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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서평단에 참여해서 어느 정도 서평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책을 읽으니, 책 자체는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자유롭질 못해서 내맘대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정미경의 책! 여러 해 전에 한 번 읽고 책장에 꽂혀서 고스란히 먼지만 앉아서 있었던... 내용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그냥 읽고 싶어서 꺼냈다. 다시 펼치고 읽었다. 읽었더니 내용이 다 생각이 난다...ㅋㅋㅋ 근데... 재밌고 빠져든다... 역시 책은 부담없이 읽어야 술술 나가고 마음도 편안하다. 그래도 또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평단 지원을 할 것이고, 일단 지원을 했으면 꼼꼼하게 읽고 성실하게 서평을 올릴 것이다. 그게 나이까... ㅎㅎ 지금도 읽어달라고 외치는 책들이 있으니 요것만 쓰고 읽어줘야지... ㅋㅋ 읽을 책들이 나를 기다린다는 건,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선물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과 같다. 멋진 선물이 들어있는 상자와 같은 책들...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조심스럽게 풀듯이 멋진 내용들로 꽉 차 있는 반듯하고 소중한 책들을 떨리는 손으로 펼치고 조심조심 예뻐해 줘야지...힛...
이 소설집의 맨 마지막 단편소설이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불륜을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게 작가의 능력일까, 아님 작가의 특권일까. 일상을 표현하는 표현법들도 담담하면서도 예쁘다.
"브람스는 그랬지. 고독하되 스스로는 자유롭다고. 난, 고독해야만 자유로움을 느껴. 고독은 내 일상의 에너지야." "발칸반도의 어둠이 흩어지기 전, 무거운 공기가 흔들리기 전, 자정부터 새벽 사이에 줄기를자른. 강한 향기가 고스란히 있는 그곳의 장미가 지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거야." 마치 자신이 가 본 듯, 먹어 본 듯 여자 앞에서 읊어대는 남자, 멋있는 척 하지만 수다스러울 만치 말이 많은 남자, 이런 외로운 한 남자의 영혼이 있다면 정말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까, 나도 판단이 안선다. 마지막 두 줄의 여운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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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밀매로 사형수의 심장을 얻어 목숨을 건진 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분쟁 지역 전쟁터로만 달려드는 다큐멘터리 PD, 방탕하고 뻔뻔한 엄마 때문에 망신살 뻗치는 빚잔치에 끌려다니는 텔레마케터, 교실에서 투신한 친구의 모습을 본 뒤 히키코모리가 되는 수험생 소년,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 같은 애인을 버리지 못하는 백화점 직원,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것들을 자시 경험인 양 수다스럽게 떠벌이는 기러기 아빠…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상을 고전적인 서사 구조 안에 놓고 세련된 문체로 끌고 나간다. 사랑보다 오늘 밤 편히 잠들 수 있는 내 방이 더 중요한, 절실하고 구태의연한 고민들도 정미경은 날렵하게 써 내려갔다. 남루한 삶일지라도 이어나가려면 비밀과 거짓말도 없어서 못 쓸 지경이다. 허위의 가면이 없다면 집요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버틸 것인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을 향해, 때로는 나 자신에게 “이러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적이 없었는지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이러지 말아요.”나는 이 말이 너무 슬펐다. 외롭고 괴롭고 답답한 사람들.
사랑마저도 말랑말랑하지 않다. 왜냐하면 죽은 줄만 알았던 약혼자에게 3년만에 전화가 온 것보다, 그까짓 사랑 나부랭이보다 경매로 넘어가게 생긴 9평짜리 전세 원룸이 더 중요하고, ‘누군가를, 정말, 사랑해본 적 있니?’라는 질문에는 모호한 대답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이런 얘기들이 있다. 한없이 뻔하고 궁상맞고 지겨운 우리들의 이야기.
해설을 읽어 보니 이 작가는 “서사 구조의 고전적 안정감, 미묘한 정서를 옮겨 담는 섬세한 문체, 존재와 삶을 응시하는 강렬한 시선, 이 세 가닥의 튼실한 끈이 수놓은 푸경은 요즘의 우리 문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배수아보다는 고적적이며, 전경린보다 차분하고, 공지영보다 다양하면서, 신경숙보다 세련된, 그리고 은희경보다는 절실한 어떤 세계가 그에게 있다.”고.
그 어떤 세계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일상의 양면성과 생의 이면으로 말하기에는 너무 교과서적이다. 일상의 양면성과 생의 이면을 다루는 게 소설이고, 이것을 포착하는 눈은 모든 창작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니 말이다. 정미경의 소설은 무겁고 진지하고 예리하다. 또 가볍고 날렵하고 세련된 멋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지만 나는 정미경의 어떤 세계가 조금만 밝아졌으면 좋겠다. 여유와 긍정과 화해가 넘쳐나는 정미경의 소설은 물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러니 조금만…… 아무튼 묵직한 슬픔이 꽤 오래 갈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건 거짓말이나 불성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 사이를 끊어놓는 것은, 물 위로 떠오른 익사체처럼, 대개 감추어져야 할 사실이다. 대부분의 진실은 불결하고 때로 사악하다. 일상이 도덕교과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바보들은, 그 고집 때문에 잃지 않아도 될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빈손을 내려다보면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그 사람이 더 소중했다고. 아버지가 잠 속에서 중얼거리는 다른 여자의 이름을 들었다 하더라도, 며칠씩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무살짜리나 입을 만한 레이스투성이 블라우스를 입고 아버지를 찾아가 울고불고 하지만 않았다면 엄마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 나는 불편한 소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금방금방 넘어가거나 뻔한 감동을 주거나 글자가 시원시원하게 되어 있거나 하는 소설보다는 그 반대인 소설들.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고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스럽거나 우아하지 않으며 글이 많아서 자칫하다가는 지루하게 여겨질 것 같은 소설들. 그래야 소설을 읽는 내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이다. 남의 삶이고 남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내 삶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독히 낯선 일들에 대한 보고라고 해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고 쉽게 덮이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정미경의 소설에 이런 매력이 있는 줄 몰랐던 탓이다. 몇 편의 단편을 읽은 적은 있으나 소설집을 읽기는 처음이어서 한편씩 읽을 때마다 돌이켜보고 되돌려보고 했다. 왜 이제서야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인가 한심해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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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펼쳐들면서 읽었던 소설집인데 이제서야 다 읽었다. 삶의 부분을 파헤치기보다는 애써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는데 마음이 아렸다.
p33 남자와 여자 사이의 역학이란게 그렇다. 멀리서 조금씩 다가와 그 간격 앞에 멈춘 것이라면 몰라도 가까이 있다 멀어진 사이란 그 원심력의 아득함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를 아프게 할 뿐이다.
p81 다만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매혹될 수 있는 것일까? 하긴 목소리는 사람의 속성 중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란다. 외모나 성격, 감성은 세월 따라 달라지지만 음성의 무늬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목소리에 끌린다는 건 눈이나 입술, 혹은 품성에 이끌리는 것보단 더 본질적이며 지속 가능성이 있는 매혹일지도 모르겠다.
p197 너에게 필요한 모든 걸 다 해주었으니 상처를 줄 자격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도, 나도. 사람들은 가족이 아닌 남에게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말들을, 절대로 주지 않을 상처들을 당연한 듯 가족에겐 던진다.
p217 모성애는 환상이 필요 없는 사랑이다. 나는 정재에게 엄마였을까. 환상이 없기에 모성애는 영원할 수 있다. 나는, 남편은, 우리의 환상을 여린 그 잔등에 얹고 또 얹었다. 내가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모니터링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p290 하긴 오늘은 보고 싶지 않아, 라는 말을 듣는 것보단 병원이라고 거짓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지 않다거나 당신을 견딜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한다는 건, 말하는 사람이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폭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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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고전을 제외하곤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정미경이란 작가도 아주 생소하고..
리뷰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정미경..이 작가의 장편도 궁금해진다.
읽을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맛이..
주변사람에게도 추천해놓았다.
예스 24에서 책 사서 읽어보고 리뷰쓰기는 처음..
것도 강추까지 날려가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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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재미있으신가봐요"
많이 읽지도 않은 한국소설에 질린 듯 요샌 일본 소설만 읽다가 잡은 책인데, 내내 잡고 다니게 만든다. 작년부터 이 소설의 제목은 들었지만,
7개의 단편은 모두 도시의 한복판에 살고있지만,
사형수의 장기를 몸안에 지니고 총알이 스쳐지나가는 곳으로 늘 떠나는 남자, 방문을 닫고 혼자 만의 세계의 갇힌 아들. - 그 아들로 인해 더 엉켜버린 가족들. 월급날 자신에 선물을 해 배달시키는 여자.
멀쩡한 일상속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외로워지는 순간 순간을 참 잘 표현해서 물없이 고구마를 먹다가 가슴 안쪽이 뻑뻑하게 막혀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묻혀버리지 않기 위해 나만의 모래를 끝업이 퍼 담고 있는 사람들인것같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면은 설탕보다, 화장지보다, 혹은 와인빛 루주보다 더 필수적인 것일 텐데. p.304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깜깜한 밤에 스탠드 켜두고 읽지 말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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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힘겹게 읽어냈다. 힘겹게 읽어낸다는 표현이 좀 거창하기는 하지만 몽환적인 느낌과 여전하게 어렵고 슬픈 80년대를 꺼낸 소설이라 내게는 다소 힘들었었다. 그리고나서 이 소설집을 선택한 것은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라는 다정한 제목과 멋스러운 화원의 입구를 꿈꾸게 하는 표지도 한 몫 거들기는 했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은 어떻게 쓰여 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정미경은 은희경이나 공지영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다. 나는 공지영과 은희경을 비롯한 여류작가를 좋아하는데 정미경의 소설집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두 작가의 작품과는 차별적인 그 어떤 것이 있다. 공지영의 글은 섬세한 면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무척 절망의 빛이 역력하다. 은희경의 소설은 공지영의 글에 비하면 부드러움이 덜하지만 공격적인 느낌과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정미경의 문체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그녀가 가진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 권의 책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건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염두해두기 바란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예로 보면 공지영은 과거만의 슬픔을 그대로 털어내고 있으며 은희경은 직접 그 내부에 들어가지 않은 채로 표현하고 있다. 정미경은 그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쓰고 있다고 할까? 아니다. 이건 나만의 궤변이다. 이 소설집은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녹록함과 내면의 진실과 보여지는 허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무화과 나무 아래 - 잘 나가는 다큐멘타리 피디인 나는 머나먼 타국에서 사형수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어차피 죽을 사람의 신장이라고 그렇게 자연스레 단정지으려 하지만 그는 그럴수가 없다. 나를 잃어버린 듯 방황하고 나를 찾으려 몸부림친다. 무언가 - 사고치는 엄마과 그 사고를 책임지는 딸. 가족만이 아니라면 달아나고 싶은 관계이다. 엄마라는 꼬리를 떼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 안에서 딸은 살아가는게 지겹기만 하다. 그녀의 직업은 텔레마케터로 목소리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난다. 보여지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공감하면서 의구심이 생긴다. 얼굴의 생김새가 변함에 반해 목소리를 변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다. 정말로 변하지 않는 것은 목소리일까,그렇다면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걀 삼키는 남자 -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스티브와 동거하는 나는 그 고양기가 너무 싫다. 거기다 매일 달걀을 삼키는 샘은 더 이해할 수 없다.결국 스티브 몰래 고양이를 안락사 키기기에 이르른다. 스티브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모에게 양육되는 과정에서 달갈을 삼키는 것으로 유일하게 칭찬을 받게 되고 그 이후로 매일 달걀을 삼키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존재함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일터인데 나 역시도 누군가의 그 본능을 모른척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치 않다. 모래폭풍 - 백화점 남성복코너에서 일하는 내게 온 한 남자.시간강사로 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경제적인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부드러운 말로 나를 위로하는 듯 하지만 내가 필요할때 그는 없다. 어쩜 그 진실을 알까봐 나는 두려웠는지 모른다. 지적인 그를 그가 던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모른다. 검은숲에서 - 내가 여전하게 여기서 살고 있는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클까? 어쩌다 보니 전입신고도 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도둑이 들어 계약서를 도둑맞았고 약혼자는 나를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엉망으로 흘러가는 삶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물론 똑똑치 못하다고 따가운 시선을 받을 지 모른다. 그렇치만 그런 삶들은 우리 주변에 엄연하게 존재한다. 사는게 힘들어서 그러기도 하고 너보다 내가 소중해서 그러기도 하며 나중에 라고 미루다 보니 또 그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구와의 수다일수도 있고 점점 늘어나는 적금통장기도 하며 책에서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에쁜 포장안의 선물일 수도 있다. 책 밖에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무얼 하고 있을까?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검은숲에서 나를 이끌어 낼 그것은 무엇일까?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 기러기아빠인 남자와 간호사인 재이는 정해진 관계를 지속해나간다. 서로에게 깊이 알려하지 않은 채 선을 그어놓고 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연하게 방송에서 그가 아내를 사랑하고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유학시켰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치만 그것은 보여지는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유학을 핑계로 별거중이며 아내를 이혼을 요구한다. 위층과 아래층의 관계로 만난 재이와 그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지만 보여지는 것은 그저 윗층과 아래층 이웃일 뿐이다. 그는 홀로이 죽게 되고 재이는 그의 이웃인 신분으로 그의 죽음을 맞는다.
7편의 소설속의 주인공은 PD,텔레마케터,영어강사,요리강사,대학강사,성형외과 의사등 소위 괜찮다는 직업들을 가지고 있고 소설속의 그들은 모두 활기차게 표현되어 보여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에 보여지지 않은 힘든 삶의 모습도 여과되지 않은 채 보여준다. 해피엔드라는 결말을 찾을 수 있는 소설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끝이 아니기에 어떠한 결말도 맺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끝을 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다른 이의 죽음과 맞바꾼 나의 생명도 감사하지만 죄책감을 버릴 수 없고 핏줄이라는 이유로 나를 묶어놓고 있는 가족도 그러하다. 포기하고 싶은 내 삶도 포기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정미경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심을 내고 살고 있다. 건조한 마른 장미꽃처럼 보이지만 그 마른 장미꽃이 간직한 향과 처음 만났을때의 그 싱그러움을 기억하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들을 만난다. 누구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들도 만난다. 그럴때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혼자라는 사실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미경은 이런 많은 날들을 견뎌낸 듯 그렇게 앞선 삶을 살아낸 언니처럼 글 속에서 누군가를 달래는 듯 보여진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는 그런 눈을 만난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뿐일때,그럴때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오래 우는 것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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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생동감있는 외형적 묘사는 물론 감정의묘사조차 눈으로 읽으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느낌이 드는 단편집이다... 매우 드라이하면서도 향과 빛깔이 짙은 와인을 마신 기분... 단편집이라는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첫 편을 읽고 났을 때 그 목마름을 두번째에서는 해갈되어갈 것이란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져서 당혹했던 기억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본 감정이다... 왠지 항상 목마를 것 같은... ^^* 가난함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른 ''부족함''들이 따분함을 못이겨하던 내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조차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고 대들 듯이 던져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있었는가 하는 반문을 여운으로 남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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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님의 소설은 무섭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역학이란 게 그렇다. 멀리서 조금씩 다가와 그 간격 앞에 멈춘 것이라면 몰라도 가까이 있다 멀어진 사이란 그 원심력의 아득함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를 아프게 할 뿐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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