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이 넘은 나이에 도보로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이 책이 먼저 손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수채화 스타일의 그림까지 곁들여진 책이라 주저 없이 잡았다. 계속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사람풍경> 등을 통해 여행책을 읽으면서 지난여름에 했던 프랑스 여행과 정군님의 도보 여행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고자 했고 보고자 했던 것을 다 못한 아쉬움과 도보 여행의 여운을 연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겠다. 이 책엔 곱고 세밀한 수채화가 가득하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풍경과 시장, 현지 모습들 그리고 사람들 등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만날 수 있는 보물들이 가득 들어있다. 소박한 현지인들의 삶을 솔직하고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글도 프랑수와 데르모의 그림만큼 따듯하고 읽는 내내 마음이 순수해지는 느낌이었다. 지명이나 역사에 대한 무지로 맨 앞에 그려져 있는 지도를 들춰보며 여기가 어딘가 찾아보기도 하고, 아는 왕이나 전설에 대한 얘기에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읽었다. 이 책의 특징은 실크로드를 걸어서 다녔던 곳을 화가와 함께 다시 가는 것이었으므로, 그가 예전에 만났던 좋은 사람들, 친구들을 만나는 데도 있었다.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는 현지인들, 차 한 잔 대접받으면 풍성한 식사로 갚는 사람들, 환대란 것이 뭔지 보여주는 사람들, 전쟁과 종교 등으로 찢어지고 헤어지고 갈라졌어도 자신들의 철학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따듯한 시선과 함께 실려 있다. 실크로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 있다. 바로 바자르라는 시장이다. 지금도 중동에서는 상인의 힘이 대단하고 또 상업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발전해나간다. “이제는 그 위세를 잃었지만, 바자르는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마법의 장소로 남아있다. 바자르는 일을 하거나 물건을 사러 오는 곳이지만, 그 무엇보다 삶의 공간이다. 동양에서 장사는 삶 그 자체다. (...) 장사꾼이 단지 물건을 팔려는 목적으로만 당신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장사꾼이 그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말을 나누는 것이다.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는 물건은 구체적인 거래의 교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유혹을 하려는 사람이 유혹을 당하려는 사람과 함께하는 애정이 깃든 대화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친근하게 어깨를 토닥거릴 수 있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워낙 실크로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다 지명들 또한 익숙하지 않아 그런 부분은 읽어도 곧바로 잊어버리곤 했다. 거의 다 무너져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대상들의 숙소 같은 것은 안타까웠고 사막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독이나 내면으로의 사색 같은 것은 여행자가 둘이라 그랬는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런 것은 모두 <나는 걷는다>에 있으리라.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실망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처럼 여행하는 것’은 내 취향에 전혀 맞지 않았다. 모터가 달린 차가 싫고, 주유소가 싫고, 기계, 속도, 소음, 무관심과 익명성이 떠도는 커다란 도로가 싫다. 제발 내말을 믿어주길 바란다. 내가 애정을 갖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여행은 내 삶의 리듬도 내 세상도 아니다. 숨을 쉬고 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느림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고, 풀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며 몽상에 젖는 것이다. 찌르레기의 비행, 어릴 때 먹었던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짙게 깔린 산등성이,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쁘게 내 앞을 지나가는 전갈-하물며 전갈마저-나처럼 풀밭 위를 돌아다니는 방랑자.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이다. 내 삶의 리듬은 과거의 리듬이라고 할 수있다. (...)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늘 얘기했던 것처럼, ‘가는 것’ 그 자체다.” 또 한 가지 더 안타깝고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은, 여행이란 것이 읽는 독자들에게도 꿈을 꾸게 하는 데 있다고 본다면-즉, 나도 언젠가 배낭 메고 이 길을 걸을 수 있겠지... 하는-,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나 같이 소심한 동양여자에겐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터키로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드나들었던 대상들은 모두가 남성이었고, 지금도 여자들에게는 문이 닫혀있는 남성들만의 세계가 너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잔잔(Zanzan)으로 가는 도로에서, 우리는 작은 트럭 하나를 추월해 갔는데, 그 트럭에는 전자 제품 포장 같아 보이는 무거운 상자가 실려있었고 상자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자는 차도르가 날아갈까 봐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여자는 계속 내리는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도 꼿꼿하고 의연했다. 따뜻한 차 안에는 남자 셋이 낄낄거리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둑을 때까지 한 번도 못 가볼지 모르는 곳이지만 그래도 여행책을 읽는 큰 기쁨은 언젠가는 가보겠다고 꿈을 꾸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정말 나이 들어서 겉모습에서 여성성이 중성화된다면 가능할까. 어떻게 보면 직접 가보지 못하는 실크로드의 현재 모습을 이런 책으로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당장 직접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매운 떡볶이를 먹고 달랬고, 걸어서 여행하는 기쁨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밤길을 40분 걷다 들어왔다. 자, 이제 떠날 준비해보자...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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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 이 책의 작가가 쓴 '나는 걷는다' 세 권을 열심히 읽었다. 그 감동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던 중에 2006년 이 책이 출간되었다. 그래서 샀다. 사서 읽다가, 책갈피도 끼워 놓고 했다가 그만 다 읽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2년이 흐르고 오늘에야 새로 다 읽어 보게 되었다. 읽고 보니 지금 읽은 게 더 잘했다 싶다. 책은 여전히 내 마음에 들고, 2년 전 왜 읽다가 말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걷는다'에 대한 기억이 도통 없고 보니 온전히 새로운 책을 읽은 기분이 드는 까닭이다. 또 느끼는 것이지만 내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 작가의 작품을 오래 많이 읽어낼 수 없는 모양이다. 잊을 만하면 새로 읽고, 그게 작가에 대한 내 호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듯하다.
사실 책은 이 책보다 '나는 걷는다' 세 권을 더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뭐랄까, '나는 걷는다'에 비해 가볍다고나 할까. 물론 멋진 그림들이 곳곳에 담겨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나는 걷는다'를 읽은 후에 보면 더 절실히 와 닿을 그림들이고, 이 책만 읽어서는 작가가 전해 주고자 하는 의도를 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걷는다'와 이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가는 것도 괜찮겠다. 서로 보완이 되기에 충분하니까.
책을 읽으면서 지금부터 20년 후의 나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이 62세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그때가 되면 나는 무엇을 더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포기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이 작가는 62세에 그 험한 중앙아시아 땅을 걸어서 도전하기도 하는데,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작가와 같은 꿈은 언감생심 갖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나의 노년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해 준 책이다. 내가 늘 지금과 같은 나이로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이런 기회로 인해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미래는 현재의 내일에 다름아닐 테지만, 그래서 오늘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의 가치가 결국 내 미래에 고스란히 결과로 남게 될 것이니.
베르나르 올리비에처럼 천천히 살면서 사람을 오래 사귈 줄 아는 노인이 되어야 할 텐데. 책읽기가 그런 노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어 주기는 할까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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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도, 아직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놓았던 지난 제주도 여행은 장마와
아르바이트에 날아가 버렸다.
아쉬움을 금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갈 것이다.
물론 제주도 자전거 여행 정도는 올리비에의 실크로드 여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책 <나는 걷는다>, 이 제목에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여행자를 느낀다. 나는?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겠지.
여행은 아직까지 나에게 하나의 도전이다.
거창하게도 ''살아남기''에 대한 도전이다.
일본에서는 폭주족, 중국에서는 쓰레기 음식, 동남아에서는
맥주에 타는 약이 무서워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녀석이니까.
그렇다.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여행에 관한 책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나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없으면 없을지 몰라도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이 책에는 올리비에와 함께 여행한 프랑수아 데르모의 수채화들이 들어있다.
음? 그림?
풍경도 풍경이지만 그 마을의 사람들, 그 표정.
어차피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상상 밖에 할 수 없는 그것들이
올리비에의 발을 좇으며 보이기 시작한다.
광인이 아니면 현자가 분명하다는 셀림, 그리고 그의 서재.
"후세인은 맛있는 음식과 우정에 목숨 걸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세상이 떠나갈듯 웃어대는 풍채 좋은 남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라는 올리비에의 문장 옆에 그려진 후세인의 표정.
여행책을 볼 때 나는 작가와 함께 여정을 떠난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번에는 올리비에의 바로 옆에서 그가 체험한 일을
잘 익은 포도주 한 잔과 함께 가만가만히 듣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씩 옆에 있는 데르모가 거들어주면서 말이다.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걸어가야 한다"
올리비에가 루소의 <에밀>을 인용해 한 말이다.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나도 나의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이라도,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어쩌면,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인 것이 아닐까?
그래,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이제 곧 후일을 기약하며 다음 행선지를 찾아갈 것이다.
당신처럼.. [인상깊은구절] 자,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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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걷는다> 1,2,3편을 읽었었다. 프랑스의 전직 언론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실크로드 오아시스로의 서단인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천킬로미터를 3년에 걸쳐 혼자서 도보 여행을 한 여행기였는데, 다른 여행기와 달리 사진 한 장 없는 딱딱한 책이었고, 상당한 굵기에 3권이나 되는 분량책임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를 혼자서 걷는 여행’에 푹 빠져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정말 쉽지 않은 여행을 성공한 영웅(?)의 이야기에 존경이 절로 생겼고, 또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효형출판.2006년)이 <나는 걷는다>와 비슷한 점은 같은 장소를 방문한 것이고, 다른 점은 승용차, 기차와 비행기로 여행했다는 것과 수채화가 프랑수와 데르모와 동행했다는 것이었다. 화가와 함께하다 보니 이 책에는 정말 실크로드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많은 그림이 들어있다. 아마도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들은 사진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번 여행에서는 화가와 동행한 이유를 저자 올리비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수백 명의 독자가 편지를 보내 이미지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일정은 2004년5월1일부터 2004년7월6일까지 9주간으로 홀로 걸었던 지난번의 여행에 비하면 기간도 짧고, 또 편한 운송수단을 이용하고 숙소도 호화판이다. 첫 여행 때에는 정말 목숨마저도 위험했던 적이 많았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여행은 정말 저자에게는 누워서 헤엄치는 정도이기에 저자도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을 방문한다. <나는 걷는다>에서 보듯이 여행 중에 짧게 만난 친구들이었지만 그들과 저자는 정말 오랫동안 사귄 친구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아마 여행을 하면 사람의 마음 문이 넓게 열리는 것도 있겠고, 중앙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종교적 믿음에서 나온 넓은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올리비에의 책에 감동을 받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방문에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지진으로 인해 사는 곳이 파괴된 경우도 있었고, 이사를 가서 친구의 자취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장면에서 저자는 크게 아쉬워하는데,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들은 저자의 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올리비에는 친구를 새로 사귀지 못한다. 일정이 짧은 면도 있었지만 현대식 편안한 여행은 한 도시의 겉만 들여다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걷는 고생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고, 편안한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덜 아쉽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은 후 감동도 <나는 걷는다>에 못미친다. 다만 이 책이 가진 장점은 <나는 걷는다>에서 아쉬웠던 이미지가 있다는 부분하고, 또 인간의 정을 더욱 깊숙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걷는다>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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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 프랑수아 데르모 그림 / 고정아 옮김/ 효형출판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걷는 여행이야 말고 내가 디딘 걸음만큼만 나아가면서 온 몸으로 여행지를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이어져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책의 쪽수가 많은 관계로 다음으로 미루고 집은 책이 <여행>이다. 여행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걸었던 여정을 화가 프랑수아와 함께 차를 타고 다시 되돌아 보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림에 상상을 더할수 있도록 수채화로 그려져 걸어서 여행하는 베르나르의 선택답다는 생각이 든다.
"걷는 것은 신체활동인 동시에 정신활동입니다. 걸으면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홀로 걷는 여행은 잊고 지내던 자신을 만나게 하고 육체적 제약과 주위 환경에 묶여 안락하게 사고하던 자아를 해방시킵니다. - 2004년 11월 한국 방문시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걷기에 매력을 느낀 올리비에는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했다. 1만 2000킬로미터면 단 한걸음도 보태지 않고 1800만 걸음을 걸은 것이다. 이 활동은 책으로 세상에 나왔고 독자들은 왜 책에 사진을 넣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내말으로는 부족할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으면서 나의 두번째 프로젝트 <여행>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란- 이 소중한 공간에서 행복할지어다
"이제 의문이 든다. 대도시로 사라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만 가능한, 내게는 소중한 선물처럼 보였던 이 놀라운 평화를 두고 왜 떠났을까? 위험을 이겨 내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사막은 홀연히 위안처럼 나타난다. 사막은 대도시에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을까? 단언하건대, 이 집에 충만했던 가족의 화목은 그들을 떠났을 것이고, 베남의 오토바이 굉음은 굴곡 많은 삶의 한숨 소리를 적절히 덮고 있을 것이다. "
- 다시 여행지를 여행하면서 추억속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거나 그들의 부재를 확인한다. 그 작업을 만남 성사 여부를 떠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내 삶이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왔듯이 그들의 삶도 표현한 것처럼 한숨 소리를 덮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 - 슬픔 위에 피어난 사막의 꽃 칭기즈칸의 잔인한 보복
"하지만 즐거운 일도 있기는 했다. 이란에서 새까만 차도르만 보다가 투르크멘족 여자들이 입은 화려한 색의 옷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 이곳 여자들은 팔도 내놓고, 다리도 내놓고, 몸을 드러낸다. 갈색 피부는 눈길을 잡아끌고, 감탄을 자아나게 했다. 우리는 이란 여자들의 몸을 무겁게 뒤덮은 검정커튼(차도르)이 얼마나 우리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라질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미묘한 관능을 감추는 것은 욕망을 더욱 부채질 하는 법이다."
- 차도르를 벗은 여자들의 모습은 그들의 옷처럼 총 천연색의 색깔을 드러낸다. 각자의 개성이 베일에 싸였을때 답답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여행 사진 한 장 없었던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라면 <여행>에서 묘사된 인물과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나는 걷는다>를 읽지 않은 독자라도 두사람을 따라 터키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 올리비에는 어쩌면 걷기를 통해 외부의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면의 나는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에 대한 의미도 함께 다시금 생각해 볼수 있는 책이다.
* 초록색 글씨는 본문내용의 일부임을 알려드립니다. * |
|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은 적이 있다... 걸어서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어찌보면 무리한 여정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간 적이 있다... 그리고 시감이 조금 흐른 후 읽게 된 이 책... 그는 자신을 걸은 길을 화가 프랑수아 데르모와 함께 다시 돌아본다... 물론 이번은 도보가 아니라 차를 통한 여행이지만... 목적은 여행의 사진, 혹은 모습들을 얻기 위함이고... 그래서일까? 첫 이야기를 읽을 때 처럼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 것은? '나를 걷는다'를 이미 읽은 사람에게는 보너스 같은 책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자를 전저 읽는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