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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박민규 작가의 '지구 영웅 전설' 이신조 작가의 '기대어 앉은 오후' 내가 읽었던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품 중에 괜찮았던 책들이다. 그리고 이상운 작가의 '내 머릿속의 개들'을 리스트에 추가하고 싶다. |
|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도 독석의 필요성은 충분한 것 같다. 혹자는 문학동네에 대해 이러저러한 비판을 가하는데, 출판사가 가지는 이러저러한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제까지의 수상작품이 가지는 경향성을 고려할 때, 충분한 독서의 매력은 있다.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작품들의 많은 경우가 일단은 주제가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독서하는 나의 노동은 가벼웠다. 이 책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전까지의 이런 문학동네작가상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너무나 살이 찐 아내를 둔 미술가 대학동창, 살이 찐 아내를 이혼이라는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동원되는 주인공, 대학동창의 구조조정(즉 이혼) 성공, 그리고 살을 찌워(시대역행적으로) 자기가 구조조정을 도운 살이 찐 여자에게 다가가는 주인공. 이야기의 큰 골격은 여기에 있다. 이 과정전체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흐름과 그것에 휩쓸려 사는 사람들의 고단함이 행간에 묻어 있다. 그럼에도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이란 지은이에 대한 사고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흐름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야한다는 나 자신의 비애감과 포부쯤이다.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 지은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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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리속의 개들'을 아무리 쳐도...인터넷에 안나와서 '문학동네' 작가상을 검색해보니...'내 머릿속의 개들'이네요..ㅋㅋㅋ 처음에 책 살때는 '내 머리속의 지우개'로 알고 샀던...집에와서 보니..제목이 달랐어요
우야동동..위에도 말했지만... '내 머릿속의 개들'은 제11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인데요... 역시 믿고 읽을수 있는...200페이지정도라 후다닥 읽어버렸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내용으로 진행됩니다.. 자신의 머리에 '개들'이 산다는 남자.. 수많은 '개들'은 자신의 머리에서 자신을 괴롭힌다는 이 남자..
철학과 출신의 '고달수'는 세상엔 '존재 A'와 '존재 B' 두가지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처럼 실업자인 '존재 A' 그리고 실업자가 될 '존재 B' <-- 아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산다는 생각이..ㅋㅋㅋ
일년반동안 백수생활을 보내다가.. 결국 칠년을 사귄 애인마져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던 그에게.. 대학교 시절 절친인 '마동수'가 연락해옵니다
돈을 벌어보질 않겠다는 그를 만나려 간 '고달수'는 미국 유학자 출신의 아티스트가 된 깔끔한 '마동수'와 그의 아내라고 보기에 믿기지 않는 120킬로그램의 뚱보 '장말희'와 만나게 되지요
두사람의 거침없는 말싸움을 보며...지금 뭐하는짓인지? 하지만 '고달수'는 '장말희'와 대화하며 맘은 잘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말희'가 나가자...'마동수'는 '고달수'에게 자신의 아내를 꼬셔 달라고 말합니다 천만원이란 거액을 주며 이혼을 도와달라는 '마동수'
'고달수'는 '장말희'와 데이트를 시작하지만 풍부한 독서량과 그녀의 언변, 그녀의 지식과 마음은 사랑하지만 그녀의 살들은 도저히 사랑할수가 없었습니다..
12월 31일날..'마동수'의 전시회를 끝으로 '장말희'와 헤어지고.. 그후 '마동수'에게 드디어 이혼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장말희'와 재회하는 '고달수'
그는 '장말희'의 소녀시절 사진을 보고 놀래지요...엄청난 미녀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살을 빼라고 하지만, 그녀는 설탕중독증이란 말만 하고... '고달수'는 결국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동수'에게 천만원을 받은 이야기..
'장말희'는 배신감에 거식증에 걸리고 나날이 죽어갑니다.. '고달수'는 그런 그녀를 고치려고...최후의 방법을 사용하는데요 자신 또한 뚱보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이 있지요?? 우리는 언제나 보이는것에 집착하고, 보이는 것에 우선을 합니다 그래서 내면을 가꾸기보다는 외모에 집착하는 외모지상주의사회가 되어가는때
이 소설을 읽다보니..우리가 진정 가꿔야 하는것들..우리가 추구해야할것들이 무엇인지? 문득 생각해보았던 책이였는데요...역시 믿고 읽을수 있는 문학동네 수상작..재미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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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얽히고 설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의 개들>은 세상을, 아니 적어도 ‘세상에 속한 나’에 대해서는 가늠해 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이다. 개인적으로 책 읽을 때만큼은 머리 아프기 싫어서 심각한 책 보다는 웃긴 책을, 그렇지만 그저 웃기만 하기에는 ‘읽은 대가’를 보상 받고 싶은 나에게 두 가지 효과를 다 만족 시킨 <내 머릿속의 개들>. 세상에는 지금 실업자인 존재A와 조만간 실업자가 될 존재B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서두에서부터 나를 잡아끌었다. 지금 실업자인 존재A이자, 고달수, 고군으로 불리는 ‘나’는 대학 동기이자 화가인 동창 마동수에게 존재B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 기회라는 것이 가관이다. 친구 말로는 요즘은 국가마다 회사마다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한다. 고도의 생산성이 보장된 탁원한 합병으로 결혼을 했지만 살아남기 위해 부부지간에도 구조조정을 해야겠다는 것. 이른바 ‘미학적으로 교환가치가 없는 형편없는 여자’ 자신의 뚱보 부인 장말희와 이혼할 수 있도록 내가 부인을 꼬시라는 것. 나는 존재B가 되기 위해 부인을 만나지만 외형은 다수의 존재B들이 보기에 괴물 같으나 나와 ‘내면’이 ‘같음’을 안 나, 고달수는 자신만의 묘술로 세상을 조롱하고 뚱뚱한 그녀 장말희의 입장에 서서 사랑을 표현한다. 소설 문체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건조하고 딱딱하고 감정 없는 대중의 단어?들 소비, 기계, 구조조정, 실업자, 컨설턴트, 교환 등등의 단어들이 모아져 냉소적이면서도 무엇보다 웃기게 조합이 이루어 졌다는 게 매력적인 책이다. 이것은 감정에 치우치지지도 이성에 치우치지도 않는 안정된 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사람의 살덩이를 가지고 세상을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고 그렇지만 뼈대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끄트머리쯤 소설이 갖는 자유의 한계인지... 식상한 이야기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시장의 자유화’에 따라 몸에 많은 부분 소비하고 있는 ‘우리’가 눈여겨보아야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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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만났을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것은 그사람의 외모다. 외모를 보고 호감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관계가 성립되게 마련이다. 특히 이성간의 만남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호감도가 생길 수록 그 사람의 내면의 모습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외모를 떠나 그 안의 비너스를 발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수많은 탐욕스런 갤러리들의 눈길을 부딪히며 같이 걸어줄 이성이 있을 것인가. 몸이 영혼보다 앞서 이성을 마비시킨다. 도저히 그로테스크적인 그녀와의 섹스를 상상할 수 없다면 고달수적인 방법을 써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잘못된 사랑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진정한 비너스를 만나지 않았을까. <내 머릿속의="" 개들="">은 어마무시하게 뚱뚱한 자신의 아내 장말희를 꼬셔주기를 바라는 마동수와 실업자 존재 A인 고달수가 서로를 구조조정하면 일어나는 사건들을 고달수의 대화로만 풀어가고 있다. 대화체라 흡입력도 뛰어나고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하는 재미도 있다.내> |
| 방과후 학교 업무와 문제 출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심적으로 여유로운 주말을 맞았다. 한가롭고 날씨 좋은 휴일 오후에 오랜만에 대학생마냥 도서관 벤치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내려갔다. 시종 등장하는 주인공 머릿속의 개들은 주인공의 생각을 상징하는 것인가, 굳이 개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좋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인공 고달수는 세상에는 실업자인 존재 A와 곧 실업자가 될 것인 존재 B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주인공은 존재 A이다. 어느날 나타난 친구 마동수의 설탕에 중독된 뚱뚱한 부인 정말희를 꼬셔주는 조건으로 천만원을 받는다. 달수가 말희를 진심으로 대한 덕분에 말희는 친구와 이혼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말희는 달수를 의지하게 된다. 달수는 잘빠진 몸매의 소유자인 마동수의 애인을 좋아하지만 어느날 문득 말희를 그런 몸매의 소유자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희의 어릴적 사진 속 여자 아이는 예쁘고 말랐던 것이다. 말희 속의 비너스를 깨워내기 위한 구조조정을 전개하지만 말희는 운동을 하고 나서는 전처럼 세상을 예쁘게 볼 수 없게 되었다며 포기한다. 달수는 말희가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 심한 말을 하고 말희는 거식증에 걸린다. 달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자신이 뚱뚱해져서 말희와 함께 살 빼는 고통을 나누려고 하지만 마동수에게 모종의 복수를 가하고 뚱뚱해져서 말희에게 돌아갔을 때 말희는 이미 모델처럼 예쁘게 마른 상태였다. 그리고 달수는 말희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작가는 후기에서 사실은 이 소설은 전체가 한 문단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시도는 확실히 독자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책은 문단이 나누어진 상태로 나왔는데 한 문단인 글을 읽은듯한 박완서님의 심사평을 읽으며 그분이 화를 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문단이 나누어진 이 소설은 철학적인 문장이 곳곳에 등장하는데도 술술 잘 읽힌다. 대화도 재미있고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하며 그렇게 될 것 같다고 예상했던 스토리 전개도 재미 있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존재 A인 고달수 아닌가. 해피엔딩이 아닌 한없이 불쌍해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현실적이어서 좋다. 마르고 예쁜 여자라니 얼마전 중학생들이 본 경기도 논술대회 문제가 생각난다. 외모의 아름다움보다는 가치 있는 것을 찾아라. |
|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길 때는 황당한 백수와 관련한 단순한 에피소드를 적당히 섞어서 만든 재미 위주의 소설인 것처럼 보였다. 차츰 이야기의 늪으로 빠져들수록 사회로부터 구조조정 당한 남자와 남편으로부터 구조조정 당한 뚱뚱녀의 복잡한 감정이 얽혀서 사회제도의 모순과 불합리에 대해 항거하는 몸짓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IMF이후 구조조정은 우리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기업이 살길은 오직 구조조정만이 전부인 것처럼 외쳤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인력감축이다. 기업주에게 가장 손쉬운 구조조정이 거슬리는 힘없는 노동자를 없애는 것이다. 소위 효율성과 생산성이란 커다란 목표아래서 칼날 같은 구조조정은 시행되었다. 산업사회 이후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지만 오늘날 자동화 및 기계화의 완벽한 시스템하에서 일자리가 하나 둘 줄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런 구조조정의 깃발아래서 백수가 된 주인공은 역시 뚱뚱하다는 이유로 친구로부터 구조조정을 당한 여자와 동병상련을 느끼며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사회의 편견을 부수기가 생각보다는 어렵다.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폭력적인 시선을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 경영의 실패자인 백수와 뚱뚱녀가 나란히 걸어간다는 자체를 사회는 용납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지적으로 대화도 가능하고 다른 조건에는 일체의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친구인 백수에게조차도 육체적인 매력을 풍기지 못하여 버림받는 사회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세상을 오직 백수(A)와 잠재적 실업자(B)로만 구분한다. 이런 분류는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위험한 구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당하는 양극화의 사회에서 불안과 공포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날씬녀와 뚱뚱녀로 양분하여 날씬하지 않으면 누구로부터 구조조정당하는 불안한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불안한 자들은 몰래 돈을 모아서 성형외과로 몰려간다. 똑같은 모양의 성형미인이 양산된다. 지방흡입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뚱뚱녀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정신병원의 어두운 독방에서 처절하게 응징하리라. 이제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환자로 날씬녀보다 더 날씬하게 죽음의 종말을 맞이한다. 겉치례만 바라보는 우리는 이 거식증환자를 최고의 날씬녀로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껍데기뿐인 삶의 선택은 항상 옳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저자는 3명의 주인공 위주로 무겁지 않게 가벼운 이야기로 몰아가지만 모순덩어리의 비계를 우리가 마치 씹어먹는 듯한 섬뜻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뚱뚱녀를 육체적으로 사랑하지 못한 백수가 마지막으로 의외의 반전을 선택했다. 뚱뚱녀와의 동질감을 과시하기 위하여 백수인 그도 거대한 뚱보로 변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날씬녀와 B(비실업자)만 찾는 사회에 대한 조롱이나 거부감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뚱뚱녀와 실업자를 효율성과 생산성의 적으로 규정하고 구조조정을 할려고 한다. 이런 칼날 같은 단두대에서 우리 자신이 선택을 당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자조적인 냉소가 냉커피 잔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삼복더위가 싹 가신다. 똑같은 성형미인이나 날씬녀와 같이 걸어가고 싶다면 그녀가 혹시 거식증환자가 아닌지도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봐야 한다. 인생은 안개와 같은 존재다. 어느새 우리 모두가 빈 손으로 떠나거나 인생으로부터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세상과 하직하게 마련이다. 너무 서둘지 말자. 구조조정 당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전락하여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 있다. 가족으로부터도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힌 결손가정이 증가하여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이것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내 머릿속의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격리수용당하는 실업자(A)는 잠재적인 실업자(B)인 우리 모두가 가까운 미래에 걸어가야 할 길임을 명심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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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족 이야기나 삶의 묵직함등 조금은 묵직한 주제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블랙 코미디나 풍자를 빌어 쓴 소설들이 눈에 띈다. 내 머릿속의 개들 역시 블랙 코미디이며 풍자극이라 볼 수 있다. 마치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이 겪어온 일들과 심정을 토로하듯이 씌어진 이 소설은 왠지 무성 영화의 변사가 재치좋은 입담으로 그 내용을 이야기해 주는듯 하다. 시종일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작가의 청산유수같은 언변술에 이리 취하고 저리 취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껄껄대며 웃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하게 마음속이 가라앉았다. 효용과 가치 창출로만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현대 사회나 자본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 미의 기준이 일률적인 잣대로만 매겨지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어이없을 정도로 과장된 단어를 사용해서 드러 낸다. 사람은 실업자 상태인 A와 언젠가 실업자가 될 B로 나누어 생각하는 주인공 나 고달수는 어느 날 미국 물 먹고 자칭 팝 아트 예술가가 되어 나타난 마동수에게 한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들어 달라는 것.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을 위해서? 고달수는 처음엔 도덕적 양심이란 것으로 마동수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백수 주제에 그걸 거부할 양심은 곧바로 우주 멀리 날려버리고 마동수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자, 작전 개시! 그런데, 막상 고달수의 아내 말희를 만나보니 은근히 말도 잘 통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일단 돈을 받았으니, 착착 작업을 진행시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두 계절이나 지났다. 그 무렵 말희의 예전 사진을 보게 된 고달수는 말희에게 다이어트를 제안한다. 고달수의 말에 따르면 대리석에서 비너스를 발견하는 것이라나? 호오라.. 알고 보니 고달수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좋은 천상 남자로구나. 역시 말이 통한다는 정신적 교류와 몸은 달리 반응하는 고달수는 역시 평범한 남자, 보잘 것 없는 그릇을 가진 남자였다. 어쨌거나 일단 말희는 고달수의 사랑고백(?)에 넘어가 다이어트를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단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은 도로아미타불이로다.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 고달수는 말희에게 마동수가 제안했던 이야기를 던지고 그녀 곁을 떠나버린다. 그후 다시 실직자 상태로 지내던 고달수는 말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막상 그녀가 곁에서 없어진 후에야 정신을 차린 고달수는 그녀를 위해 피둥피둥 살을 찌운다. 아아.. 이 무슨 멍청함이란 말인가. 뚱뚱한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녀를 날씬쟁이로 만드는 것도 아니요, 자신이 뚱뚱해져서 그녀와 비슷한 몸매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 것이 사랑이 아니더냐. 하여간 뚱뚱한 고달수는 뚱뚱한 말희를 찾아 나서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읽으면서 큭큭대고 웃었다. 현란한 말솜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절한 비유에 맞장구쳤다. 그러나 결국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 모든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 즉 효용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를 한껏 비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희는 마동수에게 돈줄이기도 했지만, 결혼 당시에는 그럭저럭 봐줄만한 통통함이었다. 그러나 도미행 이후 말희는 설탕중독자가 되었고, 마동수는 성공한 팝아티스트가 되어 마누라를 버릴 음모를 꾸민다. 굳이 사회 전체를 들먹이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결합하고 필요에 따라 버리기도 하는 현대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마동수의 마지막에 묘한 쾌감이 생겨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이유는.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다. 하지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있다. 웃으면서 이 책을 읽어도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은 결국 이 사회를 비꼬거나 비웃어줄 수는 있을지언정 바꿀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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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온전한 개화를 위하여 노동은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여야 한다.’ -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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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는 가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항상 ''가치''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당신을 위해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효용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마르크스의 말로 바꾸자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중에서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사회가 혹은 세상이 바로 지금 내가 그리고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이다. 물론 그 사실에 딱히 아쉬움을 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다는 것 뿐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것에 효용가치가 매겨지고 모든 것에 교환가치가 매겨지다 보니 ''이건 아니다..''싶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아내와 이혼하고자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가 있고, 돈을 받고 그 일을 도와준 친구가 있다. 물론 아내 모르게 친구가 접근해서 둘이 사귀게 되면 그걸로 이혼을 하고 다시 친구는 그때가 되서 아내와 헤어지면 둘 다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다. 이 멋진(?) 계획을 이루어 내기 위해 부지런히 친구를 설득한 사내와 설득을 당한 사내 둘이서 나누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친구의 아내와 우연을 가장해 만나면서 그는 그녀에게 교환가치 혹은 효용가치 이상의 무엇을 발견하고 당혹스러워 한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골몰하게 되지만 그도 결국은 친구의 의도대로 부인이 이혼을 하고 나니 친구에게는 효용가치가 없어져 버렸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한 인간에게서 특정 효용가치를 없애고자 거래를 하고 나서는 자신의 효용가치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의 머리 속에 혹은 친구의 머리 속에 어쩌면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머리 속에도 있을지 모르는 개와 끊임없이 그는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개의 비웃음을 받는다. 사람들은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하고 ''돈''을 위해 세상이 구조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돈이 아닌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고 ''가치''를 위해서 구조조정을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거대하게 조직을 구조조정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구조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사실 그 신선함은 곧 씁쓸함으로 바뀌게 된다. 친구의 현학적인 말에 귀를 나름대로 솔깃하는 또 다른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부정해도 그 구조조정은 지금 내 머리 속에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적당한 긴장감으로 글을 감았다 풀었다 할 줄 아는 작가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한다. 더군다가 소개하는 글에서 나온 말처럼 상당히 희극적이고 때로는 유쾌하기 까지 하다. 처음에는 읽기가 조금은 난해 하였고 지금도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부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읽을 수록 재미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작가의 의도대로 이 책이 차라리 행갈이를 하지 않고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꽤나 읽기에 빡빡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에는 행갈이가 없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항상 나에게 희비의 쌍곡선을 만드는 문학동네작가상에 또 하나 쌍곡선이 생겼다는 점에서 즐겁기도 하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차기작은 기대하게 하는 작가라는 점은 분명하다.눈먼자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