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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말하기 vs 성령의 주권적 사역
"방언말하기 vs 성령의 주권적 사역" 내용보기
이 책은 말의 중요성과 방언의 유익에 관해서도 잘 다루고 있지만 주된 목적은 성도들이 방언을 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쓰여졌다. 그래서 방언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밝히고 계시는데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이천수 목사님께서는 믿는 자 안에는 이미 성령님이 내재하셔서 말씀하고 계시므로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성도가 따라할 수 있도록 몸과 혀에 힘을 빼고 자의식
"방언말하기 vs 성령의 주권적 사역" 내용보기

이 책은 말의 중요성과 방언의 유익에 관해서도 잘 다루고 있지만

주된 목적은 성도들이 방언을 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쓰여졌다.

그래서 방언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밝히고 계시는데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이천수 목사님께서는 믿는 자 안에는 이미 성령님이 내재하셔서 말씀하고 계시므로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성도가 따라할 수 있도록 몸과 혀에 힘을 빼고 자의식을

약화 및 배제하여 의미없는 소리를 계속 낼 것을 권하고 계신다.

 

가령, 책에 따르면 의미없는 '할렐루야'나 반복된 찬양, 집단 통성기도,

그리고 일부러 말끝을 흐려 계속 소리내는 것이 방언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는 말인 할렐루야나 역시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찬양이 어떻게 '의미 없는' 소리가 되는 지 납득이 가진 않는다.

또한, 이 책을 접하기 직전에 읽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서는 방언의 은사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 즉 그분의 주권에 달린 은사이므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방언을 유발하는 행위는 매우 비성경적이라고 강조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에서 이 목사님의 주장을 접했을 때는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덧붙여서 이 목사님과 마틴 목사님은 사도행전 2장 4절 말씀을 달리 보셨는데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위 말씀을 이 목사님은

당시 기도는 곧 통성기도였고 이미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수일 간 계속 (통성)기도해오고 있었으므로 성령님의 말씀을 따라할 수 있는

'자의식 약화'의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방언을 했다는 의미로 인용하셨으나,

마틴 목사님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를 강조하시며, 그 분이 주권적으로 주실 때라야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 목사님의 견해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성령님을

도와 방언 하겠다는 어떠한 행위든 근본적으로 강력히 반대하셨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러한 상반된 설명을 가려서 취해야겠지만

마틴 목사님의 설명과 같이 성령님의 주권적 역사로 인해 방언의 은사를 받은

내 입장에서는 이 목사님의 주장이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j***0 2007.07.15.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