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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라는 이름은 비단 심리학 서적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인문서적에서 자주 언급되곤 한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그가 제창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은 학회와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는데,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도 허울에 불과하며 결국은 내재된 경험의 산물을 반영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여겨지는 자유의지가 선행적 경험의 발로일 뿐이고 한 인간이 경험한 모든 것들에 대한 자료를 취합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행동 또한 예측가능하다는 스키너의 이론은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지만 사회통념상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스키너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게 된 것은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 언급된 '스키너의 실험'을 통해서였다. 스키너는 조건 반사에 '강화'를 추가해 실험대상의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실험결과를 확장해 인간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추측했고 개인의 자유와 자유의지라고 불려지는 것들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온갖 현상들을 신의 뜻 혹은 신의 벌로 대체했던 것과 다름없음을 주장했다. 최근 읽었던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자본주의 시대>에서 다시 스키너의 실험과 행동주의 심리학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행동주의 심리학이 주장하는 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월든 투>라는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월든 투>는 스키너가 자신의 이론을 소설로 표현한 것이다. 주인공 프레이저는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는 심리학자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구성원을 모아 대를 이어 지속될 수 있는 공통체(월든 투) 건설에 목표를 둔다. 월든 투에서는 환경적/개인적 통제를 통한 훈련으로 인간이 갖는 온갖 부정적 감정들, 즉 비생산적인 감정들을 배제하고자 한다. 노동의 효율을 높여 노동시간을 줄이고 각각의 구성원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종사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다수가 하기를 꺼려하는 노동에는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꺼이 노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출생 시부터 공동체의 방식에 따른 공동양육이 시작되고 아이의 연령과 훈련 경과에 따라 주어지는 자극의 종류와 강도를 달리해 어린 시기부터 자기 통제의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제력을 키워 자기통제에 익숙해졌다고 여겨지는 시기가 오면 그들에게는 충분한 자유가 주어진다. 이 상태에 이르면 개체는 욕망, 분노, 시기, 질투 등의 감전에 둔감해지고 긍정적 감정이라 할 수 있는 평화, 행복, 만족 등의 감정이 주로 남게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남과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또한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는 인플레이션, 실업, 분쟁, 환경 오염, 권력의 남용 등으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과정이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진행되고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값지고 연속성을 띨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월든 투>는 1948년에 발행됐고 한국에서는 번역본이 2006년에 초판이 발간됐는데 15년이 지나 새책을 구매했는데도 변색된 초판 1쇄를 받아본 것으로 미루어 보자면 그다지 인기가 많은 서적은 아니였던 것 같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스키너가 전달하고자 하는 행동주의의 핵심을 짐작할 수 있는데 스키너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론이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마 최근에 읽었던 <감시자본주의 시대>에서 IT 대기업들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봤기 때문에 더욱 공감하는 바가 컸을 수도 있다.
난 심리학자도 아니고 심리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인간의 행동과 자유의지가 어떤 식으로 발동되는가를 묻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사고의 한 갈레로 <월든 투>가 좋은 예시를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을 때 극단적 사회주의를 염두에 두고 읽는 것처럼 <월든 투> 또한 그 안에 담긴 행동주의 심리학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아주 재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랬듯) 상당히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PS) 1.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만민이 약의 힘에 의존해 행복/만족을 획득한다면 <월든 투>의 구성원들은 철저하게 계획된 훈련을 통해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며 행복/만족을 향유하게 된다. 전자에서 '당신은 행복하다'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외부적 인자(약물)가 개입하지만 후자의 행복에는 이전에 겪었던 경험에서의 학습이 필요할 뿐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선동이 동원되는데 스키너의 <월든 투> 세계관은 <1984>보다 근원적인 정신적/행동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스키너의 이론이 실제로 적용되었다면 어떤 사회가 생성됐을지 짐작하기는 힘들지만 스키너의 의도대로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과연 그 사회가 올바른지에 대한 회의감은 남게 될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했던 노동자의 이상사회가 인간의 본성을 간과한 이론에 그친 것처럼, 스키너의 <월든 투>도 공동체의 초기 구성은 '뜻을 함께하는 자발적 참여자' 로 선택된 집단이지만 이런 집단이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대를 이어 나갈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발전의 저해와 분쟁 및 인간의 다양성으로 인한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노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스키너의 행동과학이 의료 분야와 교정 분야 등 특정한 상황에서 선택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는 점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2. <감시자본주의 시대>가 동기가 되어 <왈든 투>를 읽게 됐는데 <왈든 투>를 읽고나니 <감시자본주의 시대>가 더 오싹하게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