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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번의 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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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깐깐하고 악명높은 영화평론가였던 프랑소와 드뤼포는 도대체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차라리 자기가 찍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칸느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고 이후에 60년대에 프랑스로부터 불어닥치는 광풍과도 같았던 누벨바그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 되었다. 어찌보면 말 그대로 영화와 같은 얘기일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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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깐깐하고 악명높은 영화평론가였던 프랑소와 드뤼포는 도대체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차라리 자기가 찍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칸느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고 이후에 60년대에 프랑스로부터 불어닥치는 광풍과도 같았던 누벨바그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 되었다.

어찌보면 말 그대로 영화와 같은 얘기일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고 원래 잘난 인간은 이렇게 뭘해도 잘나게 된다는 살짝 좌절감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면 이것이 도대체 뭐하자는 영화인지 잘 모를 수 있다. 최근 영화가 워낙 빠른 템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슬슬 진행되는 이야기에 조금은 답답하게 생각할 수 있고 프랑스 영화이니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게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프랑스 어는 듣기만 해도 뭔가 어지럼증이 생기니까. ㅋㅋ

 

하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뭔가 괜찮은 영화를 보았다는 기분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영화는 그다지 엄청난 얘기도 아니고 뭔가 희망에 찬 결론도 아닌 덤덤한 결말이기는 하지만 끝가지 본 다음에는 어떠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시인 장 콕토는 이 영화를 "아름답고, 아름답고, 슬픈 영화"라는 표현으로 썼는데 나는 그것에 동의하고 아마도 그게 가장 정확하게 이 영화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년은 학교로 대표되는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부모들에도 별로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구제불능의 아이이지만 그가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영화를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의 어린시절 경험들을 영상화 하였고 그러면서도 영화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던 누벨바그와 이후의 60년대의 부모 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68혁명 시대의 시대정신과 맞물리면서 보다 많은 것을 얘기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많은 수식어가 붙고,

수없이 얘기되는 고전이라서 조금은 다가가기 힘들겠지만 2시간이라는 시간을 잠시 혼자서 머리 식히며 이것 저것 생각에 잠기면서 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동안은 고전과 흑백영화를 자주 볼 것 같다.

y*******o 2007.10.10.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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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탈이난 아이...[400번의 구타]
"어른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탈이난 아이...[400번의 구타]" 내용보기
1. <400번의 구타 The 400 Blows / Les 400 coups> 영화평론가로 일하다가 몸소 영화를 만들기로 한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1959년에 스스로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만든 프랑스 영화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사랑으로 잘 돌봐주는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그 때 잘못 되면 평생을 두고 마음에 남는 아픔이 뿌리를 박는다.   보는 동안 마음이 아팠다. 어른들은 저리도 아이들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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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0번의 구타 The 400 Blows / Les 400 coups> 영화평론가로 일하다가 몸소 영화를 만들기로 한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1959년에 스스로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만든 프랑스 영화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사랑으로 잘 돌봐주는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그 때 잘못 되면 평생을 두고 마음에 남는 아픔이 뿌리를 박는다.

 

보는 동안 마음이 아팠다. 어른들은 저리도 아이들을 몰라주는가 싶기도 하고, 잘못된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도 제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아이의 마음이 애처롭기도 했다.

 

영화 이름으로 보면 누굴 때리는 것 같지만,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이 닥친다는 말이고, 어린 앙뜨완느 한테 일어난 일들이 그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처음 이름만 본 어떤 이는 야한 어른 영화로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2.

열세살의 앙뜨완느 드와넬(장 삐에르 레오)은 엄마와 새아버지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새아버지 쥐비앙(알버트 레미)은 자동차 경주에 빠져 있고, 어머니(끌레르 모리에)는 조금 신경질적인데다 새아버지와 사이가 나빠 바람을 피운다.

 

학교에 가봤자 즐겁지 않은 앙뜨완느는 동무인 르네(빠뜨리끄 오빼)와 땡땡이를 친다. 점심값으로 받은 돈으로 같이 영화를 보고 오락도 하고, 바이킹 비슷한 놀이기구도 타며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는 어제 논 일에 대해 핑계를 대야 하는데, 이것저것 둘러대기가 싫어서 그만 엄마가 죽었다고 뻥을 쳐버린다. (이런...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엄마를 죽이다니...넌 아주 혼이 날거야.)

 

아니나 다를까, 땡땡이를 친 일을 고자질한 다른 녀석 때문에 학교에 들른 어버이와 선생님이 만났으니, 둘러댄 말까지도 다 들킨다. 짝짝~. 아버지의 손바닥이 앙뜨완느의 두 빰을 스쳐간다. (아이고 아파라. 동무들 앞이라 더 부끄럽네...)

 

엄마가 바람이 나서 낯선 사내를 만나 입맞춤하는 모습을 봤지만, 앙뜨완느는 아버지한테 이르지 못한다. 엄마는 아들한테 눈치가 보여 잘 해주려 애쓰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니 어린 앙뜨완느가 기댈 데가 없다.

 

집에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꾸중만 들으니 앙뜨완느는 모든 게 싫다. 드디어 집을 나간다. 처음에는 인쇄공장에서 지내는데 배가 고프니 우유를 훔쳐먹고, 엄마한테 잡혀 다시 집으로 가지만, 다투기만 하는 어버이 사이에서 또 집을 나간다.

 

르네의 집에서 몰래 지내지만 오래 있을 수도 없다. 집이 그립지만 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 아이. 끝내는 돈이 없어 아버지 일터에 있는 타자기를 훔쳐 팔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다시 갖다 놓지만 새아버지는 거짓말을 하거나 훔치는 앙뜨완느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경찰서로 넘긴다. 끝내 소년원으로 가게 되는 앙뜨완느.

 

누가 어린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나? 어버이가 있어도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선 혼이 나고...마음을 붙일 데가 없으니 거짓말을 하거나 애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골라 하게 된다.

 

타고가는 호송차 안에서 파리 거리를 보는데,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고 마음은 외롭고 쓸쓸하다. 멀어지는 길을 바라보는 눈은 슬픔이 가득하다.  

 

3.

"내 자신의 삶을 살겠어요...어른이 되어서 돌아오겠어요" 하며 집을 나간 앙뜨완느를 맡은 장 삐에르 레오는 어른들한테 내몰려 어린 마음이 아픔을 겪는 모습을 너무 빼어나게 잘 보여준다.

 

어른들은 제 마음이 가는 일 때문에 아이들한테 따뜻한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어릴 때는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나중에 좋은 어른이 되는데, 사랑을 못 받고 막 굴러다니면서 살면 그런 아이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나쁜 어른들이 나쁜 아이들을 키우고, 이들이 자라 또 나쁜 어른이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트뤼포 감독은 그래도 영화평론가였던 앙드레 바장한테 입양되어 늦게나마 사랑을 받을 수가 있어 굽이진 삶을 바르게 살 수가 있었지만, 그런 행운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그런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어른들이 잘 하라고 꾸짖는다.

 

흑백이지만 보는 데는 불편이 없다. 그런데 내가 산 디브이디는 보너스로 프리미어 잡지의 영화평론가가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하거나, 트뤼포 감독의 삶과 영화에 대해 길게 쓴 글을 보여준다. 값에 견주면 괜찮은 디브이디였는데, 산지 오래 된 탓인지 이젠 리스트에서 없어져 버렸다.

b******g 2007.11.18. 신고 공감 2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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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의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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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유-   - - - - - - - - - - - - - - -   모든 소설가의 첫 소설은 자서전이라고 했던가. 누벨 바그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프랑소와 트뤼포의 데뷔작이다. 상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트뤼포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한다.   하도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장인이 영화 감독이었는데 신랄하게 영화를 까기로 유명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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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유-

 

- - - - - - - - - - - - - - -

 

모든 소설가의 첫 소설은 자서전이라고 했던가.

누벨 바그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프랑소와 트뤼포의 데뷔작이다.

상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트뤼포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한다.

 

하도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장인이 영화 감독이었는데

신랄하게 영화를 까기로 유명한 영화 비평가였던 트뤼포가

장인의 영화마저 인정사정없이 까댔고,

이에 열받은 장인이 "자네가 그렇게 잘났다면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게나!"

홧김에 소리쳤는데 트뤼포가 "어 그럼 그럴까?" 하고

정말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가 <400번의 구타>이고

그 영화는 기가 막힌 찬사를 받았다 ...

이런 스토리가 있는 영화로 알고 있다.

 

사실 제목 때문에 참 보고 싶지 않던 영화다.

<400번의 매>도 아니고 <400번의 구타>라니.

'구토'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구타'라는 단어 특유의 어감 때문에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가 연상되기도 했고, 그래서 영화를 보기가 꺼려졌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가나 감독의 유년 시절을 특히 궁금해하는데

이 영화가 감독의 자전적 영화라고 하고,

또 무언가 색다른 정서를 가진 영화를 보고픈 마음에 보게 되었다.

뭐랄까, 비주류의 감성이랄까 그런 것.

 

생각만큼 울적하거나 어둡지는 않았고,

물론 영화가 어두운 분위기인건 맞지만 음침하다기보다는 슬픈 쪽이다.

보는 내내 마음이 참 아프고 나중에는 주인공 역을 맡은 아이의 얼굴만 봐도 슬펐다. 

 

 

 

- - - - - - - - - - - - - - -

 

 

주인공 앙뜨완은 신경질적이고 무정한 어머니와 우유부단한 새아버지, 그리고 차가운 선생님 아래서

관심과 사랑,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박대받고 살아간다.

학교를 빠뜨리고 친구와 영화관에 놀러가거나 놀이기구를 타러 가기도 하는 앙뜨완.

그에게 유일한 낙은 영화를 보는 것 정도이다.

 

어느 날 친구와 무단 결석을 하고 난 뒤 뒷일이 두려워진 앙뜨완은

선생님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의 가출을 부모에게 일러바친 얄미운 친구 때문에 곧 거짓말은 들통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앙뜨완은 친구와 가출을 감행하지만 하룻밤의 도피로 끝나버린다.

 

다시금 일상 생활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삐걱대는 부모 사이에서

자신은 짐짝 취급을 받을 뿐.

그는 다시 가출하여(? 이 부분이 확실하게 파악이 안되었다. 가출한 건지 그냥 간간건지) 

친구 집에서 지내다 어느 날 아버지의 타자기를 훔치기에 이른다.

하지만 타자기를 팔기가 힘들어 도로 돌려놓기 위해 되돌아간 곳에서 그는 붙잡히고

결국 더이상 자신이 없다는 부모의 차가운 거절에 의해 소년원과 같은 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어느 날 앙뜨완은 그곳을 탈출하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 - - - - - - - - - - - - - -

 

 

누벨 바그는 전형적이고 일률적인, 헐리웃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주류 영화, 상업 영화에 반기를 든 영화인들(영화 악동들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듯)이

일으킨 새로운 물결을 통칭하는 단어로 기억한다.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긴 어려우나 대체로 롱테이크샷, 핸드헬딩 카메라 기법,

느슨한 스토리 전개, 혹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의 비틈,

즉흥 연기, 점프샷 등의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벨 바그의 대표작으로는 <쥘앤짐><네멋대로 해라> 그리고 바로 이 <400번의 구타>등등이 있다.

 

과연 영화를 보며 소위 '일반적인' 영화에선 볼 수 없는

특이함과 신선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보는 사람이 숨이 찰 정도로 혹은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샷은

특히나 마지막에 앙뜨완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애 숨 차겠다..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길더라.

 

그리고 또 이야기 전개에 하등 필요없는 장면을 길게 집어넣거나 유심히 따라가는 것.

예를 들면 주인공과 친구가 아버지의 타자기를 훔친 다음 길을 걷는 장면은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그 아이들의 막막한 심정 같은것?)

여하튼 어떻게 보면 삭제해도 전체 이야기 흐름에는 전혀 상관없을 씬인데

영화는 줄기차게 그들의 길고 긴 행보를 따라간다거나.

앙뜨완이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개를 찾아달라는 여인을 만나는 에피소드나. 

 

마지막에 주인공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꼭 사진처럼 정지 화면이 되는 장면에서는

순간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을 느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고, 갈 곳도 없으며,

이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영화는 너무나 강하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도 누벨바그의 특성 중 하나라던데.

<네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이 카메라를 보고 어쩌구 말을 거는 장면처럼.

브레히트의 낯설게 보게 하기 기법의 영화적 적용이라 한다.

 

여하튼 주류적인 감성과 기법으로 무장한 영화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함, 그 독특함에서 오는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영화다.

 

 

 

- - - - - - - - - - - - - - -

 

  

 

내용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슬픈 영화다.

앙뜨완은 분명 불량 소년이 맞다.

학교를 수시로 빼먹고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낙서나 하고 선생에게 거짓말,

절도와 밤거리 배회, 가출 ..

 

하지만 이 모든 일탈 행동의 배후에는 무책임하고 사랑 없이 비정한 부모와 선생,

따귀나 때려대고 귀찮은 짐인듯 이리저리 떠맡기고 방치하는 어른들이 있다.

보는 내내 영화인 걸 알면서도 주인공이 어찌나 불쌍하던지

온몸으로 아프다고 외쳐대는 듯한 주인공을 보며

이 아이의 슬픔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어른의 탓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정신과 정서까지 온전한 '어른'인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정신적인 키에서 한 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것만 같다.

말하자면 성인 아이가 그것인데

나이가 들어가며 그 어떤 사회적인 예의나 스킬 같은 것만 학습할 뿐

내면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온전하고 따뜻한, 긍정적인 인간성이 뒤틀림없이 보존되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인간사의 많은 문제는 육체의 성장과 일치되지 않는 정신의 성장 속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건방진 생각인지 모르나 '애가 애를 키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키울 수도 없고?

참 문제다.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만이 길인데 이게 어디 쉽냐고. 맘대로 되냐고요..

 

 

 

- - - - - - - - - - - - - - -

 

 

 

 

전체적으로 분명 슬픈 내용인데도 의외로 코믹한 장면이 많아서

초반부에는 특히 여러 번 킥킥대며 봤다.

 

천편일률적인 영화의 주류 감성에 지친 분이라면

이 영화의 새롭고 독특함을 마음껏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개가, 개인적으로 강한 표현은 잘 쓰지 않으려 하는데,

굉장히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느리기 때문에

지겨움을 쉽게 참지 못하는 분이라면 초큼 부담스러운 영화일 수도 있다.

졸릴때 보면 안되는 영화 리스트에 이를 갈며 이 영화 제목을 써놓게 되실수도.

 

여러 영화사적 의의나 촬영 기법, 감독의 이름의 무게와 상관없이

'마음'에 부닥쳐온 영화였으며,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트뤼포> 전기를 꼭 읽어보겠노라

다짐하게 만든 영화였다.

 

 

 

 

 

아, 그리고 이건 쓸데없는 말인데.

주연을 맡은 장 피에르 레오가 너무 예뻐 사진을 검색해보았더니

청년기에 어찌나 미모가 뛰어나던지.

아역 배우와 관련해 마의 17세라는 말이 있는 둥, 그러한데

어릴때보다 커서 더 예쁜 신기한 배우였다.

흑백 사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와, 이렇게 잘생긴 사람 처음이야!' 감탄할 정도였다.

이어지는 노년의 사진은 미모의 유한함과 무상함을 느끼게 했지만.

 

물론 노년은 노년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지만,

그걸 즐기고 감탄하기에 아직 난 너무 어린것 같다.

언젠가 나이드신 분들의 주름살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조만간 도서관에 가서 꼭 <훔친 키스>를 보리.

j********e 2009.02.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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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행복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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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튀르포 감독과 그의 많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튀르포감독의 페르소나에 되어버린 앙트완 드완넬의 첫만남을 지켜볼 수 있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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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튀르포 감독과 그의 많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튀르포감독의 페르소나에 되어버린 앙트완 드완넬의 첫만남을 지켜볼 수 있는 수작입니다~
b******y 2007.03.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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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금선 누나한테 왜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냐고 물어봤더니...얼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1. 색상도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2. 흑백이 더 예뻐서.화질이 깨끗하고, 재미난 흑백영화를 보고 있자니, 영화와는 별도로 앞으로는 흑백 사진을 좀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상에 대한 편견까지는 모르겠고..흑백 영화라서 더 담백하고 깔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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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금선 누나한테 왜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냐고 물어봤더니...

얼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1. 색상도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2. 흑백이 더 예뻐서.

화질이 깨끗하고, 재미난 흑백영화를 보고 있자니, 영화와는 별도로 앞으로는 흑백 사진을 좀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상에 대한 편견까지는 모르겠고..흑백 영화라서 더 담백하고 깔끔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유명한 영화이고, 재미나게 봤음에도 불구하고...공감대가 잘 형성되지는 않는다. 
감동의 불우한 성장(?) 스토리를 반영했다고 하는데...
먹고 살만했고, 저 지경까지 애를 방치하는 집안 분위기는 아니였기 때문이였을까?

덜 경박스럽게 들리는 프랑스어는 감미롭고, 
담백하다 못해 단정하기까지한 영화는 참 참 참 맘에 드는데...

그러나, 딱 고만큼.


이 영화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나같은 사람이 보기에, 영화는 재미나지만, 내 심장을 두들기는 임팩트 같은 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덧붙임.

앙트완으로 나오는...장삐에르 레오의 젊었을 때 사진과 최근 사진
세월은 누구도 비켜갈 수는 없겠지...
YES마니아 : 로얄 c******m 2011.06.01.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