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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역사는 거의 껍데기였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 어쩌고 몇년에 누가 나라를 세우고, 불교는 어느 왕때 들어오고, 사화의 순서는 어떻고, 중국 왕조 이름은 뭐고.....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그 속의 알맹이 즉, 사람들이 살아온 자취와 생활방식, 생존을 위한 투쟁, 민초들의 고난 등을 있는 그대로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왕들의 이름을 달달 외우고 그 왕들의 업적을 달달 외우는 게 우리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며 그게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는 하는 것일까?
저자는 고대, 고려, 조선 등을 나눠 그 시대의 생활상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를 하나하나 풀어서 소개하고 있다. 이런 책이 사실은 많은 도움이 된다. 연대표를 외우는 역사 공부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역사를 배우게 해준 분이라 생각한다. 또,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하나 하나 찾아서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저자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발췌하여 소개하고픈 책 속의 내용은...>
허왕후가 수로왕을 만나기 전에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에게 제사한' 의식은 고대 일본의 일부 지방에서 행해졌던 제사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로보아 가락국의 한 집단을 이룬 허왕후 집단이 왜인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후한서] 동이열전 한조의 "변진은 왜국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문신한 사람이 상당히 있다"는 구절은 허왕후가 왜국 출신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p.70)
백제가 중국에 진출해 활동했던 시기가 바로 이런 시대였다. 당시 한족은 그 세력이 극히 약화되어 중국 대륙을 지배할 능력도 없었고 북방 이민족들도 이후 동아시아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종족들로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동아시아 국제 정세 때문에 뛰어난 해양능력을 지닌 백제가 바다 건너 대륙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p.103)
통일신라 때 경주의 인구가 어떻게 100만여 명이 될 수 있었을까? 그 가장 큰 이유는 통일 신라의 활발한 국제 교역에서 찾을 수 있다. 통일 후 신라는 영토가 늘어난 것 보다 활발한 국제교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p.141)
원칙적으로 고발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난 후 사실일 경우에만 신문고를 치게한 반면, 반역자를 고발한 자에게는 그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신문고를 치게한 조치는 설치의 본질적인 목적이 통념과는 달리 정치적 숙청에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p.286)
실제로 남이가 병조판서의 면직 때문에 역모를 꾀했다는 인식은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p.310)
거북선은 이처럼 실제 전투에서 그다지 전공을 세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판옥선에 탑승한 군사들에 비해 그 사상자가 훨씬 많았다. (p.342)
또 4차 출전 이후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 때까지 거북선은 단 한차례도 전투에 동원되지 않았다. 불패의 신화를 이끈 거북선이란 통념은 역사적 사실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P.343)
조선후기 학자 이익의 지적처럼 그(장길산)는 홍길동, 임꺽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도적에 지나지 않았다. (p.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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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급감퇴하는 머리탓을 할까? 나이탓인가? 아님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수박 겉핥기로 읽은 탓인가?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읽지 않은 책인 것 같기도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고 기록을 뒤지니 읽은 책이다. 일정부분은 기억이 나나 일정부분은 전혀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덕에 우리 역사의 43가지 이색적인 주제를 기반으로 한 재밌는 책을 2번이나 읽게 되었다.
총기가 있다고 믿었던 나의 머리가 어찌된 영문인지 잘 가동이 되지 않는다. 가물가물해지는 연예인들의 이름이며, 친구들의 이름마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나이 든 탓이라고도 하는데 심각하게 말하면 치매의 초기증상이 될 수도 있다는데 점점 증세가 더 심해진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동일 주제의 책을 여러권 섭렵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천갈래 만갈래 읽고 싶은 책이 하도 많다 보니 깊이 파고드는 책읽기를 결심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우리 역사는 파고들수록 흥미롭고 재미가 진해진다. 왜 우리는 우리손으로 기록된 고대사의 기록이 일천한가. 역사 허무주의를 부추긴다고 나는 보수다란 책은 지적하지만 워낙 외침이 많고 자주 세력보다 사대세력이 신라의 통일 이후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 역사가 이런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 기록이 많은 조선시대의 역사도 아직도 의문부호에 방점이 많이 찍히는 주제들이 많은데 하물며 동시대의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우리 고대사의 경우 영구 미제,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주장이 난무하고 어떤 주제에서는 일본의 사서를 기본으로 하여 날조된 것이 분명함에도 명명백백히 밝혀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 안타까운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사 교과서에선 한번도 접하지 못해던 주제들의 연속이라 읽는 속도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에 비해 너무 빠르다. 그러나 내가 미처 몰랐던 역사를 이 책을 통해 많이 살펴보게 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건이나 기록도 뒤집어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색다른 우리 역사는 말하고 있다. 느낌와 의문부호가 연신 던져지는 사이 마지막장을 덮게 된 색다른 우리역사.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속시원히 의문점이 해결될터인데. 안타까운 대목마다. 역사가 우리게에 가르쳐주는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강요된 역사의식이 오늘의 문제를 잉태하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역사의 면면에 흐르는 저력을 다시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色다른 고대사의 비밀 |
| 역사를 두고 벌이는 한, 중, 일 삼국의 대립이 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할 정도로 변화가 급격한 오늘날인지라 과거는 잊으면 그만인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오늘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제로서의 역사의 역할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철저히 과거에 기반한 학문이며, 직접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우리로서는 선조들이 남긴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엇이 기록되고 또 기록되지 못하였느냐의 문제는 적지 않은 부분 기록하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 기록의 수많은 방법 역시 특정 사건을 더 부각시키고 덜 부각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사건은 과거 특정 시점에 정지되어 있지만, 역사는 현재의 시각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기 마련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주변국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왜곡하는 것을 두고 단순히 그들의 도덕성을 탓할 순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늘 승자의 것이 정통으로서 인정을 받아왔던 것처럼, 그것이 왜곡이라 할지라도 역사에 남는 것은 늘 승자의 몫이니 말이다. 우리는 국정 교과서를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 교육을 통제하고 있으며, 심지어 과목의 이름이 ‘국사’일 정도로 국수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최근 남녀 성비의 불균형 등으로 인하여 국제 결혼이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 여기며 혼혈아에 대한 냉담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민족의 근간(?!)으로서 중시되고 있는 단군신화와, 한 때 만주벌판을 호령했다는 자부심을 품게끔 해주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 등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지배적인 역사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미 교과서에 수록되어 국민 대다수에게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역사의 많은 부분이 특정 시간에 의해 후대에 윤색된 것이거나 사실성 여부를 증명할 고증자료를 갖추지 않은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적지 않은 쓰라림을 요한다. 단순한 예로, 익히 들어 다들 잘 알고 있을 신문고가 백성들의 고충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지배층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서 활용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 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역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왕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까닭 역시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물음으로부터 모든 큰 발견은 시작되는 법임을 아는 우리에게는 쓰라림을 감수할 용기를 내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려 무신집권기의 수많은 농민봉기가 봉건적인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으며, 주체적이라는 평을 받는 삼국유사 역시 삼국사기 못지 않은 사대성을 지닌 문헌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실학의 대가 박지원 역시도 신분 사회의 기본 질서를 답습하는 오류를 보여주었다는 점 등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껏 우리가 배워온 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는 과연 누구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었을까? 국가라는 하나의 거대한 틀에 얽혀 내 역사 의식마저도 왜곡되었던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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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역사 상식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남이 장군은 정말 비극적으로 죽은 영웅일까? 남이 장군이 정말로 역모를 꾀했을 수도 있다! 거북선은 과연 무적의 군함인가? 거북선은 3척이 전부인데 그나마 전투에 참가한 것은 2척에 인명손실도 많았다. 공노비 해산은 신분제 해체를 위한 것이었나? 공노비 해산은 정부의 재정 확대를 위한 고육책일 뿐이었다. 등등. 물론 저자가 제기한 여러 의문들이 공감이 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미처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걸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가르쳐 왔던 학교에 대한 분노도 있고. 저자는 이덕일과 함께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2를 함께 만들었던 이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얼개도 거의 비슷하고. |