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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의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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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의 조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올더스 헉슬리의 이모님이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이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는 대목에서였다. 보르헤스도 디드로를 언급한 적이 있어 항상 궁금했었는데 <라모의 조카>는 여러 면에서 특이한 책이었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대화가 플롯의 역할을 한다. 대화만으로 흐름을 이어간다는 것은 방대한 지식뿐 만이 아니라 대화의 속성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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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의 조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올더스 헉슬리의 이모님이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이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는 대목에서였다. 보르헤스도 디드로를 언급한 적이 있어 항상 궁금했었는데 <라모의 조카>는 여러 면에서 특이한 책이었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대화가 플롯의 역할을 한다. 대화만으로 흐름을 이어간다는 것은 방대한 지식뿐 만이 아니라 대화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풍자 및 윤리, 자유 등의 개념들에 대한 고찰은 그들의 대화를 몇 번이나 되새기게 만든다. 대화문의 유연함과 철학적 사유가 소설로서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c********g 2016.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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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면서도 다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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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면서도 다른 목소리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는 철학자인 ‘나’와 건달이며 부랑자인 라모의 조카 ‘그’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둘은 문학, 예술, 정치적 쟁점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서로의 견해에 대해 반박하며 이해에 도달한다. ‘나’는 이성적이고 침착한 언어로 ‘그’의 궤변과 엉뚱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의 자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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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면서도 다른 목소리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는 철학자인 ‘나’와 건달이며 부랑자인 라모의 조카 ‘그’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둘은 문학, 예술, 정치적 쟁점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서로의 견해에 대해 반박하며 이해에 도달한다. ‘나’는 이성적이고 침착한 언어로 ‘그’의 궤변과 엉뚱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함과 직관에 찬탄을 보낸다. ‘그’는 ‘나’를 포함한 가진 자들의 정치적 권력, 예술적 명성, 학술적 권위를 부정하고 조롱하며 그들의 허학과 허식을 질타한다. ‘그’는 오로지 위장(胃腸)의 권위에 복종하며 무한한 자유를 추구한다. ‘그’의 언술과 팬터마임은 ‘눈물 어린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거칠게 말해, ‘나’와 ‘그’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둘의 대화는 <돈 끼호떼>에서의 돈 끼호떼와 산쵸 빤사의 언술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활에서 철학을 추구하며 관념적인 가치들을 부정한다. 이러한 부정 정신은 오로지 ‘그’의 솔직함에 기인한다. 그 솔직함 때문에 그는 닫혀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과 삶에 대해 연민을 아끼지 않으며 자신의 패덕을 숨기지 않는다. 도덕을 거부하는 광기와 광대짓은 인간의 진정한 소통을 희구하는 몸부림에 가깝다. ‘나’는 ‘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그의 말에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많이 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행동은 그렇게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실은 바로 이 점이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이 사람을 가장 두드러지게 구별 짓는 차이점이다. 그는 자기가 지녔으며,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악덕을 털어놓았지만, 그러나 위선자가 아니었다. 그가 가증스럽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더 솔직하고 더 일관성이 있으며, 이따금 그 타락 속에 깊이 들어갔을 뿐이다. 나는 이런 선생 밑에서 그의 아이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우리의 풍속을 그대로 복사한 교육 사상에 따라, 아이가 멀리 나아가게 될 것이 확실하다. 때 이르게 중도에서 저지를 받지 않는 한”(161쪽). 그 아이가 ‘멀리 나아간 지점’엔 무엇이 있을까. 디드로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가 잘 웃는 자일지니”라는 ‘그’의 언술로 작품이 끝나는 것에서 디도로의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디드로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은 자신의 생을 무한히 긍정하고 위선을 거부하는 솔직함으로 타자를 껴안는 존재이다. 그런 존재만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며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발터 벤야민은 「번역가의 과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략) 진정한 번역은 투명하다. 진정한 번역은 원문의 전체를 다 포괄하지도 않고, 자체의 조명을 통해 원문의 조명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만 순수한 언어가 마치 자신의 언어 수단에 의해 보강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원문을 한층 더 밝게 조명해 줄 따름이다. 진정한 번역의 이러한 면은 무엇보다도 구문을 직역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데, 왜냐하면 구문의 직역에서 번역가의 원초적 활동무대가 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오히려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장이 이를테면 원문의 언어 앞에 서 있는 벽이라면 말 하나하나는 아케이드(有蓋街路)이기 때문이다.” 전치사 하나, 구두점 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역자의 번역을 통해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역자의 꼼꼼한 각주를 통해 본문을 뜯어 읽는 재미를 준다. 이제, 디드로의 풍성한 지적·감성적 사유 속에 들어갈 일만 남았다.

s********8 2007.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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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위한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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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까지는 아직 1-20년의 세월이 남았다. 혁명의 기운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때에 권력자들은 프랑스가 이루어낸 온갖 부귀를 그들만의 것으로 호사하고 있다. 끼워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서로를 멸시치 않고 사는 삶이 아니던가?  힘이 없다면 굴복밖에는 없나? 혹은 깐죽거리는 저항법도 있다. 깐죽거리는 것도 하나의 권력으로 만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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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까지는 아직 1-20년의 세월이 남았다. 혁명의 기운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때에 권력자들은 프랑스가 이루어낸 온갖 부귀를 그들만의 것으로 호사하고 있다. 끼워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서로를 멸시치 않고 사는 삶이 아니던가?  힘이 없다면 굴복밖에는 없나? 혹은 깐죽거리는 저항법도 있다. 깐죽거리는 것도 하나의 권력으로 만들어가는 슬픈 천재도 있지만. 볼테르...힘이 없다고 뭉개려드는 사람들과 사는 일도 힘들고, 힘있는 자와 맞서는걸 목적으로하지 바꾸려는 세상이 없는 사람들도 역겹다. 

원래의 인간다움이란 분명 전제군주하의 인간과 다르다. [예측이 가능한 인간]이 되어야만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형태로 살라는 것이다.그래서 라모의 조카는 [마지 못해 그리 삽니다. 서로 모른 척 합시다.]라고 한다. 이것이 전제군주하의 구겨져 맞추어진 인간이다. 라모의 조카의 입을 통해, 철학자라는 부류는 비렁뱅이 세속인과 다른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비렁뱅이 세속인인 그들은 자기를 억압하는 세상에서의 삶을 영위하려한다. 그것이 잘못인가? 결국 문화의 향유자라는 귀족과 그 반대자인 지식인의 틈새에서,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나 실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가진 존재.  실패한 디드로 또는 다른 디드로가 바로 라모다.

이런 세상이 바뀔거라 진짜 믿는다면, 그 세상은 이 사람들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죄인도 위한 천국이어야한다. 볼테르 너는 믿지 않잖아. 새 세상을.  우리는 새 세상을 믿는가? 진짜 올 세상을 굴복도 반대로서의 권력도 아닌 죄인이 행복한 세상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자들 너희도 결국 공범이다. 너희가 새 세상을 믿지 않는 이상..  만들어진 사회 속에서 신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한 유물론적 이해는 결국 그 권력자들에 대한 비난이었으나, 동시에 자신에 대한 근거상실이기도 하다.그들은 새 세상을 자신의 비판 속에 잃었다. 디드로는 루소와도 달리 불평등의 세상에서 기원의 추구가 아닌 지금 살림살이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동정과 끌어안음. 편가르기가 아닌 그들을 포함한 희생자를 위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 꿈이 이루기까지 어찌 살아갈까? 그렇다고 비벼대지도 못하고, 이런 것이 옳음이라고 지키면 이기는걸까? 그것이 과연 인민을 아우르는 정직한 고난의 행군인가? 결국 잘난 인간이란 없다. 하지만 고통을 준 이들에 대한 기억은 남겨두어야 한다. 힘, 조작, 떨거지,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예술가들. 그들과 대비된 모습이 부정적으로 우리의 살아야하는 삶을 알게 해 주는지도 모르므로.

s***y 2011.07.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