 저자 이종기는 삼국유사에 나온 가야의 건국과 관련한 사실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 그도 역사학자가 아니라 아동문학가였다. 가야, 인도 또 일본과의 관계를 연구하던 그에게 히미코는 가야의 초대왕인 수로왕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런 그의 가설을 보완하기 위해 발로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까지 그의 연구 여정을 넓힌다. 뿐만 아니라 유적, 언어, 복식, 지명 등에서 그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그 잘난 강단 사학계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의문을 가져 보았다. 이런 그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김병모교수 등)에 의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저자는 1995년 돌아가셨지만). 이 책은 저자의 10주기를 기념한 책으로 출판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유사와 가락국기, 중국의 삼국지와 수서, 인도의 경전인 베다를 기본으로 하여 가락국이라는 우리의 잊혀진 역사의 한 부분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보이며, 그의 확신에 찬 연구 및 활동에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가 가야를 연구하다 보니 수로왕의 왕비인 허왕비의 출신지인 인도의 아유타국과 연결되며 또 일본의 큐슈에 건국된 야마이국의 건국자이자 수로왕의 공주인 히미코가 여러 가지 역사적인 고증에 의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아마추어 역사가의 오랜 기간에 걸친 끈질긴 노력에 의해 우리 나라 고대사의 잃어버렸던 커다란 부분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가야는 국제적인 해상 국가로 강력한 왕권을 가진 나라였소’라고 외치는 가야인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인상깊은구절] 고대의 일은 고대에 물어야 마땅하다. 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아쉽게도 때로는 승자의 자기 합리화 과정, 정통성 확보의 대안으로 정사가 유용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역사는 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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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서성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나에게 가야란 한국 역사 속에서 통합된 고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던, 그런 안타까운 연맹국가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지만 다른 고대국가에 비해 그 흔적이 적고, 미스테리에 둘러싼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야 건국신화 속에는 여타 건국신화와는 달리 왕비가 바다 건너 외국,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라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 나에게 있어서 가야는 ‘뛰어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국가를 비롯하여 일본에도 철을 수출했다’ 정도 였다. 그 이상, 이하도 없이 딱 이 정도였다. 이후 일본 여행을 하며 한일 고대사 및 도래인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꽤 많은 가야인들의 흔적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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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일본 일왕가 및 일본 역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도래인은 당연히 백제 계열이라 생각했다. 고대 백제와 일왕가는 사이가 워낙 끈끈하기도 했고, 백제 관련 지명도 곳곳에 남아 있었으며, 아키히토 일왕은 자기의 뿌리는 백제라고 인정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규슈 전 지역을 비롯하여 꽤 많은 곳에서 ‘가야’와 관련된 수 많은 지명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가야는 일본에 철기 문화만 수출한 게 아닌 걸까? 전방위적으로 가야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는 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가야인이 일본으로 왔고 꽤 힘이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너무 궁금했던 이 타이밍에 이런 책 제목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김수로왕의 딸이 일본으로 건너 갔고, 일본사에서 배우는 야마타이국 히미코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론을 읽고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을 하긴 했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너무 궁금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는 정통 사학자도 아니었으니까. 살까 말까 계속 고민을 하던 중, 책을 얼핏 보니 이 책은 그저 허무맹랑한 내용을 저술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저자는 해외여행이 어렵던 1970년대에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일본, 인도, 중국 등을 직접 찾아 다녔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역사기행 혹은 답사기였다. 누군가처럼 책상머리에 앉아서 허무맹랑하게 음모론, 떡밥만 던지고 지껄이는 게 아니었다. 저자는 해외를 넘나들며 자기의 주장을 뒷바침 할 증거를 찾으려 했고 증명하려 했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그리고 그의 부인인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 그 둘 사이에서 난 딸이 일본으로 넘어가 히미코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한국과 일본, 인도 등을 오갔다. 그가 답사를 하기 위해 끈임없이 참고한 문헌은 ‘진수의 삼국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고려 때 편찬한 가락국기, 당나라 때 편찬한 수서, 인도의 성전 베다’ 이렇게 다섯 가지다. 이렇게 오래전에 나온 문헌들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그 주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게 큰 함정이지만, 여튼 저자는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본인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시작이 조금 불친절하다. 시작부터 가야공주가 히미코여왕이라고 주장은 했는데, 대체 왜 어떠한 근거로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지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저렇게 주장하고 나서, 갑작스레 수로왕의 부인이자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왕후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뭐 여튼... 결과적으로 가야공주가 왜 히미코 여왕인지에 대한 근거는 책 중반 이후에나 나왔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늦게 나왔어도 책을 그냥 덮었을 지도. 한국와 인도를 오가며 쓴 내용 중 일부는 조금은 과한 추측이 아닐까 싶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긴 했다.
일문(日文)으로 적은 문장은 한문을 풀이한 번역이 아니라, 한문의 위치를 그들이 창안한 법칙에 따라 바꾸면서 군데군데 가나를 박아서 읽은 일본식 한문읽기이다. 더 설명할 것 없이 어계가 다르고 구문법이 다른 한족의 글을 여지없이 일본어로 둔갑시켜 읽은 절묘한 기교를 그들 일본인은 긴 세월 끝에 만들어 낸 것이다. P085 (일본식 한문 읽기의 함정)
완전 뼈를 때리는 저자의 일침에 박수치고 싶었다. 한,중,일 분명 같은 한자를 쓰는 데 유독 일본은 같은 한자임에도 다르게 읽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진짜 나도 일본어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말 일본식 한문읽기는 너무 고역이다. 단적인 예로 JLPT나 JPT 등의 일본어 어학 시험을 보게 되면, 청해 부분은 거의 만점을 받는데 반해, 독해는 정말 개판 오브 개판의 점수가 나오니까 ㅠㅠ 한자를 지들 맘대로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니, 우리를 분노케 하는 역사왜곡도 하는 거겠지
깡마른 체구에 곧추세운 허리가 유난히 꼿꼿해 보이는 미노다씨는 내가 야쓰시로에 온 내력을 듣더니 작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이 쓴 《야쓰시로시의 역사》라는 책자 두권을 선물로 주었다. 국판 462쪽의 두꺼운 책으로 책장을 넘기니 삽화가 많이 들어 있어 무엇보다 반가웠다.
우선 눈길이 간 것은 ‘최초의 야쓰시로 성’이라는 설명이 붙은 그림이었다. 해발 376m의 핫초야마 북쪽 비탈의 작은 봉우리마다 옛 성터가 표시되어 있는데 묘견궁을 향해 8개의 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삥 둘러 있었다. 그랬구나, 야쓰시로는 ‘여덟개의 성’ 이었구나! - P110
야쓰시로. 현재 야쓰시로의 한자풀이는 八代(팔대) 이다.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이면 순간 갸우뚱하게 할 수도 있는 일본식 한자 독음. 저자는 일본인에게 받은 책 덕분에 야쓰시로의 내력에 대해 알았고, 야쓰시로의 시로가 원래는 시로(代)가 아니라, 성을 뜻하는 시로(城)였을 거라는 추측을 하였다. 이 곳을 부르는 이름인 야쓰시로는 그대로 전승되었으나, 성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글자를 바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성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 곳의 역사를 감추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른다면, 과한 추측이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추측은 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꽤 많은 지명을 바꾸었다.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지명을. 그들 입장에서는 한반도 역사를 깔봐야 했으며, 식민지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고대 한반도에서 문물을 들여왔다는 내용은 싸그리 없어져야만 했으니까. 혹은 해석을 달리하여 일선동조론의 근거로 보기도 했고. (물론 일부 도시에서는 몇 십년이 흐른 뒤, 옛 지명 ‘쿠다라’등을 다시 사용하는 곳도 나오기 시작했다)
여왕의 궁터를 찾는 일은 또 하나의 가설로부터 출발했다. (중략) “아, 고미도상 말인가요? 묘켄님과 함께 온 신이지요.” 말하자면 고미도상은 방위를 담당한 신으로서 그는 묘켄을 모셨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묘켄상’으로 불리는 일본 왕조의 첫 왕 비미호가 거북을 타고 뱀을 앞세워 상륙해서 70여 년간의 정착을 거쳐 신으로 받을리는데 이 묘켄상이 받드는 신, 즉 ‘레이후’님이라는 신을 모신 사당은 일본국 최초의 신사였다. - P128
저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비미호(히미코 여왕)이 가야공주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 규슈 야쓰시로에서 받드는 신인 묘켄상은 히미코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였다. 일본이 도래인 역사를 지워가는 과정에서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는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남은게 바로 묘켄상이라는 것. 뭔가 뒷받침하는 근거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너무 당연하게 이런 결과 도출을 하신 지라....읽으면서도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 역시나 저자가 이렇게 말한 근거는 책 후반에 나왔다는게 함정이다. 히미코 여왕이 왜 가야공주인지에 대한 근거가 후반에 나온 것 처럼. 이 책은 정말 읽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불친절한 책일지도 모른다.
‘언렴의 아들 신무(진무)가 즉위하여 다시 텐노로 칭호를 바꾸고 야마토주로 옮겨 다스렸다’ 이는 여왕 비미호 33세 손의 본격적인 일본 열도 개척에 관한 《신당서》의 증언이다. 즉 당시 왕인 진무가 즉위하면서 ‘텐노(천황)’이라 호칭을 바꾸고, 큐슈의 쓰쿠시를 더나 지금은 혼슈라 부르는 대화주로 왕도를 옮긴 사실을 밝히고 있다. 결국 진무는 일본의 역사가 최초로 받드는 천황이 됐다. 또한 그의 등장은 야마이의 시대가 끝이 나고 이른바 야마토 조정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로코 미모토의 칭호는 사라지고 텐노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분명 일본인의 역사다. 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삶의 뿌리를 좇아 해매던 나의 왜국 탐사도 이쯤에서 마감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 인줄 안다. -P234
어떤 사람들은 저자를 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야공주의 흔적을 찾기 위한 저자의 답사는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히미코 여왕=수로왕의 딸, 가야공주’ 라는 주장이 아직까지 받여들여지는건 아니나, 적어도 야츠시로를 비롯하여 갓파(가랏파), 레이후 신사, 에비야 고원, 선견왕자 이야기, 오레오레 데리이다 축제 등 저자가 가야와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현재 가야계 도래인 집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고 관련 서적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저자가 주장한 가설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고대사는 지금도 수 많은 미스테리에 쌓여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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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정말 좋은 이유. 이 책을 계속 갖고 싶은 이유. 이 책을 강추하는 이유!! 정말 작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작가 이종기 선생님과 함께 우리 나라, 인도, 일본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것처럼 작가의 열정과 호기심을 나눌 수 있다. 이 책을 접하기까진 ''가야사'' 하면 역사라니까 역사겠지, 역산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바로 역사라는거구나! 살아서 꿈틀대는, 아무리 감추려해도 제 모습을 드러내려 움직이는 우리 역사구나!라고 가슴깊이 느꼈다. 사실 평소 역사책을 좋아하진않지만 이 책은 정말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다. |
| 히미코 여왕... 예전에 "잃어버린 왕국"이란 책을 읽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신라를 정복한 신공황후와 동일인으로 보며 임나일본부설을 만든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때 읽었던 자료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오래살아... 다 허구네! 역시 일본인들이야" 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책에선 그런 히미코 여왕이 존재했고 바로 가야국의 공주였다고 주장한다. 그럼 가야국의 공주가 일본과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인가? 그런 궁금증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우리의 고대사... 부여라든지 가야는 우리나라에서 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나마 가야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초기 고대사에서는 강력한 왕국이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야에 대해 수로왕과 우륵만을 아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종기씨는 삼국유사를 읽던 중 사라진 가야의 공주 한 명, 왕자 한 명의 행방을 쫓아가며 설화라고만 생각했던 부분을 하나 둘 밝혀내며 히미코 여왕이 일본 최초의 왕국을 세운 가야국 공주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아울러 가야의 허황후가 인도에서 온 공주였다는 사실과 가야국이 강력한 해상왕국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낸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상당부분 가려지고 훼손되고 왜곡되어 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아마추어 역사가인 이종기씨 역시 그저 일본의 근간을 마련한 일본 최초의 왕국을 가야국의 공주가 세웠다는 민족우월이 아닌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마주보자는 의미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제라도 가야... 아니 우리의 역사를 마주보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