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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린토스2]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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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그 비밀의 서적으로 몇 사람이 수백 년 씩 살았다는 이야기는 갑자기 이 소설의 장르를 어디로 배치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불러일으킵니다. 다행인 것은 그냥 오래 살 수만 있다는 것이네요. 한국 판타지나 무협에서는 그 능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서 마침내 신의 수준까지 오르는 게 다반사인데 말입니다. 또한 그 장수한 사람들도 현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만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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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 비밀의 서적으로 몇 사람이 수백 년 씩 살았다는 이야기는 갑자기 이 소설의 장르를 어디로 배치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불러일으킵니다. 다행인 것은 그냥 오래 살 수만 있다는 것이네요. 한국 판타지나 무협에서는 그 능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서 마침내 신의 수준까지 오르는 게 다반사인데 말입니다. 또한 그 장수한 사람들도 현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만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 자체는 뛰어난 게 아니고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다른 분들의 감상에서 볼 수 있는 앞뒤 이야기의 단절 같은 것도 단점이겠습니다.

k****8 2009.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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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수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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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가 사회에 불러 일으킨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 소설로 시작하여 영화화되고, 더 나아가 종교적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그 이후 마치 막혀있던 입이 갑자기 뚫리기라도 한 것마냥, 성배를 소재로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작만 못한 것이 아류작의 운명(?)이라고 했던가? 의 명성에 편승에 인기몰이를 해보려는 듯 ‘여자 댄 브라운의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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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사회에 불러 일으킨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 소설로 시작하여 영화화되고, 더 나아가 종교적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그 이후 마치 막혀있던 입이 갑자기 뚫리기라도 한 것마냥, 성배를 소재로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작만 못한 것이 아류작의 운명(?)이라고 했던가? <다빈치 코드="">의 명성에 편승에 인기몰이를 해보려는 듯 ‘여자 댄 브라운의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 책은 기대만큼이나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내가 아직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13세기와 21세기. 무려 800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들며 펼쳐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세 권의 책을 지키고자 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담고 있었다. 새로운 영토를 지배하고자 했던 봉건영주들과 경제적 이익을 꿈꾸던 상인들, 갑갑했던 봉건사회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던 농민들의 야심 등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십자군은 상대에 대한 증오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듯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책장 곳곳에 녹아있는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함은 종교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잔혹함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알리이스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책을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앨리스가 본의 아니게 라비린토스 문양과 만나 그 안에 빠져드는 과정과도 흡사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라고 해야 될까?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는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까지도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이 두 사건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단서인 라비린토스 3부작이 어떠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그 책을 수호하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에 나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올바른 독서 방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가장 강렬했던 작가의 메시지는 다름 아닌 믿음이었다. 알리이스와 앨리스, 이들 두 인물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비슷한 뉘앙스만큼이나 그들이 봉착한 난관 역시 닮아 있었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목소리, 즉 직관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철저히 고립된 듯한 상황으로부터 그들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간직한 냉철한 이성의 힘 덕택이 아니었다. 마치 흩어진 퍼즐조각과도 같았던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 그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알리이스에게 그리고 앨리스에게 사랑으로 존재했던 기렘과 윌 그리고 이 두 사건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앨리스가 나타날 것을 믿으며 버텨왔던 사제 드 세르비앙. 그들이 가졌던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은 전개되지 못했으리라. 작가의 목소리와 사제의 목소리가 혼합된 후반부의 혼란만큼이나 사건 역시 혼란 그 자체였다. 작가도 혼란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 실은 등장 인물, 특히 윌의 급작스러운 등장 등 이야기의 전체적인 유기성 면에서 어딘가 모르게 삐걱거리고 있긴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야기가 그렇듯 정의가 승리하는 뻔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 역시 책을 읽는 이를 다소 김 빠지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어쩌면 작가로서는 이보다 더 나은 방식의 결말을 준비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하나 같이 혼란스러웠으니 말이다. 동굴에 적혀 있었다던 ‘Pas a pas…’ 라는 글씨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한 단계씩 잔잔하게 앞을 향해 전개된다. 비밀스러운 존재였던 성배, 라비린토스 3부작이 끝까지 비밀로 남는 과정 역시 (모든 것이 완결된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격렬한 듯했지만 그 시점에서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앨리스는 800년 전 알리이스가 그러했듯 딸을 낳음으로써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해 꽤나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역사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가치를 판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영원히 침묵함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진리를 수호하고 있는 것일지도…
q*****2 2006.09.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