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소설을 추천받는 것.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일이다. 책읽는 낭만푸우님의 추천 소설이다. 작년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에 냉큼 책장을 넘겼다. 표지부터가 새롭다. 지난 번 소설에서 낡고 헤진 빨간구두가 메인 오브제로 사용된 데 비해, 이번엔 한결 세련된 형태의 빨간 샌들이 등장한다. 또한 중국이란 국가적 아이덴티티가 드러낸 책 장정이었다면, 이번엔 트래싱지 재질의 불투명 표지 커버를 추가하여 한층 소설의 느낌을 살린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가 서두에서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로 단번에 날 도저한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한 촌락으로 이끌었다면, 이 소설은 'LE COMPLEXE DE DI'란 표지 타이틀에서 시작하여 문화대혁명 이후 젊은 세대의 복잡한 일상과 정신 세계로 날 이끌었다.
프랑스에서 소설가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이 시지에. 그의 소설을 동일한 역자와 출판사, 디자이너가 작업을 했던 터에 내용과 디자인에 있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감동 또한 동일한 층위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단 이 책은 재밌다. 전혀 중국스럽지 않은, 중국인 작가가 쓴 중국소설이라고 평한다면, 어폐가 있을까?
내용은 이렇다. 나이 마흔, 지독한 근시에다 비쩍 마른 뮈오는 프랑스에서 프로이드와 라캉을 연구하다가 중국에 들어왔다. 당시 중국에선 희귀한 직업이었던 자칭 정신분석가란 타이틀을 달고. 그런 그에게 불행의 전조가 드리운다. 대학시절 만나 약혼녀로 발전한 후찬이 불법사진을 해외로 유출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녀의 생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보잘 것없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사형집행관에서 일약 판사가 된 D이다. 부패와 탐욕의 화신인 D의 요구사항은 바로 '처녀'를 바치는 것. 그때부터 뮈오는 '금 가지 않은 잘 익은 수박'이라 명명한 처녀를 찾아 나선다.
꿈의 해석가. 프랑스에서 돌아온 정신분석가. 프로이드와 라캉 학파의 제자.
현수막을 자전거에 달고 좌충우돌 처녀찾아 삼만리의 대장정에 나선 그. 사실 사람들은 정신분석가 뮈오가 아닌, 꿈 해몽가 뮈오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꿈해몽이 우연이 지나치리만큼 잘 맞아 마치 무당이 족집게로 콕콕 집어내듯, 모든 처방이 맞아떨어진다. 프로이드의 제자라 스스로 평한 뮈오. 그런 그에게 유년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인 시체방부처리사가 있다. 그녀는 결혼 첫날밤 동성애자인 남편이 창밖으로 뛰어내려 지금껏 처녀로 살고 있다. 뮈오는 D판사에게 시체방부처리사를 바치지만, 3일 내내 마작으로 밤샘을 했던 그가 갑자기 숨졌다. 허나 병원 영안실에서 바딱 일어선 D판사는 뮈오를 살인음모죄를 씌워 수배를 내린다.
이때부터 시작된 도주생활. 결국 처녀사냥꾼 D의 제물로 바쳐질 시체방부처리사는 뮈오와 첫경험을 하게 된다.(뮈오도 마찬가지) 그녀로부터 도망나온 뮈오는 다시 한번 D판사에게 처녀를 바칠 계획을 세우고, 우연히 꿈해몽을 해줬던 18살 소녀를 데리고 왔다. 허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다리 골절을 당한 소녀는 뮈오를 배신하고 도망을 치고, 결국 모든 걸 포기한 뮈오에게 한 여자(다리 골절을 치료해준 관찰하는 노인의 딸)가 찾아온다. '너 처녀야?'라 쏘아붙이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영상을 다루는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다이 시지에의 빛나는 연출이 돋보인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문화 전반의 세태를 무겁지 않게 다뤘고, 부패한 관리의 상징인 D판사를 '처녀 사냥꾼'으로 내세워 당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무엇보다 희대의 '분서갱유'를 자행한 마오 이후의 문화, 사회적 검열 또한 인상적이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에선 발자크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된 오브제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세밀하게 그려낸 발자크가 금기시된 이유는 당연하다. 뮈오의 약혼녀인 '후찬'이 불법사진을 유출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것이나, 마오의 음담패설을 담은 책이 금서로 펼쳐지는 풍경 등은 다이 시지에의 개인적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역시 '부르조아 지식인'으로 낙인찍혀 4년이란 시간동안 재교육을 받았던 상처가 있다.
약혼녀를 구출하기 위한 뮈오의 노력은, 엉뚱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소설을 읽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뮈오 역시 기사도 정신에 바짝 군기가 든 프랑스 유학파 돈키호테였으니 말이다. 결국 약혼녀 구출은 힘들어졌고, 시체방부처리사를 비롯해 3명의 여성과 사랑 아닌 사랑에 빠진 뮈오다.
시종일관 진지함 속에 유머러스한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책장을 넘기며 쿡쿡 웃는 나를 보며,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에 이어 색다른 재미를 내게 선사한 다이 시지에. 뮈오를 통해 너무나 중국적이지만, 그러면서도 중국적이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꿈의 해석가 뮈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그나저나 후찬은 어떻게 됐으며, D판사는 여전히 처녀사냥꾼으로서 악명을 떨치고 있을까? |
|
위화의 전작들을 모조리 읽고 한동안 중국소설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우연히 인터넷 책방을 뒤지다 알게 된 책이다. 내가 접한 중국 소설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이 처한 처지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처절하게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역경이 묻어나지 않은 담담한 그래서 더 슬픈... 요즘은 누구나 흔히들 들어봤을 법한 문화대혁명 시기를 몸소 체험한 작가 다이시지에(載思杰)는 마오쩌둥의 사망 후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를 졸업하였다. 프랑스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가는 '뮈오'라는 철학자를 탄생시킨다. 프로이드를 아버지처럼 받들고 훌륭한 철학자의 꿈을 키운 뮈오. 10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여자친구 후찬의 수감소식을 접한다. 불법사진을 외국에 팔아넘겼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힌 후찬을 구할 방법은 순수한 처녀를 악랄한 판사 D에게 바치는 길 뿐이다. 충분한 돈과 강력한 권력을 쥐고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혈기보충을 위한 처녀뿐. 키도 작고 볼품없고 눈까지 나쁜 어리버리 40살을 넘긴 숫총각 뮈오. 오직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숫처녀를 구하는 여행을 떠난다. 프로이드를 등에 업고 전국을 돌며 꿈해석을 하는 뮈오에게 목적은 단하나 '처녀 구하기'. 그러나 프로이드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본사회로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외국의 모든 서적이 금서로 지정되어 읽을 기회조차 없었던 그들이었었기에... 뮈오의 복잡한 설명을 약 삼 분쯤 듣던 그녀는 손짓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이에요, 당신도 알다시피.” “정신분석과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정신분석을 한다는 것은 바로 점을 치는 것 아닙니까?” 그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그는 그녀가 자기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말 을 들었다) 말했다. “프로이드가 당신의 말을 들었다면…….” 그는 한 문장을 끝내기도 전에, 용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일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오히려 그의 인생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대발견의 기회가 된다. 오랜 동네 친구 시체방부처리사. 이름으로 불리기 보다는 시체방부처리사로 불리우는 그녀는 첫날 밤도 치르기 전에 과부신세가 된다. 그녀를 D판사에게 바치기로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시체방부처리사와 첫날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중국대륙에 상륙할 즈음, 아직은 서툴고 혼란스러웠던 사회. 아직은 금기시된 것들이 많았던 시대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 뮈오의 이야기는 한편의 코미디이다. 읽는내내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피식피식 웃었지만 다 읽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 과연 D판사의 콤플렉스는 무엇인가? 과연 여자친구 후찬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