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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만에 걸려온 옛연인의 전화. 어찌보면 진부한 내용인데도 오사키 요시오의 손끝에서 그려진 푸른 풍경은 가슴 밑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심연의 짙푸름처럼 서늘하고 낯설기만 하다. 네모난 심장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운명처럼 잃고 지우고 다시 떠올리는 반복의 순환… 그 기억들이 야마자키의 심장, 네모난 수조안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한번도 잊은 적 없는 듯이 바로 어제일 처럼 선명하게.
그때의 그녀에겐 야마자키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을수도 있고 이미 유키코가 그를 떠나겠다 마음을 정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와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그저 두 손에 잡히지 않은 기억들이 그리웠던 것일까. 혹은 후회의 뒷그림자를 좇아 올 수밖에 없었던 건가. 나는 처음 이 책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을 때 어떤 예감을 했고 그로인해 몇 번인가 망설이다 한번에 읽어내렸다. 그러나 내 예감은 빗나갔고 그 텅빈 자리에 멍하니 서서 몇 번인가 야마자키처럼 무기력하게 기억에 대해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 여름을 지나 가을, 추석에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을 갔었다. 그때 처음 만난 ‘죽음’이 왜그리 낯설고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졌던지. 1년전인데도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친구의 입가에 어색하게 달렸던 미소, 창백한 얼굴의 아줌마, 검은 상복, 부쩍 말라버린 손가락, 짙은 향냄새. 왁자지껄 떠들며 고인의 명복을 빌던 사람들…
그때의 내가 처음 만난 죽음은 이토록 현실성이 없었고 가만히 서있었는데도 급류에 휩쓸리듯이 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마지못해. 내 안에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은 어떤 계기를 통해 어쩌다 영문도 알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처럼 가슴 밖으로 스며나와 바르르 입술을 떨며 울음을 참던 그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기억이라는건 이렇게도 얄궂게 가슴을 두드리기도 한다. 내가 이 기억을 끄집어내게 된 계기는 ‘파일럿 피쉬’이다. 고통스러운 병환 중에 자식새끼 살리기 위해 죽음이 목줄기를 움켜쥐는 그 순간에도 산소호흡기를 거부한 친구의 아버지가 너무도 그 물고기와 닮아있어서 였다. 최적의 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서글픈 운명의 그 물고기와.
책 곳곳에 퍼져있는 치명적인 독은 ‘죽음’이다. 와타나베, 가나, 유키코, 사와이…심장을 파랗게 물들이는 ‘죽음’ 과 기억의 ‘부재’ 혹은 잃어버린 ‘무엇’과 함께 표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간의 죽음이 책 속에 서슬처럼 푸르게 남아 손끝마저 아리게 만들었다.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떠올랐을 뿐이다. 내 주변에도 파일럿 피쉬와도 같은 운명을 걸어나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한낮에 꾸는 일장춘몽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기억의 호수, 그것은 무기질의 무엇을 형상화 시키듯이 내 가슴안에 부유물이 되어 수면위를 가로질러 헤엄쳐 나갔다. 어둠이 길게 누운 그 자리에서 몇 번인가 울음을 만나고 웃음을 만나고 그렇게 우리는 기억에 기대어 살아왔던 것이라 말하는 듯도 했다.
야마자키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기억은 놀라울 만큼 가슴 속안에서 출렁거리고 있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물은 아무리 잡으려해도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파일럿 피쉬는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수면위처럼 맑고 투명한 물덩어리로 뭉쳐져있다. 얼붙어버린 결정체들이 쐐기처럼 박혀들 때 손바닥안에서 녹아든 물덩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눈물이든 아니면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이든.
물 속을 부드럽게 유영하는 물고기의 비늘이 눈부신 햇빛에 반작거리는 찰나의 순간, 어둠 속 깊게 침노해 가라앉아있던 기억들이 울음처럼 솟아나는 기분으로 책을 덮어냈다. 슬픈건지 기쁜건지 알 수 없는 기분, 마치 기억의 호수 부근 기억의 숲 속을 헤매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무기력감이 온몸을 휘감아 눈을 감아도 머릿 속안엔 푸른 빛깔의 물 속이 출렁이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꼬리없는 그 개처럼, 팽이와 같이 몸을 굴려 잃어버린 잔상과 기억을 찾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것은 곡 죽음이 아니라 잃은 것에 대한 ‘후회’이고 두려움이라 생각 되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 무서운게 아니라 야마토누마 새우처럼 성장하며 어딘가에 자신의 허물을 벗어내듯 잃어버린 그것을 두 번다시 잡아볼 수 없음이 서글프고 무서웠던 것이라고.
달라이 라마는 ‘죽음’을 헌옷에 비유했다. 헌옷을 벗어내고 새옷을 걸쳐 입는 것이 죽음이라고. 그렇다면 기억은 어떤 것일까. 기억 역시 과거를 벗어내고 새로운 옷을 걸쳐 입는 것일까. 겹겹이 덧쌓여 가슴안에 묻어두는 것이 기억인가. 기억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그 사람과, 그 시간과, 그 풍경과, 내가 머문 곳과의 추억이 아닐까. 모호한 부드러움을 사랑한 유키코였지만, 스웨덴 록밴드의 보컬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속에서 서서히 틀어져 그녀와 그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유키코는 뒤돌아보지 않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다. 사다리에 올라간 어린 아이처럼 뒤돌아보면 무서워, 또 자신의 무엇인가가 붕괴되어 무너질 것 같아서 어느 길목으로도 들어서지 않은 야마자키를 두고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깊게 걸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유키코는 현명한 여자이지만, 또 바보같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느꼈다.
그것은 바보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어느 쪽 길이 편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길을 선택해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후회를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변명일 뿐인 것이다.
내 예감과 다르다 지적한 부분은 나는 커다란 슬픔을 목구멍으로 집어넣는 그런 울음을 떠올렸던 까닭이었다. 와타나베씨가 파일럿 피쉬가 아니라 야마자키가 사랑하는 옛 연인을 위해 그러한 희생과 헌신으로 그녀에게 ‘파일럿 피쉬’가 되어줄 것이란 예감은 보기좋게 빗나갔던 것이다. 격렬하게 솟구치는 감동이 아니라 잔잔하게 가슴으로 스며들어오는 파일럿 피쉬는 처음 연푸른 색의 물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행복할때도 그렇지 않을때에도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나는 지금 오른쪽 길에서 벗어나와 왼쪽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내 손엔, 프로스트의 ‘길’이 쥐어져 있다.
-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 [인상깊은구절] 그 동안 대체 몇 개의 껍질을 나는 벗었을까. 껍질을 남기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는 새우처럼 분명 언제 어딘가에서 나도 성장했고, 그럼으로써 무언가를 벗어버렸거나 혹은 뭔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p 37 그 무렵 두 사람은 젊었고, 슬픔이나 분노 질투나 고독, 모멸과 증오, 그런 유해물질을 분해하는 니트로소모나스도 니트로벡터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p 63 "…기억은 자기 자신의 일부이고, 우리는 좋든 싫든 기억과 함께 살고 있으니까.“ -p 78 박테리아가 포화된 상태의 수조 속에 포르말린을 투여하듯 모리모토는 알코올을 자신의 뇌에 계속 넣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여하는 양을 잘못 조절하는 바람에 박테리아의 수가 너무 많이 줄어든 수조는 급격히 균형을 잃고 붕괴되어 버렸다. -p 79 "역시 당신은 못 말리는 방향치예요. 여러 의미에서의 방향치. 그러니까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골목길을 헤맨거라고요. 분명. 그래서 지금 너무 피곤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강바닥에 누워있는 것은 그만두고 아무튼 현실에 누워 있는 쪽이 좋을 거 같네요. 그렇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자는 거예요. 그냥 무조건 잠만 잘 것. 지금 당신이 뭔가를 생각하면 분명 그것은 전부 미로예요. 그곳을 아무리 걸어도 그냥 피곤하기만 할 뿐 아무 데도 도착할 수 없어요.“ -p 88, p 89 그 사랑이 정말로 진심이었다면 두 사람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거야. 나는 그것을 믿고, 거기에 걸어볼래. 네가 또 길을 잘 못들어 내가 울고 있는 카페로 우연히 들어오게 될 날을… 야마자키의 불분명하고도 애매모호한 부드러움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했어. -p 155 이렇게 무방비한 시간이 흘러간다. 행복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그리고 흘러가버린 시간은 갑자기 소리도 없이 이 수조처럼 마음속 깊숙이에 덧쌓이고, 어쩔 수도 없을 만큼 덧쌓이고, 그래서 결국 손으로 잡을 수조차 없게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고, 그렇게 켜켜이 덧쌓여가는, 그렇게 두 번 다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 늘어만 가는 게 무섭다. 분명 지금 이 순간처럼 잊을 수 없는 행복하고 조용한 시간 하나하나가… -p 191 "개는 인간의 10분의 1밖에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기쁨도 슬픔도 인간의 열 배일 거예요." -p 206 "나처럼 가야 할 바른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오른쪽 길을 주저 없이 나아가지. 그리고 한 번 그 길을 걷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돼.“ - p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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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좀 지난 책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오사키 요시오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웹사이트에서 책 소개를 봤을 때 이 글을 보고 선택하게 됐었다.
"옛 애인으로부터 19년 만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비롯된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를 투명하고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서정적인 묘사.. 그 말때문에 선택한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방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파일럿 피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 알게된 파일럿 피쉬의 존재가.. 무척 생소하면서도 인상깊었다.
감동적이거나 화려한 문체의 글이 아닌 다소 가벼우면서도 조금은 빠져들 수 있는 소재를 찾는다면 한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파일럿 피쉬눈 수조 속의 생태계를 맞춰 주기 위한 고기다.
사람들이 찾는 화려한 고기들을 위해 그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 그 일이 끝나면 버려지는 파일럿 피쉬..
내가 수조관 속 물고기라면 어떤 물고기일까?
내가 사는 세상이 수족관이라면.. 나도 가끔은 파일럿 피시가 될 수 있을까?
인공적으로 만든 수족관 속 세상..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해도 운영 될수 없는 공간..
내가 살고 있는 공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공적이 아닌 스스로 정화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그런게 사람들이 얘기하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일까?
내 주변에 파일럿 피시가 있는지.. 그리고 나도 가끔은 파일럿 피시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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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년이 흘러버렸지만, 부쩍 쌀쌀해진 이맘때쯤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버려두고 혼자 책구경을 하다 파일럿 피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리기도 했고, 그저 청춘 소설의 산뜻한 문장들이 좋아 일본문학에 빠져들었던 때였는데, 그 시절 읽었던 책의 느낌이 너무 흐릿하여 이번에 책을 받아들고도 한참이나 겉표지만 노려보고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었지..결국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며 다시 읽기를 시작했을때야 비로소 기억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순식간에 책에 빠져들어 끝까지 다 읽고 나자 또다시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아련함과 무서움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파일럿 피쉬는 처음 수조를 들여온 아주 잠시동안이 '현실'이고, 다른 물고기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그 순간부터 '기억'이 된다. 다른 물고기들은 파일럿 피쉬가 남겨놓은 그 기억에 의해 평화롭게 살아간다. 파일럿 피쉬가 이미 사라지고만 수조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 기억이 자라고 숨쉰다. 유키코와 야마자키에게도 그러한 기억이 19년의 틈새에도 꾸준히 자라나고 있었다. 잊었다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예고도 없이 불쑥 기억나는가 하면, 또 그러한 기억들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어디선가 웅크리고 있어, 먼 미래에까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억은 추억일 뿐이지만, 또 기억은 삶이 된다. 살아가며 내가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은 내 삶을 따라가며 나를 이루고.. 그 고요한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이 순간을 나는 또 다시 기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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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많이 기다리던 책이었다.
포장지를 푸는 순간 투명한 하늘빛 표지 뒤로
예쁜 물고기들이 마치 헤엄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파일럿 피쉬라는 게 있는데
그 건강한 물고기의 똥 속에는 건강한 박테리아의 생태계가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수조를 설치할 때 제일 처음 넣는 물고기가 중요하고,
그 건강한 물고기가 생태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수돗물 안에서 똥을 싸면
약 2주일 후에는 건강한 물고기의,
즉 좋은 상태의 좋은 비율로 수조 안에 박테리아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과 너무도 닮은
수조 속의 생태계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만든다.
''사람은 한 번 만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
사람에게는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고,
좋든 싫든 그에 대한 기억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야마자키가 유일한 어릴 적 친구인 모리모토의 고통을
비록 치유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치 자기 일처럼 여기는 행위는
기억이 여전히 현재와 연결이 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일본 작가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오사키 요시오의 작품은 한 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이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있을 거라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한 번 만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 사람에게는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고, 좋든 싫든 그에 대한 기억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
| 내게 좋은 기억을 준 사람은 추억이란 배경속에서 아름답게 남을 수 있고 내게 나쁜 기억을 준 놈은 악몽이란 배경속에서 지독히도 날 괴롭힌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망각 뿐... 망각의 독약은 내게 좋은 기억을 준 사람까지도 잊게 만들곤 한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나쁜 기억만 없애주는... 그런 약은 없을까? 궁금하다면 파일럿 피쉬. 꼭 읽어보시길 ^^ 작가 특유의 수수한 문체가 우울한 느낌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왠지 더욱 맘에 든다고 할까.... (특히 표지가 더 끌린다;)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파일럿 피쉬처럼 어항안을 빙글 빙글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
| 오랫만에 잔잔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제목의 파일럿피쉬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했지만 전체적으로 술술 읽혀지는 내용이네요. 부드럽다고 할까??? ^^ 19년만에 걸려온 옛 애인의 전화로부터 시작되는 책의 내용은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 둘 소개하면서 이어집니다. 과거의 내용, 현재, 과거의 내용, 현재... 마치, 수조 밑바닥의 잔재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 처럼요. 유키코라는 19년전 애인은 주인공의 현재 생활속에서 잊혀졌던 기억이었습니다. 본문을 인용하자면 ''지워졌던게 아니라 잠시 잊혀졌던''거지요. 책속에서 말하는 기억이라는것은 그런것 같습니다. 잠시 가라앉은 수조속의 잔재물들.... 하지만 지금은 잊혀져 있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기억들은 우리의 과거이고 현재의 연결고리입니다. 그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도 없었을 테고요. 과거는 잊혀지지만 그만큼 소중한 것 같습니다. 책을 다 읽어보고 저도 곰곰히 과거를 생각해봤습니다. ㅋㅋ 즐거웠던일, 행복했던일, 괴로웠던일... 분명히 기억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을꺼에요. 잠시 스쳐간 사람들이라던가, 짝사랑, 창피했던 일들... 언젠가는 문득 기억날수도 있겠고 평생 잊혀진채 떠오르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기억의 잔재들이 제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 언젠가 유키코의 전화처럼 잊혀진 기억을 떠올려줄 무언가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요. 일본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오사키 요시오''라는 작가의 글은 참 읽기 편하고 부드럽네요. 한가한 오후 부담없이 편하게 읽어줄수 있는 그런 책이었던것 같습니다. |
| 그런 때가 있다. 시간을 들여 책상을 정리하는 날이면 꼭 서랍 한 구석에서 오래된 물건 하나 발견하는 일, 하던 것을 멈추고 이 놈 오랜만이네 하며 나는 어느새 듬성듬성 어딘가에 숨어있던 시간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끈이 다 달아버린 머리 고무줄을 찾았는데 이걸로 내 머리를 딴딴히 동여 묶던 어린 날이 생각났고, 이후 중학생이 되어 머리를 자르자 더 이상 쓸모를 잃어 녀석이 손을 떠났다는 데까지 기억이 갔다. 그렇게 몇 년을 숨어 여기서 지낸 모양이었다. 그날부터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미 필요가 사라진 물건이라도 나와 시간을 공유했다면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이렇게 나를 깨울 테니까. 무엇이든 곧 잘 잊어버리는 까만 머릿속을 대신하여 그 날의 일기를 읽어 줄 테니까. 그렇게 재회하면, 그동안 나는 녀석을 단 한 번도 그리워하지 않은 채 어떻게 견뎠나 싶어진다. 사실 모르고 아주 잊고 지냈을 때도 탈 없이 잘 살아왔으면서. <파일럿 피시>는 ‘기억’에 대한 고찰이다.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수한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잠시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는 것, 이들은 너무 약하고 가벼워서 한 번 부딪힌 기억의 파편에도 봇물 터지듯 무너진 다는 것. 도망치고 싶은 기억이든 결국 지워진 기억이든 이들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내 안에 존재해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만든다는 것. 세상 수 없이 겹치는 관계 속에서도 짧지만 나와 연이 닿았다는 것만으로 기억이 되고 이는 내 속에 겹겹이 쌓여 나를 아주 낯선 시간 속으로 이끈다. 주인공은 이를 들추며 지난 20여 년간의 자신과 오롯이 만난다. 젊은 날, 자신을 오고 가며 말을 건네고 의미가 된 이들의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방황을 했고, 타인에게 상처를 받고 또 주고, 묘하게 겹치는 인연에 신기해하며 짐짓 사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 간다. 미리 고민하며 아등바등 하고 앞서 가지 않아도 만나야 할 사람이고 가야할 곳이라면 시간이 온 몸을 던져 그리로 인도한다는 것, 이는 풀리지 않을 삶의 신비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내가 숨 쉬는 여기, 이 시공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비교적 담담히 행복했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 기억을 꺼내고, 만약 그리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꺼내지만 그리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나다운 길이었고, 우리는 그때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외로움에 있지 아닐는지. 이제는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물과 같은 어제이지만 그때의 우리는 너무 투명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살면서, 채울 수 없는 결핍과 부딪혀도 방법이 있다는 듯 씩씩할 수 있는 건 헤집을 지난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우리는 모두 꼬리 잘린 하얀 개의 모습으로 날마다 한 자리를 맴돌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단지 바란다면 상처가 아물어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한 가지. |
| 원래 일본 소설을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파일럿 피쉬라는 이름에 끌려서 읽어보았다. 19년전 헤어진 옛 애인으로부터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로 인해 19년전의 일을 상기 하면서 쓴 글인데...사람의 인연이란게 한번 만나면 두번 다시 헤어질수 없다는 그말에 백번 동감 하게 하는 소설이였다. 일본소설 답게 치밀하고 꼼꼼하게 쓴 소설이라 사람의 내면을 잘 그려냈다. 인간세상에서 만남과 이별 이란게 다반사라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란게 정말 끈질거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인연의 끈이 때론악연이 될수도 있고 좋은인연이 교묘히 엮어진 이소설을 보면서 공감이 많이 가더라구요그리고 너무 안타까운 기분이 많이 들더라구요... 암튼 휴가지에서 읽기에 정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였습니다.. ^^ |
| 모든 관계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내가 알아왔던 것들, 알고 있는 인간의 이면엔 유기체적인 관념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조금은 비사회적이고 폐쇄적인 방향성을 가진 현대적인 인간이다. 저자가 대중적인 인간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다소 폐쇄적인 사람에겐 관념적이고 감성적인 행동이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주인공을 통한 인간 감성의 본질을 기억이라는 구도로 끌어 내려는 것 같다. 우린 살아가면서 과거를 만들게 되며 마음의 구조 어느 틈에선가는 알게 모르게 모든 관계된 기억들이 끈끈한 상호 작용들을 하면서 서서히 자리 잡는다. 문득 과거를 되돌이킬만한 물건을 만나거나 기회를 받게 되면 우린 숨길 수 없는 기억의 틈바구니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은 채 우리를 감싸며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마치 투명한 수족관을 세상의 전부라 여기며 모든 운명을 현실에 맡긴 과거를 잊어가는 물고기들 같이…. 주인공 야마자키는 에로 잡지를 출판하는 편집국장이다. 그는 인생에 세 명의 여자를 만난다. 유키코는 그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여자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와타나베씨가 삶의 여정을 가르쳐 준 파일럿 피쉬라면 유키코는 사랑하지만 야마자키를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파일럿 피쉬다. 파일럿 피쉬는 수족관 물고기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모든 필요한 제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고결(?)한 물고기다. 하지만 그 자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파일럿 피쉬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생명을 갖게 되며 자기들만의 삶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다른 물고기들은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않은 채 인간으로 말하자면 당연하다는 듯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미 기억들 속에서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두번째 여자는 가나짱이다. 풍속의 여자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야마자키를 알고 있었으며 자유 분방하지만 삶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신세대 젊은이의 표상이다. 그녀는 쿠와 모모라는 치와와의 파일럿 피쉬다. 야마자키, 가나짱, 쿠, 모모는 짧지만 강한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야마자키에게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나나미. 야마자키는 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자신을 찾는다. 우리에겐 수많은 기억들이 잔재해있다. 좋은 기억들도 있지만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이 모든 것을 종결하는 끝맺음이 아니다. 결국 다시금 고개를 들게 되고 우린 그 대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남들이 알든 말든 삶의 전부를 평화롭게 수족관에서 보내는 물고기들에게 파일럿 피쉬가 있는 것 같이… 우리들에게도 보이든 보이지 않든 수많은 파일럿 피쉬가 있다. 그들의 영향력으로 자유롭지 않다. 기억은 단지 잔재해 있을 뿐이다. 우린 기억의 투명함이 무서워 건드리지 못하고, 혹 잡으려 해도 결국은 스멀거리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것들을 바라만 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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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었던 일본의 몇 작가의 책에서 느껴졌던 이질감대신 동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던 책이였다.
어떤 소설인지 지식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책을 펼쳤고, 이어서 쉽게 써진 그리고 쉽게 이해되는 내용에 단숨에 읽어 버렸다.
기억은 지워지는게 아니라 몸안에 저장되어 있다가 갑자기 돌출된다는 말에 의문을 갖다가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자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많아졌다.
또한 현재의 나는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의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어 진다는 부분이 인상깊었고, 이해가 되었다.
단순히 연애소설일지 모르겠지만 느껴지는게 많았던 책이였다. 그리고 위로도 되었다.
내가 19년이 흐른후 다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는 자신없지만 유키코가 야마자키에게 이별선언을 하고 스스로 되돌아 갈수 없다고 다짐하는 과정과 매번 유키코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가버리는 이쓰코를 끝까지 친구로 곁에 두다가 번번히 배반을 당하면서도 그 과정을 되풀이한 유키코가 어쩌면 내 자신일 모른다는 착각속에서 왜 그 순간을 그렇게 해야 했었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현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가졌으나 결국 그런 선택을 했던 유키코가 그순간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던건 아닐까 생각했다.
비록 현재는 고통스러울지언정 유키코는 그런 삶을 선택했던 거다. [인상깊은구절] "그래. 유키코가 싫어하니까. 그리고 나는 생각했어. 네가 설령 내 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둘이서 지냈던 날들의 기억은 남아. 그 기억이 내 안에 있는 한 나는 그 기억 속의 너로부터 계소 영향을 받게 돼. 물론 유키코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와타나베 씨.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온 시간은 기억의 집합체가 되어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적이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