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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씩씩한 여자도, 참 예쁜 남자도 많다(여자를 먼저 언급한 것은 어쩌면 내게도 ‘남녀’나 ‘청소년’처럼 은연중 남성 중심의 어휘에 길들여져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에서 비롯된 방어일지도 모르겠다). 화장 안 하는 여성도 폼 나고, 화장하는 남성도 폼 난다. 주먹께나 쓸 것 같은 여성도,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남성도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 여하튼 우리는 남성에겐 꽃미남이, 여성에겐 커리어우먼이 최고의 찬사인 시대에 살고 있다. 문득, 오늘날만 그랬나 싶어진다면 사비나 미술관장 이명옥이 쓴 <꽃미남과 여전사>를 펼치길. 남성에 내재한 여성성 아니마, 여성에 내재한 남성성 아니무스는 그림에서도 표출된다.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그림에 관련된 책 몇 권만 보더라도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보편적인 미의 대상이 여성이기 전에 남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옷차림보다 더 눈부신 미끈한 다리 한쪽을 내밀며 우아한 손짓을 하는 천사 가브리엘(티에폴로, ‘사라에게 나타난 천사’)이나 더없이 관능적인 자세로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며 도마뱀을 잡으려는 아폴론(‘도마뱀을 죽이는 아폴론’)을 보노라면 당시 사람들이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반면 소라도 능히 때려잡을 우람한 무녀(미켈란젤로, 예언자 시빌‘)의 팔뚝은 운동으로 다듬어진 게 아닌 타고난 근육질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림은 한 사람 안의 남녀 양성을 말하고 있다. 태초부터 자기 안에 다른 성까지 충실한 인간이 요구되었을까. 힘과 연약함의 조화, 이성과 감정의 조화, 과감함과 차분함의 조화…… 그리고 아름다움과 용맹이 조화를 이룬 인간이 오래전이나 요즘이나 요구되는 인간상이 아닐까. 메트로섹슈얼형 남녀가 되고 싶거든 남성들이여 좀 더 가꿔라! 여성들이여 보다 힘차게 내딛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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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남성은 여성화 되어가고, 여성은 남성화되어간다는 얘기는 회자된 내용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감수성이 깊어지는 것은 여성화의 단초가 아닐까? 옛날 할머니들의 저녁 마실은 아마도 남성의 야성화의 발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성적인 예술(미술)을 이성적인 잣대로 그어면 좀 맛이 없지만 어떤면에서는 이성적인 것을 감성적인 것에서 이해를 돋우면 휠씬 쉽고 재미있읍니다
1.인간의 원형을 신화, 종교 및 예술에서 남녀양성이라는 사실은 태곳적에 우리 인간은 자웅동체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대목인가? 그리고 오늘날엔 남녀가 상대를 닮아가는 것이 퍽 자연스런 현상이란 것은 태곳적으로의 revisit 인가? ![]()
2.화성과 금성에서 오지는 않았지만 뚜렷하게 구분되는 우리의 짝들의 뇌구조이자 마음구조입니다. 잘 알고 대처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쉽지 않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어찌 되었던 적응하고 노력하고 이해하고 ...숱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우리의 행로인것 같읍니다 ![]()
3.우리의 깊은 뇌구조속에 잠재되어 있는 모습들 ![]()
4.떨어진 상태에서의 잠재된 상반된 요소들에 대한 분석입니다 우리가 이런 모순과 이중구조로 살아가고 있다고 힘주면 좀 지나칠까? -끝- |
|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뀐다. 유행도 바뀌고 의식도 바뀐다.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두 권의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꽃미남과 여전사라. 제목부터 선정적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속되어서 집어들어 읽기가 망하다. 하지만 왠걸. 저자 이명옥은 이런 천박스런 생각을 품은 내게 보란듯이 멋지게 한방을 날렸다.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입 밖으로 나온 혀가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거침없이 써내려간 그녀의 독특한 문체에 책을 잡으면 놓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난 이미 그녀의 전작을 몇 권 읽었다. <팜므 파탈="">, <로망스>가 바로 그것인데 묘하게도 그녀는 원형에 대한 한없는 갈증을 안고 있는 듯하다. <팜므 파탈="">이 요부의 원형을 추적했다면 <로망스>는 불멸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 원형에 대해 설파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무엇이냐? 표면적으로는 메트로섹슈얼리티와 콘트라섹슈얼리티의 원형을 훑어주고 있다. 참 많기도 하지. 이렇게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성에 대한 역할과 억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살았단 말인가.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양성애자건 그들은 한결같이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빛났다. 왜냐고? 그들은 성으로 자리매김하기 이전에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상은 바쁘게 바뀌고 있다. 너무 빨리 결정하고 너무 빨리 꼬꾸라지거나 너무 빨리 성공의 길에 들어선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으로 사그라들 날은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과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게 그 화두를 던져주었고 그것에 대해 아주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인간으로 사는 것. 그것은 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자유와 열정, 그리고 확고한 자아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다. 재미는 여름 보너스로 주면서 말이다. 이 책을 든 독자들이여, 제발 꽃미남과 여전사에만 집중하지 말지어다. 그들과 함께 하는 잃어버린 우리의 꿈과 자유, 그리고 자아를 되찾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에게 주어진 인간으로서의 삶을 더 멋지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인물들이 합일과 조화를 추구했듯이 당신도 마초와 현모양처의 환상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라. 그것이 바로 21세기가 간절히 원하는 인간형이며 인류가 진화하는 마지막 단계의 인간형일테니 말이다. 이것이 저자 이명옥이 내게 전한 강렬한 메세지였다. 그것이 나만의 감상이고 착갈일지라도 이 두 권의 책으로 난 충분히 생각했고 행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족하다.로망스>팜므>로망스>팜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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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그래도 틈틈이 미술 관련 책을 읽곤 한다. 그 가운데, 예술가들의 숨겨진 뒷이야기나 이름난 그림에 감춰진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참 좋아한다.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해박한 지식을 배우는 것도 즐겁지만, 그보다 더한 기쁨은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을 보며 한없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를 보면 가없는 존경스러움과 동시에 부러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런 책들을 읽으며 턱도 없는 깜냥이지만 그들과 눈곱만큼이라도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정말 기쁘기 때문이다.
또 비록 아마추어 리뷰어지만, 리뷰도 그렇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온통 남들과 똑같은 내용으로 써놓은 리뷰만큼 볼품없는 것도 없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남다른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다른 안목'을 키우기에는 미술 관련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여겨서 틈틈이 읽곤 한다. 이 책도 그런 까닭에 손에 들었다.
다행히 그닥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예술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해하기 쉬운 어휘로 쓴 글쓴이의 배려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공통 주제로 그림을 엮어서 어려운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기 때문에 예술에 관해서 '눈 뜬 장님'인 나 같은 초보자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그림'에 대한 설명이 <왼쪽-오른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쪽-뒷쪽>에 있어서 그림 설명을 읽을 때에는 늘 책장을 앞뒤로 엎치락뒤치락해야 해서 조금 불편했다.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를 뺀 까닭이다.
책 내용도 참 좋았다. <아름다운 남성과 강인한 여성>이란 '낯설음'을 주제로 오랜 옛날에는 도리어 전혀 낯설지 않은 주제였음을 새삼 일깨워주었고, 그 증거로 보여주는 '이름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서 한장한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장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한 몸에 간직한 '자웅동체'의 완벽함과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뭔소린고 하니, 인간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강인한 남성성과 부드러운 여성성을 모두 지녀야 하는데, 남성은 강직하기만 해서 곧 부러지기 일쑤고, 여성은 부드럽기만 해서 나약하기 일쑤라는 말이다. 그래서 강인한 남성은 부족한 부드러움을 추구하려는 것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여성은 부족한 강인함을 추구하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고대 신화나 전설 속에 '자웅동체'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이란다.
이어서 2장에서는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스 조각상를 보면 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쭉 뻗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남성 누드를 엿볼 수 있다. 남성의 몸에서 여성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서양 뿐만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관세음보살상을 보아도 남성임에도 그 모습 속에서 어여뿐 여성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일까? 까닭을 밝히기에 앞서 르네상스 이후에 그려진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를 시작으로 카라바조, 모로 등으로 이어지는 그림들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 실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강해진 저작권법 덕분이니 궁금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시길 바란다.
그들이 만든 조각과 그림들 속에는 남성인데도 여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남자와 여성인데도 남성적인 매력을 내뿜는 여자가 등장하고, 힘센 영웅임에도 여자보다 고운 남자와 섹시한 자태인데도 남자보다 강한 여자가 한결같이 등장한다. 무슨 까닭일까? 이에 대한 답은 글쓴이에 따르면 1장에서 말한, 진정한 아름다움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갖춘 '완벽한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남녀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인데, 묘하게도 끌린다. 귀에 솔깃하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여장 남자'와 '남장 여자'는 늘 있어 왔다.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세간의 이목은 늘 집중되곤 하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귀에 솔깃한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왜 자웅동체의 몸을 '비정상'으로 보게 되었을까? 여장한 남자와 남장한 여자를 불경스런 짓을 한 나쁜 이라고 단정짓게 되었고, 나아가 '동성애'를 비뚫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 걸까?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간은 원래 둘이 한 몸이어서 신을 능가하는 능력을 지녔으나 신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둘이 따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떨어지게 된 인간은 신을 능가하는 능력을 잃고 나약해졌지만 온전한 제 짝을 찾아내면 다시 그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이것을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까닭이라고 하였고, 원래 붙어 있던 '남-남 인간', '녀-녀 인간', 그리고 '남-녀 인간'이 서로의 짝을 만나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는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때도 인용되는 구절이지만,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을 바로 잡을 때에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를 보면, 온누리에 '비정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이는 형이하학적인 겉모습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속마음에도 딱 들어맞는 자연스런 이야기일 것이다. 오히려 '비정상'인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하는 비뚫어진 시선일 것이고, 가슴으로 느끼고도 느낀 줄 모르는 식어버린 감성일 것이다.
바른 시선과 따뜻한 감성으로 보고 느끼면 건장한 몸으로 꽃처럼 아름다운 남자들이, 또 갸녀린 몸으로도 강인한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여자들이 넘쳐나는 요즘임을 느낄 것이다. 해외로 눈을 돌릴 것도 없이 원빈이나 고수를 보면 건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남자가 보이고, 아이유를 보면 귀엽고 예쁘면서도 강인한 여자가 보인다. 특히 아이유는 정말이지 멋진 여성이다. 고 작고 여린 몸짓으로 거친 세상을 당차고 개념 넘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 난 정말 반했다. 아이유 대세~(")a이런 또 헛소리로 끝을 맺는구만.. |
| 메트로 섹슈얼 그리고 콘트라섹슈얼이라는 부제와 함께 이책에서 작가는 양성미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실상 대부분은 여성스러움에 대한 여성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2권을 아직 안 읽어 봤지만 목차만을 봐도 2권의 반은 또한 꽃미남에 관한 이야기인듯하다...) 요즘 모 광고에 신은 여러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창조했다는 말을 인용한 카피가 있다... 여성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성일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신으로 부터 선택받은 이 중요한 임무를 완수 하기위해 남성은 여성의 수태 순간부터 관여 하여 양육기간 동안 그들을 보호하고 부양하도록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진화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졌다.. 동물들과 달리 불과 도구를 사용할줄 아는 인류의 남성은 수렵생활과 농경생활등을 거쳐 힘을 키우고 영토 확장을 위한 세력과 권력을 가지게 된것에 반하여 평생을 임신과 육아라는 힘겨운 본능에 충실해온 여성은 권력의 중심에서 사실상 한발치 물러날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인류의 역사는 남성에 의해 흘러 왔고 권력 뿐 아니라 예술사에도 그 중심은 남성이 주도 하여 왔다는 것은 누구나 긍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 요즘 넘쳐나는 꽃미남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그들은 더는 사냥을 위해 힘을 키울 일도 영토를 확장하기위해 무력을 사용할 일도 없다.. 더더군다나 앞으로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여성만으로도 자손을 번식시키수 있다..문명의 이기와 사회 구조의 변화로 여성은 더이상 임신과 육아, 가사에 평생을 보내지 않을 뿐 아니라 남성이 이루어 놓은 문명의 발달에 무임 승차하여 그들의 많은 영역을 잠식하여 가고 있다 .. 아주 먼 미래의 인류는 아마도 더이상은 생물학적 남성성이 필요하지 않을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사회구조에 화합하기 위한 진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비약일까?... 작가는 과거의 예술 작품들을 통해서 그시대의 남성 작가의 동성애 성향이나 그 작품속의 남성의 여성스러움을 놓고 줄곧 양성성을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글쎄 ..생각해보자.. 예술이라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도 필요할것이요... 당 시대를 표현하는 책임과 의무도 있겠지만 과거의 예술이라는 것이 혜안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시대의 대중성을 반영하였을지는 의문이다.. 누구나 손쉽게 미적 감각을 키우고 즐길수 있는 지금의 대중과는 달리 일부 권력자들의 사치스러운 유희 내지는 소수 재능을 타고난 쟁이들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지 않았을까.... 옛예술작품이나 신화등을 통해 지금의 꽃미남과 여전사들을 해석하기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책을 읽는 재미는 양성성이니 하는 주제에 국한 시켜 읽기보다는 작가가 들려주는 재미난 미술이야기로 보면 좋겠다.. 구석 구석 재미난 미술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고 싶어 입이 근질 근질한 이야기꾼의 끝없는 재담같은.... 밤을 홀딱 새도록 그녀의 샘 솟는 듯한 또 다른 이야기들도 듣고 싶다...날이 새는 것도 잊은채 ... 이책의 2권 뿐만 아니라 이명옥 관장의 또 다른 저서들도 궁금해진다... 어떤 이야기틀에 맞춰놓고 어떻게 풀어 내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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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과 여전사. 책의 제목에서부터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21세기에 들어와 왜 우리는 꽃미남과 여전사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라는 호기심 말이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스러운 여자, 여성스러운 남자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여성과 남성의 아름다움은 지나칠 정도로 고정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남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바뀔 수 있었고, 우리는 그것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하게 된 것일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장에서는 세계 신화, 연금술, 종교, 심리학, 예술에 나타난 양성미를 살펴보고, 두 번째 장에서는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책을 준비하면서 놀랍게도 신화, 종교, 예술에 나타난 인간의 원형은 남녀양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남자다운 외모, 여자다운 외모에 집착한 것은 전통과 관습의 잘못된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인간의 원형을 남과 여로 구분하게 만들었다는 애기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남과 여가 하나였던 인간의 원형을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 증명해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모든 그림들은 ‘우리가 하나였다’는 사실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녀의 성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인물이 나오는 세계 신화를 통해서, 그리고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를 사랑의 불길로 결합해서 초월적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적을 통해서 저자는 남녀양성이라는 인간의 원형을 탐색하고 있다. 또한 남녀는 외형적 성별은 다르지만 영혼은 남녀양성이라는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이론과 양성미를 자랑하는 기독교의 천사들과 불교의 관세음보살 또한 인간의 원형을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뒷받침 자료가 된다. 이렇게 신화와 종교, 연금술, 심리학을 오고가는 저자의 탐색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다. 인간의 원형이라 여겨졌던 남녀양성의 이미지는 결국 관념상의 이야기이다. 현실에서는 남녀양성의 이미지는 금기시되었다. 이상향이긴 하지만 용납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은 늘 분출되기 마련. 성 역할 바꾸기와 복장 전환의 관습을 통해 인간은 그러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렇게 인간은 남녀 구별이 없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지녔다. 예술가들이 양성미에 탐닉한 것도 바로 그러한 시각에서 풀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조각품들은 양성미를 지닌 남성들을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꿈꾼 인류의 이상형, 즉 양성형 인간을 비밀 초상화에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다빈치가 그린 세례자 요한 또한 숨 막힐 정도의 요염한 미소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아름다운 미소년의 그림들에 탐닉한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성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예술가들은 남녀가 하나라는 이상적인 관념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즉, 진정한 미는 성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에 성별 구분은 의미 없다는 그들의 생각이 그림을 통해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자료들과 갖가지 그림들을 통해 결국은 남녀가 하나일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꽃미남과 여전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남녀의 구분 없었던 인간이 존재한 태초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연적 욕망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꽃미남과 여전사가 아름다운 것이다. |
| 서양문화사의 원류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바탕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아직까지 완독하지 못했다. 비기독교인이라도 한번쯤 읽을만 하다고 해서, 일부러 새롭게 번역된 표준번역 '성경'을 사보기도 했지만, 구약 창세기 한두 페이지를 읽다가는 포기하고는 했다. 나의 인내심 짧음을 탓해야 할 지, 아니면 취향 탓으로 돌려야 할 지 어쨌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서양미술사도 심드렁하고, 그나마 좀 좋아하는 역사도 무언가 제대로 알려고 들면 기본 지식이 바닥을 드러내고는 했다. 그래서 유럽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지만, 그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야 어디 제대로 된 여행이 될까 싶기도 하다. 한 때 유럽여행을 계획하고는 '이주헌의 유럽 미술관 체험'도 보았지만, 그조차도 푹 빠져들지는 못했다. 우연히 제목에 끌려 '꽃미남과 여전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체감한다. 기본 교양과 지식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좌절감을 덜 느끼게도 한다. 이 책은 '남자'와 '여자', 결국은 결합된 하나를 꿈꾸는 인간에 대한 미술 순례이다. 아무런 기준 없이 미술 작품을 보는 것보다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면 좀더 밀착된 그림 보기가 가능하다. 저자의 전작 '팜므 파탈'이 보고싶어진다. 책은 이렇게 책에서 책으로, 하이퍼텍스트적 글읽기가 아주 큰 기쁨 중 하나이다. |
| 작년에 신문에서 ''메트로섹슈얼 대신 떠오른 위버 섹슈얼 Ubersexual''이란 제목을 보고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읽었던 적이 있다. 남성성이 강조된 섹시한 남자, 그렇다고 권위적인 마초는 아닌 강인하고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스타일리시한 남자란다. 몇 해 전 한국을 뜨겁게 달군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붐을 일으킨 주인공들, 이른바 ‘꽃미남’들 대신 지금 뜨고 있는 것은 ‘위버섹슈얼(ubersexual)’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저 처음 보는 단어들에 대한 흥미 이상은 없었다. 그 후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 기사가 떠올랐다. 이 책에서는 지금 뜨고 있다는 위버섹슈얼에 관한 것은 아니고, 그전의 유행이었다고 표현된 ''메트로섹슈얼''과 반대의 경우인 ''콘트라섹슈얼''에 관한 내용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양성미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양성미를 구현한 예술가들과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의 원형과 계보에 대해 나온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내용이어서 읽으면서 내내 ''아, 이렇게도 생각하고 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세월동안 문학작품이나 그림 같은 것을 보면서 양성성이 표현된 것을 약간 ''다르다''란 느낌을 갖곤 했으나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지난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서야 그런 느낌이 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머릿속에 뚜렷하게 구분되어있는 각 성에 대한 정의에 기준하여 양성성이 표현된 것을 대비해서 보려니 자꾸 다른 느낌이 든 것이었다. 각 장의 주제에 맞게 신화라든가 지난 시대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적절한 예들을 찾아 보여주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그냥 보아 넘길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서 일관성을 갖고 설명해내는게 놀라웠고, 재미도 있었다. 천사의 그림을 볼 때에도 그냥 보이는대로 어떤 때는 남자처럼 어떤 때는 여자처럼 보이므로 각각의 성이 다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하나보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양성성이 표현된 것이라고 하니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 가부키의 여장 남자 배우가 한국에 왔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런 것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들어본 이름들이 거론될 때는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고, 처음 듣는, 신화에서 나오는 이름들이나 예술가들에 관한 내용들에서는 작가의 독창적 해석을 느끼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예로 들은 그림들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자주 등장해서 좋았고, 개인적 취향을 떠나서 관점에 따라서 느낄 수 있는 양성성에대한 분석이라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꽃미남이나 여전사에 열광 해본적도 없고, 그것이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생각한 적도 별로 없었는데, 읽다보니 그저 다양성의 한 형태로 양성성도 존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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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냥 그림이 좋아서 이 책을 읽었다. 특정주제에 대한 그림들과 글들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두 권이나 읽고 난 후의 나의 기분은 조금은 거북스럽다고나 할까. 온전한 지성이 조금은 부족하고, 필력도 떨어지는 느낌... 나름대로의 주제를 강조한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동의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작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 글쓰기가 2% 부족해서인지 그림에 대한 평도, 주제에 억지로 꿰맞추려는 흔적처럼 보인다. 미술관장이 미술에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가 미술관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타이틀만 없었더라면, 이 책을 오히려 재미있게 읽었을 수도 있겠다. 어딘가에 흥미를 느껴서 단지 거기에만 몰두하여 기쁨과 행복감으로 글을 써내려간 일반인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꽃미남과 여전사"라는 주제를 끌어가기 위하여 지은이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눈과 감정을 "환희"라는 단어에 맞춰 끼우려고 한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요즈음 그림 사진이 가득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직접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즐거움을 누리게 된건 기쁘긴 하다. |
| 예전에 이명옥씨가 쓴 명화로 보는 수학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설과 함께 수학에도 관심이 많은 저자를 보면서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했지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내가 본 이명옥씨의 모습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그림에대한 해석이 풍부하다기 보다는 거의 모든 문학, 역사, 문화, 인물, 철학에 대한 섭렵하고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제목만 들었을 때는 꽃미남과 여전사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전반적으로 인간이 양성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육체적 양면성은 거부하면서도 정신적, 이상적 양면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회화속 작품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하고 있지요.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다른 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또한 닮고 싶어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주장했다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해 전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저자는 이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내더라구요. 전 단순히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완벽한 성격을 만드는데 있어 여성의 남성의 긍정적 부분을 남성은 여성의 긍정적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라 여겼는데 그녀에 의하면 그 근원이 인간의 다른 이성에 대해 닮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시작된다는 것 같았어요.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이제까지는 이성이란 이해해야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내 안에 남성성이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지 살필 것 같네요. 내가 이성적으로 추구하는 모습 속에도 만만치 않게 남성의 특징이 들어 있는 것 같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