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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 봄과 여름, 마을은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했습니다. 일찍이 그때처럼 사랑과 기쁨, 그러면서도 고뇌로 충만한 적이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집에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의 증표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가족에게 임한 구원으로 인해 기쁨이 넘치는 시기였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거듭남을, 남편은 아내의 거듭남을, 아내는 남편의 거듭남을 기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성전에서도 하나님의 임하심이 있었습니다. 주의 날은 기쁨의 날이 되었고, 주님의 전은 사랑스라웠습니다. 공적인 예배는 아름다웠습니다. 예배드릴 때 회중은 생기로 넘쳤으며, 모든 사람이 예배에 집중하며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수로 마시듯이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는 동안 모든 회중은 수시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픔과 고통으로 우는 사람도 있었고, 기쁨과 사랑으로 우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웃의 영혼에 대한 염려와 동정심으로 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48쪽) 조나단 에드워즈의 〈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부흥과개혁사·2011)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721년 18살의 에드워즈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디모데전서 1장 17절을 묵상하던 가운데 그리스도의 구속과 구원에 대한 회심을 체험했는데, 그의 나이 31살이 되던 해 곧 노샘프턴 교회에 부임한지 5년이 되던 해인 1734∼1735년에 그 교회에 놀라운 대부흥을 경험한 이야기를 고백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작은 부흥들은 많이 일어났었죠. 그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서도 작은 부흥이 일어났었고, 에드워즈의 전임목회자였던 솔로몬 스토다드가 목회하던 60여 동안의 기간에도 다섯 차례의 작은 부흥들이 일어났었죠. 하지만 1734∼1735년의 부흥은 그 규모면에서 가장 강력했습니다. 노샘프턴 교회의 부흥을 시발점으로 코네티컷 계곡에 있던 32개의 마을에 연쇄적인 부흥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죠. 이 책을 번역한 백금산 목사님은 그때의 부흥을 이렇게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그 부흥은 첫째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계층이 영향을 받았고, 둘째로 수적인 면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엄청난 회심자의 수를 증가시켰고, 셋째로 사람들이 변화되는 속도가 아주 갑작스러워 죄에 대한 각성과 은혜에 대한 체험의 정도가 아주 컸고, 넷째로 이웃의 서른 두개 마을까지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엄청났다는 점 등이 그것이죠. “사람들은 기쁨에 놀라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함박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간간히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영광을 생각만 해도 그와 같이 하나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는 그 아름다움에 영혼이 압도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주권적인 방법 즉 인간 자신의 의를, 은혜를 베푸시는 동기로 삼지 않으시고 자원하여 구원을 베푸시며 자신을 높이시고 인간을 낮추시는 방법에 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갑자기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을 느꼈던 한 성도의 옐르 저는 기억합니다.”(91족) 이른바 주님께서 베푸신 그 은혜에 의해 회심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죄로 인한 고통을 크게 받은 자일수록 더 큰 기쁨을 맛보았다고 증언하죠. 때로 어떤 사람들은 침식을 잊을 정도로 기쁨이 넘쳐났고, 내세에 대한 기쁨도 충만했다고 기록하죠. 더욱이 그런 회심은 회심자들의 의지에도 영향을 미쳤고, 성경과 주일과 교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도 넘쳐났고, 찬양과 전도에도 열심을 내게 되었다고 밝혀줍니다. “5월 말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서 점점 물러가고 계시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사탄은 더욱 자유롭게 화동하며 사납게 날뛰는 듯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한 사람이 목을 졸라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 거의 같은 시기에 이상한 광신적 망상에 빠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서필드에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사우스 해들리에 있었습니다. 우리 고장에서 가장 큰 소란을 일으킨 것은 사우스 해들리에 있던 사람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우울증과 절망적인 형편에 있는 한 가난한 사람에게 가서 비편 116편 4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 어떤 말로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열정적으로 참여한 생동감 있는 신앙적 기운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이후 몇 가지 일이 생겨 사람들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대화의 주제들이 다가올 총독의 탁월함이나 의회 위원회, 인디언 조약, 그리고 후에는 스프링필드 논쟁으로 옮겨갔습니다. 또한 이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 회관 건립에 열중했습니다.”(152∼156쪽) 이른바 1735년 5월 하순경부터 부흥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의 상황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탄의 역사가 강하게 역사하기 시작했고, 우울증 환자 하나가 갑자기 자살했고, 이에 대한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도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죠. 또한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사람 두 명이 나타났는데, 그런 일들이 있고 난 후 회심이 드물게 되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시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적인 일들로 옮겨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에드워즈의 〈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가 오늘날의 신앙인들과 교회에 왜 중요한 걸까요? 오늘날은 회개 없는 기독교, 회심 없는 기독교가 만연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라 에드워즈의 회심론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더욱이 에드워즈 이전의 청교도들에게는 특정한 회심의 단계와 모델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틀에 박힌 정형화된 회심론 모델 말이죠. 회심의 때에 죄에 대한 각성과 은혜와 믿음의 체험이 전인적이라는 것들 말이죠. 물론 에드워즈의 회심론도 그 틀을 벗어나진 않았죠. 하지만 그의 회심론은 회심의 때에 체험한 방법들이나 그 정도 면에서 훨씬 다양했다는 게 큰 특징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서 발현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도하신 역사였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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