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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아마추어 역사가(歷史家)가 고대사를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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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황국사관 역사학자들은 히미코(卑彌呼) 여왕을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신공황후(神功皇后)와 동일인으로 보며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허황된 이론인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게 한 주인공이다. 임나일본부설은 20세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견강부회 이론 중에 하나였다. 일본인들은 한반도가 옛날에도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자신들이 다시 식민지로 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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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황국사관 역사학자들은 히미코(卑彌呼) 여왕을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신공황후(神功皇后)와 동일인으로 보며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허황된 이론인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게 한 주인공이다. 임나일본부설은 20세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견강부회 이론 중에 하나였다. 일본인들은 한반도가 옛날에도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자신들이 다시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로 만들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을 부각시켰으며 이것이 효과가 없는 듯하자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하기 까지 한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히미코(卑彌呼) 여왕은 한반도를 침공하고 식민지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야국의 공주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히미코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가야의 첫 왕비인 허왕후가 인도의 한 지역인 아유타국 출신이라는 것으로 나온다. 사실 가야와 인도는 아주 먼 거리였는데, 과연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이 사실일까?하고 삼국유사를 본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만 한다. 그런데 쌍어문(雙魚文)이라든지 우리말과 인도의 드라비다어가 비슷하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유물이나 증거들이 가야와 아유타국과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아주 큰 것이 내가 읽어본 여러 가지 책자에서 공통되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가야의 공주가 일본 최초의 여왕인 히미코(卑彌呼)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아주 흥미로운 주제로 만약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과 일본고대사는 새로 쓰여져야만 할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바로 이 책들의 제목에서 의미하듯이 우리의 고대사를 삼국으로 그 범위를 축소했다. 왜 삼국인가? 부여, 가야는 왜 포함되지 않을까? 부여나 가야는 고대 국가의 형태 이전 모습인 연맹 왕국의 모습으로 그 의미를 축소했기에 현재의 한국사에서 조차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가야 고분의 발굴에서 나타난 가야의 모습은 강력한 왕권을 갖춘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고 있다. 즉 가야는 나머지 삼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을 만큼의 강력한 왕국이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 재조명이 시작되고 있지만 초기 백제나 신라의 모습도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이다. 풍납토성의 발굴을 통해 일본 식민사학이 조작해 낸한국 고대사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 동안 우리의 강단 사학자들은 일본인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 고대사의 틀 안에 그대로 안주해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런 한국의 강단 사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실증주의란 허울 아래 스스로 연구의 폭을 좁혀 놓아 버렸다. 이것은 바로 아카데미즘의 한계를 스스로 노정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논의 될 수 있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의 활약이다. 신화로만 여겨졌던 트로이를 역사의 한 장으로 이끈 사람인 슐리이만은 역사학자가 아닌 상인(장사꾼)이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신화로 치부할 때에 슐리이만 (Schliemann, Heinrich) 은 역사라고 믿으며 발굴을 시작한다. 그의 확신 앞에 신화소(神話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역사가 인류에게 남겨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이종기씨는 삼국유사를 기본 텍스트로 하여 그의 한국 고대사 연구를 시작한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도 역시 역사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현재 우리에게 고대 시대 우리 선조의 모습을 많이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로 보면 재야 사학자인 일연은 삼국사기에 나타나있지 않은 많은 역사적 사실을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이제 이 책으로 들어가 보자. 1970년대에 저자 이종기는 삼국유사에 나온 가야의 건국과 관련한 사실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 그도 역사학자가 아니라 아동문학가였다. 가야, 인도 또 일본과의 관계를 연구하던 그에게 히미코는 가야의 초대왕인 수로왕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런 그의 가설을 보완하기 위해 발로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까지 그의 연구 여정을 넓힌다. 뿐만 아니라 유적, 언어, 복식, 지명 등에서 그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그 잘난 강단 사학계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의문을 가져 보았다. 이런 그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김병모교수 등)에 의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저자는 1995년 돌아가셨지만). 이 책은 저자의 10주기를 기념한 책으로 출판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유사와 가락국기, 중국의 삼국지와 수서, 인도의 경전인 베다를 기본으로 하여 가락국이라는 우리의 잊혀진 역사의 한 부분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보이며, 그의 확신에 찬 연구 및 활동에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가 가야를 연구하다 보니 수로왕의 왕비인 허왕비의 출신지인 인도의 아유타국과 연결되며 또 일본의 큐슈에 건국된 야마이국의 건국자이자 수로왕의 공주인 히미코가 여러 가지 역사적인 고증에 의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아마추어 역사가의 오랜 기간에 걸친 끈질긴 노력에 의해 우리 나라 고대사의 잃어버렸던 커다란 부분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가야는 국제적인 해상 국가로 강력한 왕권을 가진 나라였소’라고 외치는 가야인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인상깊은구절]
고대의 일은 고대에 물어야 마땅하다. 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아쉽게도 때로는 승자의 자기 합리화 과정, 정통성 확보의 대안으로 정사가 유용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역사는 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느다.
e****n 2006.07.28.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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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 책을 만난 건 즐겨 찾던 헌책방에서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와 함께였다. 다름없이 이 책이 더 솔깃했었지만, 원래 맛있는 것은 뒀다 아껴먹는 이상한 심보라 이 책,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를 이제서야 개봉했다. 아, 역시 기대했던 대로 흥미진진한 고대사 탐험의 여정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일본, 중국,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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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 책을 만난 건 즐겨 찾던 헌책방에서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와 함께였다. 다름없이 이 책이 더 솔깃했었지만, 원래 맛있는 것은 뒀다 아껴먹는 이상한 심보라 이 책,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를 이제서야 개봉했다. 아, 역시 기대했던 대로 흥미진진한 고대사 탐험의 여정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일본, 중국, 저 멀리 인도에 다다르는 여정을 저자 이종기 선생은 그 까마득한 옛날인 1974년부터 다녀오셨다. 인도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다른 경로를 통해 겨우 초청장을 발급받아 갔다오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감수하면서 절벽과 동굴과 산골짝이나 들판까지 고대사의 유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녀오셨다. 이 책은 이종기 선생의 사후 10주기(1929~1995)를 맞아 가락국 탐사 관련 유고를 정리한 것인데, 그전에 먼저 일본에서 1976년에 출판되었던 책이다. 그 당시 일본은 최초의 여왕국을 찾아내는 ‘히미코 열풍’이 몰아쳤던 때인지라 그의 책도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정상적으로 출판만 되었다면 말이다. 초판 1만부를 서점에 내놓았던 시점에 출판사에서 회사사정이라는 말로, 인세며 체류비, 그 외 제작비, 교정비, 기타 경비 등의 그 모든 결손을 감수하며 자진 회수했기 때문이다. 윗선에서 누군가 압력을 줬다고밖엔 표현하지 못하는 이 일은,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반증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엔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가야 공주가 일본에 가서 무엇을 했을까?

 

우리의 빛나는 역사 중에서 대단한 세력을 규합하고 철 생산의 선봉을 맡아 주관했고 가락국이라고도 불리던 가야왕국을 기억할 것이다. 그 중 금관가야의  수로왕과 혼인한 허왕후 이야기를 아는가. 어떤 책에라도 빠짐없이 들어가있는 그 설화 같아 보이는 이야기, 인도에서 아유타국 공주가 배를 타고 와서 결국 수로왕과 혼인했다는 그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실려있다. 어떠한 이야기가 전설이나 신화로 전해 2000년이 넘도록 내려오는 것은 그 이야기에 일말의 진실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군신화’를 우리가 그래로 믿지 않고 곰을 숭상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의 이야기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그런 사실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런 전제에서라면 정말로 아유타국이라는 곳이 인도에 있었는지, 어떤 이유로 수로왕과 혼인 약조를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만약 인도에 아유타국이 있었다면 허왕후가 정말 인도에서 온 공주이고 그녀와 수로왕이 혼인한 것도 사실로 봐야할 것이다. 정말 믿고 싶은 이유는 수로왕릉에 있는 납릉정문의 장식판의 그림이 인도의 문양과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런 문양인 활 모양, 코끼리, 물고기, 하얀 탑, 연꽃 한 송이가 그려진 문양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수로왕릉 옆에 서 있는 바사석탑도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재질로 된 납이나 은이 섞여있는 돌이었다는 것도 허왕후가 뱃길로 우리나라로 올 때 가벼운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돌을 나누어 실어 바닥짐으로 사용했던 돌일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

 

《불교사전》의 운허는 미지로 남아있는 ‘아유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중인도의 나라 이름. 아유차, 아유타라 음역, 또는 난승성, 불가전국이라 번역하며 인도 고대문명의 중심지. 부처님이 출현한 후에는 영지라 하여 여러 승도들이 모여 들던 곳. 현장의 《대당서역기》 제 5권에 있는 나라 이름. 곡녀성 남방, 항하 서안에 있는 나라. 범어로는 ‘아요디아’라 한 것을 한자음으로는 阿踰陀로 옮기기도 했다.」 또한 인도의 지도에서도 갠지스강 상류에 옛 이름 아요디아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아유타국이란 곳은 분명 존재하긴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인도에 가서 인도 고고연구청의 데세판테 박사에게 수로왕릉 정문에 세워진 장식판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활은 활의 명수였던 위대한 라마 왕을 상징하고 연꽃 봉오리 안쪽에 맞물려 그려진 문양은 코끼리 두 마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인도에는 강이 자주 범람했었는데 그 때 물고기가 자주 들어오는 터라 물고기가 집안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었단다. 그리고 허왕후가 가락국에 왔을 때 달았던 검붉은 깃발은 인도에서 축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니,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것은 아요디아가 지금의 이라크, 티그리스 강변 문명권을 잇는 태양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태양을 따라 동진을 계속해 온 태양왕조의 후예들은 갠지스가 시작되는 아요디아에 불멸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인도인의 영원한 구주인 라마 왕도 그 후예의 한 사람인데 그들의 동진이 그곳에서 멈췄다는 근거는 없다고 하니, 그들의 후예가 동진이 일본까지도 갔을 것이라 추측해도 되지 않을까.

 

바로 그 인물이 히미코, 비미호, 모켄상으로 불리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가 아닐까. 바로 그러한 유흔들이 일본의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기서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상의 동물로 알고 있었던 ‘갓파’가 바로 가락국, 그러니까 가야왕국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상상의 동물. 수륙 양편에 살며 머리에는 접시처럼 패인 요부가 있는데, 거기에 물이 있는 동안에는 힘이 세어 다른 동물을 수중으로 끌어넣는다고 한다. 그들은 오이를 즐겨 먹는다.」 비미호 여왕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쓰시로 주민들에게는 ‘갓파’가 ‘가랏파’로 불리는데 그 말 중 ‘ㅅ파’는 강하게 발음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하니까 ‘가랏파’는 바로 가라국의 주민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미호 여왕이 가락국 사람 삼천명과 함께 왔던 것을 ‘갓파’라는 상상의 동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아~~~ 이렇게 역사를 추적할 수 있구나. ‘갓파’들이 청했다고 하는 축제 이름도 ‘오래오래데라이다’라고 하는데 완전히 한국어가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와서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가락국 사람들이 떠오른다.

 

비미호 여왕은 일본에서 어떻게 세력을 잡았을까 생각해보면, 바로 가야왕국의 유명한 신소재, 철기가 떠오른다. 아마도 가야에서 가져온 철광석을 제련해서 만든 철기로 그들을 제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철기는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그것도 저자는 찾아냈다. 시라누이 해안의 가장 깊숙한 곳 마쯔바시에서 동북쪽 내륙으로 가다보면 ‘쿠마노쇼’라는 옛 지명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궁원 미야바루를 발견하고 올라가보니 한 노인이 아난도상이 있는 동굴 하나를 알려주셨다. 그 동굴은 절벽을 끼고 있어서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 뿐이고, 연기를 뺄 수 있는 굴뚝도 있는데다가 안에 있는 인물상의 옷이 가락국의 의복이랑 흡사했던 사실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쇠덩어리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곳이 비밀리에 제조했던 비미호 여왕의 제련소가 맞을 것이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가야공주는 분명 일본에서 첫 번째 일왕으로 군림했다.

 

물론 나중에 비미호 여왕이 다스린 시기가 지나가고 도리어 여왕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이름까지 바뀐 채로 이제까지 내려왔지만, 많은 유흔들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2,000년 전의 역사가 무슨 유익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그렇기에 후대인들로서 우리는 선대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할 의무가 있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역사는 정당한 외교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하신 이종기 선생의 말씀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j*****3 2010.02.2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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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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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서성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나에게 가야란 한국 역사 속에서 통합된 고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던, 그런 안타까운 연맹국가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지만 다른 고대국가에 비해 그 흔적이 적고, 미스테리에 둘러싼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야 건국신화 속에는 여타 건국신화와는 달리 왕비가 바다 건너 외국, 아유타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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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서성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나에게 가야란 한국 역사 속에서 통합된 고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던, 그런 안타까운 연맹국가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지만 다른 고대국가에 비해 그 흔적이 적고, 미스테리에 둘러싼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야 건국신화 속에는 여타 건국신화와는 달리 왕비가 바다 건너 외국,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라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 나에게 있어서 가야는 뛰어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국가를 비롯하여 일본에도 철을 수출했다정도 였다. 그 이상, 이하도 없이 딱 이 정도였다. 이후 일본 여행을 하며 한일 고대사 및 도래인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꽤 많은 가야인들의 흔적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난 지금 일본 일왕가 및 일본 역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도래인은 당연히 백제 계열이라 생각했다. 고대 백제와 일왕가는 사이가 워낙 끈끈하기도 했고, 백제 관련 지명도 곳곳에 남아 있었으며, 아키히토 일왕은 자기의 뿌리는 백제라고 인정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규슈 전 지역을 비롯하여 꽤 많은 곳에서 가야와 관련된 수 많은 지명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가야는 일본에 철기 문화만 수출한 게 아닌 걸까? 전방위적으로 가야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는 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가야인이 일본으로 왔고 꽤 힘이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너무 궁금했던 이 타이밍에 이런 책 제목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김수로왕의 딸이 일본으로 건너 갔고, 일본사에서 배우는 야마타이국 히미코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론을 읽고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을 하긴 했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너무 궁금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는 정통 사학자도 아니었으니까. 살까 말까 계속 고민을 하던 중, 책을 얼핏 보니 이 책은 그저 허무맹랑한 내용을 저술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저자는 해외여행이 어렵던 1970년대에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일본, 인도, 중국 등을 직접 찾아 다녔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역사기행 혹은 답사기였다. 누군가처럼 책상머리에 앉아서 허무맹랑하게 음모론, 떡밥만 던지고 지껄이는 게 아니었다. 저자는 해외를 넘나들며 자기의 주장을 뒷바침 할 증거를 찾으려 했고 증명하려 했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그리고 그의 부인인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 그 둘 사이에서 난 딸이 일본으로 넘어가 히미코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한국과 일본, 인도 등을 오갔다. 그가 답사를 하기 위해 끈임없이 참고한 문헌은 진수의 삼국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고려 때 편찬한 가락국기, 당나라 때 편찬한 수서, 인도의 성전 베다이렇게 다섯 가지다. 이렇게 오래전에 나온 문헌들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그 주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게 큰 함정이지만, 여튼 저자는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본인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시작이 조금 불친절하다. 시작부터 가야공주가 히미코여왕이라고 주장은 했는데, 대체 왜 어떠한 근거로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지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저렇게 주장하고 나서, 갑작스레 수로왕의 부인이자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왕후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뭐 여튼... 결과적으로 가야공주가 왜 히미코 여왕인지에 대한 근거는 책 중반 이후에나 나왔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늦게 나왔어도 책을 그냥 덮었을 지도. 한국와 인도를 오가며 쓴 내용 중 일부는 조금은 과한 추측이 아닐까 싶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긴 했다.

 

일문(日文)으로 적은 문장은 한문을 풀이한 번역이 아니라, 한문의 위치를 그들이 창안한 법칙에 따라 바꾸면서 군데군데 가나를 박아서 읽은 일본식 한문읽기이다. 더 설명할 것 없이 어계가 다르고 구문법이 다른 한족의 글을 여지없이 일본어로 둔갑시켜 읽은 절묘한 기교를 그들 일본인은 긴 세월 끝에 만들어 낸 것이다. P085 (일본식 한문 읽기의 함정)

 

완전 뼈를 때리는 저자의 일침에 박수치고 싶었다. ,,일 분명 같은 한자를 쓰는 데 유독 일본은 같은 한자임에도 다르게 읽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진짜 나도 일본어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말 일본식 한문읽기는 너무 고역이다. 단적인 예로 JLPTJPT 등의 일본어 어학 시험을 보게 되면, 청해 부분은 거의 만점을 받는데 반해, 독해는 정말 개판 오브 개판의 점수가 나오니까 ㅠㅠ 한자를 지들 맘대로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니, 우리를 분노케 하는 역사왜곡도 하는 거겠지 

 

깡마른 체구에 곧추세운 허리가 유난히 꼿꼿해 보이는 미노다씨는 내가 야쓰시로에 온 내력을 듣더니 작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이 쓴 야쓰시로시의 역사라는 책자 두권을 선물로 주었다. 국판 462쪽의 두꺼운 책으로 책장을 넘기니 삽화가 많이 들어 있어 무엇보다 반가웠다.

 

우선 눈길이 간 것은 최초의 야쓰시로 성이라는 설명이 붙은 그림이었다. 해발 376m의 핫초야마 북쪽 비탈의 작은 봉우리마다 옛 성터가 표시되어 있는데 묘견궁을 향해 8개의 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삥 둘러 있었다. 그랬구나, 야쓰시로는 여덟개의 성이었구나! - P110

 

야쓰시로. 현재 야쓰시로의 한자풀이는 八代(팔대) 이다.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이면 순간 갸우뚱하게 할 수도 있는 일본식 한자 독음. 저자는 일본인에게 받은 책 덕분에 야쓰시로의 내력에 대해 알았고, 야쓰시로의 시로가 원래는 시로()가 아니라, 성을 뜻하는 시로()였을 거라는 추측을 하였다. 이 곳을 부르는 이름인 야쓰시로는 그대로 전승되었으나, 성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글자를 바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성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 곳의 역사를 감추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른다면, 과한 추측이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추측은 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꽤 많은 지명을 바꾸었다.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지명을. 그들 입장에서는 한반도 역사를 깔봐야 했으며, 식민지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고대 한반도에서 문물을 들여왔다는 내용은 싸그리 없어져야만 했으니까. 혹은 해석을 달리하여 일선동조론의 근거로 보기도 했고. (물론 일부 도시에서는 몇 십년이 흐른 뒤, 옛 지명 쿠다라등을 다시 사용하는 곳도 나오기 시작했다)

 

여왕의 궁터를 찾는 일은 또 하나의 가설로부터 출발했다. (중략) “, 고미도상 말인가요? 묘켄님과 함께 온 신이지요.” 말하자면 고미도상은 방위를 담당한 신으로서 그는 묘켄을 모셨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묘켄상으로 불리는 일본 왕조의 첫 왕 비미호가 거북을 타고 뱀을 앞세워 상륙해서 70여 년간의 정착을 거쳐 신으로 받을리는데 이 묘켄상이 받드는 신, 레이후님이라는 신을 모신 사당은 일본국 최초의 신사였다. - P128

 

저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비미호(히미코 여왕)이 가야공주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 규슈 야쓰시로에서 받드는 신인 묘켄상은 히미코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였다. 일본이 도래인 역사를 지워가는 과정에서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는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남은게 바로 묘켄상이라는 것. 뭔가 뒷받침하는 근거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너무 당연하게 이런 결과 도출을 하신 지라....읽으면서도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 역시나 저자가 이렇게 말한 근거는 책 후반에 나왔다는게 함정이다. 히미코 여왕이 왜 가야공주인지에 대한 근거가 후반에 나온 것 처럼. 이 책은 정말 읽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불친절한 책일지도 모른다.

 

언렴의 아들 신무(진무)가 즉위하여 다시 텐노로 칭호를 바꾸고 야마토주로 옮겨 다스렸다이는 여왕 비미호 33세 손의 본격적인 일본 열도 개척에 관한 신당서의 증언이다. 즉 당시 왕인 진무가 즉위하면서 텐노(천황)’이라 호칭을 바꾸고, 큐슈의 쓰쿠시를 더나 지금은 혼슈라 부르는 대화주로 왕도를 옮긴 사실을 밝히고 있다. 결국 진무는 일본의 역사가 최초로 받드는 천황이 됐다. 또한 그의 등장은 야마이의 시대가 끝이 나고 이른바 야마토 조정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로코 미모토의 칭호는 사라지고 텐노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분명 일본인의 역사다. 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삶의 뿌리를 좇아 해매던 나의 왜국 탐사도 이쯤에서 마감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 인줄 안다. -P234

 

어떤 사람들은 저자를 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야공주의 흔적을 찾기 위한 저자의 답사는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히미코 여왕=수로왕의 딸, 가야공주라는 주장이 아직까지 받여들여지는건 아니나, 적어도 야츠시로를 비롯하여 갓파(가랏파), 레이후 신사, 에비야 고원, 선견왕자 이야기, 오레오레 데리이다 축제 등 저자가 가야와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현재 가야계 도래인 집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고 관련 서적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저자가 주장한 가설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고대사는 지금도 수 많은 미스테리에 쌓여있으니까!

 

 

c******0 2019.06.1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처음으로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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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정말 좋은 이유. 이 책을 계속 갖고 싶은 이유. 이 책을 강추하는 이유!! 정말 작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작가 이종기 선생님과 함께 우리 나라, 인도, 일본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것처럼 작가의 열정과 호기심을 나눌 수 있다. 이 책을 접하기까진 ''가야사'' 하면 역사라니까 역사겠지, 역산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바로 역사라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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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정말 좋은 이유. 이 책을 계속 갖고 싶은 이유. 이 책을 강추하는 이유!! 정말 작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작가 이종기 선생님과 함께 우리 나라, 인도, 일본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것처럼 작가의 열정과 호기심을 나눌 수 있다. 이 책을 접하기까진 ''가야사'' 하면 역사라니까 역사겠지, 역산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바로 역사라는거구나! 살아서 꿈틀대는, 아무리 감추려해도 제 모습을 드러내려 움직이는 우리 역사구나!라고 가슴깊이 느꼈다. 사실 평소 역사책을 좋아하진않지만 이 책은 정말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다.
c***n 2006.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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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미코 여왕... 예전에 "잃어버린 왕국"이란 책을 읽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신라를 정복한 신공황후와 동일인으로 보며 임나일본부설을 만든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때 읽었던 자료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오래살아... 다 허구네! 역시 일본인들이야" 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책에선 그런 히미코 여왕이 존재했고 바로 가야국의 공주였다고 주장한다. 그럼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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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미코 여왕... 예전에 "잃어버린 왕국"이란 책을 읽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신라를 정복한 신공황후와 동일인으로 보며 임나일본부설을 만든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때 읽었던 자료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오래살아... 다 허구네! 역시 일본인들이야" 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책에선 그런 히미코 여왕이 존재했고 바로 가야국의 공주였다고 주장한다. 그럼 가야국의 공주가 일본과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인가? 그런 궁금증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우리의 고대사... 부여라든지 가야는 우리나라에서 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나마 가야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초기 고대사에서는 강력한 왕국이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야에 대해 수로왕과 우륵만을 아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종기씨는 삼국유사를 읽던 중 사라진 가야의 공주 한 명, 왕자 한 명의 행방을 쫓아가며 설화라고만 생각했던 부분을 하나 둘 밝혀내며 히미코 여왕이 일본 최초의 왕국을 세운 가야국 공주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아울러 가야의 허황후가 인도에서 온 공주였다는 사실과 가야국이 강력한 해상왕국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낸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상당부분 가려지고 훼손되고 왜곡되어 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아마추어 역사가인 이종기씨 역시 그저 일본의 근간을 마련한 일본 최초의 왕국을 가야국의 공주가 세웠다는 민족우월이 아닌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마주보자는 의미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제라도 가야... 아니 우리의 역사를 마주보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할 때이다.
e****n 2006.1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