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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습니다. 작가분은 정말로 니트를 알고 있군요. 물론 모든 니트들이 같은 생태를 하고있는건 아니겠지만요. 어쩌면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노리처럼 작가도 그런 과거의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니트들의 생각 혹은 가치관, 사랑, 삶 이 소설로 잘 전달되지 못 한걸까요.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심지어 위험한 느낌이 든다는 감상평이 있을 정도군요.
자신만의 생활을 유지하고 살고 싶어하는 니트들의 모습. 그것이 쉽게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이 리뷰를 쓰는 계기가 된 다른 리뷰를 쓴 분처럼, 작가 이름에만 기대하여 읽는 것은 좋지 않은것 같네요.
만일 자신이 니트이거나, 니트인 친구가 있다면, 그런 아웃 사이더 성향의 감성을 지녔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쓸쓸하며 행복한 안타까움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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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외로워서 기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난 단언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러니까.
하지만 당신이 만약, 정말로, 철저하게, 파괴적으로 엉망이 되는 때가 오면, 당신이 자유를 버릴 수 밖에 없을 때가 오면, 그리고 여자가 없다면 내가 당신을 자동차 취미처럼 통째로 떠맡아주지.
나는 의심하는 것을 터득하고 말았다. 나는 겁쟁이다. 흔들리고 있다.
타고난 아웃사이더란 뭔데? _ 어디에 가도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거.
니트
내가 만난 <막다른 골목의 남자>, <잇츠 온리 토크>에 이은 이토야마 아키코의 세번째 작품. 이 작가 참 좋았는데... 어째 이번엔 좀 실망스럽다. 시니컬하고 담백한 문장도 그대로고, 사실 처음엔 정말 술술 잘 읽혔는데 ㅠ_ㅠ 무라카미 류의 <타나토스> 이후로 또 이렇게 역겨운 소설도 오랜만이다. 네티즌 리뷰가 혹평일만도 했다.
이번에 이토야마가 내세운 남자는 오타쿠에다 니트족이다.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구직의욕이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라지만, 여기선 사회적인 문제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관계 속에 놓인 그들을 한 등장인물쯤으로 가볍게 세워 두고 있다.
여자는 니트족인 그를 살려주었기 때문에 그 책임으로 원조를 한다며 합리화 하고 있지만, 결국은 합리화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이 쪽이다. 정상적인 취업, 누구나 하는 사랑,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혼, 그런 미래들이 이 소설에는 없다. 아니, 인물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거부 한다. 물론 흘러가는 시간 속을 살지만, 무언가가 정지된 사람들이 옴니버스 형식의 다섯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다. 어디에도 사회에서 멀리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저 타인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삶의 범주에서 한 발자국만 떨어져 '난 달라, 난 아니야' 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 밖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글 전체가 참 차갑다. 시니컬한 문체에서 더 나아가 이번엔 냉랭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작가는 아무것도 필요없어, 라는 말을 던져주어 의욕 없게 만들 생각이었나 보다. 그게 꼭 맞아 떨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니트는 따뜻하지 않고, 너무 차갑다.
아쉬운 점은 너무 표현에만 그치지 말고 무언가 방향을 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씁쓸하게 끝맺지 말고 좀 더 밝은 느낌으로. 하긴, 내가 이 작가를 좋아했던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지만; 이토야마 아키코. 정말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시니컬 담백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 좋았는데. 가을이라 그런지 날씨가 쌀쌀해져 그런지, 이런 내용은 여름밤에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잔잔하고 따뜻한 글이 그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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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그들은 일하지 않으며, 일을 위한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다. 일할 의향이 있는 구직자나 실업자, 또는 프리터족(정규 일자리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들)과는 완연히 다르다.
이토야마 아키코의 <NEET>는 바로 이 니트족에 관한 다섯개의 무채색 단편 소설로 이뤄져있다. 무리하게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신 니트족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이야기 곳곳에서 구할 뿐이다.
니트족인 친구-애인일 수도 있다-와의 재회를 다룬 첫 번째 단편 '니트'는 뒤이어질 이야기를 위한 개념 정의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당신은 모든 권리의 외부에 있고 건강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일할 마음도 없다. 즉 당신은 니트다. 당신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타인의 원조를 받기에는 면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한 니트를 설명하지만 그에 대한 연민도 엿보인다. "당신은 외로워서, 기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난 단언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러니까"
집세를 나누어 내는 동거인을 두고 니트족인 남자와 잠시 동안 '또 다른 동거'를 하게 되는 단편 '2+1'에서도 유사한 서글픔이 표현된다. 소설가인 그녀역시 니트족을 보듬어 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노동은 국민의 의무' 같은 말들을 하지만, 어째서 당신이 일을 해야만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 역시 일로 하고 있으니까 일인 것이고, 어느 날 갑자기 '소설 쓰는 것은 취미라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생활 수단이 아니다. 노동이란 대체 뭔가. 무엇이 올바른지 모르겠다"
마지막 이야기 '사랑 따위 필요 없어'에 나타난 한 니트족의 고백을 보자. 이누이는 장래가 기대되던 학도였지만 학업과 사업 실패로 인해 니트족이 돼버렸다. "기생충과 나의 차이. 나는 자손을 남기지 않아. 남겨도 곤란하지. 기생충과 나의 공통점" 그는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도 설명한다.
"타고난 아웃사이더란 뭔데?"
이토야마 아키코의 툭툭 내뱉듯 하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지친다 해도, 세상에 가난뱅이만큼 지치는 건 없다".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인터넷 회선마저 끊긴 니트족을 위한 말이다.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약혼자를 잃어버린 미치카 마코토는 괴로울 것이라는 친구의 걱정에 이렇게 답한다. "괴롭진 않아. 여기가(심장이) 울릴 뿐이야"
친구의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준다면 혹시 새 수건이나 걸레, 두루마리 휴지를 담은 별도의 박스를 숨겨놓았는 지 살펴봐야겠다. 만일 그렇다면 그 친구는 혼자만의 목적지를 따로 정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작가는 귀띔해준다.
* 이런 분께 추천 : 우리 시대 다양하게 존재하는 우울한 장면에 대해 알고 싶은 분, 이토야마 아키코가 "과연 오타쿠다"고 감탄할 것이라고 스스로 느끼는 분.
<201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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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NEET. 니트 니트족이라고 하여 No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의 약자인, 취직을 안하고 교육도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무직자 를 의미하는 일본의 신조어입니다. 표제작 NEET와 2+1이 이어지는 내용으로 니트족에 관한 단편입니다. 주인공 메구리바시는 소설가이고 2년 전 남자친구였던 그렇게 말하기엔 조금 거리감이 있는 아는 사람인 요미모토가 니트족이 되어 말라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물질적으로 도와주긴 하지만 그것이 동정이나 원조가 아니라 자신이 만나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바다에서 기다리다'의 번역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거슬리는 문체가 여기에서 또 발견.. 번역하신 분도 다르고 번역의 문제는 아니라 결국 이 작가의 문체 문제라고 결론을 내림. '바다의 선인' 느낌은 안나는 것 같습니다. 벨 에포크 반년전 약혼자를 잃은 미치카. 이사 준비를 도와주러 갑니다. 영어회화 학원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종사업종은 달라도 친해서 호주에도 함께 갈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사이. 이사 준비를 하면서 예전 생각도 하고 대화를 하고 마지막으로 고향에 가는 미치카가 놀러오라는 얘기를 하지만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연락도 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2+1 니트에서 1년 후의 이야기. 공장에 일하기도 했었지만 3개월 밖에 가지 못하고, 그래서 이번엔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부릅니다. 주인공 메구리바시는 동거인이 있는데 그녀와 사이가 안좋아서 대화도 하지 않는 상황. 메모로 힘든 친구가 올꺼라는 대화를 합니다. 자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살게 되면서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나니 사랑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동거인도 집을 나갑니다. 오히려 니트족인 요미모토의 생활고보다 주인공 메구리바시의 외로움이 더 견딜 수 없던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그를 이런 식으로 만나서 도와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겁쟁이 도쿄 역사에 있는 호텔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사귀고 있는 마츠오카 씨를 만나러 기차를 타야하는데 자꾸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두 사람의 헤어지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네요. 주인공은 아유미라는 부인과 별거중. 그리고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촌인 쇼코 씨에게서 길러졌습니다. 조금 어색한 관계인데 마츠오카 씨를 만나러 가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자신이 마츠오카 씨의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엄마보다 쇼코 씨의 목소리를 더 떠올린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쇼코 씨에게 가려고 합니다. 표현하지 않고 살았던 겁쟁이였지만 이제는 표현하고 살겠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좀 변태적인 내용이라 노코멘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