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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그랬던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우리 동네 노름꾼이 공자를
비웃으며 첫끗발은 개끗발이여. 학문은 왕도가 없고 도박도 왕도가 없다. 학문은 열심히
하는 인간이 최후의 승자고 도박도 운발 좋은 인간 당할 수 없다. 그러나 학문이고 도박이
고 왕도는 얻지 못해도 왕도에 버금 가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 그 기술을 습득한 자를 우
리는 ''꾼''이라고 한다. 꾼''과 비슷한 ''쟁이''와 ''장이''도 있다. 공자의 도를 루쉰은 아침꽃을
저녁에 줍는다고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정말? 아님 말고. 공자의 도와 노름꾼의 첫끗발.
차이가 무엇일까? 분명 노름꾼의 첫끗발은, 도박판 전체를 다스리려면 첫끗발의 집착을
버려라! 라고 주장하고 있다. 첫끗발에 집착하면 전체를 망친다. 첫끗발은 흥분을 유발시
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결국 무리한 돈을 걸게 되고 나중에는 통닭과 맥주 심부름 하
는 신세로 전락한다. 공자는 어떤가. 왜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을
까? 첫끗발로 딴 ''무엇''이 공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을까? 그리고 공자는 도를 깨달은 뒤
저녁에 자살하지 않고 제자를 이끌고 다니며 정치 컨설팅을 하다가 자연사 했다.
''두개골의 서''는 박물학적 지식이 넘친다. 나는 미국문학의 SF를 이야기 할 때 에드가 알
란 포우를 말한다. SF 소설의 효시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로 평가한다면 나는
미국 SF 소설의 효시로 포우를 생각한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복제를 예견했
다. 포우는 그림자를 복제인간으로 묘사했다. 헉슬리가 생물학적이면 포우는 심리적이다.
인간은 아직도 육체보다 정신을 더 탐구해야 한다. 유전자가 밝혀진다고 해서 정신의 모
든 것이 밣혀지겠는가? 어떤 단서는 포착하겠지만. 포우가 시조라면 실버버그는 미국 SF
계 비조격인 인물이다. 아시모프 같은 탁월한 상상력과 헤밍웨이 같은 문학성을 겸비한 실
버버그! ''다잉 인사이드''가 걸작인 이유는 실버버그의 박학과 만나는 탁월한 문학적 매력
때문이다. ''두개골의 서''도 매력이 넘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SF냐 아니냐? 내게는 무의
미 했다. 평론가들 밥벌이 문제의식일뿐! 창작은 뛰어나냐 뛰어나지 않느냐? 두 가지 기준
뿐이다. 노름판에서 따는 놈이 잘난 놈이고 왕일뿐이다. 설사 노름꾼이 공자나 노자의 철
학을 응용해서 돈을 따면? 그 책임의 카테고리가 공자나 노자에게 있을까? 공자라면 노발
대발 할 것이다. 소인배라고 마구 비판하겠지. 노자는? 말을 말아야지. 내가 도덕경 쓴 자
체가 죄의 시작이다라고 자학할 것이다. 예수는 죄가 없는 사람만이 노름꾼에게 개평를 뜯
을 수 있다고 했을까?
일라이, 네드, 올리버, 티모시. 네 명의 젊은이가 70년대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퍼즐 게임
처럼 네 명의 젊은이가 펼치는 심리와 의식의 흐름이 70년대 일상과 가치관의 파이프를 타
고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쏟아지는 마약, 섹스, 가족, 일회용, 영생......절대적 세계관(기
독교 중심)이 무너진 현대의 가치관 파탄. 개인의 목표는 뚜렷하나 세계의 목표는 뚜렷하
지 않는 현대. 노자는 천하가 신령한 기물이라 다루기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은 천하를
다스리려고 했다. 월남전 패배, 포르노의 등장, 미소간의 사이비 냉전, 비틀스, 히피, 아시
아의 신비주의가 급물살을 타고 미국의 언저리를 서서히 점령하고 왕성한 창착력의 실버
버그는 이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두개골의 서''를 내놓았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
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문화를 나에게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길''이
라고 하겠다. 길이 만든 문화. 지금은 남의 길도 자기 길이라고 우겨서 탈이지만. ''두개골
의 서''도 길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 길을 빼면 계란 없는 냉면이다.
유대인 청년 일라이가 발견한 ''두개골의 서''는 영생의 길을 안내한다. 미국이 과학적 합리
주의의 메카 같지만 종교의 힘도 거대한 나라다. 스티븐 호킹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 중 실
제 영향력에 있어 호킹은 그레이엄에 미치지 못한다. 호킹은 천재물리학자이고 이해해야
할 인물인 반면 그레이엄은 ''추앙''이기 때문이다. 추앙은 이해가 아니라 존경만이 필요하
다.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면서 상상력의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 문자는 규칙이 있어야 하
고 규칙을 모은 것이 문법이다. 문법의 역사는 기원전 4세기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
의 문법학자 파나니는 오늘날과 같은 문법체계를 이미 확립했다. 상상력의 제약은 아주 오
래전부터 진행형이었다. 순수문학과 SF문학을 따진다면 길가메쉬나 엔키두 설화에서 보
듯, 따지는 게 무의미할 뿐이다. 일라이가 발견한 영생의 비밀을 안내하는 ''두개골의 서
''는 길의 종착역을 의미하는 것일까? 호킹과 그레이엄 사이에 다른 문법을 어떻게 이해해
야 할까? 실버버그의 문학은? 죽음은 상상력을 제약하는 가장 큰 문법이다. 그 문법을 네
명의 젊은이가 습득하고 틀리고 오해하고 마구 뒤섞여서 펼치는 거대한 퍼즐 게임이 이
책의 매력이다. 단, 70년대라는 틀이 좀 낡았다. FTA를 앞두고 실버버그 시대는 좀 부럽
다. [인상깊은구절] 믿음. 내 삶의 얼마만큼이 이 두 글자에 의해 만들어져 왔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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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호러 - 두 개골의 서
1.SF?
작자 역시 이 책이 SF범주에 속하는지 의아스러웠던 모양이다. 영생의 탐색, 그 자체는 매우 SF적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영생을 탐색하는 수많은 도가계열 무협판타지도 SF일까? 결국 로버트 실버버그는 다시 단언한다. 휴고상과 네블러상 후보로 지목되었다는 자체가 SF라는 증거 아니겠냐고. 매우 매우 의문스러운 발언이다. 그 만큼 이 책은 SF라는 장르에서 특이한 책이다.
하긴 소위 인문학적인 SF를 표방하는 작품들이 종종 그러하다. <다아시 경의="" 모험="">시리즈는 어떤가? 대체역사 판타지라는 장르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랜달 개릿의 이 수작을 SF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체역사소설은 평행우주론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SF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일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호러미스테리성장소설이다. 네 명의 대학생이 영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이 다소 호러적인 결말로 치달으면서 그중 일부는 성장(?)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SF이건, SF가 아니건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2. 잘되면 신선, 못되어도 건강?
한 동안 이 나라에는 단전호흡의 열풍이 불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여러 책들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 중에 <잘되면 신선,="" 못되어도="" 건강은="" 챙긴다="">라는 제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명의 대학생은 도서관에서 미처 번역되지 않은 <두개골의 서="">를 발견하고 그 책에 서 영생하는 수도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된 정보를 토대로 그 수도사들이 살고 있는 사원으로 간주되는 곳을 향해 출발한다. 이들의 생각을 평균내어 보면 이렇게 표현된다. 잘되면 영생, 못되어도 여행의 즐거움.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은 1972년도. 한국의 80년대 말과 90년대 중반까지 뭔가 비슷한 분이기가 느껴지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신비주의, 신과학, 뉴에이지의 물결이 사회 전반의 변혁에의 열망과 뒤섞여 물결치던 시절. 로버트 실버버그는 그 시점의 한 단면을 잘라내어 우리에게 생생하게 재생해 준다.
동양의 신비를 서구적으로 재해석하던 시절, 노장사상, 기(氣), 선단술에 대한 호기심과 인도의 신비주의가 서구적으로 분해되어 재생산 되던 그 시절의 지식인에게 ‘영생’은 단순한 메타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고 대학의 최고지식인이 이 비합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혹은 반신반의 하면서 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캐릭터의 사고 곳곳에 묻어나는 모순, 합리적 이성과 직관적 믿음의 충돌은 바로 당시 지식 사회의 횡단면이다. 이 책은 그래서 뛰어난 소설인 동시에 지식인 사회에 대한 훌륭한 풍속자료다.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스츠키 다이세츠와 엘리아데가 보이고, 칼 융이 쓴 <태을금화종지>의 서문과 해설서가 보이고 프리초프 카프라가 숨어있다.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신지학회와 그들이 섬겼던(혹은 섬겼다고 착각하는) 숨은 그랜드마스터들이 슬며시 웃음을 띠우며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구식으로 해석되던 동양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시간이 있다면 이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써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주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서구적으로 재해석된 동양이 다시 우리에게 우리의 이미지로 다가왔고 그 때가 바로 우리의 80년대와 90년대 중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립고도 아스라 하지만 잊고 싶은 부분도 있는 옛 시절의 냄새.
3. 문체, 그리고 번역
이 책은 4명의 일인칭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들의 성격에 따라 네 가지 문체로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실버버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고약한 글쓰기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 실버버그는 훌륭하게 네 명의 캐릭터를 문체를 통해 형상화 하는데 성공했다. 왜냐하면 번역에서도 네 명의 성격은 멋지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티모시는 건조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단도직입적이고 네드는 현란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말이 길어진다. 이 두 캐릭터 사이에 일라이-그는 네드쪽에 가깝다-와 올리버-그는 티모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가 있고 이들은 각자의 성정을 일인칭 시점에서 거리낌없이 표현한다.
이 소설이 고약한 글쓰기 훈련이라는 저작의 주장에 동의하며 동시에 번역자에게는 더욱더 혹독한 훈련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근래에 읽었던 몇몇 번역 소설과 달리 매끄럽게 읽히는 것을 볼 때, 또 네명의 성격이 문체에서 드러나는 것을 고려할 때 번역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아 보인다. 덕분에 즐거운 글읽기, 행복한 글읽기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4. 그 밖에 몇 가지........
북스피어에서 나오는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지난번 <아발론 연대기="">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디자인이나 외장에 만족감을 느꼈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있어 보여?”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고 던진 마님의 말이다. 하드카피 양장본에 두께에 비해 가벼운 무게, 은백색의 책갈피띠, 멋진 표지 디자인, 본문에 바로 주석을 달아서 독서의 흐름을 끊지 않는 편집디자인........ 컨텐츠도 좋지만 소장욕을 불러일으킬만한 외장과 꾸밈새도 좋았다.
내 취향으로 판단하자면 결말부분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이 보다 나은 결말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결말과 각 캐릭터의 성격, 기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작자의 의도나 지향점을 분석할 여지가 또 생긴다. 분명히 작자는 무언가 다른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음 기회에 스포일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작자의 의도를 좀 더 분석한 글을 올렸으면 한다. [인상깊은구절] 난 믿어. 그가 말했다. 불합리하더라도 말이야. 왜냐하면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그게 유일한 희망이니까. 다른 행성으로부터의 통신문. 나는 방 안에서 우리의 붉은 뺨을 조용히 스쳐지나가는 차가운 죽음의 기운을 느꼈다.아발론>태을금화종지>두개골의>잘되면>다아시> |
| 단숨에 읽어버린, 더위를 잊게한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장르문학이며, 한편 본격소설이고 위대한 SF작가가 쓴 최고의 미스테리스릴러이며 근본적으로 SF소설이다. 작가가 서두에서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초까지의 시대상황을 담아냈다고 하며 특히 미국에서 이 시기에 일어난 철학적 혼란과 세대교체의 진통을 직설적으로 담아내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의 느낌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잘 깔려 있다.아홉번째 비의는 근본적으로 질량보존의 법칙,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연상케 하는 과학적 내용이며 일라이의 장 27장은 이러한 내용이 마치 큐브릭의 스페이스오딧세이2001의 시공간초월장면을 연상시키 듯 일라이의 일루젼을 장인의 솜씨로 보여준다. 문체와 구성 또한 네 명의 주인공을 번갈아 화자로 등장시키며 시종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원작에는 이러한 네 명의 화자의 개성이 좀 더 잘 문체화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실버버그는 르귄과 함께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작가이다. |
| 이 책의 처음 눈에 띄는 특징은 우선 제목 번역 센스가 가히 최고라는 것이다. 물론 좀 제목에 무게가 실려야 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떻게 [A book of skull]을 [두개골의 서] 라는 초절정 뽀대나는 제목으로 번역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우선 제목 번역하신 분께 만세 삼창을. 사실 이 책이 참 대단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제목은 처음 들어봤었다. (아니면 내가 한동안 SF쪽을 안 읽어서-특히 장편 SF는 읽은 지가 오래 되어서- 이름을 들었어도 기억을 못했거나.) 로버트 실버버그란 작가분도 이름만 겨우 들어봤었고(라지만 내가 아는 SF작가가 얼마 없는지라 이름만 들어봤다는 건 나름 유명한 작가라는 것이다만) 그 분 작품이라고 해봐야 겨우 [Dying inside]라는 책만 읽었을 것이다..라고 얼핏 기억하는 것 정도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 더욱 호기심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우선 이 책의 작가 서문이나 뒤에 역자 서문이나 모든 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SF란 장르에 대해서 잠시 언급을 하고 넘어가자면, SF나 환타지. 라는 장르는 참으로 모호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음악에서 재즈.라는 장르와 비교할 수 있을까?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 장르에 대해서 하드코어적으로 정의하고 몰두하는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이 들 모두 갖다붙이면 다 SF이며 환타지이며 재즈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길동전도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환타지이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SF인 것이라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얼마나 수학적이며 과학적인데!! ) 이 책도 사실 그다지 과학의 냄새가 많이 묻어난다거나 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정의하라면 심리 호러물이라고 정의하고 싶기 때문에;; 다만 SF작가가 SF라고 생각하고 썼다면, SF라고 취급을 해도 큰 상관이 없지 않을까. 특히 이런 아주 정확한 정의가 되지 않은 장르 부분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작가나 독자의 마음대로. 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이 책은, 어쩌다 발견한 [두개골의 서]라는 데에서 나온 ''영생의 비전''을 찾기 위해 4명의 대학생이 미국의 사막으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각각 4인의 시점에서 보여지며, 그러면서 그 네 명의 심리적 갈등과 함께 사건이 서서히 전개된다. 과연 그 두개골의 4의 아홉번째 조건인 ''한 명은 살인을 당하고, 한 명은 자살하고, 두 명만이 영생을 얻게 된다..''라는 문장은 어떤 식으로 풀리게 될 것인지? 영생은 과연 얻을 수 있을까? 누가 얻을 것이며, 어떻게 얻게 될까? 얻어서, 그들은 그 생을 어떻게 사용하게 되고,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정은? 이런 등등의 이야기가, 각각의 사람들의 정신 세계에 비춰져서 각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풀려나간다. 아주 자세하고 유려하게 말이다. 그래서, 책이 꽤 두껍고 빽빽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주인공 네 명은 하나같이 어딘가 맘에 안 드는 인간들이고, 책을 덮은 시점에서도 그다지 정이 안 가는 인간들이지만, 그들을 그들 나름대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저 맘에 안 드는 네 명에게 다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작가도 나름 대단하달까. 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한 50%정도의 결말은 예상할 수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한 사원이 정말 자세하면서도 신비스럽게 묘사되어 있어서, 그 사원의 신비하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느낌이 책으로부터 강렬하게 전해져 왔다. 그러다보니 이 책의 묘미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달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매력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정말, 깔끔하게 잘 써진 책이라고 생각된다. 심리묘사, 사건, 인물, 배경, 문체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달까. (제목 번역 센스까지.) 굳이 SF라고 생각하지 말고라도, 그냥 재미있고 괜찮은 소설로서, 한 번 읽어봐도 괜찮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
| 먼저 이 책의 구성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일라이, 올리버, 티모시(남들은 다 그렇다 쳐도, 왜 ‘티모시’라는 이름만이 이렇게 안 어울리고 생뚱맞아 보이는지...; 대를 이어가며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태어나면서부터 은수저을 물고 세상에 난 사람인데다, 외모 또한 멀끔한 상류층 백인이라면 뭔가 더 그럴싸 해보이는 이름이었으면 좋았을 뻔 했는데;; 티모시는 너무 헐렁헐렁하고 흔해 빠진 이름 같아서 순간순간 우습기도 했었다. 물론 이런 취향은 개인적이라 작가가 생각했을 때는 ‘티모시’가 상류계급 이름 같았을지도;),네드 이 네 사람의 관점에 의한 독백, 대화, 행동으로 두툼한 책 한 권이 오롯하게 만들어진 점에 참 감탄했다. 작가도 말했듯이 각각 다른 관점으로, 다른 태도로, 다른 말투를 정교하게 짜 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스머프>에 나오는 정형화;;된 캐릭터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모습까지 그려야만 했으니 그 고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나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니 작가의 실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용. ‘두개골의 서’ 넷 중 둘은 영생을 얻지만 둘은 죽어야 하고, 그 중 하나는 자살, 하나는 타살이라는 조건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영생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나만 해도 영생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젊고 건강하게 오래...한...몇백년 살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영생? 지구 및 우주의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언젠가는 노쇠할 텐데 우주가 멸망하고 갈 데 없으면 우주나 무한 공간, 시간을 영원히 떠돌아다닐 거야, 뭐야... 젊음과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 영생은 티토노스처럼 비참할 뿐이고) 그러나 바로 임박한 죽음은 거의 대다수가 거부할 텐데, 어떻게 두 사람을 죽이나. 특히 완전한 ’자살‘은 과연 누가, 왜 할 것인가. 이 부분이 참 궁금했었다. 남을 위한 죽음이라니... 그것도 제물로서. 그런 건 더더욱 거부하고 싶을 텐데 말이다. 물론 앞부분에서 약간의 색다른 미의식과 취미를 가지고 있는 네드는 올리버와의 동침이 성사되고, 티모시의 재력에 의한 명예욕을 충족한다면 죽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장하며 미국 기득권 계층(올리버는 약간의 태생적 약점이 있지만 학벌과 훗날의 직업군으로 커버 가능)의 상징과도 같은 올리버와 티모시에게 언제나 약자였던 유대계 일라이는 아마 자신이 타살될 것이라 생각한다. . . (흠... 책을 읽고 나서 쓰는 거라, 스포일러가 되는데... 책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넘기시길) 결과는 정 반대. 티모시와 올리버는 죽고, 네드와 일라이가 살았다. 물론 이들이 영생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작가는 그 부분을 ‘규정’해 주지 않았다. 단지 네드와 일라이는 ‘믿을 뿐’. 그러나 사회에서 당연하게 남을 죽이거나 짓밟고 위로 올라갈, 아니면 이미 올라가 있는, ‘승리가 약속된’ 계층의 사람들이 죽고, 사회적 약자 또는 부적응자가 살아남았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사실 티모시와 올리버는 건장한 체구다. 일라이와 네드는 왜소하다. 적자생존이니 뭐니 하며 강자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고들 하지만, 강자의 전쟁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 오히려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길게 살 수 없으니 굵게 폭력적으로 짧게 사는 것이다. 우주의 본성에는 질서도 있지만 무질서도 있고, 사실은 무질서가 더 근원이지 않나 싶어서. 그런 점에서 설정도 흥미로웠지만, 그러한 결과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참 설득력이 있어서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올리버의 자살이 가장 놀라웠지만, 음, 그럴 법도 해...라는 느낌. 마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쫓던 자베르 형사가 자살하는 것 같았달까. 절대 자살 같은 건 하지 않을 강한 사람이고 내면적 약함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올리버의 경우는 삶에 대한 열망이, 자베르의 경우에는 선에 대한 열망이 몹시 강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아와 정신을 지킬 사람으로 보였는데,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지자마자 생을 마감할 정도의 어떤....강직함. 참 재미있게 읽었다. 어떻게 진행되나 궁금해서 펼친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그리고 사족이지만, 이 책이 어떤 장르에 속하느냐는 정말 의견이 분분하게 생겼다. 하지만 역시 SF같은 느낌은 들지 않달까. 성장이나 심리 소설 정도?레미제라블>스머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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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 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들이 있다. 그냥 아무이유 없이 제목에 끌린다던가, 서평이 아주 좋다거나, 베스트셀러라거나 (사실 나는 베스트 셀러는 일부러 읽지 않을때가 더 많지만) , 주위에서 추천을 한다던가, 아니면, YES 24에서 논리정연한 리뷰어가 좋은 평가를 내린 책들을 책들을 따라간다거나... 그밖에 또 나는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책에 몰입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그 책을 읽고 싶어지는데, 이 책은 어떤 남학생이 열심히 보고 있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보게 된 것이다.
4명의 대학교 룸메이트가 우연히 알게된 영생의 길 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고, 2은 죽고 2은 살게 됨으로 인해 그 나머지 2이 영생을 얻게 된다는 명제를 가지고, 이 소설은 시작 된다. "영생" 이라는 점에서 S/F, 그들이 찾아나선 곳이 "두개골 사원" 이라는 점에서는 약간의 호러(?) 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 뿐이고, 이 4명의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두개골 사원으로 향하는 도중, 또는 사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되고, 결국은 삶과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결말로 이루어 지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는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4명의 캐릭터는 차별되어 있고 명확함에도, 때로는 한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어서 조금 지루할 부분도 있지만, 이 소설의 독특한 전개방식에 힘입어,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것인가 (혹은 누가 죽을것인가)에 몰입하다보면 쉽게 읽혀지는 소설인것 같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 서로의 비밀을 토로하는 뒷부분인듯하다. 그로 인해 2명이 죽게 되니 말이다. 나머지 2명이 살아서 영생을 얻을지는 과히 중요한 일인것 같지는 않다.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 무언가를 찾아떠나는 4사람을 생각하면 이 소설이 영화화를 염두해 두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꽃미남 4인방에 어떤 배우들을 매치 시키면 좋을까를 생각하면서 소설을 보면 더 재미나게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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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SF 판타지 소설이라길래 '인디애나 존스'에 '스타워즈' 같은 걸 버무려 놓은 소설인가 했는데 전혀.... 중세의 기사들이 영생을 위해 성배를 찾아 나선 것처럼 네명의 젊은이가 '두개골의 서'에 약속한 영생을 얻으러 존재 유무도 알 수 없는 수도원을 찾아 떠난다. 처음 얼마간은 성장배경이 다른 네명의 독백을 통해 미국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네개의 집단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고 그들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다들 똑같은 백인 미국인인데 그들 사이에도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내게 만족을 준 부분은 여기까지? 그들이 수도원을 찾아가 수련을 하는 과정 중 서로 돌아가며 다른 한명의 친구에게만 자신의 치부이며 죄악을 털어 놓는 과정에서 서로가 각각을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부분까지는 성장 소설로의 내용으로도 무척 훌륭한 내용이었다. 하나씩 아픔을 간직하며 그틀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그들의 모습이 여행을 하면서 들려준 그들의 독백과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두 친구의 죽음은 허무했다. '두개골의 서'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살인과 죽음이었을지는 몰라도 아니면 그이전에 계속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암시를 줘 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전의 치밀했던 구성에 비해서는 설득력도 떨어지고 제대로된 묘사도 피한 느낌이다. 남은 두친구가 두개골 사원에서 수도사로 살아갈 것 같은 뉘앙스로 끝맺는데 그렇게 영생을 사는게 그들이 꿈꿔온 모습이었을까? 우주의 진리를 알고 영생을 얻는 게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일까?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은 우주의 섭리를 거역하지 못한 것처럼 영생을 얻은 두 젊은이도 마음 속에 하나의 짐을 가지고 영원을 살아가지 않을까? 판타지나 SF는 내게는 어려운 쟝르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
|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앞길이 창창한 네 사람의 젊은 대학생들. 그들이 모였다. 영생이라는 뚱딴지 같은 것을 화두로 하여. 처음 영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학문적인 호기심에서. 또 어떤 사람은 삶의 권태를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이는 친구의 웃기는 모험을 비웃기 위해서... 그렇게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영생을 찾을 수 있다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책의 화법은 아주 독특하다. 줄거리는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여행에 참여하는 네 사람의 내면적인 시각에 의해서만 쓰여진다. 전지적 외부자에 의한 스토리에 대한 개입은 전혀 없다. 오로지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내면적 독백에 의해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자칫 지루할 것 같은 이러한 화법이 놀랍도록 흥미진지하다. 영생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때문이 아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놀랍도록 대단한 글재간때문이다. 그가 글을 이끌어가는 솜씨는 재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놀랍도록 정확하고 세밀한 심리묘사의 능력이 고전에서 읽는 대가들의 그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책은 SF라거나 판타지라는 장르문학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이 책이 다루는 소재의 특수성을 떠나서, 이 책이 가지는 주된 힘은 인간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말 사람의 심리에 천착하는 저자의 인식수준과, 그 인식을 재료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솜씨는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이 진행되면서. 그리고 영생을 위해서 치루어야 하는 과정들이 진행되면서 내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는 점점 그 깊이를 더해 간다. 그리고 엄청난 반전이 따른다. 그 반전은 미스테리 소설에서 나오는 줄거리의 반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약할 수 있는지, 약하고 허약해 보이는 영혼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판단은 유보된 채 소설이 끝난다. 영혼의 강약과 영혼의 순도의 질과의 상관성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남겨둔 채 책은 끝이난다. 그 여운...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책을 읽은 후에 남는 약간의 허전함. 그 카타르시스가 없는 허전함이야 말로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감동의 반대가 아닐까... 독특한 형식의 책이 주는 메시지도 독특하다. 그토록 치열하게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구를 하고도 마지막에 남기는 메시지가 없다는 점이.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 그것이 바로 저자가 남기는 선물이 아닐까. 영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일까... |
| 소설 “두개골의 서”가 “엑소시스트”의 감독인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공포영화나 미스테리물의 대가답게 으스스한 영화가 기대되지만 소설을 읽으며 연상되었던 영화와 함께 리뷰를 적어 본다. 서론은 “엑스파일”, 본론은 “이투마마”, 결론은 “오픈 유어 아이즈” 미국은 생각보다 넓은 나라다. 그 넓은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들의 파일들이 하나씩 FBI의 구석진 사무실로 모여든다. 그곳에 이성적인 스컬리 요원과 몽상가인 멀더 요원이 있었다. 신비주의적 소재와 미스테리한 구성으로 전세계의 매니아들을 거느린 엑스파일......영생의 비밀이 담긴 비서를 추적하는 네명의 대학생의 이야기인 소설 “두개골의 서”의 시작은 흡사 엑스파일의 에피소드중 하나와 같다. 그러나 넓기는 하되 신화적 깊이는 부족한 서구의 신비주의는 영생이란 판타스틱한 소재를 풀어내는데도 그 깊이가 한참 떨어진다. 도데체 그들이 수행하는 수련은 우리가 단학선원에서 하는 것들과 무엇이 다르고 왜 세명의 여자와 차례로 성관계를 할수 있는 능력 같은 게 필요한 거지?....그러나 정작 이소설에서는 영생의 메카니즘 따위는 관심도 없다. 중요한것은 영생이라는 비젼에 반응하는 네 주인공들의 태도이다. 인생의 한창 때에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유수의 대학생들이 왜 영생이라는 목표에 집착하는 걸까? 작가는 이 책이 1970년대 초반의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 가운데 1970년대 전반은 미국 사회에서 혁명의 시기로, 오랫동안 당연시 되던 것들이 뒤집히고 새로운 사고와 행위가 휩쓴 때라고 언급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경찰 행위는 미국의 정신적, 도덕적, 경제적 에너지를 소모시켰고 그에 대한 반항과 광란으로 이어진다. 히피차림, 약물, 성적 자유, 은어, 정치에 대한 비난등.... 이러한 경향은 SF와 같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쳐 “뉴웨이브”의 경향이 시작되었다고 작가는 직접 소개하고 있다. SF적이기도 하고 주류문학적이기도 한 소설 “두개골의 서”의 성격도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 시기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치관의 혼란을 겪은 시기였던 것 같다.(이때 소년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도덕적으로도 더럽혀진다.) 네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번갈아가며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고약하게도” 4명의 서로 다른 문체로 이 소설을 써야 했음을 의미한다.) 철저히 주관적이며 내면적이다. 또 그들이 털어놓는 비밀도 충격적이다. 그들이 두명은 죽고 두명만이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비교적 “괜챦은 확률”의 “두개골의 서”에서 제시하는 영생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이 겪는 가치관의(혹은 시대에 대한) 혼란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세의 자신을(죽음-부조리함-에 직면한) 거부하고 변화 시키려는 의지이다. 사회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젊은 시절 성장을 하면서 느끼는 혼란감은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루어졌다. 미국의 “아메리칸 파이”같은 가벼운 코미디보다는 멕시코 영화 “이투마마”같은 영화가 젊은이들의 성과 성장이라는 문제를 묵직하게 묘사한 것 같다. “두개골의 서”에서 묘사하는 젊은이들의 비밀(마치 계륵처럼 껄끄러운 성적인 경험들)을 읽으며 바로 이영화가 상상이 되었다. 결국 결론은 예언된바와 같이 두명은 죽고(한명은 살해되고 한명은 자살) 두명은 영생의 선물을 받는다. 그들이 정말로 영생을 받은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고 이소설은 끝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한명의 화자가 “여기서 얻은게 있다고 생각해?”라고 자문하는 장면이다. 두 친구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그들이 얻은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치루고 오늘날 세계의 경찰국가로 군림하면서 세계의 ‘악의 축’들을(실제로는 약소국의 양민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그들이 “구하는 것을 정말로 얻을 수 있으라고 생각하는거야?” 하지만 이런 의심들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은 영생의 삶을 받아들인다. 환상속의 삶을 거부하고 잔인할지도 모르는 현실의 삶을 선택해서 마지막에 "오픈 유어 아이즈“하라는 말을 들은 세자르처럼 생존자들 역시 그리고 우리도 우리가 선택한 잔혹한 삶을 직시해야만 하는 시점이 왔다. “이해한다. 그런 폭풍우들이 닥쳐 올 것이다.....영원한 삶을 그대에게 내리노라.” |
|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현실이요, 그 현실은 곧 혼란이다. 개개인에게 부여된 기회는 마치 우리에게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삶은 수많은 제약 조건을 내포하고 있으며, 삶을 통해 우리가 이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남들처럼 살고 싶진 않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때면 어김없이 남들과 같은 것을 꿈꾸고 있는… 이처럼, 대다수가 평범함을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평범하게 살다가는 세상에서 무엇을 지향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침체된 분위기는 우리 세대의 희망을 읽지 못하는 눈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두개골의 서="">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저자는 1970년대에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당대 사회는 ‘무규범’이라는 단어 하나면 설명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배적이라 여겨지던 것들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도덕적 잣대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변모했고, 내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 것도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음을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거듭되는 전쟁의 기운 속에서 사람들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도 회의하기 시작했다. 이성과의 무절제한 동침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마약과의 입맞춤은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이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 위한 행위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4명의 대학생들 역시 이러한 1970년대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득 풍겨져 나오던 마초적 분위기에 나의 말초신경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두개골의 수호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화두로부터 그들은 자유를 꿈꾼다? 그렇다. 1970년대에는 누구나, 무엇이건 꿈꿀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 한계라 할지라도… 그렇기에 그들의 여행은 무모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담보로 영생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야릇한 욕망만큼이나 두개골 사원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수행(?) 역시 야릇하기 그지 없었다. 육체의 욕망을 억누르면서도 동시에 방탕의 영역을 넘나드는 애매모호함은 수련이라 칭하기엔 너무도 잔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잔인한 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동시에 상대의 고백을 영원히 자신의 비밀로 간직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정해진 규칙을 상대가 준수해주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그들은 벌거벗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하지만 격조는 다소 낮은(?) 경험들을 털어놓는 그들의 모습은 고백이라기 보다는 자기 방어에 가깝다. 안토니 수사의 “영원한 삶을 그대에게 내리노라”라는 말은 살아남은 두 명의 인물에게 ‘두개골의 서’에 쓰여져 있던 것이 실현되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안토니 수사의 선언보다도 강렬했던 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던가?’라는 회의적인 목소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민은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어쩌면 죽은 자에게 허락된 영원한 휴식이야 말로 영생보다 값진 평온함이 아닐까. 결국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삶이 아닌 죽음이기에…두개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