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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집> 그리고 청록파
잘 알려져 있듯이 <청록집>은 박목월(朴木月, 1915~1978), 조지훈(趙芝薰, 1920 ~ 1968), 박두진(朴斗鎭, 1916~1998)의 시를 모은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들이 ‘청록파’ 혹은 ‘자연파’로 부르지만, 이미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듯이 세 사람의 경향은 각각 다르다. <청록집>에서도 그들 각각의 특색은 드러나있다. 즉, “박목월은 향토성이 짙은 토속어를 구사하면서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서정적 자아의 애틋하고 섬세한 내면을 형상화한 점에서 그 변별적 특징을 갖는다. 이에 비해 조지훈은 전통문화를 소재로 삼아 민족적 정서를 형상화하고 한편으로는 절제된 율격미 속에 자연미와 불교적인 선(禪)취미를 담아내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하여 산문적인 문체로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를 노래하였다.” [p.72]
‘자연파’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록집>은 자연 지향적 시들이 모여 있다. 삐딱하게 보면, 일제 강점기라는 참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행위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현실참여적인 저항문학을 해야만 한다면, 세상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곳은 또 하나의 ‘지옥’에 불과하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다면 조지 오웰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려보라. 따라서 예술, 아니 문학이라는 생태계가 건전하게 순환하려면, 순수문학이나 참여문학 모두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순수문학만 남게 되면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고, 참여문학만 남게 되면 이념의 선전도구로 전락하게 될 테니까.
어쨌든 이들의 펴낸 <청록집>은 민족말살정책의 강요로 우리 말과 글을 쓸 수 없었던 이들에게 한 모금의 감로수가 되었을 것이다. 짧지만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조선말과 조선 고유의 정서에 굶주려야 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이 판본의 장점은 뒤쪽에 초판본이 실려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선비 조지훈
<청록집>을 펴낸 세 명의 시인 가운데 나는 조지훈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삶도, 그의 시도 고아(古雅)한 맛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세속적 이해와의 타협을 거부했으며, 모든 일에 공명정대하기를 염원하여 대의명분이 서지 않는 일에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위진남북조 시기의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현실을 외면한 것도 아니었다. <지조론>이나 4.19 혁명에 대한 지지, 그리고 이승만 하야 이후 <고대신문>에 쓴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 ? 그 긍지와 체면에 대한 반성”이라는 시론(時論)은 이를 증명한다. 나아가 그의 시는 한 편의 동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시간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는 고전(古典)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고풍의상”을 보면, 전통 의상을 입고서 춤을 추는 여인의 우아한 춤사위가 떠오른다.
고풍의상(古風衣裳)
하늘을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지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푸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1)
“고풍의상”만 아니다. 세속적인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배운 “승무”도 읽다보면, 한밤중에 달빛과 별빛에 의지하여 춤을 추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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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 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2)
이러니 내가 조지훈의 시를 좋아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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