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히스테리란 말이 히스테아라는 자궁을 칭하는 말에서 파생된줄 이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수많은 자궁에 대한 터무니없는 그림들, 여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알수있는 역사적 자료들, 상당히 내용이 알찬 책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다는 희열은 둘째치고 화가나서 미칠지경이었다. 지금도 여자로서 사는게 선천적 기형쯤 되는 듯 여러가지 불리한 점이 많은데 이제껏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분노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얼마전 한 채팅사이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어떤 남자에게서 "페미니스트는 밥맛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외치고 싶다. "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여성운동이 시작된것이 인류가 가부장제로 들어선 기간에 비해 얼마간을 차지하고 있는가? 그 동안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면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거다. 그리고 자신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그런 말을 못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성지배구조속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죄는 무지에서 온다고 했다. 오류를 보는 눈은 그냥 생기는게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과거를 반성하는것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이 책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궁이 얼마나 오해받아왔는지를 보라!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자궁은 대우받지 못하며 쓸데없이 드러내어지고 있는지를 알라! 맹장하나 짤라내는것도 꺼림직한데 왜 자궁은 외과적으로 맹장만큼이나 대우를 못받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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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은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짐승 안의 짐승이다. 그것이 여자들의 본질이며 모든 암컷의 본질이다. -- 플라톤 |
| '의학, 종교, 과학이 왜곡한 여자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그동안 여자의 자궁이 얼마나 많은 무지와 그로 인한 핍박 속에서 견디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자궁은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짐승="" 안의="" 짐승이다.="" 그것이="" 여자들의="" 본질이며="" 모든="" 암컷의="" 본질이다/플라톤=""> <자궁이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 고정되면="" 간질과="" 비슷한="" 발작을="" 일으킨다/히포크라테스=""> <아름다운 여자들에게서="" 이성은="" 찾아볼="" 수="" 없다/몽테스키외=""> <여자는 타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그리고="" 순종하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의="" 분노를="" 돋우지="" 않도록="" 입="" 속의="" 혀처럼="" 부드럽게="" 굴어야="" 한다/루소=""> <모성이 굳어버린="" 여자들이="" 있다면,="" 낙태가="" 심각한="" 자궁병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신경쇠약과="" 정신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려주어라.="" 그렇게="" 무거운="" 죄를="" 짓고="" 양심의="" 가책=""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출산의=""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이="" 훨씬="" 낫다/조지="" 내피스=""> 자, 어떤가.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고매한 철학자, 종교가, 의학자, 교육자들이 저 정도라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천부 인권을 주장했던 루소를 보라. 그에게 '인권'은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나보다. 모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왜곡된 신화인가를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현대에서도 위의 말들은 어색하지 않다. 다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고대나 현대나 변한것은 그다지 없다. 오히려 더욱 영악하고 교묘하게 감추어졌을 뿐. 출산을 위해선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며 임산부의 피를 무한정 빼다 죽게 만든 그는 남자 산파였고, 동조한 자는 궁정의 주치의였다. 1817년 잉글랜드의 샬로트 오거스타 왕세자비가 바로 그 불운한 여자였다. 권력자의 옆에 있던 여자에게도 무지로 인한 피해는 죽음이었다. 그 권력은 남성의 권력이었지 자신의 권력이 아니었기에, 죽기전 가족과 친구를 불러달라는 왕세자비의 요청마저 묵살되었던 것 아닌가. 몸안에 있는 마녀 젖꼭지를 찾겠다며 온몸을 수색당하던 여자들에겐 인권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클리토리스가 마녀 젖꼭지라면 이 세상의 모든 여자는 마녀인가? 그렇다면 그 자식들인 남자들은 마녀 새끼? 무월경의 치료법이 자궁안에 거머리 몇 마리를 놓아둔다는 것은 어떤 과학적 근거에 관한 것인가? 어쩌면 그토록 무지할 수 있는지. 그 무지로 인한 횡포는 또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인지.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에 문득 현대를 살펴보면 번뜩이는 의구심과 불신감. 이러한 신경증도 자궁이 온 몸을 돌아다녀 탈이 난 것인가?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모성이>여자는>아름다운>자궁이>자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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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대학은 페미니즘이 학내 분위기를 좌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과반방에서 농구공, 축구공이 성폭력의 소지가 있다고 추방되었고, '이쁘다', '작업', '섹시' 등의 말이 금지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등의 책이 신입생 세미나에서 사용되었죠. 그땐 몰랐습니다. 왜 우리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골치아픈 문제로 눈 밑에 다크써클을 짙게 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고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인류사를 여성사 관점으로 재조명한 이 책은 지금도 제가 손에 꼽는 명저이자, 제 삶의 가치관을 바꾼 혁신적인 책이죠. 인류의 역사를 여성의 변증법적 역사로 보는 거다 러너는 역사가 여성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은폐했지만, 역사는 여성의 도전과 공헌으로 움직였다고 말합니다. 여성의 실제 모습과 은폐된 여성의 모습 간의 모순이 변증법이라는 설명이죠.
『자궁의 역사』 역시 여성사적 관점에서 인류사를 조명한 책입니다. 여성 해부학과 여성의 건강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남성 권력이 여성의 몸, 특히 자궁을 어떻게 학대했는지 분석합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자궁의 수난사인 셈이죠. 저자는 '히스테리'라는 말의 어원을 풀이하면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hystera(그리스어로 자궁)는 말에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 자궁은 신체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기관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고대 해부학적 지식의 결험 때문이었습니다. 습관성 임신으로 인해 자궁이 질 외부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의사들은 자궁이 움직인다는 증거로 보았다고 하네요. 자궁이 움직이며 위를 건드리면 위염, 폐를 건드리면 폐렴 등으로 간주했다고 하니, 지금 지식으로 보기에 어처구니가 없죠.
자궁이 어떤 기관인가요. 생명을 수태하는 공간이죠. 그런데 인류사적으로 자궁에 대한 금기는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첫 월경을 하는 여성을 오염과 더러움으로 간주하고 격리시키는 문화는 곳곳에 존재하죠. 가부장제가 어떤 원인으로 여성의 자궁을 핍박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저자도 명쾌하게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해부학적 지식과 의료행위를 남자가 전유하고 교회 권력이 이를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유린되었다는 게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입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여성의 성욕과 마녀사냥, 출산 등의 문제를 폭넓게 고찰합니다. 섹시함이 마녀사냥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여성의 성욕은 가부장적 권력을 통해 통제받아야 한다는 것은 여성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인류사를 분석하며 일관되게 발견한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여성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가부장제가 공고히 유지되었다는 게 분석의 공통점이죠.
자, 문제를 현재로 되돌립시다. 저자는 묻고 있습니다. 마냐사냥을 위해 남자 의사들이 제멋대로 여성의 몸을 샅샅히 파헤치고, 월경주기에 있는 여성이 감금되고, 자궁이라는 기관이 여성 교육을 반대하는 근거가 되었던 예전에 비해 현재는 진보했냐고. 부분적으로 개선된 점이 있겠죠.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몸을 책임지는 의료 지식은 남자들이 전유하고 있고, 의사들의 절대 다수는 남자죠. 조심스레 저자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과연 여성 의사가 여성의 몸을 다루었더라면 자궁에 가해진 폭력이 덜하지는 않았을까......
끝으로 저자는 흥미로운 사고 실헙을 제기합니다.
만약 아담이 이브의 갈비뼈로 만들어졌고, 아담이 이브를 금지된 과실로 유혹한 탓에 인류가 낙원에서 쫓겨났고, 이브의 몸은 이상적이되 아담은 기형적이라고 말했다면 여성들의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지를 상상해보자. 만약 아담의 원죄 때문에 남자들이 여성을 임신시킬 때마다 전립선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한다면 그리고 남자들이 아픔을 덜기 위해 비뇨기과 의사를 찾았을 때, 남자의 고통은 신의 뜻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또한 남자들이 끈적하고 찝찔한 정액을 방출하기 때문에 마술사로 몰린다면 어떨까? 남자아이가 밤에 몽정을 했다는 이유로 대심문관 앞으로 끌려나간다면 이 아이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까? 전립선을 자극했을 때 이상한 액체를 방출한 남자는 누구든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는 의식이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다면? 수녀가 남자 마술사를 색출하는 방법을 적은 책을 썼다면? 남자의 전립선이 만병의 원인이므로 집중적으로 전립선만 치료한다면? 남자가 근육통을 호소할 때 다만 '남자들의 고질병'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오직 여성들만 교육을 받고, 남자들의 두뇌 활동은 생식 기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생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오직 여성들만 국가 수반, 의사, 변호사, 판사를 비롯해 보수가 많고 권한이 큰 일을 할 수 있고, 남자들이 그런 일을 하면 전립선을 다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서나 가정부만 할 수 있다면?(192-193쪽)
흥, 이라고 콧웃음을 칠 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까요. |
| 자궁의 역사. 눈에 확 띄는 제목과 빨간 책표지 때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히는, 그러나 결코 학문적 으로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오히려 어려운 학술도서보다 이렇게 그림과 함께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충분이 찾을 수 있는 이런 쉬운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단 이 책만의 독창성이자 훌륭한 점을 꼽으라면 오직 여성만이 가진 신체 기관인 '자궁'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풀아 나간다는 것이다. 이 책 이외에도 여성사나 페미니즘에 대한 책은 참 많다. 하지만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졌더라도 책이 지나치게 딱딱하고 구태의연한 서술 방식과 접근 방식 을 가졌다면 자연히 독자들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키워드를 자궁으로 잡았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정말 신선했고, 필자 뿐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자궁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이번 학기에 그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의 입장에서 본 역사를 이해 하는 과목을 두 개나 듣고 있어서 요즘 아주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여성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계속 억압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받아왔을 뿐 아니라 현재도 여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똑같은 것은 분명 아니다. 이 점은 누구나 인정하리라 생각된다. 여성의 억압이라는 문제를 사회적,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그동안 많이 다루어져왔고 필자도 그러한 관점들에서의 여성에 억압에 대해서는 많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신체 구조'가 여성의 억압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궁의 역사'를 읽기 전에는 미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여성의 신체 구조가 여성을 억압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요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선체적 조건은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하위 도구들 중 하나인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bslee님이 쓰신 서평을 읽어보고 의문나는 점이 생겼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 상호관계를 주고받고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지 결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느 세계나 경제력과 권력에 의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있고 이는 결코 남자와 여자와의 사이에만 국한 되는 관계는 아닐 것이다.' 이 부분이 bslee님이 쓰신 글이다. 여성과 남성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은 당연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뒷부분을 읽어 보면 남녀 간의 지배 피지배 관계를 권력에 의한 지배 피지배 관계라 생각하시는 듯 하다.(필자는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필자는 권력에 의한 억압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 생각한다. 억압이라는 것이 권력을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자를 찍어 누르는 것이라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은 남성이 권력을 지녔고 여성은 힘이 없는 자 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과연 남성이 권력을 지녔기 때문에 여성을 억압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아예 처음부터 권력 여부를 논하기 전에 남성들은 여성을 아얘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걸어다니는 자궁'이라든지, 여성들에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능력이 없다고 만한 저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그러니까 남성들에게 여성은 자신과는 다른 하등한 존재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권력 투쟁을 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이 권력을 놓고 싸운다는 것은 두 사람이 모두'인간'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 A와 인간B가 있는데 둘이 싸우면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진다. 권력의 문제는 이러한 것이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은 아예 차원이 달랐던 거다. 이에 대한 논거로 들 수 있는 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들에겐 시민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오늘날의 민주정치와는 전혀 다른, 진정한 민주정치였다. 정말로 국가 구성원 전원이 정치에 참여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국가 구성원이라는 것에 여성은 포함되지가 않았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예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서 배재되어버린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 편견이 지금은 많이도 사라졌다.하지만 여성과 남성이라는 말이 지극히 단순하게 두 성의 신체적 특징만을 가리키는 말이 될 때까지는 아직 갈 길이멀다. '인간'이라는 종 아래 동등한 하위 개념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듯 싶다. |
| 제목만큼이나 내용또한 파격적이다. 여성이 오랜기간에 걸쳐 차별받고 부당한 삶을 살아왔으리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그 상상의 한계를 넘어 너무도 적나라한 여성의 힘든 삶을 그리고 있다. 여성에의 불합리한 시각은 정신적 차별만이 아닌 출산이라는 고귀한 영역에 까지 드리워졌으며 결국 인류의 모태인 자궁을 모욕하기까지 이른다. 의술의 무지함에 기인한 연유도 간과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이유로 꼽기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편협한 시각이 너무도 깊고 고질적이다. 그들은, 그들을 잉태하였던 여성을 격하시킴으로서 스스로의 태생을 비하하는 결과임을 몰랐던 것일까.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조잡한 상상과 영원히 찬양받아 마땅할 생명의 근원에 대한 모욕.. 시대적 무지와 천시아래 산고의 고통을,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현상을 감추고 살아가야했던 그 시대 많은 여성의 고충에 가슴이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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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 해도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은 태초부터 '자궁'을 통해서 아이를 낳고 출산했다.
지금이야 사람이 어떻게 잉태가 되고 여성의 자궁에서 어떻게 열달동안 만들어지며
출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등이 밝혀졌지만
과거 이런 지식이 없던 시대에 자궁은 그야말로 미스테리하고
미스테리하기 때문에 공포였을 것이다.
세상은 남성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고
더 나아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데,
정작 그런 남성은 여성만이 가지는 고유의 능력
자궁을 통하여 태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여성의 자궁이 두려워 그렇게 핍박했나보다. 여성의 모든 잘못(이 중에는 아버지나 오빠, 남동생, 남편한테 복종하지 않는다는 흠(?)도 포함되어 있다)을
자궁의 탓으로 돌리며 남성한테는 없고 여성한테만 있는 이 자궁이
마치 여성이 남성보다 완전하지 못한 존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자료처럼 씌였다.
아이를 낳아보니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고카피같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하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열달 동안 뱃속에서 내가 한 사람을 만들어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로웠다.
나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자궁이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내가 사는 이 시대는 더 이상 자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태어난 것도 참 복이다.
자궁의 역사는 아직도 씌여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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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에 대해서, 불평등한 처사에 대한 역사적 고찰. 자궁의 역사. 자궁을 통제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것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 지금의 페미니즘은 어쩌면 과격한 것인지도 불평등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억제되어 온 자궁의 역사는 사실이다. 피임법에 대해 배울때 여자의 몸에 하는 피임이 주로 많은 것은 의사가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산파들은 여성이었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의사들은 산파를 무시하고, 제대로된 여성에 대한 이해도 없이 신의 명령이란 이유로 병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 중세의 성에 대해 솔직한 견해를 말하는 것,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 좋았다. 억누르지 않고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른 모습이리라. 자궁을 해방하는 것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 남성과의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
| 흔히 일반적으로 의학과 과학의 발달이 인간에게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지만, 우리는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도 사회의 가치관이 깊숙히 개입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유사 이래, 자궁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종교와 사회에 의해 오랜동안 왜곡되어 왔고, 그 여파는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다. 히스테리는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자궁의 발작 증상에서 이제는 성적으로 만족되지 못한 노처녀(!) 여성의 신경증적 증상으로 종종 인용된다. 또한 프로이드 등의 정신분석학자 등에 의해 히스테리는 여성만이 겪는 전형적 정신 증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오해들은 이미 이리가라이나 크리스테바와 같은 많은 여성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던 부분이다. 산부인과학의 발달에 따라 자궁은 점차 의학 전문가의 진단과 관리에 맡겨졌지만, 그만큼 자궁은 그 주인인 여성에게서 더욱 멀어져 가고 있다. 데이비스 플로이드는 여자들이 자신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 거의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자궁이 병원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임산부들이 제왕절개술을 받거나, 폐경기 여성들이 자궁 적출술을 시술받을,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에 관해 충분한 판단을 할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고, 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의 제왕절개술 빈도는 세계 최고치에 달하는데, 이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라기보다 높은 수술비와 사고가 있을 시 책임 면피를 하려는 의사들의 태도 때문이다. 낙태와 피임 등에 관련된 사회적 논란 역시 사회가 성, 특히 여성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제하는가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은 여성의 성을 강력하게 통제하여 왔고, 낙태를 부도덕과 성적 문란의 결과로 여겨 왔지만, 동시에 수많은 여아 낙태의 원인이기도 하다. 피임 역시 마찬가지로 '노레보' 정의 판매를 둘러싼 논쟁은 자궁이 얼마만큼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위치에 있는가를 알게 해준다. 이제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여성의 자궁을 임신, 출산과 같은 생산적 견지에서 보았던 종래의 가치관과는 달리 시험관 아기와 클로닝같은 테크놀로지는 자궁이 인류의 재생산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있지만, 그것들이 자궁의 '사회적' 모습을 변화시키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이 아기의 생산이라는 의무를 더이상 짊어지지 않을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 여성에게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