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상태는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어느 쪽으로도 바뀔 수 있는 완전한 무관심의 상태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거나 우리로 하여금 이 상태에 있게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사라지면 우리는 언제나 즐거움을 느끼거나 상처를 입는다. p. 158"
미를 논의할 때 '숭고'의 개념을 부각시킨 점이 낭만주의 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면 버크는 낭만주의의 시조격인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버크의 이 책을 기반으로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대한 고찰"을 썼고, "판단력비판"에서 미와 숭고를 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러는 버크와 칸트의 숭고를 분석했고, 이러한 실러의 미학은 낭만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실러가 칸트의 미학을 계승하면서도 넘어서려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저런 논문과 함께 이 책도 읽고 나니 실러의 숭고론은 버크의 입장에서 칸트의 숭고론을 비판한 측면도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연구에서 칸트와 실러 미학의 차이점을 말할 때 미를 '주관적'인 것으로 보느냐 '객관적'인 것으로 보느냐의 차이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버크야말로 숭고와 아름다움은 객관적인 것(물론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작용을 부정하지는 않는다)임을 못박고 있다. 그 이유는 실질적인 대상이 쾌나 불쾌를 일으키고, 그러한 대상이 없는 상태는 안정된 상태(delight)라는 것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안정감은 쾌나 불쾌의 결여(0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일종의 감정이입을 하는 것을 뜻한다.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자기 보존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고통이 될 것이고 따라서 숭고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실제였다면 충격을 주었을 대상들이 비극이나 그와 유사한 장르를 통해 묘사되면 매우 고상한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p. 90-91" "비극의 효과를 연구하려면, 우선 실제로 고통을 받는 이웃들의 감정에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실제 불행이나 고통에서 어느 정도, 그것도 적지 않은 안도감을 느낀다고 확신한다...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우리를 압박하지만 않으면 공포는 언제나 안도감을 준다. 반면 연민은 사랑이나 호의에서 비롯되는 감정이기에 언제나 즐거움을 수반한다. 우리가 천성적으로 추구하게 되어 있는 어떤 실제적인 목적이 있을 경우, 이 목적을 추구하게 북돋아주는 감정에는 안도감이나 일종의 즐거움이 수반된다. 창조주는 우리를 묶은 공감의 끈을 그에 상응하는 안도감으로 강화시켰다. p. 91-92"
영국의 경험론자 버크의 이 책은 문체가 명쾌하고 실증적인 예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어서 술술 잘 읽힌다. 서론에서부터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자만심이 아니라 신중한 서술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열고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1장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한 개관을 한 후, 2, 3장에서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제시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4장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의 동인을 밝히기 위해 신경생리학적 지식들을 동원한다는 점이었다.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을 느낄 때 움직이는 감각의 메커니즘을 기술하고 있다. 종종 칸트나 실러의 글에서도 신경생리학에 기반해 인간을 설명하고자 했던 부분을 보게 되는데, 그 당시 신경생리학에 대한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였을지 궁금해졌다. 5장에서는 시를 분석하면서 구체적 묘사를 낮게 평가하고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묘사를 높게 평가하면서 숭고의 역설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제목에서 '숭고'가 '아름다움'보다 먼저 제시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고통과 두려움의 본질은 신경의 부자연스런 긴장이다. 때로는 이것이 이상하게 강해지거나 갑자기 엄청나게 약해지기도 한다. 이런 효과들은 종종 번갈아 나타나며 어떨 때는 뒤섞여 나타나기도 한다... 고통과 두려움의 유일한 차이는, 고통을 유발하는 사물들은 신체를 통해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두려움을 유발하는 사물들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암시하는 정신작용을 통해서 신체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둘 모두는 원초적으로든 부차적으로든 긴장(tension)과 수축(contraction), 즉 신경의 격렬한 움직임을 유발한다는 면에서 서로 일치하며,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일치한다. p. 191"
영국 경험론의 전통에서는 '숭고'를 자기 보존의 측면에, '아름다움'을 사회성의 측면에 가까운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다시금 '자기중심'과 '타자중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난 학기에 ㅂㄷ교수님께서 "도덕감정론"을 읽자고 하셨나보다. 고민해볼 만한 주제인 것 같다. 더불어 이 책 곳곳에서 종교와 과학을 화해시키고 싶어했다던 라이프니츠처럼 '인간이 과학을 하는 이유는 창조주가 인간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알기 위해서이다'라는 주장을 만날 수 있다.
"단순한 즐거움이나 고통이든 아니면 이들의 변형된 형태든, 사람의 마음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관념들 거의 대부분을 우리는 자기 보존과 사회라는 두 가지 항목 아래 분류할 수 있다. 모든 감정들은 이 두 가지 목적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그 중 자기 보존과 관련된 감정들은 대부분 고통이나 위험이 있을 때 느끼게 된다. 고통, 병, 죽음과 같은 관념들은 강한 공포의 감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개인의 보존과 관련된 감정들은 주로 고통이나 위험이 있을 때 생겨나며 모든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한 감정이다. p. 83-84"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나 위험의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감정인 숭고의 원천이다... 위험이나 고통이 너무 가까이에서 압박해오면 우리는 아무런 안도감도 느낄 수 없으며 그것들은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어 그 압박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 그런 고통이나 위험도 안도감을 줄 수 있고... p. 84-85"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분류하는 또 하나의 항목은 사회이다... p. 85"
"우리의 의지는 즐거움을 좇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게 우리보다 힘이 훨씬 약한 대상들을 통해 즐겅무을 얻게 된다. 반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고통은 항상 어느 정도는 우리보다 강한 힘을 지닌 대상들에 의해 유발된다. 따라서 힘, 폭력, 고통, 공포의 관념은 한꺼번에 우리 마음속을 파고 들어온다. p. 115"
"우리가 취미라 부르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파악할 경우 단순관념이 아니며, 일부는 최초의 감각적 쾌감의 지각이고 그 다음은 이차적으로 상상력이 느끼는 쾌감, 다른 일부는 이들이 갖는 다양한 상호관계나 인간의 감정, 태도나 행위들에 대해 이성적 추론능력이 내리는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취미 형성을 위해 필요하며 근본원리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다. p. 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