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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by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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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회고와 내레이션 형식을 빌어 진행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의 대표작으로써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시골 국민(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상징)으로, 권력의 형성과 붕괴를 다룬 작품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윤리의식의 굴절과 왜곡된 권력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나'(한병태)는 고급 공무원인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해, 서울의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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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회고와 내레이션 형식을 빌어 진행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의 대표작으로써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시골 국민(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상징)으로, 권력의 형성과 붕괴를 다룬 작품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윤리의식의 굴절과 왜곡된 권력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나'(한병태)는 고급 공무원인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해,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시골의 작은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때 나는 오 학년이었고 학급에는 급장인 엄석대가 -담임 선생님이 월권이라고만 생각되는 석대의 처리를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하고 강력하게 추인해버리는 바람에- 반 아이들을 지배했으며 아이들 역시 아무런 저항 없이 철저한 복종과 과잉 충성으로 행동한다. 서울 학교에서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이미 경험했던 나는, 불합리와 폭력에 기초한 거대한 불의가 존재한다는 확신에 의거해 석대를 향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그 싸움은 고단한 학교 생활의 시작이었고, 하나의 큰 형벌에 진배없었다. 아이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물론, 규칙 위반의 처벌 역시 합법적이고도 공공연한 박해로 되돌아왔다. 고발자는 따로 있었지만 그 뒤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석대였고, 이는 외견상으로만 공정한 권한 행사였다. 합법적인 권한을 악용해 적극적으로 나를 불리하게 만들어 학교에서 가장 불량한 아이로 낙인까지 찍었다. 상위권을 달리던 성적도 결국 허물어져 버렸다.

 

그때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절망을 넘어 허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한 학기가 다 되도록 지난한 싸움에 지쳐간 나는 맹렬하던 투지도 사라지고 저항의 의사조차 버리게 됐다. 너무 심한 횡포였지만 막상 저항을 포기하고 미움을 잃어버린 정신에게서 괴로움이 짜낸 슬픔의 정조와 무력감으로 걷잡을 수 없는 흐느낌으로 울고 있을 때,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운 얼굴로 고단한 싸움을 풀어준 석대의 은혜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끈질긴 반항 끝에 허망하게 끝낸 싸움 뒤, 굴종의 열매는 달디 달았다. 내 자신은 변한 것이 없건만 규칙 위반도 사라지고 뒤처졌던 성적도 되찾고 모범생으로 변해있었으니, 석대는 한 학기의 외로움과 쓰라림을 단번에 씻어줄 반전을 제공한 셈이다. 석대의 크나큰 은총이 내게 바라는 것은 그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가 구축해둔 왕국을 비판 없이 안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반의 기묘한 혁명은, 이듬해 육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중학 입시 준비에 맞춰 바뀐 담임선생으로부터 이뤄졌다. 무조건적인 석대의 편이었던 전번 담임과 달리 이번 담임은 석대를 끊임없이 의심했고, 담임선생의 그 같은 태도에 반 아이들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조그마한 반항들이 교실 곳곳에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제 고사의 비리를 증거로 내세운 담임선생 앞에 끌려온 석대는 모진 매질을 당했고, 석대가 비참하고 무력하게 매를 맞고 항복을 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동요했으며 석대의 비행을 봇물처럼 끝도 없이 쏟아냈다. 성적인 것과 경제적인 수탈을 고발하는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감히(?) 석대에게 살기까지 뿜어대며 섬뜩한 욕설과 돌직구까지 날려댔다. 나는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그들의 정의감이 미덥지 않아서 석대의 만행을 고발하지 않았다. 석대의 왕국이 무너진 걸 보고서야 밟고 덤벼든 교활하고 비열한 변절자로밖에 비치지 않았음이다. 철저한 석대의 굴욕이었고, 변혁을 선뜻 낙관하지 못하는 내 불행한 허무주의였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P239

 

교실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혼란과 소모를 강요한 것은 의식의 파행이었다. 선생님의 격려와 근거 없는 승리감에 취한 우리 중의 일부는 지나치게 앞으로 내달았고, 아직도 석대의 질서가 주던 중압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또 너무 뒤처져 미적거렸다. .. 한쪽은 너무도 민주의 대의에 충실히 우왕좌왕하는 다수와 함께 우왕좌왕했고, 또 한쪽은 석대 식의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해 은근히 작은 석대를 꿈꾸었다. 거기다가 새로 생긴 건의함은 올바른 국민 탄핵 제도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밀고와 모함으로 일주일에 하나씩은 임원들을 갈아치웠다. -P248~249

 

우리들의 석대는 그렇게 쉽게 그의 힘과 성공이 눈에 띄어서도 안 되었다. 보다 은밀하고 깊은 곳에 숨어 지금의 이반을 주물러대고 있어야 했고 그래서 내가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하기만 하면 다시 그의 곁에 불러 앉혀주어야 했다. 내 재능의 일부만 바치면 그는 전처럼 거의 모든 것을 내게 줄 수 있어야 했다. -P255 

그러나 석대는, 몰락한 영웅의 비장미도 뭐도 없는 초라하고 무력한 우리들 중의 하나였다.

 

석대는 참으로 무서운 아이였다. 참아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하는 곳을 아는, 본능적으로 발달된 감각을 지닌 아이였다. 난처한 상황과 위기감을 느꼈던 순간에도 주먹 대신 가벼운 눈 흘김과 너그러운 미소로 대신하며 어렵게 버텨나갔던 것을 보면 포스와 위엄마저 느껴지는 인물이다. 이전 담임선생과 '나'(한병태)의 아버지는, 불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그릇된 운용을 인정한, 합리와 자유에 대한 '나'의 애착을 나약함과 비겁함의 표지로 이해했다. 무정하고 성의 없는 억지 논리와 주장 앞에서 억지에 의해 뒤틀리고 위선으로 위장된 비겁하고도 역행적 인식체계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안타까움과 절박함, '나'를 향한 크고 높고 단단한 벽이 콱 막은 듯 아득하고 막막하게 전해져왔다. 권력의 바탕에는 합리의 논리와 힘의 논리가 맞서 있으며, 집단의 속성과 분리될 수 없다. 권력은 그 자체의 고유한 속성을 갖지만, 동시에 그것은 집단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흔히 빠질 수 있는 섣부른 믿음이라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권력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지만, 개인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이는 사회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개인과 집단 간의 불협화음이다. 불행한 최후를 맞는 독재자, 그리고 독재자에게 기생하고 야합했던 집단의 배신, 이상적인 영웅의 출현에 의해 삶의 질서로 재편되기까지, 절대 권력의 허구성과 부조리한 현실에 이기적으로 순응하는 소시민적 근성도 문제다. 선량한 개인과 정의롭지 못한 지배자에 의해 지배되는 집단 사이에 일어난 불행한 갈등의 역사를 화자의 경험을 우화 형식으로 형상화 했다. 여튼 우리는, 민주주의를 내세운 독재 아래에 살고 있다.



d******7 2013.08.25. 신고 공감 5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