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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제목이 뜻하는 의미가 무얼까? 백인인척하기란 뜻이다. 백인 행세를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기에 이런 단어가 생겼을지 당시 사회 생활상이 절로 눈에 그려진다. 소설 속 백인 행세를 하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뿐만 아니라 몸속에 흐르는 흑인이란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그로인한 내적 외적 갈등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흑인들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어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흑인을 비하하고 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에 흑인의 피가 흐르지만 피부색은 백인과 같은 혼열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더 안전한 삶을 위해, 차별받지 않고 좀더 쉽게 살아가기 위해 택했던 또 다른 생존 방식이었다.
흑인 의사 남편을 둔 중상층 아이린은 흑인 사회에 안정되게 속해있으면서 필요할 때 백인 행세를 하며 나름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매력적인 학창시절의 친구 클레어를 마주하게 된다. 변화를 원치 않는 그녀에게 자꾸 다가오는 클레어는 불편할 뿐이다. 자신을 찾아오지 말았으면 자신이 속한 세계에 발을 들여 자신을 흔들지 않았으면 싶다.
클레어는 백인 행세를 하며 부유한 백인 남편을 만나 풍족하게 살아가지만 자신에게 흑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놓고 흑인을 혐오하는 남편과 그가 속한 백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린이 속한 사회에 발을 디디고 싶어한다. 임신기간 내내 검은 피부의 아이가 태어날까 두려웠다는 말에 흑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까 초조하고 전전긍긍했을 그녀 자신이 느껴진다. 백인 행세를 하며 느끼는 답답함 속에서 차츰 차라리 흑인임을 밝히고 아이린이 속한 곳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백인 남편에게 들켰을 때 순식간에 일어난 마지막 장면은 우연한 사고 인지 자유로워지고 싶어 선택한 그녀의 결정인지... 내가 그녀들의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고민해보았다. 그녀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유도한 사회 분위기와 흑인과 백인 사이의 혼열인으로 살아가며 겪었을 갈등과 고뇌 등을 한번 쯤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콕집어 백인처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인 척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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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패싱(PASSING)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단어의 뜻이 '백인 행세하기'란다. 백인 행세하기라.. 사실 흑인들이 많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백인 행세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던지라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더 했다. 특히나 국내 최초로 번역되는 할렘문학이라는 점과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 또한 좋은 작품이라도 번역 때문에 읽기 어려웠던 다른 책보다 기대감을 더했다.
주인공 클레어와 아이린은 둘 다 흑인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하고 누군가 받을 상처는 상관없고 어떤 것도 다 던져버리는 클레어와 그런 클레어를 마음속으로는 거부하지만 실질적으로 매번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는 둘 사이에서 항상 당하는 듯한 아이린.. 둘의 관계를 통해 패싱이라는 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처음 클레어가 아이린의 남편을 뺐는 이런 내용 소개를 보았을 때에는 여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묘한 감정을 주로 다룰 것이라 생각했지만 커다란 의미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흑인들이 자신의 인종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감저에 대해 더 자세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카고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아이린의 평온했던 생활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12년 만에 만난 클레어는 자신이 흑인인 것을 밝히지도 않고 백인인 남자와 결혼하여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초대받아 간 집에서 만난 다른 친구 거트루드는 흑인인 것을 다 아는 백인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아이린은 자신의 인종을 숨기지 않고 흑인 남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다. 철저하게 패싱을 하고 있는 클레어는 남편이 흑인을 조롱하고 비판하고 모멸감을 주어도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 사회에서 받는 흑인들의 차별은 인권이 존중되고 있는 요즘에도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백인들의 자신들에 대한 인종적 우월주의는 흑인뿐만 아니라 황인종에게도 미치지만 흑인에 대해서는 더 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흑인들이 그들 나라의 구성원으로 각종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도 백인일 때 보다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흑인들이 백인 행세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흑인이 패싱을 하지 않겠지만 글을 읽는 동안 내가 놓쳤던 것은 클레어의 패싱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그녀의 이기적인 듯한 태도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린이 패싱을 한다는 생각은 못했다는 것이다.
클레어가 철저히 패싱을 했지만 아이린 역시 흑인이 들어오지 못하는 호텔이나 다른 공간에 들어갈 때는 자신이 흑인인 것을 숨기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즉 각 주인공들은 각각 다른 방법과 행동으로 패싱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인종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불리하게 된다면 그런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거나 감춘다는 점에서 이해되는 입장이었다. 우리 농촌에 시집오는 외국 여성들이나 취업을 목적으로 온 동남아 계통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받는 여러 가지 인종 차별 또한 생각해 볼 문제이다. 결말이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또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듯하였다. 사회가 다양화될수록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평등하고 존중해 주는 모습이 더 강해졌으면 한다. 생각할 것이 많은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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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만의 조우, 2년만의 재회, 그리고 종말..
1920-30년대, 흑인과 백인의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흑인 여성으로, 흑인과 결혼한 아이린 레드필드는 고급 호텔의 카페나 쇼핑을 할 때 백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상점을 이용할 때에만 패싱(백인 행세)을 한다. 어렸을 때의 친구인 클레어는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흑인으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백인인 고모들의 집에 살게 된 후 소식이 끊기기 된다. 헤어지고 12년만에, 둘은 백인들만 이용하는 드레이크 호텔에서 조우하게 된다. 간절한 클레어의 초청으로, 내키지 않지만 백인들만이 모여있는 파티에 가게된다. 파티 장소에서 남편 가족들 모두 자신이 흑인임을 알고, 결혼한 친구 거트루드를 만나게 되고, 패싱한 세 여인은 오랬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클레어가 흑인인줄 모르고, 흑인을 경멸하는 말을 하는 남편 잭을 만나게 되고, 모욕감에 아이린은 다시는 클레어를 보려 하지않기로 결심한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이린은 그 편지를 무시하고 클레어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집에까지 찾아온 클레어는 그동안의 혼자만 겪어야 하는 외로움을 토로하게 되고, 안정을 추구했던 아이린은 클레어의 요구에 조금씩 끌려가게 된다. 흑인들의 행사에 주저없이 참여하며 흑인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클레어에게 아이린은 클레어의 딸 '마저리'를 이야기하며, 되돌아 올 수 없음을 강조한다.
쇼핑을 하다 잭에게 패싱 행세를 한 것을 아이린은 들키게 되고, 흑인들의 행사에서 잭과 클레어는 마주치게 되는데...
흑인 중산층이 어느정도 형성되고, 백인들의 삶을 따라하던 시기 백인의 행세를 하면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그때의 패싱의 유혹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종'이라는 태생적인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문화가 오랜시간 지속되어 왔고, 그 뿌리에 종교가 깊숙이 관여되고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백인 행세를 하더라도, 결국 혼자서 생활해야 해서 느껴야 하는 외로움과 무력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경계를 넘지 않은 세계에서 더욱, 경계를 넘은 자에 대한 외면이 심하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앵무새 죽이기'와는 다르게 현실적인 관점에서 인종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종'이라는 차이는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로 돌아서면 '민족'이라는 틀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그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를 보는 세태에서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는 장벽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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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제 1회 유영번역상 수상작? 국내 최초로 번역되는 할렘 르네상스 문학? '번역에 있어서는 남다른 책' 이리라는 기대감에 이 책을 집어들었고 넬라 라슨이라는 생소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이로인해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던 인종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패싱-백인 행세하기. 이 책은 1929년 작이다. 그런데 무려 77년만에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책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인종차별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책은 흑인이 천대받고 터부시 되던 당시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역사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연결짓노라면 더 긴 부연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책으로 들어가보자.
흑인혼혈이지만 자신의 인종을 거스르고 백인으로 행세하는 클레어. 클레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유색인의 내적, 외적 갈등들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을까? 아니 무엇이 그녀에게 자신을 버리고 살게끔 한 것일까? 클레어가 백인으로 사는 것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했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바로 백인인 그녀의 남편 존 벨루. 백인은 우월하며 완전하다는 불손한 선민사상은 정말 역겨웠다. 이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화가 났다. 아니 책을 다 읽는 후에도 한 동안 우울한 기분이었다.
인종문제. 과연 과거사일뿐일까? 생각기에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제도나 법률상의 문제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국한된 변화가 아닐까? 인류의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유색인에 대한 천대와 괄시가 만연하다. 뿐만 아니라 백인과 유색인의 문제는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적잖은 이슈들을 낳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푸른 눈의 금발을 한 남자가 다가와 안타까운 표정으로 경복궁을 물으면 손발을 써서라도 호의를 베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렸어요, 임금을 못받고 쫓겨났어요' 하는 동남아시아쪽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서있는 그 곳을 지나며 그들에게도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호의를 베풀 수 있는가? 언제나 그러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태도는 인종차이로만 국한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이는 국가 경제력 우위에 따른 차별문제에 더 가까울지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나와 당신 또한 그 맥을 이어주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우스개 이야기 하나를 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좀 덜 익힌 것이 백인, 좀 과하게 익힌 것이 흑인, 적당히 잘 굽혀진 것이 황인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필시 황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인종을 평등하고 동등하게 보지 못하고 어느 쪽은 우등하고 혹은 어느 쪽이 그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의식부터 타파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직도 단일민족을 우리나라 고유성의 하나로, 자랑거리의 하나로 배우고 있다. (그마저도 얼마지 않아 더 이상 내세우지 못할 것이다. 실로 농촌총각들의 많은 수가 국제결혼을 하고 있으며 국제연애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아직도 이런 것을 거들먹거리다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우스운 일이다. 무슨 애견센터의 강아지도 아니고 오리지널이니 순수혈통이니를 따지고 있는가? 단일민족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위험하고 편협한 반인종적인 태도가 아닐까?
이 책 <패싱>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 어려웠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야 왜 번역상을 수상한 책인지 알 것만 같다. 클레어의 삶 그 안에서의 갈등.... 이것들을 이렇게 가슴 갑갑하게 옮겨냈다는 것은 외국어를 풀어 자국어로 옮긴 일, 그 이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번역은 '언어를 아는 사람의 손에서가 아닌 문학을 아는 사람의 가슴에서 옮겨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작품은 훌륭하게 그 임무를 다했다. 절절하고 절박한 삶 앞에 치닫은 한 여성을 이리도 가슴 뻐근하게 우리 앞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힘있고 기고만장한 그 어떤 세력 앞에 힘없이 고개 숙인 또 다른 모습의 클레어는 아닐까?
나와 다른 것을 거부하고 다양함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 그것이 만연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가치로운 존재로 살기위해 자연스러운 삶을 포기했던 여성. 패싱은 차별없이 자신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유색인들의 몸부림이었다. 클레어는 유색인들과 혼혈들의 슬픈 삶을 대변하는 이름이자 본태를 거부하고 동경하고 추앙하는 대상과 같아지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자 인류의 슬픈 역사의 이름이었다.
지금, 미국은 인종문제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 앞에 서있다. 바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세워지는가의 문제다. 국제 정세를 선두하다 시피하는 미국이란 나라에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다면 아마도 인종문제에 있어 큰 획을 긋는 일이 아닐까 싶다. 흑인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 깊었던 설움의 역사를 다시 세웠으면, 흑인과 유색인의 입지를 좀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패싱> 이 책은 인류의 뼈아픈 과거를 들추어낸 이야기이자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이다. 또 다시 인간이라는 종들끼리 생김새와 모습으로 편을 가르고 시대와 사회가 어느 한 쪽의 군림과 천대를 인정하는 이런 비극적인 만행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과오를 지우고 씻는 일, 그것은 어느 인종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진정으로 화해하고 수용하고 용서함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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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특별히 흑인문학을 인식하고 읽어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에도 문학과목은 안 들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지만, 개설이 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내가 듣지 않은 탓인지 유독 이런 류의 문학작품은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비평론 수업에서나 좀 읽어봤을거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기껏 흑인 문학이라고 해봐야 앨리스 워커나 토니 모리슨 정도이다.
<패싱>은 흑인과 백인 사이에 태어나 흑인인지 알아볼 수 없는 흑인들의 이야기이다. 패싱(passing)이라는 용어가 흑인이 백인 행세를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패싱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소설에는 3명의 흑인이 등장하고 그들은 알게 모르게 패싱을 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남편에게 자신이 흑인인 사실을 숨기고 있는 여인, 남편과 함께 흑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지만 자신의 생활에 편의를 위해서는 패싱을 하곤 하는 여인, 백인 남편과 결혼해서 흑인임을 속이지도 않고 모두에게 인정받지만 자신의 아이가 검은 피부를 가질까지 전전긍긍하는 여인. 이들이 패싱을 대하는 태도는 이들 만큼이나 다양하고 심층적이다. 얼핏 남편에게까지 흑인임을 숨기고 있는 여인에게 가장 호기심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패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패싱>은 이 세 여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만, 작가의 놀라운 점은 그녀들의 삶을 단순히 그녀들의 피부색과 연결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작가들과의 시대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가는 새로운 시대상에 맞는 사람들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이 의미있는 고찰은 그들의 삶에 고민을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문제로 바꾸어 놓는다. 물론 이야기는 그들이 흑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금만 그 표면을 열어보면 단순히 피부색의 문제가 아닌 타인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하는,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을 곱씹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종종 듣곤 하는 말 중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냐, 세계적인 것이 세계적이냐라는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와 처음부터 세계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의견을 들으며 종종 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난 그런 그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흑인 문학을 지극히 편협한 '그들만의 문학'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싱>이라는 한권의 소설로 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던 발걸음을 한 걸음 옮겼다. '그들만의 문학'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패싱>이 증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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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노예제를 합리화 시키면서 이론적 근거로 든 어처구니없는 예가 있다. 성경 창세기 노아와 세 아들의 예를 들며 술 취한 아비의 치부를 비웃은 함의 후손이 흑인들이고 그들에게 노아가 저주한대로 야벳의 후손들이 함의 후손을 지배한다는 이야기를 노예제의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신약에는 빌립을 시켜 에디오피아 고위관료에게 세례를 주고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삼으셨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하나님이 백인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백인들의 이론적 근거가 아전인수 격 성경해석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노예제를 겪은 흑인사회에서 알렉스 헤일리 같은 작가는 “뿌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했으며, 노벨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의 삶과 그들 공동체의 민속, 신앙 등을 얘기했다. 이번에 읽은 “패싱”의 작가 넬라 라슨은 흑인이 백인행세를 하는 행위인 패싱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과 자기부정이 불러온 비극적 사건을 얘기하고 있다. 기존의 가난한 흑인이 아니라 전문직의 사회 중산층 이야기인 패싱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서 피부는 백인처럼 하얗지만 성장과 의식은 흑인사회에 속해있는 물라토들이 겪는 삶의 애환과 갈등이 주제이다. 어린 시절 흑인 사회에서 같이 성장한 클레어와 아이린은 백인전용 호텔 옥상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백인과 결혼한 클레어를 보며 아이린은 경멸의 감정과 반대로 그의 거침없는 삶에 매력을 느낀다. 이는 아이린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패싱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인종주의를 흑인 그들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지하는지 보여준다. 백인의 삶을 동경하고, 자신이 낳은 아기가 백인임에 안도하는 클레어지만 뿌리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에서 흑인사회와 접촉하게 되고 비극적 결말을 향해 두 여인은 치닫는다. 물라토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선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할렘 르네상스 시기인 1929년에 나온 이소설이 아직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흑과 백의 갈등과 인종주의의 망령이 미국과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사회도 코시안들과 흑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 제도적으로는 몰라도 우리 의식속에 인종주의가 엄연히 존재함을 생각하면 “패싱”에 나오는 가해자로서의 클레어 남편 존 벨루의 모습은 나의 모습을 투영한 것처럼 여겨져 부끄럽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물질적 만족과 사회적 지위보다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클레어를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가벼운 두께의 책이고, 내용도 비교적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에 담겨있는 커다란 메세지는 가볍게 넘길수는 없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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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어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까무잡잡했다. 부모님은 무조건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하셨지만 어렸을 때 내 별명은 한 때 시커먼쓰였다. 악의가 없는 친한 친구들의 장난이었음에도, 나는 꽤 상처 받았었다.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하는 유난히 피부가 하얗던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체질이 변해서 그런지 지금은 많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길을 가다가도 마주치는 새하얀 피부의 여성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하얀 피부의 아이가 부러웠던 것일까.
<패싱>은 백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흑인들이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으로 행세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들에게 해당하는 현상으로 흑인 작가들의 중요한 주제였다고 한다. 할렘 르네상스의 대표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넬라 라슨의 대표작 [패싱]은 그러한 혼혈인들의 패싱 행위와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종족'이라는 개념을 두 여자 주인공을 앞세워 그려낸다. 아이린 레드필드는 친정 집에 쉬러 갔다가 어렸을 적 친구 클레어 켄드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흑백 혼혈인 클레어는 놀랍게도 자신의 남편에게, 자신에게는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멀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독특한 감정에 사로잡힌 아이린은 결국 자신의 생활에 클레어를 받아들이게 되고, 어느 날 남편과 클레어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챈다. 결국 안정감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아이린과, 흑인 사회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클레어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클레어의 남편 잭은 클레어에게 흑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아이린과 그녀들의 친구 거트루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장면이야말로 클레어가, 아이린이 어째서 패싱을 하는지 그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흑인이라는 것을 숨기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는 패싱을 하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흑인과 백인의 대립에 관한 사항을 알려주길 꺼려하는 아이린의 모습은 결국 그녀 자신이 '종족'이라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나타낸다.
백인과 흑인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흑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식민지 경영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새로운 종족간의 접촉이 증가했고, 그 와중에 상대적으로 편리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던 백인이 피부색이 다른 종족을 멸시하는 인종차별이 발생했다. 아프리카의 주민들이 예전에는 미국으로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니, 어째서 피부색만으로 사람의 우위를 결정할 수 있었는지 새삼 헛웃음이 나온다. [패싱]이 발표된 것은 1929년. 지금은 2008년. 약 80년의 세월의 차가 나는데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인종차별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도 국제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많은 혼혈 아이들이 살아간다. 잘 적응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 중에는 피부색으로 인해 놀림당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가 인간을 피부색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식에서 비롯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어렸을 때 피부가 하얀 친구를 부러워했던 것도 이미 정해져있던 상대적인 기준에 영향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까맣지도 않지만 하얗지도 않은, 조금 까무잡잡한 내 피부를 두고 다른 사람의 피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얀 피부도 아름답지만, 까만 피부도 아름답다는 것을 TV와 책으로 배웠다. 오히려 골격이 아름답고, 피부결이 좋은 것은 흑인이 백인보다 뛰어나다니 피부색이 아니라 골격과 피부결로 따졌다면 백인이 흑인에게 괴롭힘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말은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도 얼떨떨하다. 클레어가 선택한 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선택이었는지..다만, 흑인의 피를 숨기고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았던 클레어보다도, 아이린에게 더 애틋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안정감'이라는 줄 하나를 힘겹게 잡고 있던 그녀에 대한 연민인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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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모든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노력해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저항과 투쟁에 관한 이야기는 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래도 눈에 보이는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생각되지만 불과 몇십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타고난 모든 것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예전에는 신분이 있어 그에 대한 차별이 대단했다. 저 건너 미국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종에 대한 차별이 있어왔다. 누구는 우월하고, 누구는 천하다는 그런 이분법적이고, 고정된 관념으로 사람들을 억매어왔다. 우리나라에선 신분 차별로 인한 봉기들이 일어나고, 서양에선 결국 흑인과 백인에 관한 차별이 흑인들의 폭동과 반란을 일으켰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전혀 흑인같지않는 두 여성 동창생 "아이린과 클레어"를 통해 당시대의 흑인들에 관한 시각과 정체성, 또 할램문화에 대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패싱(흑인-겉모습은 흑인같지않은 혼열-이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을 통해 백인 상류층 남자와 결혼해 신분상승한 클레어가 아이린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녀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모든걸 버리고 할램가로 다시 돌아오길 결심하기까지의 심리와 동요, 결국 죽음을 맞기까지의 과정에서 클레어가 인종, 성을 극복하려는 현대적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이린은 안정과 지속성을 최고의 가치로 아는 중산층 여성으로 굳이 패싱을 하여 남을 속이지 않지만 흑인들이 갈 수없는 레스토랑이나 상점등에 갈때는 패싱을 하는 그런 여성이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등장으로 자신의 생활이 흔들린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아이린의 개인적, 심리적 갈등을 인종간의 문제로 결부시키는 작가의 글은 지극히 경험적이라고 생각하게 할만큼 치밀하게 묘사되어있다. 마지막에 클레어가 창문에 떨어져 죽음을 맞는 장면은 자살과 타살의 경계속에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음으로해서 무한한 자기 결론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독자가 자살과 타살,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을 내릴때 클레어의 죽음은 그에 따라 의미가 약간은 달라질 것이다.(하지만 난 두 쪽 모두라고 본다.) 패싱을 통해 흑인과 백인, 경계성의 모호를 보여준 이글은 인종문제를 향한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인종뿐이아닌 세계의 모든 성,종교등의 문제와 논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글로벌화 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 패싱의 현대적인 의미를 되세겨 보아야 할 때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더 나아가 자신의 테두리에 관한 자기 신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