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소리로 조용할 날 없는 서울 한복판을 걷고 있노라면 이름 모를 산자락에 정자 하나 지어놓고 내 몸 한 번 뉘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바삐 움직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오늘날, 이런 나의 생각이 현실감 없어 보이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일상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나고플 때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송강 정철과 함께 가사문학의 대가로 우리에게 익히 달려져 있는 송순. 전남 담양에 가면 그의 아호를 딴 정자 면앙정이 있다고 한다. 깊은 산 속에 자리한 그 곳에는 속세가 강요하는 피말리는 투쟁이나 귀양살이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현실과 떨어졌을 때 비로소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고, 눈에 보이는 듯한 훤한 묘사로 산봉우리 하나하나를 그려냈던 그의 가사 역시 제월봉 중턱에 자리한 이 정자 덕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문득 여행이 떠나고 싶어진다. 사람은 본디 사람과 함께 할 때 즐거움의 가치를 깨닫는다곤 하지만,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라면야 나 홀로 오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듯하다. 작디 작은 국토의 비좁음에 숨막혀 매년 그토록 많은 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국내에도 방문할 곳은 많은 법. 다만, 늘 가까이 있고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일 뿐. 글을 읽으며 새삼스레 깨닫는 바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친구와 함께 아무 생각 없이 걷곤 하던 인사동 골목길에서 시간을 읽어내고, 분단의 아픔을 담고 흐르는 임진강으로부터 율곡 이이 선생의 생애를 만나는, 이야 말로 말 그대로 문화기행이 아닐지 싶었다. 매년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강원도 봉평의 메밀밭을 바라보며 이효석의 소설 속 허 생원과 동이의 족적을 궁금해하는 저자의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는, 맹목적으로 책장 넘기기에 바빴던 나의 모습은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고구려 하면 으레 만주 벌판만을 생각한 나머지 일상 속에 잠들어 있는 고구려의 흔적은 생각해보지 못한 내게 ‘**골’이라는 지명이 고구려식 지명임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문장은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교과서에서 만나 무미건조하게 읽고 넘겼던 신라 향가 <처용가>는 저자의 시각에서 영국의 대 서사시 <베어울프>보다 부드럽고도 강한 힘을 지닌 것으로 재조명되기까지 했으니, 의미를 부여하는 그 손길에 놀란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별미는 인사동 거리와 함께 풀어낸 따스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남의 삶을 엿보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음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리영희, 백낙청, 황석영 님 등 익숙한 이름들이 거론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을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언제 만나도 늘 한결 같은 사람들, 살벌했던 군사독재 시절과 변화의 흐름을 함께 경험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시대에 때묻지 않은 듯한 정겨움은 어느 누가 접해도 부러워할만한 것이었다. 글을 쓰는 이에게 튼튼한 두 다리와 부지런함이 주어진다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거기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탁월한 혜안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분화될 대로 분화된 개개의 것들이 하나로 아우러져 만들어낸 맛깔스러운 글 덕에 오랜만에 함박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베어울프>처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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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에 올라서서-구중서의 역사문화산책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2006 우수문학도서임에도 YES24에는 리뷰가 하나 밖에 없어 많이 팔리지 않았는지? 리뷰를 안 썼는지 알 수 없다. 담양의 정자문화, 고구려 문화의 여행, 실학의 고장인 경기도 광주, 인사동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설악산과 남종선, 그리고 임진강 산책등으로 구성된 그 여행들에 내용은 깊고 격은 높다.
광산선생은 면앙정에 올라서서 400여년전에 여기에서 있었던 흐믓한 광경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정철이 어사화와 어사주를 갖고 회방연에 참석했다. 전라도 도백을 비롯해 고을 원들이 축하하러 왔고, 호남의 문인도 모두 모였다. 잔치가 끝날 무렵 87세의 송순이 유쾌하게 취했고 정철이 제안한다. "선생님은 우리 제자들이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라고 했고, 정철, 기대승, 고경명, 임제가 스승을 남여(포장이 없고 의자처럼 생긴 가마)에 태웠으니 이 광경을 본 모든 이가 흐믓해 했다. 이것이 호남지방의 문인들이 사는 모습이었다.
광산 선생은 전인적 삶을 지향하던 선비처럼 시서화를 흉내내어 그림과 시를 책에 넣었다. 붓으로 그린 정자와 소나무, 대나무 그림은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글씨는 연륜이 묻어 있다. 면앙정을 선명하게 묘사했다. 대나무 숲을 끼고 계단을 올라 중턱의 평지를 걷고, 또 여러 계단을 다 올라가면 정자와 함께 정자 전면에 아늑한 마당이 있다. 면앙정의 기와지붕은 큰 날개처럼 넉넉한 추녀를 펼치고 있다. 정자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면 서쪽과 남쪽으로 넓은 들이 내려다 보인다. 들의 끝에는 병풍처럼 둘러 선 산들이 있다. 송순 당대에는 면앙정 바로 밑으로 여계천 냇물이 흘렀다. 지금은 물길이 바뀌어 들의 서쪽끝으로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오례천 냇물이 있다. 사람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시원스런 전망이 갖추어진 정자다. 쓸쓸한 겨울철에는 이 높은 언덕 위 정자에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정자의 주인 송순이 생존한 시절에는 철을 가리지 않고 손이 모여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이름 높은 문인들이 찾아왔다.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송강 정철, 김성원등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면앙정 송순이다. 기대승 이하 정철, 고경명, 김성원등은 면앙정에 비해 서른 살 쯤 차이가 나는 젊은이었다.
남여를 맸던 4명의 삶을 조명한다. 임제는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술을 한잔 부어 놓고 시조 한 수로 파직당한 방외인으로 풍류가객처럼 살았다. 기대승은 퇴계와 8년간 편지로서 인생의 원리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했다. 송강은 벼슬도 많이 하고 귀양도 많이 가고 쉰 여덟의 나이에 가난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끝냈다. 고경명은 글 잘짓기로 소문난 담양 식영정 시단 4선의 한 사람으로 예순의 나이에 의병장이 되어 금산에서 죽었다.
면앙정 (俛仰亭)안벽에 쓰인 삼언시(三言詩)는 내려다보면 땅이 있고 (俛有地) 올려다보면 하늘이 있다 (仰有天) 그 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亭其中) 호연지기가 일어난다 (興浩然) ..... 정자는 그냥 늙은이들이 모여서 노는 경로당이 아니다. 철학과 세상 경륜을 연구하고 시를 짓는 문화적 도량이다. 마루 한쪽에 반드시 온돌 한 칸을 마련한다.
대동강 쑥섬공원을 기행하면서 역사속에 살수대첩을 연상한다. 남한 속의 고구려인 충북지역을 다루면서 남한강변의 목계나루를 소개한다. 시 목계장터에서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가 절창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김유신과 소정방이 싸운 기벌포를 여행한다.
서울 한강 이남에 가까이 있는 땅 전부가 광주였는데 이곳에 있었던 실학자들의 삶과 역사 산책이 이어진다. 안산 접경지역에 성호 이익,남양주에 다산 정약용, 광주 경안에 순암 안정복. 단재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할 때 그의 봇짐속에 단 한권의 책이 동사강목이었다고 한다. 성호는 남명의 시 한편을 들어 말했다. "얼마나 놀라운 기백인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장대하게 물결치게 한다." 천석을 담을 큰 종을 보아라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네 만고에 우뚝한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네
다산은 난세에 도전하기 보다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적은 돈으로 배 하나를 사서 그 안에 그물과 낙싯대를 갖추고, 한칸의 온돌방도 마련하고, 솥과 소반과 잔을 갖추어 놓는다. 아내와 아이와 종 한명쯤을 데리고 수종사 아래로부터 두물머리 사이를 왕래하며 바람을 쐬고 고기를 잡고 잠을 자고 시를 지어 난세에 불우한 심회를 읊었으면.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다산은 적성촌사에서 시내가에 선 집은 깨어진 뚝배기같고 북풍에 이엉 뒤집혀 서까래만 앙상하네. ...중략...
항아리 깨진 금은 헝겊으로 발랐으며 내려 앉은 선반은 새끼불에 걸려 있네 슬프다 이런 집이 하늘아래 널렸는데 먼 궁궐에서 어떻게 살펴보랴
기민시(饑民詩)다. "무릇 선비는 어떠한 사람인데 자신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남의 토지를 빼앗아 차지하고 남의 노동덕에 먹고 사는가"라고 분개한다. 베트남이 국부라고 할 호치민은 일찍이 다산의 목민심서를 구해 늘 옆에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인사동 뒷 골목 이야기는 오래되지 않은 정경이다. "이모 집", "평화만들기" "실내악" "초당" "흐린 세상 건너기"가 그 곳에 있는 모임터이다. 조선의 3대 구라중의 한 명인 방배추를 중심으로 사람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놓는다. 리영희 , 채현국을 등장시켜 지성과 정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비통한 마음으로 역사의 현장인 인사동을 걷는다. 국권을 빼앗겼던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인사동 뒤안길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신다. 영빈관이 불탄 자리에 들어선 "쌈지길" 건물을 스케치 했다. 쌈지길은 민현식의 상찬이 붙으면 좋을 것이다. "곧지 않은 길 쌈지공원을 지나고 억새풀의 오솔길을 지난다. 그리고 여정의 끝, 정상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너머 서쪽 하늘을 만난다. 운이 좋다면, 검게 실루엣을 그리는 능선들위에서 붉게 타는 노을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갑자기 확 무언가로 열리는 듯한 소름돋는 감동이다. 일상을 떨쳐 버리고 피안의 세계로 이끄는 강한 힘, 이 길에서 만나는 마지막 가치이다."
석굴암과 설악산의 울산바위를 쓰고 남종선과 만해에 대해 재미있게 기술한다. 그리고 임진강을 따라 황희의 반구정(伴鷗亭), 율곡의 화석정(花石亭), 율곡 묘소가 있는 자운 서원과 파산서원, 그리고 북한작가 김명익의 '임진강"의 무대인 삼거리를 기행한다.
우리 일행은 퇴장시간인 저녁 여섯시가 되어도 무어라고 하는 이가 없는 자운서원의 정문을 저녁 어스름에 어슬렁거리며 나섰다. 그리고 그 이름이 좋은 자유로를 되짚어 서울로 향했다. 임진강 하류의 끝 저 교동도 쪽 하늘이 술에 취한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책은 그를 아는 지인들로부터 기행문이 아닌 묵직한 인문교양서의 지위를 부여 받는다.
설악산의 괴짜 오현 스님은 너른뫼 선생은 명동성당 같은 곳에서 만나면 앞면은 그곳 종지기같고 뒷모습은 성직계같다. 그런가하면 가야산 해인사같은 곳에서 만나면 앞면은 그곳 방장(方丈)같고 뒷모습은 부목(負木)같다. 선생의 서화는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정자와 묵향이고, 장구(章句)는 함몰만(陷沒彎) 모래펄에 앉았던 기러기떼가 날아간 자리에 있는 울음이다.
신경림시인은 이 기행문집은 그의 높은 인문 교양이 그려 보여주는 한국의 문화 지도다. 기교가 없는 기교가 얼마나 더 높은 기교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전혀 꾸밈이 없어 보이는 질박하고도 개성적인 문장은 문화 지도를 그리기에 아주 적절할 것이다. 중간 중간 들어가 있는, 문화 현장을 편집 재구성한 그림들도 그의 높은 미적 안목을 엿보게 할뿐더러, 이 기행문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마음으로 그 세계를 여행하고 현실로 돌아오니 한옥의 대청이나 온돌은 먼 나라의 이야기, 폭염속에 뜨겁게 달궈진 아파트가 방출하는 열을 피할 수 없는 도시 살이들이 계속된다. 대숲 그림자에 물고기가 노니는 감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2009.8.10 정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