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꽃무늬 티셔츠는 나의 존슨즈베이비로션과 같은 존재였다, 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은 후 상진은 하늘호 앞마당의 노란 물탱크에 그렇게 적어넣었다. '딸기 우유와 크림빵 사이에서 엄마의 꽃무늬 티셔츠를 이해했다'라고. 왜 항상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은 내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고 넓이를 알 수 없는 이해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계속 못마땅하고 언짢은 시선으로 여우 꼬리만을 쳐다보고 있었다.사실 책을 읽으며, 눈 내리는 날 환하게 빛나는 은빛 여우를 본 그 경이로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상투적으로 짐작이 가는 집안의 사정이야기에 화가 나려했다. 또 이런 얘기인거야? 왜 항상.... 뭔가 울컥거리면서 괜히 트집잡고만 싶었다.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이 경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눈 돌리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깊이 가라앉아 있는 내 이기심이 스멀스멀.. 벌레처럼 기어오르고 있는거다. 연립주택의 옥탑방, 무허가건물에 사는 소년 상진은 호수없는 자신의 집을 '하늘호'라고 부르고 있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형이 있고,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후 하루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가 있다. 이들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적으로 '희망'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이 상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빛여우가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들어보려 하지 않고 그렇고 그런 어른처럼 도시 한복판에 여우가 어딨어? 하며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은 너무 추레해보였다. 나는 되도록이면 어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루종일 리모컨만 눌러대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그러지 않고서는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내 전공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진작 깨달았다. 너무 따지고 들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운게 세상이었다. 때로는 협상을 할 줄도, 어느 선에서 적당히 눈감아 줄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 '어느 선'이 문제였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그 '어느 선'이었다(99).상진이 고민하던 그 '어느 선'을 나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나는 여전히 강건너 불구경하듯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고, 실제로는 외면하면서 동정하듯 힐끔거리면서 고민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어느순간 나는 작가가 여우에 홀린 허깨비 상진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늘호에 살고 있는 상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날 상진에게 다시 나타나 '슬프고 아름다운 역사가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이제는 더이상 쓸쓸해하지 않으며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 은빛여우의 이야기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말을 건네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은 쓸쓸하지만.더이상 희망은 없고 슬픈 현실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뚤어진 시선으로 팔짱끼고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진은 그런 내게 애써 강을 건너와 말을 건네주었다. 그러니 이젠 나도 꽃무늬 티셔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바다로 돌아가기 시작한 귀신고래를 볼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쓸쓸해졌다."여우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쓸쓸해진 나는 더는 쓸쓸하지 않다던 여우가 생각났다. 그날 여우가 눈빛으로 들려준 길고 긴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온다던 그 약속을 기억해냈다. 눈이 오면 여우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린 하늘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발이 흩날릴 것처럼 사방이 어둑해졌다. 나는 옥상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294)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씩씩하며 오히려 어른을 염려하고 위안을 준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
| ‘한겨레 문학상’이 주는 이미지는 언뜻 무겁다. 작품의 내용도 왠지 그럴 것 같이 느껴진다. 이때의 무거움이란 물론 선입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선입견으로 읽게 된 11회 당선작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론 그렇기도 하다. 우선은 매우 읽기 쉽고 재미있다. 주인공인 13세 소년의 섬세한 심리가 눈에 잡일 듯 잘 묘사되어 마치 남의 일 같지 않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옥탑방에서 바라보는 분화구 같은 마을의 일상과 힘겹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가족들의 삶이 따뜻하게 때론 가슴 저미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제 ‘성장’의 첫걸음을 떼는 주인공 상진에게 비춰지는 낯선 세상은 그저 오늘을 견디어야 할 단순한 삶의 조건에 머물지 않음을 작가는 깊은 애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분화구와 모호면이 주는 상징을 통해 진부한 세상을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뒤바꾸어 제시한다. 어린 소년을 화자로 등장시켜 낮은 눈높이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깊이를 은밀히 제시할 줄 아는 작가의 역량을 느끼게 한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첫날. 첫 몽정을 경험하고 잠에서 깬 아침. 그가 사는 청운연립 옥상엔 카스텔라처럼 흰 눈이 쌓이고, 옥상의 지붕과 교회 십자가를 사뿐히 건너뛰는 털이 흰 여우를 만난다. 주인공 상진이는 여우의 눈에서 처음으로 쓸쓸함의 의미를 배운다. 아무런 일도 기대할 수 없었던 세상에 나타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여우만이 소년의 유일한 친구이자 희망이다. 그가 가장 힘들 때 간절히 부르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그래서 더욱 애절하다. 무엇보다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가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한다. 가벼운 터치로 묘사된 이미지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상징이 곳곳에 숨어 있다. 상징과 상징들이 탄탄하게 짜여 소설의 완결성을 높여준다. 상징의 의미와 짜임을 찬찬히 추적해 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일 듯하다. 때론 쿡쿡 웃음이 삐져나오다가도 어느 순간엔 우리를 침묵하게 한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절제된 철학이 소년의 눈을 통해 감추어진 어른들의 이면을 일깨운다. 상진의 여우처럼 사뿐하고 섬세하며 그리고 쓸쓸하고 아름답다. “오늘은 뭐든지 처음인 날이다. 처음으로 몽정을 했다. 그리고 여우를 처음 봤다. 오늘은 겨울방학 첫날이다.” 상진의 ‘처음’은 모든 세상의 ‘처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 모든 것의 ‘지금’은 언제나 ‘처음’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자주 잊고 살 뿐이다. ‘처음’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여우의 진실을 듣지 못할 것이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그 ‘처음’의 의미를 넌지시 물어다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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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 역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 읽었다. 낡아빠진 연립의 옥탑방에서 엄마 아빠 형 그리고 주인공 나 넷이서 지지고 볶고 산다. 건물 발파 공사중 산업재해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세상과 결별한채 집안을 맴도는 가장인 아빠. 그런 현실을 탓하기도 하지만 결국 먹고 살아야하는게 우선인지라 아빠를 대신해 트럭 핸들을 잡고 물건을 파는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나보다 네살 위인 형이지만 힘만 셀뿐 지체 장애인이라 특수학교도 잠깐 다니다 관두고 엄마랑 같이 트럭타고 세상구경을 하는 형. 유일하게 학교라는 사회와 연결되어있는건 주인공인 나.
추운 겨울이 되고 트럭을 맡겨놓고 대신 포장마차를 빌려와서 장사를 시작하는 엄마. 항상 주인공인 나는 장래희망이 커다란 트럭을 몰고 온세상을 달리는거라고 했는데,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가 가장 동경의 대상이고 어린아이인 내 시각에서 가장 경제적 능력이 있어보여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건 아닐까?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님을 모습을 보면서 철없는 형을 보면서 나는 열심히 성적관리를 한다. 그리고 맘속 한편으론 1층에 사는 같은반 친구 소연이를 짝사랑한다. 하지만 건물주인의 부도로 연립의 모든 세입자들은 각자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소연이와도 자연스레 작별을 하게된다.
소년은 몽정도 하고 형의 자위도 보면서 육체적으로 성장도 하고 엄마의 세상과의 투쟁, 아빠의 세상과의 단절, 형의 세상과의 소통불능을 보면서 들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을 해간다.
조금 아쉬웠던건 소년의 친구였던 늙수구레한 섹스폰 할아버지의 사라짐과 마지막에 강제 철거 당하기전에 야반도주를 하는 장면이 좀...
색스폰 할아버지는 소년을 스쳐지나가는 성장의 액기스같은 약 한병은 아닐런지. 할어버지가 색스폰을 불게된것도 아픔을 잊기위해 지랄병을 잠재우기 위한거라는 나름의 처방이었을테고. 소년도 그렇게 세상이 만만친 않다는걸 조금 이른 나이에 깨닫고 커나가면서 하루에 1cm씩 커가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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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책을 읽다보면 싫증을 잘 느끼던 나에겐 조금만
재미없다고 느껴진다면 난 어김없이 책장을 덮곤했따
이런 나의 나쁜(?) 버릇을 과감히 고쳐준 책이다
마지막까지 다 읽어가는게 아까울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런 좋은 소설들이 자주 나와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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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꽤 소심한 아이였던 나는 도시 학교에서 시골 학교로 옮긴 이후 오히려 저조해진 성적표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하교에 동행했던 동생 둘을 데리고 가출을 결심했다. 가출이라 가출답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바로 집 앞에서 시작한 가출의 시작은 괜찮았다. 두 학년씩 터울이 지는 동생들은 우리끼리 작은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알았는지 발걸음도 가볍게 따라나섰다. 그렇게 동네 어귀쯤에 와서 우리 집을 한번 흘낏, 그리고 논을 가로지르며 다시 한번 흘낏, 야트막한 산의 초입에서 다시 한번 흘낏, 산을 살짝 돌아 고추밭 도랑을 걸어가다 다시 한번 흘낏... 집으로부터 일직선으로 벗어났다면 한 시간이면 금세 집의 시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을, 부러 소용돌이처럼 맴맴 집을 꼭지점 삼아 돌고 도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노을이 짙어가는데, 저기 저 멀리 우리집 파란 처마 끝의 풍경이 손가락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제 돌아오지 그래 까딱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더라... 다리 아프고 군것질도 할 수 없는 산 어귀에서, 꾸부정 앉아 소꿉장난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생들을 멀거니 바라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싶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짧은 가출이었지만) 조금은 자라지 않았을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은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다. 지체장애아로 보이는 형, “저 위대한 형을 이제부터 모호면이라 부르기로 했다. 모호면은 모호로비치치면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다. 모호로비치치면이란 지구를 이루는 성분 가운데 지각도 맨틀도 아닌 그 경계면을 뜻했다... 형은 항상 경계에 서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지표면과 시뻘건 용암이 들끓는 경계 어디쯤 형이 서 있었다...” 발파공사를 하던 중 사고를 당해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리모컨이 언제부터인지 아버지 다리 밑에 깔려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 밑으로 백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것도 아니고 올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리모컨을 꺼내기 위해 어느 누구도 손을 디밀지 않았다... 리모컨은 아버지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했다. 리모컨은 아버지에게 복음을 준 전도사였다.” 그악스럽게 세상을 살아갈 궁리를 도맡아 하는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족... 그리고 연립의 아래층에 살고 있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 소연이와 학교앞 문방구인 샛별 문구의 곱사등이 누나(혹은 아줌마), 뒷산에서 섹소폰을 불며 살아가던 전인슈타인이 나의 주변에 포진해 있다. “... 병신은 모호면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엄마한테 배고프다고 말도 못하고 돌아 나온 내가 병신이었다. 나는 왜 엄마 앞에서는 애가 아닐까. 그게 병신이었다.” 모호면이라고 부르는 형을 대신해 좀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나는, 바로 그 때문에 애라고도 어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지각과 맨틀의 경계면처럼 모호한 바보라고 생각했던 형보다 더욱 병신 같다고 여기기 일쑤이다. 그리고 그처럼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어른들의 세계를 (나름의 방식이지만) 이해하고 있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몰라주는 주변의 어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어른들은 우리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보다 어른들이 훨씬 단순하고 차원이 낮았다. 어른들은 우리의 깊은 속내를 헤아릴 꿈조차 꾸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옥탑방에 나타났다가 저기 멀리 도심의 십자가 사이로 사라진 여우... 그 여우의 존재가 아버지의 리모컨이나 엄마의 중고 트럭처럼 내 마음 속에 하나의 우상처럼 자리를 잡는다. 누구도 그 존재를 제대로 확인해주지 않는 여우는 희미한 현실감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점점 커다란 존재가 되어가는데... “... 마음속으로 여우를 불렀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여우는 대답이 없다. 죽었니? 살았니? 여전히 대답이 없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라는 아이들의 합창으로 시작되는 어린 시절의 놀이...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죽었다 (또는) 살았다, 로 이어지는 술래잡기 놀이처럼 앞뒤로 왔다갔다 지그재그 형태로 자라나는 나... 대답없는 여우처럼 아무도 그 성장의 흐름 동안에는 인정해주지 않지만, 불변의 진리처럼 어쨌든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나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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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제목도.. 생각에 연애소설인가 ?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항상 그렇듯 작가의 말을 먼저 본다. 뭐 그리 별 다른 내용은 없군. 늦은 나이에 등단하게 되어기쁘다는 소감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조금 지루했다. 13살 소년은 집에 하얀 여우가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왠 여우타령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용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엄마에게 애기를 하며꿈꾸는 소리한다고 구박받는 소년을 보며 나에게 그런 애기를 하는 소년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았으리라. 소년에게는 지체장애자인 형이 있다. 형에게 모든 것이 모호하기에 모호면이라는 별명도붙여준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때 건물을 폭파하는 일을 했지만 사고로 다리를 다치며 집에서 tv리모콘을 사수하며 방에서 tv만 본다. 집안의 가장인 엄마는 한때 트럭을 몰았지만 겨울이 다가오며 포장마차로 업종을 바뀌본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청운연립에 호수도 없는 옥탑방 하늘호에서 그들은 지낸다.
소년의 6학년의 마지막 겨울방학에 여러일을 겪으며 성장하는 애기를 담은 이 소설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때로 6학년 아이가 샛별문방구 여자의 행동을 대담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을보면서 조금 거스르기도 했다. 아마 작가의 시선이 결코 6학년 아이의 시선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 하는 변명을 해본다. 방학동안 아이는 몽정을 경험하고 짝사랑이란 가슴 설레이는 것을 해보고, 문제집을 풀며 새로운 수식과 영문법을 익히며 , 세상의 부조리함도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 소중했던 벗도 떠나본는 아픔도 겪고, 항상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형의 용감한 모습(?)을 보며 형이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아마 우리주변에 있을것이다 . 그들이 이렇게 자라준다면 좋을텐데.. 이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꿋꿋하게 자라준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 들었다. 어럽고 위기감이 올때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해결하는 모습, 결국 그들이 씩씩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들의 삶도 빛이 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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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한겨레문학상수상작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 때문에 한겨레 문학상을 알게 되었고 그 책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다. 9회 수상작이었던 싸이코가 뜬다...도 깊이는 많이 떨어졌지만...작가의 문제제기 의식이 돋보여 재미있게 읽었었다. 한겨레 문학상은...실험적이고 또 소외된 그룹에 대한 이야기와 문제제기를 다룬 책들을 선정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11회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를 갖고 구입 읽었다...소설가 박범신은 추천사에서 아름답고 눈물겹고 쓸쓸하다고 했고 소설가 이순원은 추천사에서 이작품은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책을 읽는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한다고 했다...그들이 정말로 이책을 그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과한 미사려구로 이 책을 과장 추천하는가...? 독자를 우롱하는 추천사같아서 분개한다.
이 책은 사춘기에 진입하는 어린이 주인공의 눈을 통해 하층민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우리에게 전달하려는...그런 의도로 쓰여진 듯하다...그러나 전편을 흐르는 문장 자체도 유려하지 못하고 독자의 관심을 잡아 끄는 부분 하나 나오지 않으며 흡사 거의 습작수준의 장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문제제기도 어설프기 짝이 없고 상징적으로 등장시키는 가상의 여우는 도대체 무엇을 상징코자 한 것인지 전혀 이해가 안간다. 소설로서의 기본도 안된 듯하다...읽는 내내 인내를 요했고 몇번이나 덮으려다가 한겨레문학상이니 그래도 뭔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끝까지 읽었으나...마음에 드는 구절하나 발견치 못했다...
순수문학이 팔리지 않는다...는 시류때문인지..소설을 써서 생활이 안되는 현실 때문인지...최근 발표되는 소설의 수준들이 평균이하인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이상문학상 수상작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답지 않는 무식하고 거친 표현을 빌리자면 깜냥도 안되는 소설들이 수상작이 되니 그외 소설들의 수준은 어떠할지...짐작이 간다...이제 이상문학상도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도 읽을 만한 깜냥이 못되니...아쉽고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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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라는 책 표지를 보고 몇 년 전 TV에서 방영하였던 [여우야 뭐하니?]라는 드라마의 원작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을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알지 못했던 원작 소설을 발견할 때면 ‘내가 몰랐던 장면,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심리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하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어린 상진이의 첫 몽정이야기를 시작으로 상진이보다 덩치도 크고 키도 크지만 아직 엄마가 필요한 네 살 많은 상진이의 형이 등장함으로써 설렘과 기대감은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설렘과 기대감이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진 자리엔 공허함만이 맴돌 것이라 생각했는데 매력적인 13살 상진이가 대나무처럼 어느새 쑤욱 자라나 청량한 푸르름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마냥 푸르러 고민이라곤 없을 것 같은 상진이는 사실은 많은 고민과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할법한 첫사랑 소연이에 대한 고민과 성적관리에서부터 건물 해체 작업 중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후 집안에 들어앉은 아버지와 엄마가 필요한 형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엄마가 사라질 것 같은 걱정과 샛별문구에 사는 공룡알을 품은 여자에 대한 고민, 여우에 대한 고민까지 어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걱정거리와 고민거리를 누구보다 지혜롭게 해쳐나가며 중학생이 되어가는 상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절로 따뜻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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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게 그렇다. 모든 면에서 훌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소설을 이르자면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 한 가지 정도만 충실하게 충족되어도 망설임없이 긍정적인 한 표를 던진다. 일테면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문장을 읽는 맛이 있다든지, 그도 아니라면 뭔가 서정적인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든지, 그도 아니라면 소설 뒷면에 감추어진 의미가 갸륵하다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묘사가 발군이든지, 어떤 것이든 하나만 온전하게 표현해내도 작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 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해설이나 참고자료도 읽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의 프로필이나 번역서라면 역자의 프로필조차 보지 않고 바로 내용으로 돌입하는 편이다. 백 퍼센트 나의 생각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남다른 부분이 있다면 좀 못한 다른 부분도 이해가 되는 게 사람의 감정이다. 그러나 반대로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게 없으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부분마저도 형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나는 이제껏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소설을 총 네 권 읽었다. 이 책이 다섯번째이다. 앞서 읽은 네 권중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설도 있었다. 그러나 수상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수상 자체가 의심스럽다. 심사위원을 평을 읽어보면 이들이 돈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소재를 보자. 13살의 남자아이의 성장소설이다. 다리가 불구라 늘 방구석에서 티브이만 보는 아버지, 트럭을 몰다가 포장마차를 하다가 바람도 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어머니, 저능아 형, 무허가 옥탑방, 성도착증 환자로 보이는 곱추 아줌마, 봉제인형에 눈을 붙이는 가내 부업, 노숙자나 다름없는 색소폰 부는 할아버지....이런 구성 인원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다. 이런 구성요소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들로도 아름답고 애뜻한 이야기들을 엮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트럭을 몰던 엄마가 포장마차를 시작하면서 손님과 춤바람나는 이야기나, 건물주가 바뀌게 되어 무허가 옥탑방에서 쫓겨나게 되는 이야기, 점입가경으로 안 나간다는 이유로 깡패가 각목을 들고 나타나는 이야기, 그걸 또 칼로 찔러서 경찰서로 가는 이야기...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소설이다. 수상이 아니라 예선을 통과했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문장은 또 얼마나 아마추어적인가. 이순원 작가는 이것을 보고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단문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흩트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작가의 힘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순원이 말한 얘기는 단문의 특징이지 이 소설의 장점은 아니다. 이 소설이 단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난 이렇게 문장과 문장사이가 어색한 단문은 진짜 오랜만이다. 그저, 문장을 짧게 만드는 것만이 목적인 것 마냥 문장과 문장사이의 맥이 툭툭, 끊긴다. 마치, 초보자가 단문을 연습하기 위한 습작으로 쓴 소설같다. 게다가 이 소설이 갖고자 하는 분위기에는 이런 단문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만약, 단문이 무리없이 잘 구사되었다손 치더라도 소설의 전체 분위기와는 맥이 통하지 않는 문장인 것이다. 소설의 분위기는 정적인데 문장은 그와 다르게 탁탁 튀어서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문장도 아마추어같고, 이야기도 없으며, 소설다운 묘사도 없고, 간혹 자아내고자하는 유머도 소질없는 사람이 웃기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할뿐이고, 등장인물 또한 어찌 그렇게 문단용 인물들을 골라내었으며, 이렇다하게 생각해볼만한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다.
정말 아마추어같다고 느낀 건, 작품내에 언발란스였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란 소설은 진희라는 12살 소녀가 세상을 이미 깨우친 영특한 아이로 설정되어 등장한다. 그러므로 12살 소녀가 판단하기에 무리라는 심리묘사도 잘 머무려졌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설정도 없고, 성장한 아이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가 표현하는 심리묘사는 어른도 똑똑한 어른이나 쓸법한 문장을 구사한다. 그러다가 또 난데없이 아이로 돌아가서 이건 뭐예요? 그러기도 하고. 그러니까 작가는 화자와 본인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헷갈렸으면 아예 성장한 어른이 회상하는 성장 소설로 설정을 하던가 말이지. 아니면 진희나 우미처럼 남다르게 영특한 아니라는 설정을 하든지. 하여간 아무리 눈씻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래야 이렇게 단 하나도 없는 소설은 진짜 오랜만에 읽는다. 일개 독자 나부랭이에 불과함에도 심사위원들의 자질까지 의심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