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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인한 잃어버린 세대" 에리히 마리아 레마크르의< 서부전선 이상없다> 를 읽고
"전쟁에는 영광이 없다" -20세기 전쟁의 허무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고발한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
"전쟁은 늙은이들이 결정하고,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비극적인 연극이다."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을 결정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실제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은 누구인가? 영토 확장, 자원 확보, 종교적 신념, 민주주의나 자유 같은 고결한 이념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그 이면에는 인간의 사악한 욕망과 탐욕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숭고해질 수 있는지...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희생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인간의 삶이 망가질 수 있는지... 전쟁 이후 남는 것은 무엇인지.... 1914년 7월 28일 발발한 제 1차 세계 대전은 1918년 11월 11일에 종전될 때까지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4천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약 1500만 명에서 2200만 명이 사망하고, 2300만 명 이상이 부상 당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 중에서 서부 전선에서는 2백 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 만 명이 부상 당하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 책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작가는 전쟁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고 수백 만 명이 부상 당하는 서부 전선 속 참상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마치 그 전선 속 참상과 비극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이, 그들과 함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느끼게 된다. 한때 같은 반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장난치던 친구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며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모습, 곁에서 함께 이야기하는 친구가 갑자기 참혹하게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모습 등은 정말 그 장면을 머릿 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 영화에서는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영웅주의에 물든 철없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어떻게 '인간 백정'으로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투덜거리기도 하고 기분 좋게 떠들기도 하면서 출발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전선 지역에 이르러서는 인간 백정이 되어 버렸다. -p.51 하물며 그 전쟁의 참상을 겪고, 전우의 죽음을 목격하고, 전쟁 이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으로 살아갔던 작가를 포함한 그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고, 그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 또한 그 고통에 힘겨운데, 그 모든 것을 겪고 그 이후의 공허하고 파괴된 삶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은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더 파리하지도, 더 붉지도 않다. 또한 더 긴장해 있거나 더 풀려 있지도 않지만 보통 때와 같지는 않다. 우리는 피 속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냥 하는 말 이 아니라 사실이다. 전선이란 이처럼 전선을 의식하는 것이며, 이러 한 의식이 전류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최초의 유탄(재료) 지지직 하고 터지면서 지축을 뒤흔드는 순간, 불현듯 우리의 혈관, 손 및 눈 속에서는 은밀한 기대감,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 더 강렬하게 깨어 있 다는 의식, 왠지 이상야릇하게 오감이 나긋나긋해지는 느낌이 생긴 다. 말하자면 온몸이 일시에 완전한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p.49 하지만 작가는 그 죽음을, 그 비극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묘사해 나간다. 죽음을 미화하거나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친구가 죽어가는 장면에서도 친구가 죽고 난 후 그 장화에 눈독을 들이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모습을 통해 작가는 전쟁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식사나 잠처럼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상황, 전쟁이라는 상황에 얼마나 인간이 마모되고 무감각해졌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처절함을 느끼게 한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작가의 일상이 되어버린 죽음과 그 참상에 대한 담담한 묘사 속에서 그 슬픔과 그 비극이 너무나 가슴 깊이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전우로써, 친구로써, 인간으로써 쌓은 사랑의 마음을 전해준다. 전쟁 속에서도 함께 훔친 거위 고기를 먹으면서 고기를 먹는 기쁨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때론 웃을 수도 있다. 한밤중 갑작스러운 폭격 속에서도 자신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라며 안도의 한숨도 쉴 수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전쟁 속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 총을 겨누어야 하는,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에 있다. 이런 전쟁으로 인한 참혹하고 무의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 중에서 '구덩이 속의 사투'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주인공 파울이 포탄 구덩이에 몸을 숨겼다가 뒤따라 들어온 프랑스군 병사를 칼로 찌르게 된다. 하지만 그 병사가 즉사하지 않고 아픔과 고통에 힘겨워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파울은 그 죽어가는 병사를 살리기 위해 애쓰며 구정물이라도 손수건에 적셔 떠준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몸부림 치다가 죽게 되고 파울은 그의 주머니에서 가족사진과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죽여야 할 적이 아닌 '제라르 뒤발' 이라는 인쇄공이었으며, 그에게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음을, 그 또한 자신과 같은 한 인간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죄책감과 허망함에 오열하는 파울의 모습은 너무나 가슴 아프며 나 또한 오열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전쟁의 참상 속에서 희생 당하는 사람은 농부이거나, 구두 수선공이거나, 인쇄공이거나 가난하고 힘이 없는 약자였음 말이다. 이 장면을 통해 인간적인 고뇌와 전쟁의 비극을 느끼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겪게 되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도 없다. 그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 것, 그 생존에 대한 욕구만 있을 뿐이다.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과연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우리는 열여덟 살이 었을 때 세상과 현 존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터진 유탄은 바로 우리의 심장에 명중했다. 우리는 활동, 노력 및 진보라는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p.76 그리고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시에는 우리 마 음속에 돌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모든 것이 전후에는 다시 깨어난 다음 비로소 생과 사의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 일선에서 보낸 나날들, 주들, 해들이 또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 러면 우리의 죽은 전우들은 다시 살아나 우리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우리들의 머리는 맑아질 거고, 우리는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 게 우리는 전선에서 보낸 세월을 뒤로 하고 죽은 전우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서, 누구를 향해서 진군한다는 말인가? -p.115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 휴전하기 전 마지막 15분 전투 장면을 보여준다. 그 마지막 돌격 속에서 집에 갈 꿈에 부푼 병사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게 된다. 휴전 발효 시각인 오전 11시를 불과 몇 분 앞두고, 명예와 이익에 눈이 먼 장군이 병사들을 억지로 사지 속에 몰아넣게 되고, 파울조차 휴전 전 허망하게 목숨을 잃게 된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전쟁이 끝나고 보고 싶은 가족들 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말이다. 만약 그 상황이 실제였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비통하고 허망한 일인지.... 영화 속에서는 책상 앞에 앉아 '숫자'로 전쟁을 치르는 지도층과 현장에서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르는 병사들의 모습이 대조되어 보여주는데 그 대비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허망한지 보여준다.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 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p. 230 "1914년 전쟁 발발 직후, 서부전선은 고착 상태에 빠졌다. 1918년 11월 종전 때까지 전선은 거의 이동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수백만 명의 병사들이 전사했으며, 종종 겨우 몇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싸웠다." "서부전선에서만 300만 명이 넘는 병사가 전사했다." -영화 속 엔딩 자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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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과연 전장으로 총을 들고 나가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종종 하곤 했었다. 평화로운 대한민국 서울에서 내가 이런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과 그 분단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철없던 시절에야 전쟁이 멋있어 보이고, 자동소총과 수류탄, 탄띠로 중무장한 채 적들을 섬멸하는 람보가 영웅처럼 받들어졌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 물정을 알아 갈수록 전쟁이란 허망한 정치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수많은 전쟁 중에서 과연 정의로웠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최근까지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이라크를 침공하고,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며 민간인을 포함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저 정의로운 작전들이 그들의 말대로 정말 인류의 평화를 위해 벌인 자비로운 행동이었는가. 전쟁에 명분은 없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작동할 뿐이다.
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여 그 참상을 겪은 레마르크도 이러한 전쟁의 허망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포탄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오로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앞에 있는 적을 죽이기 위해 그의 분신처럼 싸운 파울 보이머와 그의 전우들은 전쟁의 가해자이면서 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학도의용군에 지원해 학급 동료들과 함께 입대한 그들은 세상이란 것을 알기도 전에 죽음이 가득한 전쟁터에 내몰린다. 그곳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정글이다. 그들은 세상을 알아야 할 젊은 나이에 그곳에 있을 의무가 없으며, 그 점은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프랑스 병사들에게도 또한 마찬가지다. 전장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학급 동료들처럼 벗이 될 수도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전쟁이 그들의 젊음과 희망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는 소수 권력자들을 위한 놀음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전우들은 하나둘씩 날마다 전장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되는 반복적인 일상은 계속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전쟁’ 자체에 대한 인간 본연의 세계를 그린 점이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나 전쟁의 목적 등에 관한 설명은 없다. 오로지 작가는 직접 전쟁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이 주는 아픔과 고통을 파울 보이머와 그의 전우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고 밋밋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병사들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한 면밀한 성찰은 그 어떤 전쟁문학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핵무기 등을 포함한 전쟁무기들도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레마르크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바도 제대로 전달되는 것 아닐까. by 꽃다지, 2007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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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제목 '서부전선 이상없다'. 하지만 읽기 전까지
개인적으로도 어떤 소설인지 전혀 몰랐다. 읽기 시작하면서 이렇게까지
몰두하게 된건 정말 오랫만의 일이다. 대부분의 1,2차 세계대전에 관한 이야기들은
주로 연합군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작품은 그들의 '적'인 독일
인 병사들의 전쟁에서의 하루하루를 다루어 나가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전쟁의
이데올로기나 이념등의 언급은 없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단지 전쟁의 참혹성
을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전선에서 싸우던 일반 병사들은 독일
군이나 연합군이나 모두 정치적 이념에 총알받이로 내몰린 불쌍한 소모품들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또는
'콜 오브 듀티'시리즈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선(善)은 연합군
이라는 기본적(?) 관점에서 시작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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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을 살아오면서 책을 읽기 시작해 끝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덮어버린 책이 대략 3권 있다. 그 중에 한 권이 레마르크의 개선문... 중2때 -아무래도 그 책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칼바도스'라는 단 한마디의 기억을 남긴채 '개선문'은 내 인생에서 떠나가버렸다. 그리하여 레마르크란 이름은 나에게 죄책감, 혹은 묘한 패배감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바, 이 책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그런 감정들의 연장선상에서 읽을까 말까 과연 재미가 있을까 나를 한참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게다가 쌩뚱맞게 전쟁소설이라니, 당혹스러움이 도를 지나쳐도 한참~) 암튼 결론은 시작부터 이 모든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을 확 날려준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이었다는 말씀. 재미있다는 말을 곡해하진 마시길.. 웃겨서 배를 잡고 뒤집어지는 그런 재미가 아니다.(가끔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소설의 재미!! 물론 전쟁소설이다보니 상황 자체는 아주아주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피튀기는 총질이 난무하는 그 어떤 전쟁영화보다도, 글로 씌어진 사실적이고 담담한 묘사가 얼마나 리얼하고 적나라하게 전쟁의 참상을 전달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 이런게 바로 온갖 영상매체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매체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 재미가 아닐까. 훗, 그렇다고 초지일관 끔찍스러움으로 점철된 소설은 절대 아니고, 적당한 유머와 다양한 캐릭터, 짜임새있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촌철살인이란 말로 설명이 될까? 간단한 단어들로 진리를 가르치는 것처럼, 너무 진지하지 않은 어투로 묵직한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책인것 같다. 솔직히 다 읽은 후엔 감동..이라기보단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지만.. 전쟁이란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 끝이 좋을 수 없는 것.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거라고는 없는 것. 아아, 이제 '개선문'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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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이 민중의 광기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또는 자신들의 정치사상과 다른 의견을 의도적인 물리력으로 억제하기위해 흔하게 하는 짓거리가 분서焚書 행위가 아닌가 생각된다. 전자의 예로는 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의 분서행위를, 후자의 경우로는 멀리 진시황의 분서갱유부터 가까이로는 독일 나치 정권 치하에서의 분서사건까지 들 수 있을 것이다.
나치 정권하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레마르크의 작품들도 반전적인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분서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는데, 게르만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유럽침략을 계획하고 있던 나치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전쟁의 비참함을 알린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작품은 분명 눈에 가시 같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레마르크의 작품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아닌 “개선문”이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국내 유명 대학의 추천도서로서 수능 필독서이기에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두꺼운 두께의 책이지만 끈기를 가지고 읽어나갔고 내가 받은 인상은 주인공 라빅의 끝을 알 수 없는 절대고독이었다. 나치 치하에서 고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 외과의사인 라빅의 절절한 고독이 어린 나에게도 슬프고, 무겁게 다가왔다. 물론 그해 수능에 “개선문”에 대한 지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동년배의 친구들은 느끼지 못한 절대고독을 느꼈다는 것과, 레마르크라는 대문호를 알았다는 지적허영은 수능문제 한, 두 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후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그늘진 낙원”등 그의 작품을 읽으며 전쟁이 꽃다운 청춘들에게 가하는 가혹한 폭력과 망명객의 마음 둘 곳 없는 고독함 등, 레마르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 지는 주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반전사상에 감명을 받았다. 이 같은 반전사상이 가장 극명하게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서부전선 이상 없다”이다. 소설은 1차 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 했던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의 과잉을 절제하며 사실적으로 전쟁의 비참함과 청년들을 사지死地 로 내모는 기성세대의 그릇된 권위와 위선 등을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반전사상이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어렵게 느낄 필요는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가 경험한 병영생활의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묘사돼있어 재미있으며 각자가 경험한 우리나라 군대의 병영생활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사막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것 같은 수단 좋은 카진스키, 비열하고 악질적인 상급자 히멜슈토프 등은 우리가 군에서 만난 김병장, 장하사와 다르지 않다. 독일 작은 마을에서 주인공 파울 보이머를 비롯한 스무 명의 학생들은 허황된 애국심에 경도된 담임선생 칸토레크의 강압적인 권유로 군에 입대하게 되고 전장에서 그들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거창한 기치가 아닌 단순히 살기 위해 살육의 전쟁을 수행해 나간다. 오직 먹고, 자고, 살아남는 것만이 관심의 대상이고, 즐거움이 되어버린 그들은 점점 인간의 존엄성마저 상실해 가고, 결국엔 모두가 전사하지만 전쟁에서 소모품에 불과했던 그들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최고 사령부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란 공식 발표를 하며 소설은 끝맺는다. 소설은 취사차 앞에서의 다툼으로 시작해 시종일관 먹을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데, 전장이라는 특성상 모든 욕구가 억압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욕구가 식욕뿐이기에 그런 것 같다. 심지어 식욕은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기보다 그들 앞으로 배식된 음식을 살아남은 자들이 먹을 수 있음을 기뻐하게 만든다. 극한 상황에 다다랐을 때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큰 욕구가 식욕이라니. 위로와 자기기만 없이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들은 찧은 보리 한줌이 현실적인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존엄성의 사전적 의미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한 성질 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게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회의적인 느낌이 든다. 또한 전쟁은 타인의 죽음에도 내성이 생기게 만드는 것인지 부상을 당해 죽음을 앞에 둔 케머리히의 가죽 장화를 탐내는 뮐러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우정이고, 전우애인가? 우리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았던 존귀한 가치 중 하나인 우정이 전쟁터에선 한낱 가죽장화 만큼의 가치도 없는 헛된 관념에 불과한 것 같아 슬프게 한다. 휴가차 귀향한 보이머에게 전황을 물어보며 진실을 외면 한 체 영웅적 활약상에 대해서만 듣길 원하는 동네 어른들, 학생들을 선동하여 죽음의 전장으로 몰아넣은 담임선생, 훈련소에선 전지적 신의 위치에서 어린 훈련병들을 괴롭히지만 실제 전쟁터에선 꽁무니를 빼며 두려워하는 분대장 히멜슈토프. 이러한 기성세대의 모습은 포격에 부상을 당한 신병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겨야함을 고민하는 젊은이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전쟁은 기성세대가 일으키고 그 피 값은 젊은이들이 치러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권위만 내세우는 기성세대를 작가는 비웃고 있다. 1930년대에 나온 이 소설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남의 나라 옛날이야기라고 하기엔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1차 대전 당시의 이야기지만 아직도 우리주위에는 애국과 민족주의의 허울을 뒤집어쓴 국수주의적인 요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담임선생 칸토레크 같은 기성세대가 존재하고,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발발한 전쟁터에서 피 흘리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공감하며 읽어 나가게 된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성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좋은 작품은 시대와 연령에 관계없이 사랑 받으며 깊은 영감을 준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특정 세대에 더 큰 감동과 영향을 미치는데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젊은이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시대를 넘어 같은 고민을 하고,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는 우리의 방황처럼 가슴이 시리다. 뜨거운 가슴을 안고 부조리한 세상에 휩쓸리다 산화해간 젊은이들의 기록은 그 자체로 우리들 청춘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쟁의 부당함과 비극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혀지는 전쟁문학의 최고봉에 있는 소설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 젊은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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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뒤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작가의 연대표를 보니 이 글이 작가의 경험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만든 것이여서 본인을 포함한 주변인물의 이름(물론 이름이므로 아무 뜻 없이 사용했을 수도 있겠으나 보통은 그러하지 않은 것이다)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주인공인 파울 보이머에서 파울은 작가의 원래 (가운데) 이름이다. 프란츠는 흔한 이름이지만 아버지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아으로 돌아가셨다. 역시 작품 속에서도 어머니가 암으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적지 않은 책을 보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내는 것을 보아왔다. 따라서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라도 일부는 아마 작가의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해도 될 정도이다.
아무튼 이 작품을 '목적을 가진 반전소설'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고 '그냥 경험담을 글로 약간 윤색한 것이다' 라고 해도 틀린 게 아니다.
시대 배경이 1차 세계대전이여서 부상자가 잘 죽는다. 그 전 시대의 작품에서보다는 덜하지만. 이것도 역시 시대가 반영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25시를 보면 부상자는 훨씬 덜 죽는다.
시간 흐름의 내력을 아는 입장에서 기술하지 않은 것이여서 현장감이 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개선문과 이것을 한달 간격으로 구입하여서 먼저 이것을 읽기로 하였다. 사실 읽기 순서를 정할 때만 해도 어느 작품이 먼저인지 몰랐었다. 다행히 순차적으로 읽게 되었다.
제목은 꽤 알려진 작품이고 여러번 방영된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책도 전혀 읽어본 적이 없었고 영화도 본 적이 없다. 이제 조만간 영화도 볼 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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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 지연: 소설만 읽다가 이 책을 읽어서 더 그렇게 느낀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담담하게 나열만 하는 문학적 특성이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대적 문학의 특징이란다. 오히려 말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건들만 나열해서 전쟁 상황이 더 참혹하게 다가왔다. - 지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일부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의 참혹함이 더 잘 느껴졌다. 또 작가의 이념과 사상이 들어가 있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서 반전 소설 그 자체가 느껴져서 좋았다. 사상이 들어갔다면 '전쟁 싫어!'라고 말하려는 게 느껴졌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더 와닿았다. - 수지: 전쟁 영화를 원래도 안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사건의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아서이다. 이 소설도 이번에는 얘가 죽고 다음에는 얘가 죽고.. 같은 얘기를 계속해서 지루한 감이 있었다. 비슷한 사건들의 반복? 문학적으로만 봤을 때는 중간에 루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의 죽음을 표현하는 문장이 임팩트 있었다. 2. 주인공이 죽는 결말을 예상을 했는지 - 지연: 제목의 뜻을 알아보다가 먼저 알게 됐긴한데.. 주인공보다도 주변 인물의 죽음이 더 빨리 다가와서 놀랐다. - 지윤: 주인공이 죽을 것 같긴 했는데 오히려 주인공이 죽은 게 더 나았을 현실이었다. 너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느꼈으니.. - 수지: 죽음 자체가 놀랍진 않았는데 앞에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자세하게 묘사된 반면, 그것과 대조적으로 주인공의 죽음은 한마디로 끝나서 그게 더 충격적이었다. 3. 교관, 선생님 등 어른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 지연: 악역이 뜻밖이었다. 전쟁이란 적군이랑 하는 건데 적과의 갈등보다 같은 나라의 성인과의 갈등이라는 대결 구도가 신선했고 오히려 그런 구조가 젊은이들은 적군이든 아군이든 아무런 악의 없이 끌려오게 된 현실 비판을 더 잘 나타냈다. - 지윤: 사상과 이념이 없는 순수한 아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걸 기성세대에 이입시켜 현실을 비판하는 장치로서 잘 활용한 것 같다. - 수지: 작가가 실제로 어른들이 정말 미웠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년병이 되어도 어른들이 미울 것 같다. 어른들은 왜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를 여기를 내몰고.. 4. 책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 - 지연: 처음에는 길다고 느껴졌다. 담고 있는 내용에 비해 긴 느낌? 근데 또 이렇게 길지 않았다면 등장인물에게 몰입하기 어려웠을 듯 하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는 오히려 좋았다. - 지윤: 원래 전쟁영화를 좋아한다. 전쟁소설은 처음 읽어봤지만 영화만큼 재밌었다. 영화 <1987>은 같은 시점의 영국군, 이 책은 독일군을 다룬다. 다른 영화지만 같은 사건을 다뤄서 흥미로웠다. - 수지: 처음에는 술술 읽히다가 중간에 지루하게 느껴지니까 손이 잘 안가긴했다. 한 편으로는 죽음이 이렇게 쉬운지를 보여주려면 등장인물을 하나하나 보여줬어야했을 것인데.. 아무튼 이 부분이 루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5. 나라면 어떻게 할지 수지: 저는 죽을 건데요?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아등바등 견디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연: 저도요. 지윤: 저도요. 죽지 않으면 전쟁에 계속 나가야 하는 것도 괴로워요.. + 영화 <미스트> 선택적 갈등을 잘 보여주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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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앗다 완전속앗다 이래서책은보고사야된다구나 물론내용이더중요하긴하지만 이렇게만들어놓고어떻게 정가로7800원이나받아먹을생각을하지ㅡㅡ 종이질은시험용이면지에다한것같이 회색에다가까칠까칠한거 겉표지는종이에다비닐입혀놓고 와진짜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속앗어 속앗어 속앗어 속앗어 속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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