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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백년전쟁의 영웅인 동레미의 어린 목녀(牧女)인 성(聖)‘잔 다르크(Jeanne)’와 프랑스군의 원수(元帥)로서 잔과 함께 오를레앙 등에서 전승을 거두었던 전쟁 영웅이었으나 남색과 아동살해로 이어지는 기이한 쾌락의 추구로 악명을 떨쳤던‘질 드 레(Gilles)’백작을 인간의 속죄와 구원이라는 양식에 함께 담아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존재의 본원적 의식을 통찰한다. 특히 질드레에 투영된 다층적 인간상은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악마성과 구도자적 성향의 교착을 보여주고 있어 아찔한 매혹과 성스러움, 그리고 고통스런 충격의 그 어떤 혼합된 모호함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즉 질드레의 연금술이란 사탄인 바론에게 아이들의 피와 심장, 팔다리를 바침으로서 성녀 잔에게 다가가는 구원의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화형대위에서 불타죽은 잔처럼 아이들을 불태우는 것, 또한 아이들의 순진함, 생명력, 아름다움을 자신에게 합체시켜 동일화하는 것, 즉 영원성으로의 회귀이다. 완벽한 연금술이지 않은가? 또한 질드레 백작은 잔을 불러내는 일종의 위령제로서 엄청난 규모의 의식을 거행하는데, 소위 바타이유가 말하는 비생산적 소비라는 균형적 순환으로서 파괴가 아닌 영속을 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호사취향이나 과시가 아니라 더 나쁜 의도인 희생제의(犧牲祭儀)로서 진행된 것이라고 질드레의 보좌신부의 입을 빌려 발설하는 것에서 이미 역설적 표현인 것으로 악이 아니라 선의 행위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질드레의 변태적 쾌락의 추구와 수많은 아이들의 살해 행위라는 악덕이 궁극적으로 자신 또한 화형이라는 속죄의 불을 통해 잔이 있는 세계, 이승의 삶이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구원을 향한 여정이라는 지독한 역설, 양성적 전위를 낳는다는 데서 거듭 확인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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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는 한데 딱히 리뷰 쓸 마음은 안 나서 작품해설의 일부를 발췌하려고 한다. 이 책의 줄거리이니 마음에 들면 읽어보시길.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들께 추천한다.
1.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을 재미 있게 읽은 분
2. 역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 이 책은 백년전쟁 후반부부터가 배경이다. 이 책의 부제는 질과 잔인데 이 때의 잔은 잔 다르크이다. 여자주인공인데 전반부에 잠깐 나온다.
3. 식인귀 등 독특한 소재를 좋아하시는 분 : 그렇지만 엽기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하지는 않고... 뭐랄까? 구원의 문제나 사랑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랄까? 결코 가벼운 글은 아니다.
4. 간결한 문체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 1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간결하고 명료하지만 우아한 문체의 글을 선호하거나 그런 글을 읽고 싶은 분들께 권한다.
5. 사랑에 관한 글을 읽고 싶은 분 : 2에서 이미 여자 주인공이 잔 다르크라는 건 이야기했지만 사실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조연에 가깝다.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질이다. 잔 다르크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사랑이야기라고만 하기엔 다루는 주제가 폭넓다. 어쨌든 외연은 사랑 이야기이다.
사실 추천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건 읽는 분의 몫으로 남긴다.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면 위안이 될 것 같다.
자, 그럼 작품 해설에 있는 내용 중 질과 관련된 부분을 몇 군데 소개하겠다. 마음에 드시면 읽어보시길.
1. 1429년 9월 7일, 질과 잔이 1만 2천 명의 아르마냐크파를 이끌고 파리를 공격하던 중 잔은 무릎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질은 잔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잔의 상처를 입술로 핥은 후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맹세한다. "나는 당신의 피로 영성체를 했습니다. 영원히 당신과 결합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어디를 가든 좇아다닐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옥이든!" 이때부터 잔은 질의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인 우상이 되며, 결국 질은 잔을 좇아가기 위해 화형을 자초함으로써 자신의 약속을 이행한다(212쪽).
2. 1431년 5월 30일, 잔은 종교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사형 선고를 받고 루앙 광장에서 화형을 당한다. 질은 잔인한 운명의 장난으로 이 끔찍한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잔의 처형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매달려 있는 질의 악마적인 혹은 악의적인 변신을 예고한다. (중략) 과도한 권력은 사람을 광적인 폭군으로 만드는 법. 이때부터 질은 방데의 요새에서 3년 동안 은둔하면서 철저하게 악마적으로 변신한다(213-4쪽).
3. 방데의 음산한 숲, 질의 황소 같은 정열, 동물적인 순진함과 난폭함, 빈약한 지성, 피에 대한 갈증은 질의 원초적인 식인귀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동물성은 의식적으로 삶과 통합되지 않으면 야생적이고 원시적이며 본능적인 물신숭배에 빠질 수 있다(215쪽).
4. 질은 조금씩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파괴적인 본능에 빠진 원초적인 식인귀의 속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성가대원을 모집하기 위해 말을 타고 소수의 몰이꾼과 하수인을 데리고 숲과 들판을 누비고 다녔다. 그는 인간 사냥꾼이 되어 아이들을 괴롭히면서 동물적 쾌락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된다(216쪽).
5. 처음에는 단순히 헤로데 왕의 명령으로 죄없이 죽은 순진 무구한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아이들에 대한 찬양이, 이윽고 인간 사냥이라는 동물적인 차원으로 격하되더니 쾌락을 위해 아이들을 남색하고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악마적인 사디스트가 되고 끝내는 프렐라의 주문에 따라 바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아이들의 시체까지도 불사르는 거대하고 잔혹한 괴물이 된다. 숭배의 대상이었던 잔이 죽은 후 질은 아이들을 학대하고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마음속에 가득 찬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다. 더구나 지성이 빈약한 질은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없어 더욱 육체적이고 쾌락적이며 변태적인 기쁨을 추구한다(219쪽).
6. 왜 하필 어린이인가. 투르니에의 작품에서 어린이는 구원의 중재자로 자주 등장한다. 잔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천사 혹은 성의 구분이 없는 어린이처럼 나타난다. 질은 죽은 잔을 광적으로 되살리려고 헛되이 노력한 후 그 대체자로서 아이들을 뒤쫓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식인귀가 아이들을 원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아이와 합체되어 동일화되려는 것이다. 즉 아이의 순진함, 생명력,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것이다. 또한 잔이 화형대 위에서 불타 죽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불태움으로써 부서진 사랑을 영속시키고자 한다(220쪽).
7. 질은 자신의 믿음처럼, 혹은 프렐라의 주장처럼 화형된 후 구원을 받을 것인가? (중략) 질은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며 구원을 믿는다. 잔이 화형대 위에서 "예수님!"을 외치며 죽은 것처럼, 질이 잔의 이름을 부르며 죽은 것은 그녀처럼 성덕을 지향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종교 재판소가 내린 화형은 속죄의 불 혹은 구원의 불이기 때문에 그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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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드 레(프랑스어: Gilles de Rais 1404년 가을~1440년 10월 26일)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이며, 한때 잔 다르크의 전우였다.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라발(Gilles de Montmorency-Laval)이다. 그는 뒤에 고문, 강간 및 수많은 아동 살해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처형을 당했다. 여러 역사학자에 따르면 질 드 레는 한 세기 휠씬 뒤의 사디즘적인 행각을 벌인 헝가리의 귀족 에르제베트 바토리와 함께 근대 연쇄 살인범의 전조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책은 이 번이 두번 째 이다. 첫 번째는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이었기 때문에 작가의 아주 짧은 글들만 만날 수 있어서, 사실 이번이 그와의 첫번 째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우지만 그 명성과는 다르게 평생처럼 결혼 한 번 하지 않은채 작은 마을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질 & 잔 이다. 질은 위에 소개한대로 질 드 레를 말하고, 잔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잔 다르크를 가리킨다.마치 헷세의 나르치와 골트문트가 떠오른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가 '지와 사랑'이라면, 질 & 잔은 '지독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있다. 질 드 레 와 잔다르크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았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임에는 틀림없지만 남,녀 간의 아름답고 슬픈 그런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 앞에 붙은 '지독한'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신화적 역사소설을 지향한다. 백년전쟁의 영웅 잔다르크와 그에 버금가는 시대의 영웅 질 드 레를 중심으로한 작품은 실존하는 인물의 무게감 만큼이나 커다란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잔 다르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질 드 레. 하지만, 질의 사랑은 결코 에로스적 욕망이 아니었다. 그 당시까지 절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질에게 잔은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질은 머리를 숙이고 잔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한 번만이라도 내 키스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는 몸을 숙이고 한참 동안 입술로 잔의 상처를 눌렀다. 이윽고 다시 몸을 일으키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는 당신 피로 영성체를 했습니다. 나는 영원히 당신과 결할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어디를 가든 쫓아다닐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옥이든!" [본문중에서]
잔 과 질의 사랑은 작품 초반 마녀사냥에 의한 잔다르크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잔 다르크의 죽음이후 질의 행보는 어떠했을까? 자신의 전부였던 잔의 죽음을 목격한 질은 그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게된다. 외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으로 프랑스 최고의 영주중 한 명이었던 질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정을 일으킨다. 미소년들만을 자신의 성으로 유인하여 변태적 애정행각을 벌리고, 연금술을 비롯한 온갖 부 도덕한 행위에 몰입하여 강간,유괴,살인등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끈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사냥과 동물적인 쾌락을 위한 남색. 무수한 생명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되고 만 것이다. 한 때 프랑스를 구한 가장 위대한 영웅중의 한 명이었던 질 드 레는 사라지고, 오로지 악마를 숭배하며 육체적인 쾌락과 변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극한 추악한 인물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오직 어린 소년만을 재물로 삼았던 질 드 레. 그는 화형대 위에서 불에 타들어가는 잔 다르크를 보면서 , 자신 또한 소년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잔 다르크와 같은 영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갇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년들을 무척 사랑했던 질 드 레 지만 그의 광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난폭해 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대한 엄청남 소문은 결코 그의 악마적인 행각을 지켜보지 만은 않게 된다. 무수한 죄목으로 인해 재판장에 선 질 드 레. 그는 끝내 종교적 파문 이라는 극단적인 순간에 이르러 서야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된다. 물론 그 당시의 사회는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결코 깨끗한 사람만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신문하고,재판하는 사람들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는 부폐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전부였던 인물 잔 다르크의 죽음을 통해 시대의 부폐를 일찍 깨달았던 질 드 레는 결코 거대한 부폐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질 드 레는 잔 다르크가 당했던 똑같은 화형대 위에 올라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고 죽음을 당했던 모든 이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영원히 함께 하겠다던 잔 다르크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된다. 시대의 살인귀 질 드 레는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된것이다.
질 드 레 라는 실존인물은 근대 연쇄 살인범의 효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한다. 또한 후대에 [푸른수염]의 토대가 되는 등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어지는 아주 독특한 인물인 듯 하다. 잔 다르크로 인한 지독한 사랑이 가져다 준 삶의 후폭풍은 정말 무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종교적으로 불안했던 그에게 잔 다르크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 였을지 모른다. 미셰 투르니에로 인해 다시 태어 난 두 인물. 지독한 사랑이아니라 정말 무서운 사랑인 것만은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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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어느해 겨울이었다. 신문에 유명인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소개되었다. 그때 신경숙 작가는 미셸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을 권했다. 그런데 투르니에의 이 책은 영 읽기가 쉽지 않았다. 산문집인데도 불구하고.... 1년쯤후에 책꽂이에 꽂힌 그 책을 다시 집어 읽기 시작했다.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부터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부분까지 파고 드는 역량이 있는 글들이었다. 가벼운 느낌의 글에서 부터 무겁고 철학적인 사유를 필요로 하는 글까지 실려 있었다. 그이후에 읽게 되는 미셸투르니에의 작품이 바로 '지독한 사랑'이다. 언뜻 책소개를 읽어보니 잔다르크가 나와서 역사 소설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역사 소설이라기 보다는 철학 소설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 같다.
작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프랑스 문단의 최고 지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의 소재는 신화,전설, 역사, 성서 등의 소재를 사실주의, 자연주의 창작기법으로 다시 써서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경향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지독한 사랑'은 백년전쟁의 성녀 잔다르크의 역사적 사실과 130명~400명의 어린이를 죽인 죄목으로 처형되었던 방데의 영주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상상적으로 결합되 소설이다. 미셸 투르니에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 '지독한 사랑'은 비교적 길이가 짧다. 문고판 형식의 책자에 200페이지 분량의 글인데, 그것 역시 큰 활자체와 넓은 자간으로 읽기에 별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작가의 특성대로 간결한 문장, 명료한 문체, 역동적인 줄거리, 촘촘한 철학적 주제가 그대로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백년전쟁'의 끝부분인 1429년 겨울이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약 백년간의 전쟁중이었다. 프랑스의 파리와 노르망디를 비롯한 북부지역은 영국과 영국에 협력하는 부르고투 파 군대에게 점령당하고 영국의 헨리6세가 영국과 프랑스의 왕을 겸임하고 프랑스의 샤를르 황태자는 쉬농 성에 망명 정권을 수립하고 있을 당시이다. 로렌지방의 동레미 마을의 양치기 소녀인 잔다르크는 '프랑스 왕국을 구하라'는 초자연적인 음성, 즉 천사의 음성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샤를르 황태자를 만나러 쉬농성에 간다. 이 자리에서 방데의 영주 질 드 레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잔이 어린 시절에 천사의 음성을 듣고 자란데 반해, 질은 '내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들었던 음성은 언제나 악과 죄의 소리였습니다.' '나는 당신곁을 떠낙 싶지 않으니 나를 성인을 만들어 주시오'라 하고 할 정도로 잔이 '빛으로 둘러싸인 성녀'임을 알아차린다. 잔은 질의 완벽한 이상형인 것이다. '나는 당신의 피로 영성체를 했습니다. 영원히 당신과 결합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어디를 가든 좇아다닐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옥이든.....
잔은 신앙과 열정으로 병사들을 지휘하여 용감한 전투를 계속하고 흰 갑옷을 입고 선두에 선 잔을 본 영국군은 도망치기에 바쁘다. 그러나, 잔은 콩피에뉴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16가지 죄목으로 화형을 당한다. 질은 잔의 화형식의 모습과 불에 탄 시체를 보게 되고 이때부터 은둔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악마로 변신한다. 마치 최대로 단순화된 고치 속의 번데기가 완전히 다른 모습의 나비가 되듯이, '고치속의 애벌레가 될 것이다. 이윽고 악의적인 변신을 완료한 후 고치에서 빠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악마같은 천사가 되어 날개를 활짝 펼 칠 것이다.'
처음엔 '참사회 교회'의 추모로 시작되어 헤로드 왕에게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지만 질은 악마적 변신은 어린이들의 인간사냥으로 이어져서 악마적 사디스트가 되고 이 아이들은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아이들의 죽음을 통해 쾌감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악마 그 자체인 것이다. 질이 어린아이들을 선택하는 것은 잔이 소녀도 소년도 아닌 천사라는 생각에서 잔을 살려내려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아름다움, 순진함, 생명력을 갈망하는 것이다. 피렌체의 연금술사의 조언에 의해 아이들은 바론의 제물로 바쳐지고 질의 악마적 기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까지 극에 달한다.
결국에 질은 그의 악마적인 행각이 발각되어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그러나, 질은 종교적 파문을 면하게 되면서 연금술사 프렐라티가 말한 가장 낮은 곳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치리라고 믿는 것이다.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진 죄인도 신앙을 잃지만 않는다면 순수성을 회복하고 그 곳에서 솟구칠 수 있다'고 .... 연금술을 신봉하는 프렐라는 그가 구언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레 경을 사악함의 절정까지 몰아 붙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로 수술하여 마치 천한 납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것과 비슷하게 전위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성인이 됩니다.' - 이상의 '지독한 사랑'의 줄거리를 간추린 것이다. -
내가 '지독한 사랑'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어떤 사람의 리뷰를 읽게 되었고, 내가 역사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잔다르크가 나오는 프랑스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역사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철학 소설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소설을 읽다가 보면, 작가는 우리가 접하는 사물이나 상황이 각자의 사고 방식에 따라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당신에게는 불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느님께서 보낸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옥의 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과 악은 언제나 서로 가까이 존재하니까요. (p37) '나는 당신을 좇아 가겠습니다. 하늘이든 지옥이든! '(p41) '하늘의 빛과 지옥의 불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습니다'(p118) '그곳에는 성모상인지 비너스상인지 알 수 없을만큼 파괴된 조각상이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p137) '아이들은 모두 아우성을 치며 달아났는데 그것이 승리의소리인지 두려움의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p138) '불은 최악의 폭군이지만 또한 최선의 하인입니다.' (p140) '그 도치는 선의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악의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p142) ' 13일 동안 질 드 레는 세가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세 얼굴을 드러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한 사람속에 다른 세 명의 영혼이 살고 있었을까?' (p163) 그당시의 관점에서는 '잔다르크'라는 인물이 들은 음성이 천사의 음성일 수도 있었고, 요즘의 사고에 의해서 생각한다면 환청일 수도 있는 것처럼, 잔을 프랑스를 구한 성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파의 입장에서는 잔을 '음탕한 년, 시골뜨기, 매춘부'라고 야유하기도 하였다. 잔은 양을 치면서 천사의 음성을 들었지만, 탐욕에 찬 외조부밑에서 자란 질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악과 죄의 소리를 듣고 자랐던 것이다. 어떤 상황을 각자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기에 천사를 악마로 생각할 수도 있고, 불을 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승리의 소리가 두려움의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에는 대비되는 낱말들이 연속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천사와 악마, 악마와 사람, 불과 물, 위대함과 쓸쓸함 등이 서로 대비되는 낱말로 나온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질의 화형식 장면으로 종교적인 파문을 면한 질은 연금술사의 이야기처럼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솟아 올라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자신이 가장 나쁜 인간이지만 자기를 위해서 구원의 기도를 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곤, 잔이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하고 외치던 것처럼 '잔 잔 잔'을 외치면 세상을 떠난다. 그런 질을 위해 군중들은 무릎을 끓고 기도와 찬양을 한다는 것이 엔딩부분이다. 작품 해설에도 종교 재판소가 내린 화형이 곧 속죄의 불 혹은 구원의 불이기에 구원을 얻었을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음침하고 괴기스러운 악마적인 악행들이 마지막 순간에 속죄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종교적인 해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의 여기저기에서 질의 어린아이들의 살해를 암시하는 대목들, 아이들의 불에 탄 뼈이야기 등은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끔찍할 따름이었다. 작품 해설의 소제목이 '성인으로 만들기 위한 악마적 연금술'이다. '질의 사악함이 절정에 이르러서 이를 불로 수술하여 마치 천한 납이 금으로 변하는 것처럼 선의적인 전위를 치르고 거룩한 성인이 된다'는 것 즉, 질의 사악함이 불로 태워져서 구원을 얻는다는 논리인 것같은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생각이다. 인간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런 악행을 저질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세상의 확연하게 대비되는 상황들도 결국에는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지옥과 천국, 선과 악이 아주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이성이 있기에 어떤 악마적 행위도 용납될 수는 없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것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느낌은 소설이라도 이런류의 작품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별로 추천해 주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아름다운 것만 보아도 짧은 인생에 추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읽고 싶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