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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박찬욱 감독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대부분 좋아하지만, 조금 취향이 독특해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박쥐를 선택한다.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니 안 읽고 배겨낼 수가 없었다. 별 생각 없이 읽은 소설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에밀 졸라의 소설을 꾸준히 읽게 되었다.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탐욕을 다루는 세심함과 이미 예정된 예정된 비참한 최후를 다루는 차가움에 현혹되어 테레즈 라캥, 제르미날, 나나를 거쳐 목로주점에 이르게 되었다.
여주인공인 제르베즈는 랑티에와 함께 파리로 도망쳐 온다. 하지만, 랑티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그녀와 아이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여자 혼자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착실하게 세탁소를 나가며 생활하고 있는 제르베즈에게 꽤나 착실한 함석 직공인 쿠포가 구애한다. 절름발이이자 애가 둘이나 딸린 제르베즈는 쿠포의 구애를 거절하지만, 결국 그의 애절함에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결혼과 함께 인간적인 욕망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들은 사치스럽진 않지만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만한 결혼을 위해 약간의 빛을 진다. 하지만, 남편은 술에 취하지도 않고 보름마다 어김없이 급료를 가져온다. 욕망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제 새 집이 갖고 싶다. 한번 고개를 든 욕망을 참아내긴 어려운 법. 결국 가구를 사 나르고 결국 새 집으로 이사를 한다. 둘은 열심히 살았다. 꽤 많은 저축도 했다. 다시 더 큰 욕망이 솟아오른다. 이젠 자신의 가게가 갖고 싶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가게는 집세가 너무 비싸다. 그러던 어느 날 함석 직공이던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가 회복되는 동안 저축해둔 돈은 모두 써버렸지만 그가 회복되자 잊고 있던 욕망이 그녀를 달아오르게 한다. 자신만의 가게. 상황은 제르베즈의 편이 아니다. 회복한 남편은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때우고 술에도 입을 대기 시작한다. 욕망은 늘 충족되어야 하는 법. 제르베즈는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옆집 총각 구제에게 빚을 낸다. 욕망이 충족되면 당분간은 만족하며 살 게 되듯이 그녀 역시 성실하게 세탁소를 운영한다. 하지만, 문제는 늘 생기기 마련. 서방님이 술독에 빠져 벌어오는 것도 없이 가져다 쓰기 바쁘다. 그들의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붕괴는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부부의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이웃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친척과의 관계도 마침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가게 형편도 예전 갖지 않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한 허기를 이제 식욕으로 채운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게에서 연회를 베푼다. 술로 탕진하는 남편과 경쟁하듯 배를 채우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BOOK : 2021-008-0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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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르다. 어떤 이는 나태하고 노력하지 않는 개인의 문제로, 다른 이는 가난은 대물림되고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본다. 어느 한편이 전적으로 옳은 건 아니지만 가난은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른 불평등이긴 하다. 언젠가 TV에서 한 대학생이 고시원 쪽방에서 알바를 하면서 간신히 유지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상태면 대학전에도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거나 학원등의 사교육 혜택은 누리지 못했을 것 같고, 명문대 진학도 어려웠을 것이다. 생활비와 학비때문에 휴학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되고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되면 사회 출발부터 채무자로 시작한다. 명문대가 아니고 스펙을 제대로 쌓지 못하니 좋은 일자리 기회는 적고 박봉에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고 살아야 하는 고만고만한 회사원이 된다. 불투명한 미래에 소확행만 찾는 작은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반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주도 학습만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이후에는 학교, 사회 장학금을 통해 경제적 문제는 해결하여 가난을 벗어날 발판을 마련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이런 경우의 수가 전체 수에 비하면 드물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나는 일에 개인적인 책임과 능력을 따지게 된다. 남과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은 절실함, 노력, 운이 복합되는 것 같다. 운은 어떻게 오는 건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설명대로 절실함과 노력이 그 사람에게 기를 만들고 운을 끄는 건 아닐까? 구라과학으로 들리지만 세상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 오늘도 목로주점 흙 바람 벽엔 삽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라는 목로주점 노래가 있었다. 어릴적 그 노래 가사의 목로주점이 인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도 어떤 감상적인 분위기를 기대했다. 세잔과 절친이었다는 설명도 낭만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책은 처절하도록 슬픈 이야기이다. 제르베즈의 첫 남편으로 그녀를 버리는 랑티에, 아이 둘과 함께 버려진 그녀는 조마조마하고 측은하다. 그나마 근면,성실로 버티어 나가고 거기에 착실한 쿠포가 구애끝에 결국 둘은 결혼을 한다.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고 미래에 대한 소박한 희망도 갖게 된다. 거기에 그녀를 사랑하는 순수한 구제의 금전적인 지원이 예상치 못한 운으로 작용해서 가게를 갖게 된다. 경제적인 부는 그녀를 안일하게 만들고, 쿠포도 다친 이후로는 일은 안하고 그녀에게 기생하면서 살게 된다. 가벼운 술외에는 마시지 않던 그가 목로주점을 다니면서 술꾼으로 바뀌어 간다. 거기에 첫 남편 랑티에가 돌아오고 그도 그녀에게 기생하게 된다. 이후로는 차츰차츰 몰락하는 이야기로, 악화되고 익숙해지고의 반복으로 계속 추락한다. 결말은 예측되는데 다소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그녀의 잘못이고 어디까지가 당시 사회 구조의 문제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잘 될 수도 있었는데 그걸 잘 꾸려나가지 못한 제르베즈, 거기에 랑티에라는 잘못된 남자와 성실했던 쿠포가 주정꾼으로 바뀐 점등이 불행이 겹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녀를 포함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그녀보다 조금 낫거나 비슷한 정도이지 고만고만하다. 이 작품에서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파리 외곽에 사는 노동자들의 몰락, 가족의 해체, 난잡함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현재가 소설속의 시절보다 먹고사는 외형이 나아졌을 뿐이지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는 삶의 모습이다. 난 그정도는 아니지 않은가하는 위안과 함께, 예측 불허의 삶 때문에 한편으로는 막연한 불안과 고단함을 느끼게도 한다. 7/27/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