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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상상력으로 쓰여진 영화나 소설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나 자체가 그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동물과 사람. 인종 속에 파고들어 그들에 대해 상상하고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소설 랑은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적이었다.. 특히 늑대들과의 전투부분은 과장됨이 없이 그대로가 사실적이다 못해 적나라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마 소설 속의 첸젠은 작가 장룽 본인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작가가 어떤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소설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몽골에서 11년간 있었던 일을 그대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과함이 없이 진솔하면서도 사실적이었다.
티비에서 몽골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몽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말에 대한 것들 뿐이었다.. 몽골의 말들은 여느나라의 말보다 강인하며... 몽골에서는 아이들까지 아주 어렸을때부터 말을 탄다는 것이었다. 말을 빼고서는 몽골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 다큐를 제작한 사람들은 몽골인들이 말을 타면서 들고 다니는 길디긴 장대가 그냥 말치는 도구가 아니라 늑대에게 대항하기 위한 훌륭한 무기 투마간이 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몽골의 상징 말이 강인해 질 수 있었던 것은 늑대들 때문이라는 것을 다큐멘타리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알았을까?
물론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지금은 그 사정이 틀리겠지만.. 늑대와의 고군분투는 매일매일 전쟁같은 날들이었고. 그런 분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들과 몽골인들은 강인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몽골 하면 강인한 기병이 아닌 강인함을 만들어준 늑대를 떠올렸으면 한다..
책 3권을 읽는 동안 나는 몽골의 엘룬초원에서 살았던 듯 하다. 마지막 3권에서 첸젠이 그렇게 끔찍이 여기며 안타깝게 기르던 늑대를 자기손으로 보낼때는 허망하다 못해 경외감이 들곤 했다..
11년 동안 작가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생각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세하고 집중력있는 그의 관찰력과 표현을 주워 삼키면서 그의 11년의 노고를 날로 받아먹고 있는 것 같아 작가에게 고맙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고맙다. 나중에 내가 기회가 되어서 몽골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 여행이 단순 관광이 아니라 이 책으로 인해 정말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분들에게 정말 이책을 권하고 싶다.. 진정한 늑대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늑대에 대한 경외감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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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랑'이라는 제목을 듣고, 이게 무슨 뜻이야- 했었다. 정확히는 狼 이리 랑
늑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보통 늑대라고 하면 음흉하고 남을 속이는 탐욕스런 그런 동물로 나오곤 했었던 것 같다. 할머니 분장을 하고 손녀를 속이던 빨간 모자나 아기돼지들을 잡아먹으려고 꾀를 부리던 늑대 등... 그래서 늑대라 하면- 약간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인식되었던게 사실이다.
랑을 읽으면서는 그 이미지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늑대가 그렇게나 영리하고 영특한 동물인지 늑대의 사냥법을 통해 알 수 있었고, 강한 모성애를 가진 점과, 먹이를 먹을때는 자신의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모든 동료들, 동족들을 생각해 남겨놓기까지 한다는 것, 먹을것을 당장 눈앞에 두고도 반나절, 또는 하루를 꼼짝않고 엎드려 기다리는 인내심까지... 어디 그뿐인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몸을 이끌고 배우자 늑대의 무덤 앞에서 밤새도록 구슬프게 우는 장면은 늑대가 가족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초반에는 몽골늑대, 초원늑대의 대단한 기개와 사냥전략, 전술, 긴급한 상황에 유감없이 발휘되는 지혜에 놀랐고 그것은 가젤을 몰아넣거나 군마 무리를 사냥할 때 극에 달했다. 비리거 노인과 사람들이 그에 분노하여 늑대몰이사냥을 했을 때는 마치 한편의 거대한 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비리거 노인이 강조하던- 초원 사람들이 항상 얘기하는 몽골인들의 늑대신앙이 왜 형성된 것인지 차차 알 수 있었다. 늑대들이 가젤이나 말, 양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하고 잔인하게 사냥해 죽일 때는, 정말 나쁜녀석들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늑대가 있음에 초원이 제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는 이 역시 자연의 섭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반에 들어서면서 관심사는 첸젠이 맡아 기르기 시작한 새끼늑대가 되었다. 물론 새끼를 일곱마리나 잃은 어미늑대의 슬픔은 이루말할 수 없겠지만, 진정으로 첸젠이 새끼늑대를 잘 키워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그리고 멋진 늑대개까지 만들어내길 바랬었는데... 어릴때는 너무도 귀여웠고, 자기 혼자 더위를 피하기 위해 땅굴을 파는 등- 어린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첸젠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신기하고 대견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늑대무리의 울음소리에 응답하면서- 늑대도 가족품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그 씩씩하던 녀석이 시름시름 앓고 고기죽하나 제대로 씹어 넘기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을 때- 그리고 이 새끼늑대를 제일 사랑하고 아꼈을 주인 첸젠이 직접 늑대의 마지막 최후를 맞게 해주었을 때... 첸젠의 마음을 알기에- 또 개처럼 묶여서 지내다 간- 늑대 본성을 마음껏 살려 신나게 사냥해보지도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가는 늑대가 불쌍하여 가슴이 메이고 목이 막혀왔다. 늑대의 이를 자르지만 않았어도... 어느 정도 컸을 때 늑대무리의 품으로 돌려보내주었으면...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늑대 역시 첸젠의 사랑과 정성어린 보살핌을 마음속 깊이 느꼈을 것이다.
내가 이전에, 몽골 초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칭기즈칸 이야기와 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허허벌판 같은 곳에서 멀리 보는게 일상이기 때문에 시력이 굉장히 좋다는 것 등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랑'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초원 생활, 목축 생활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느꼈다. (물론 여름철 모기떼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외지인들의 욕심 때문에 초원은 황폐해지고 늑대의 울음소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왜 사람들은 문명 타령을 하며 모든걸 자연 그대로 두려 하지 않는지... 초원사람들 말처럼 초원같은 대자연이 있기에 문명도 발달할 수 있었던 것 일텐데... 엊그제 뉴스에서 전해지던 황사주의보 소식이 왠지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 '랑'이 영화화된다는 데, 영화로 나오면 꼭 한번 봐야겠다. 드넓고 푸르른 초원과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늑대무리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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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룽 지음 /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펴냄 영문제목 : WOLFTOTEM / 狼圖騰
아,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까.
하방운동 [下放運動] 문화대혁명 때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다시 재개되었다. 특히 도시의 중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변방지방에 정착시켜 도시의 인구과잉과 취업난을 완화시키는 편법으로서도 사용되어 각지의 하방청년들의 반발이 극심해져 사회문제로까지 야기되었다. 1991년 현재도 10만 명의 대학생들이 광산 •공장 •농장으로 파견되는 등 이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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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응모를 할때 늑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으셔서 그저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얘기했었다. 늑대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그렇다.....판타지적이거나 야만적이거나 바람둥이.... 그 생긱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이었는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확실히 느꼈다. 한때 늑대와 남자의 차이점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인터넷에 떠돌았었다. 늑대는 평생 한마리의 암컷을 사랑하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줄 알고 암컷과 새끼를 위해 음식을 양보하며 제일 강한 상대를 선택해 사냥하고 독립한 후에도 부모를 찾을 줄 아는 그런 동물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 그 얘기가 그냥 우스개 소리로 떠도는 소리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늑대의 영민함, 그 기개, 인내심.... 첸젠이 왜 늑대에 빠져들고 초원사람들이 왜 늑대를 숭배하게 되었는지 가슴으로 와 닿았다.
이 책은 늑대라는 동물뿐 아니라 아직은 생소한 중국과 몽골에 대한 차이를 생각하게 했다. 몽골하면 그저 중국의 옆에 있는 나라, 드넓은 초원과 유목민, 가진 것 없고 배움이 없는 그대로의 자연인....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 아이들이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래서 여러가지 책을 읽히고 같이 얘기하지만 나 역시 세상을 보는 눈은 좁기만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초원을 누비며 자연의 동물들과 어울리며 살 줄 아는 지혜, 늑대들의 책략, 습성등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역시 자연만큼 위대한 스승이 없음을 느낀다.
엘룬초원을 누비는 주인공과 초원사람들....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웅장하고 멋있는데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니 기대도 되지만 한편 내 상상속의 모습이 실물로 다가올때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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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봄이 오나 했더니, 오늘 아침 날씨 예보는 황사 주의를 당부한다. 황사의 경로를 들으며 머릿 속에서 흰 우두머리 늑대의 울음을 함께 들었다. 푸르르던 몽골의 초원이 사라지고 남은 모래땅에서 이 황사들이 온단다. 천신의 기운을 받아 초원의 조정자이던 몽골 늑대들의 저주인가?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관되어 있던 그 곳. 초원의 쥐 한마리, 뭔지는 잘 모르지만 마르모트, 가젤들과 심지어 모기와 양들, 말과 소 그리고 개와 늑대들의 먹이 사슬이 견고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생명체가 수가 약해지면 그 상위의 생명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 최정점에는 자연에게 신세만 지는 인간이 잇었겠지.
무엇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몽골의 초원에 게르를 짓고 양과 말과 함께 늑대를 신앙하며 인생의 끝을 늑대에게 의지하던 그들에게 과연 돈은 어떤의미인가? 그들에게 잉여 재산이라는 것은 무슨의미가 있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철따라 이사다니는데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인간들은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인간의 욕심에 살 곳을 잃고 멸종당한 초원의 늑대의 슬픈 삶의 모습은 욕심 끝에 욕심에 지쳐 죽어가야할 지 모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은유로 보여진다. 내가 늘 꿈꾸던 몽골의 푸른 초원은 이제 없나보다. 그곳에는 흰색 게르와 흰 양무리와 윤기 흐르는 말갈기 대신, 자동차와 벽돌집과 철조망이 있단다. 우리 몽골리안들의 발원인 그 곳에는 여기저기 쥐어뜯긴 풀밭과 사람들의 욕심이 있단다.
어젯밤에는 푸른 새끼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사슬에 묶여 갈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소리치던 그 늑대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병들고 황폐해지는 우리의 땅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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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狼)의 이야기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베이징에서 내려온 학생들이 내몽고 초원 생활을 하면서 시작된다. 내몽고라면...아버지가 여행다녀오신적이 있는 곳으로, 사진이나 기념품 몇 조각이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지만...소설 랑(狼)을 읽고난 지금 그곳은 내게 원시적인 신성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안타까움마저 가져다 준 특별한 곳이 되었다.
엘룬 초원으로 내려 온 학생들은 늙은 늑대라 불리우는 비리거노인을 비롯 초원 목축민들과 삶을 함께 하면서 점점 그들의 생활과 자연에 대한 자세에 동화되게 되는데...이 속에는 초원 늑대에게 흠뻑 빠져버려 나중에 새끼늑대까지 직접 기르고 마는 한인청년 첸젠이 있다. 그리고 이 새끼늑대는 비록 사람의 손에서 길러졌지만, 초원 늑대 본연의 정신을 가진채로 자신의 온 몸으로 본성과 본능을 내뿜으며 야생늑대로의 삶을 갈구하며 끝까지 초원 늑대로서의 삶을 택한다.
끝까지... 오로지 완전한 자유만을 갈구하는 새끼늑대를 보면서...길들여져서는 살아 갈 수 없는 초원 늑대의 모습이 정말로 위대하게 느껴졌다. 우리도 언제나 자유를 원하지만, 새끼늑대만큼의 고통을 감내하고도 원래의 뜻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자유를 경험해 보지도 못한 새끼늑대의 몸안에 어떤 힘이 있어 그토록 자유를 원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인간도 간절히 원하지만 감당해내지 못하는 자유를...초원 늑대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듯하다. 비리거 노인의 말씀처럼 인간의 행동은 늑대에게서 배운것이 정말 많은것처럼 느껴진다.
"초원의 모든 짐승은 하늘을 향해 짖지 않는데, 오직 늑대만 하늘을 향해 짖는 이유를 아니? 내가 일찍이 말한 적이 있지? 늑대는 천신의 귀중한 보배이기 때문에 늑대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면 천신께서 반드시 도와주신다고 말이다.......초원의 만물 중에서, 천신을 섬길 줄 아는 것은 오직 인간과 늑대뿐이란다. " - 2권 P324~325
특히, 나는 첸젠보다 그의 친구인 양커에게 더 몰입하여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그것은 아마도 양커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따뜻함과 때때로 보여지는 뜻밖의 용기 때문인것 같다. 특히 양커와 백조의 이야기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기분마저 슬퍼져버렸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 기분으로 책을 보았던 순간이었다. 내가 너무 양커라는 인물에 호감을 느끼며 읽어서인지...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비교적 이기적이거나 자신의 손해는 절대로 보지 않게 보인다거나 현실에 맞추어 타협해가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또한 엘룬초원의 목축민들의 삶을 누구보다 이해했던 첸젠과 양커 역시 새끼늑대에게 비극의 삶을 제공했고, 그들이 초원을 진심으로 아꼈으나...결국 초원에 남아서 황폐해진 그 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은 당연하지만 원래 그 곳에 있었던 몽골인들일 뿐이다. 누구의 잘잘못은 아니다. 머물렀다는 기억은 잊혀지지 않겠지만, 그 곳을 끝까지 지키며 불행과 몰락까지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다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 접할 뿐인 나의 마음은 더더욱 미미하기만 할 뿐이다. 보는것과 실제로 경험하는것..그리고 끝까지 감당해내야 하는것의 차이가 실로 엄청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저자가 직접 체험한 신비로운 초원늑대에 대한 이야기와 자연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어루러져 있다. 자연의 이치는 어찌나 신비로운지......이 책을 읽다보면 그 오묘한 조화에 감탄하게 될 때가 참으로 많았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니......영상으로 보게될 엘룬초원과 늑대들의 모습이 정말 기대된다.
몽골인들은 하늘과 인간만이 합일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동물,인간과 초원이 전부 하나라고 믿었다.이것은 천인합일의 관념보다도 훨씬 심오한 가치가 있는 믿음이다. -3권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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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늑대에게 있어 식탐과 전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불가침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지켜진 신성함 때문에 진정으로 늑대를 숭배하는 초원의 목축민들은, 기꺼이 신비스러운 자연장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영혼도 초원늑대의 영혼처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224)
내가 늑대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어릴적 '모글리'를 읽으면서였을 것이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의 삶을 통해 늑대의 습성을 알게 되었고 인간사회에 온 모글리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모질고 탐욕스러운 존재인가를 느꼈었다. 아니, 사실 말하자면 아주 어릴적 난느 그런걸 알지는 못했겠지. 학교 수업시간에 간간이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걸 되새겨보다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명에 길들여진 나는 초원과 황야를 떠올리게 되면 먼저 광활한 만주벌판을 떠올리기보다 '벌꿀과 클로버'가 있어야 한다는 영국의 초원과 폭풍의 언덕을 상상해보면서 히이드가 무성한 무어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내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처음 '랑'을 받고 그저 '늑대 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하고 책을 펴들었는데 이건 그저 늑대이야기라고만 해서는 안되는 책이라는 걸 느꼈다. 초원을 자유롭게 누비던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랑을 읽다보면 지금 내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자연의 섭리를 파괴하는 인간의 욕심에 치를 떨게 된다.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던 늑대들이 사라져가면서 초원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쓸모없는 모래바람뿐.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 아득한 옛날, 푸른 초원을 맘껏 뛰어다니던 늑대들의 힘찬 몸짓이 보이는 듯 하다. 날쌘 말을 탄 몽골유목민들의 말치는 모습도 보이는 듯 하고 자유로운 바람결을 따라 그들의 길고 깊은 노랫가락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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