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단골 손님들이 있다. 그 중 자주 출현하는 동물이 토끼다. 여러 동물 중에 가장 작고 연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센 동물들을 보기 좋게 골탕 먹인다. 토끼 꾀에 속아 넘어 간 호랑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어릴 적 웃음 보따리였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기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당한 설움과 겪은 역정이 약하지만 꾀 많은 토끼로 형상화 되었나보다. 힘센 호랑이를 골탕 먹이면서 강대국에게 받은 수모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나보다. 이렇게 토끼는 옛이야기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는 짐승이었고, 동일시의 상징이었다. 그 토끼가 바닷 속에 가선 용왕을 보기 좋게 속아 넘긴다. 용왕과 자라의 탐욕을 비웃으며 기지를 발휘해 자칫 위태할 뻔한 목숨을 건진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순간이 어디 한두번 이었으랴.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5언시에서 자라에게 이죽거리는 토끼의 모습이 겹쳐지고, 고려시대 거란의 침략에 맞선 서희의 외교 담판에서 용왕에게 대담하게 말하는 토끼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리 민족은 늘 이런 자그마한 영웅을 그리워했다. 토끼전에 나오는 무수한 중국 사람들과 중국 고전에 대한 인용에도 불구하고, 토끼전이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인 이유가 여기 있다. 국어교사모임의 고전읽기 시리즈의 ‘꾀주머니 뱃속에 차고 계수나무에 간달아’의 토끼전은 기존의 토끼전과 다르다. 판소리 판본을 번역해서 그런지 해학성이 뛰어나고 내용이 무척 풍부하다. 구어체의 문장도 술술 잘 넘어간다. 다양한 형용사와 부사의 활용이 통통 튀는 살아 있는 문장을 만들어 낸다. 배꼽을 잡게 하는 표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기존의 토끼전을 읽었던 사람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보게 하는 책이다. 동화책 수준의 고전에서 맛보지 못했던 음담패설도 야하지 않은 수준에서 감칠 맛나게 무르익어 있다. 가지가지 코너에서 조선시대를 통째로 수술실에 들어가 해부해 보기도 하고, 온갖 물고기 이름을 섭렵하기도 하고, 민화를 감상하기도 하고, 우화소설 속의 동물들과 대화를 해보기도 한다. 지리멸렬하고 갑갑하기도 한 인간 세계에서 벗어나 단순 발랄한 동물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색다른 체험을 하면서, 그 동물들의 모습에서 다시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게 해주는 일탈과 환원을 통한 통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글 내용에 걸 맞는 그림도 책 읽는 기쁨을 배가시킨다. 해학성 짙은 이야기에 꼭 어울리는 캐릭터 풍의 그림이다. 색감도 무척 밝고 상징성도 뛰어나다. 과장된 표현이 끊임없이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사실화가 갖는 무게감이 없어서 어린애가 장난감을 갖고 놀듯 부담 없이 그림 속 캐릭터들과 어울릴 수 있다. 이런 고전을 접할 수 있는 아이들은 정말 복이 있다. 구질구질하고 청승맞게 느껴졌던 조상들의 얽힌 실타래 같던 삶이 얼마나 경쾌하고 리듬감 있게 재구성 될 것인가! ‘뜨거운 감자’ 처럼 부담스러웠던 조상들의 질척거렸던 삶이 토끼의 용궁 탈출처럼 얼마나 스릴있게 재부팅 될 것인가! 자! 토끼와 함께 바닷속으로 육지로, 공중으로 두루두루 신나게 여행을 해보자 |
| 내용이나 디자인도 멋지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통통 튀는 그림이 아주 감칠맛 납니다. 다른 고전읽기 책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구도와 색감도 좋고 이전에는 다 알수 없었던 별주부전의 새로운 내용도 정말 혼이 속 빠지게 재밌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인 춘향전도 구입을 했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 군요. 중학생 용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이전에 요약된 아름다운 내용으로만 구성된 고전이 아니라서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소장용으로 구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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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라말 출판사에서 펴낸 우리 고전 읽기 시리즈 중에 소설 부분의 여덟 번째 책이다. 요즘 나라말 출판사의 고전읽기에 심취해 있는 터라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국사람 중에서 토끼전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야기의 줄거리도 단순하다. 용왕이 병이 났고, 그 병에는 토끼의 간이 필요하며, 그것을 구하기 위해 자라가 육지로 와서 토끼를 데려오고,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서 용궁에서 벗어난다. 이런 줄거리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다만 마지막 부분이 이본마다 차이가 난다. 어떤 이본에서는 토끼가 도망가자 자라가 자결을 하고, 어떤 이본에서는 신인이 나타나서 약을 주어서 용왕을 고친다. 또, 어떤 이본에서는 자라가 다른 곳으로 피하며 용왕만 죽고 만다.
결말이 다를 수 있다는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마지막을 어떻게 처리했을까라는 점 정도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즉,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나라말 출판사의 고전시리즈에 대한 믿음과 간단한 책을 통해 잠시 쉬기 위한 방편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재미를 느꼈다. 배경에 대한 풍부한 도움 자료가 이 고전시리즈의 특징이니 토끼와 거북의 이미지, 여러 고전에 나타난 용궁의 모습 등은 의당 나오려니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토끼전보다도 풍성한 줄거리를 만나면서 뜻밖의 즐거움을 얻었다.
용왕이 병이 든 유래도 몰랐던 장면이고, 자라의 늙은 노모와 처인 별부인의 등장도 흥미 있었다. 더구나 토끼의 기지로 별부인과 동침을 하고, 그녀가 하룻밤의 인연을 통해 토끼와 사랑에 빠진다는 사연은 금시초문이었다. 용궁에서 벗어난 토끼가 나무꾼의 그물에 걸리고, 독수리에게 잡히는 장면 등 이어지는 뒷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원전에는 없는 내용을 삽입한 것이 아니다. 120여종의 이본이 있는 토끼전의 갖가지 삽화들을 취사선택하여 구성하니 이런 풍부한 토끼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용왕을 서민을 착취하는 지배층, 자라를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과거의 윤리에 집착하는 구시대적 인물, 토끼를 역경에서 목숨을 이어가는 서민으로 비유한 해설은 과거에도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배경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풀이하고 있다. 백약이 무효라는 용왕의 처지를 부정과 무능으로 썩을 대로 썩어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당시의 사회상에 비유한 것은 섬뜩하기도 하다. 현 정국을 중병에 든 용왕, 이것을 가리고 덮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을 자라, 용왕과 자라를 농락하며 사지에서 탈출한 토끼를 어느 국회의원의 멍청한 고소에서 통쾌하게 벗어난 개그맨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은 한국인 누구나 아는 진부한 토끼전이 아니다. 청소년들이 많이 읽고서 고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넓히면서 우리 사회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