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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는 예쁜 공주와 늠름한 왕자가 서로 사랑을 하고 그들은 왕국을 이어받아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이 항상 내려져 있다. 그런데 내 어릴 적부터의 동화에는 진득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언제나 짙게 배어 있었다. 동화를 읽으면서 슬픔을 알아갔다고 할까.......
언제부터인가 왜 동화는 그리 슬픈 것인가가 궁금해졌는데 그 궁금증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할지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성냥팔이 소녀를 다시 한번 차분하게 읽게 되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내 머리속에는 성냥팔이 소녀가 어느 단란하고 화목한 집안을 추운 겨울날 밖에서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내가 다시 읽은 동화 속에서는 성냥팔이 소녀는 그저 자기가 팔다 남은 성냥을 그어서 손을 쬐었고 그 성냥불빛 속에서 소녀가 동경해 마지 않던 세상을 환상처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얼어죽었다.
아, 이게 뭐지? 이건 동화가 아니잖아..... 어떻게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 가난하고 굶주린 소녀가 성냥개비 몇 개를 태운 뒤에 얼어죽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또 읽은 인어공주는 어떠한가.... 인간세상을 동경하고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하고 그러고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마지막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순간에 인어공주는 포기하고 말지 않는가...... 그런 인어공주는 바람의 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지만 그녀가 왕자님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보장은 없는 거였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이런 동화 속에는 동화로 포장된 어떤 음침하고 음험하고 안타깝고 슬픈 어떤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 동화의 작가인 안데르센 평전을 집어들었다.
사흘에 걸쳐 읽어내려가면서 내 궁금했던 동화의 비밀이 풀렸고 나는 이제 막 마지막 이빨을 뽑으며 허전해하는 간암환자 안데르센을 떠나보냈다. 그의 치졸함, 나약함, 예민하고 편협하나 섬세한 관찰과 작고 낮고 무딘 용기로 튀어나온 과감성, 그의 흔들리는 연애와 복잡다단한 매음굴의 출입 등등
안데르센의 마지막 일정을 읽는데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핑 돈다. 그래서 이런 동화를 썼던 게로구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로구나.
잠시 책을 덮고 눈을 쉬어야겠다. 어려서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며 슬픔에 젖었고 이제 뻘쭘한 성인이 되어서는 안데르센의 평전을 읽고 낡은 슬픔을 마저 부린다.
아, 그 사람... 동화를 이해할 수 있어 뿌듯하였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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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던가 음악, 그림 등 예술은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온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약간의 변조만 가능할 뿐이다.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이 생산되고 있어 고전이라는 반석 위에 올라 설 작품들이 나오질 못한다. 동화 역시 안데르센만큼 힘있는 글을 써내는 작가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도 없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죽은 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전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읽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 이 작가의 삶이 궁금하다. 800쪽의 두께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다. 그는 덴마크 사람이다. 1805년에 태어나 1857년 72세의 나이로 살만큼 살다 죽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뿌린 씨앗을 수확했고 이후에도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갔다. 고흐처럼 비참하게 살지 않은 것이다.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죽었고 아버지 역시 정신착락을 일으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안데르센은 정신병이 유전될까봐 극도로 불안해 했다. 이 불안감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노래를 잘했던 안데르센은 배우가 되고 싶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아무 연고도 없이 변변찮은 소개문 하나만 들고 상경한 코펜하겐에서 천신만고끝에 콜린을 만난다. 평생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을 만난 것이다. 이때쯤 안데르센은 자신이 배우가 아니라 시를 쓰고 있었고 반짝이는 재능을 후원자들이 알아봐 주었다.
지독한 선생님 밑에서 어렵게 공부를 마친 안데르센은 첫번째 소설 <즉흥시인>을 쓴 후 처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화집을 펴냈다. 유명한 <공주와 완두콩>이 들어 있는 이야기였다. 이 동화책은 덴마크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해적판이 떠돌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안데르센은 이제 덴마크 뿐 아니라 유럽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그는 자서전도 쓰고 여행도 하면서 유럽의 사교계에 입문했다.
안데르센은 평생 자기 자신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는 가를 의식하며 살았다. 상류층 사람들과 알고 지낸다는 것을 으시댔으며 대접받기를 원했고 서운하게 대하면 토라졌다. 평생 어른이 못된 아이같았다. 그의 이런 품성은 평생 계속됐다. 충분한 후원금을 받고 있었음에도 늘 남에게 대접받기만 원했고 그러기 위해 상류층 사람들에게 최대한 호의를 베풀었다. 백조가 된 뒤에도 남이 나를 백조라 부르지 않는다면 미운 오리새끼로 남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안데르센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여자를 두 명 좋아했고 더 많은 남자를 좋아했다. 특히 요나스 콜린의 큰아들인 에드바르 콜린을 좋아했다. 이 애정은 평생동안 지속됐다. 스스로 가정을 갖지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다. 완벽해 보이는 가정에 그가 편입되길 원하는 모양새다.
작품이 생전에 성공했고 부와 명성이 따랐지만 안데르센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두꺼운 평전을 읽고 "참 이 사람 안됐다. 안쓰러워.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이런 느낌이 든다. 어린 아이로 평생을 산 사람이다. 어린이인데 어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불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